• 【현종호 소설가 연재소설 (제3회)-3】 노량에 피는 꽃
    • 현종호 소설가
      현종호 소설가

        구름이 흩어졌다가 모이길 반복하고, 검푸른 바다의 물살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어느덧 보름이 왔음을 이순신은 살갗으로 실감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세상을 보는 눈을 그의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았고, 그는 날씨와 해류 등 바다의 움직임을 읽어내는 법을 박학다식한 그의 어머니로부터 틈틈이 배우곤 했었다. 적들이 미쳐 날뛰는 이유를 이순신은 항왜(降倭) 사야가(沙也可)를 통해 또한 알 수 있었다.
        적들이 포진한 거제도 북쪽 칠천량 하늘에 떠오른 구름 속에 적장 가토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세상을 무(武)로 덮겠다는 히데요시의 천하포무(天下布武)는 광기에 지나지 않는 야심일 뿐이었다. 그의 부하들은 대개가 종교의 힘으로 전쟁을 치르는 자들이었다. 요동치는 바다를 가득 메우고 식겁하게 펄럭이며 거침없이 몰려오던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經)’의 깃발들. 적선마다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經)이라 쓴 깃발을 무섭게 펄럭거리며 적들은 시도 때도 없이 몰려오곤 했다. 선실 안에 불단을 차려놓고 승려를 배에 태우고 다니며 적들은 이상한 종교의 힘으로 지긋지긋한 이 전쟁을 치렀다. 나치렌(日蓮)의 불법을 교묘하게 계승하여 살생을 금하며 생명 존중을 실천한다는 자들이 믿는 종교였다. 적의 승려들은 합장한 채, 염불을 외면서 아군의 칼을 받았다. 적의 승려들은 ‘남묘호랑(南無妙法蓮華經)’의 염불을 외우던 입으로 피를 토하며 선실에서 얌전히 죽어갔다.
        무수한 생명을 무수히 죽여가며 피를 뿌려댄 끝에 전국시대를 갈무리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겐 자기를 믿고 따랐던 지방 영주 다이묘(大名)들을 달랠 영지가 필요했을 것이고, 명나라까지 정복해 광활한 영토를 쪼개서 일일이 부하들에게 나눠주지는 못하더라도 조선 땅을 반만이라도 차지해 영지를 허락한다면 그 스스로 충분히 만족할 만한 일이었을 것이며, 복잡한 6촌 관계로 얽혀진 다이묘 가토는 그들의 관백(關白)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가장 믿을 만한 심복이었을 것이다. 히데요시는 그러나 임진년 출병 제1진 우 선봉장 사야가의 배신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항왜 사야가의 갑작스러운 배신으로 무려 3천의 병력을 조선에서 하루아침에 잃어야 했던 그의 측근 가토는 미친 듯이 날뛰며 조선의 백성들을 닥치는 대로 도륙하였다. 가토는 산천에 피를 뿌려대며 조선의 국토를 한껏 짓밟았는데, 가토 기요마사의 그 분풀이는 백두산에 살아남은 호랑이들의 씨를 말리려는 호랑이 사냥으로까지 이어졌다.
        탐욕스러운 왜는 인삼은 물론이고 조선 팔도의 금이란 금을 모조리 강탈해 가고도 모자라 그동안 명나라에 조공으로 꾸준히 바쳐온 황칠나무 등 조선의 귀한 나무란 나무는 깡그리 수탈해갔다. 폐허가 된 산에는 이젠 그럴싸한 나무가 하나 없다시피 했다. 야적지 꼴을 하고 민둥산들은 쏟아지는 햇빛을 날마다 그대로 맞고 있었다. 열도를 통합하고 천하인(天下人)임을 자처하며 천하포무(天下布武)라는 헛된 꿈을 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시 조선의 막사발 찻잔에 환장할 정도로 미쳐 있었고, 적들은 찢어지게 가난한 백성들의 밥그릇까지 빼앗아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왜군이 그때 빼앗아간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일본의 텐리대학교 중앙박물관에 아직도 소장돼 있다) 조선의 도공들을 왜국으로 대거 납치해갔다. 그리고 본국으로 납치해간 그들을 극진히 예우하며 달랬지만 고향을 잃은 그들의 마음만은 적들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다. 끝나진 않는 이 전쟁은 결국 선과 악의 끝나지 않는 싸움임을 그들이 어찌 알았으랴…….
        환상인가 싶어, 혹…… 환각이 아닌가 싶어 연거푸 고개를 흔들어 가토의 망령을 끝내 떨쳐내고 나면 조선인들의 원흉 히데요시가 뜬구름 속에서 되살아났다. 몸속을 깊이 찔러오는 갯바람은 오늘도 못 견디게 이리도 차가운데, 히데요시가 예리한 눈빛으로 그의 착잡한 마음을 연거푸 쿡 찔러 들어왔다. 이순신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는 연방 혀를 차대며 히데요시를 꾸짖었다.
        “멍청한 놈! 잔머리 굴려서 거기까진 그래도 무난히 넘어갔겠지……!?”
        잔꾀를 부려서 다이묘들의 탐욕을 부추기는 데 성공했는지는 모르나 잔악무도하기만 했던 그 다이묘들로부터 부모와 형제마저 잃고 억지로 전장에 끌려온 왜병들이 태반이었다는 사실을 그자는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역사 해설 (편집부)

      • 사야가·가토·히데요시 서사: 항왜(사야가)의 이탈, 가토의 보복, 히데요시의 팽창전략—전쟁의 국제정치적 맥락을 드러냅니다.
      • 신앙과 전쟁: ‘나무묘법연화경’ 깃발 묘사는 신앙의 전쟁 동원 도구화를 비판적 시선으로 포착합니다.
      • 문화·자원 수탈: 도공 납치, 미술품 약탈, 산림 훼손 등 총체적 약탈전의 단면을 서사적으로 제시합니다.

      현대적 의미 (편집부)

      1. 전쟁경제의 민낯: 자원·문화재·인력 수탈은 오늘의 분쟁에서도 반복—보존·환수·복원 거버넌스 중요.
      2. 이념·종교의 도구화 경계: 신앙·가치가 동원 논리로 변질될 때 비극이 확대.
      3. 정보·심리전: 항복·이탈·배신의 정보 효과는 물리력 못지않은 전략 변수.

      본문 속 한자 해설 (편집부)

      • 항왜[降倭]: 항복한 왜군. 조선에 귀순하거나 항복한 일본인.
      • 사야가[沙也可]: 일본 이름 ‘사야카(사또 요시토요, 加藤嘉明 휘하)’의 조선식 표기. 귀순하여 귀화.
      • 무[武]: 무력, 군사력. 여기서는 “세상을 무(武)로 덮겠다” → 폭력으로 지배하려는 야망.
      • 천하포무[天下布武]: “천하에 무(武)를 펼친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내건 통일 구호. (무력으로 천하를 제패하겠다는 뜻)
      •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經 | 남무묘법연화경]: 니치렌(日蓮) 계 불교의 염불 구호. ‘묘법연화경(법화경)에 귀의합니다’라는 뜻.
      • 나치렌[日蓮 | 일련, 나치렌]: 일본 불교 종파 창시자. 법화경 신앙 강조.
      • 다이묘[大名]: 일본 전국시대·에도시대의 영주. 지방 무사 집단의 우두머리.
      • 관백[關白]: 일본에서 천황을 보좌하던 최고 권력직. 히데요시는 ‘관백’으로 권력을 장악.
      •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 도요토미 가신. 조선 침략에 참가한 다이묘.
      • 천하인[天下人]: ‘천하의 지배자’. 전국 통일 후 히데요시가 스스로를 칭한 말.
      •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조선 화가 안견의 대표작.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반출되어 현재 일본 텐리대학 중앙박물관 소장.

      문장별 포인트 (편집부)

      • “天下布武(천하포무)”: 일본 전국시대 오다 노부나가가 처음 사용한 슬로건을 히데요시가 계승.
      • “南無妙法蓮華經(나무묘법연화경)”: 법화경 귀의 염불. 아이러니하게 ‘살생 금지’를 표방하면서도 전쟁 깃발로 사용.
      • “大名(다이묘)”: 조선 침략군의 주력. 각 영주들의 사병 집단이 일본군의 핵심.
      • “天下人(천하인)”: 스스로 천하의 지배자임을 자처한 히데요시의 오만한 호칭.

      작가 소개

      현종호 (소설가)

      • 평택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외국어대학 영어학과 조기졸업
      • 명진외국어학원 개원(원장 겸 TOEIC·TOEFL 강사)
      • 영어학습서 《한민족 TOEFL》(1994), 《TOEIC Revolution》(1999) 발표
      • 1996년 장편소설 『P』 발표
      • 1998년 장편소설 『가련한 여인의 초상』, 『천국엔 눈물이 없다』 발표
      • 전 국제대학교 관광통역학과 겸임교수 역임
      • 현재 평택 거주, 한국문인협회 소설가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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