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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현종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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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한양 의금부에서 풀려났다. 의금부로 붙잡혀온 지 한 달 만에 이순신이 옥문을 나서는 것이다. 더해지는 서글픈 마음을 그는 이겨낼 길이 없었다. 옥에서 마침내 풀려났으나 이순신은 여전히 중죄인이었다. 녹초가 된 몸을 추스를 수도,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도 없었다. 영어(囹圄)의 몸에서 달포 만에 어쨌든 풀려났건만 허리는 결리고 쑤시고 시리고 끊어질 듯 여전히 아팠다. 중죄인 이순신은 눈을 찡그렸다. 쏟아지는 아침 햇살에 하도 눈이 부셔서 한동안 눈을 뜰 수도 없었다. 의금부에 투옥된 뒤, 꼭 28일 만에 다시 보는 아주 밝은 세상이었다. 하늘 높이 떠오른 태양에서 쏟아지는 저 찬란한 햇빛은 하늘이 아름다운 근화향(槿花鄕) 조선에 내린 축복이었다. 매화의 그윽한 향기가 다시 콧속으로 황홀하게 빨려 들어왔다.
어느새 봄이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초토화가 되어버린 조선에도 이윽고 스스로 찾아온 것이다. 울적한 기분이 차츰 잦아들자 반가움과 안도감이 점점 교차했다. 수척해진 그의 얼굴 위로 환한 미소가 갑자기 확 번졌다.
임금의 명령을 거역한 대가는 그만큼 혹독했었다. 꽃나무의 고아한 자태를 그는 속히 달려가 어서 만나보고 싶었다. 한 생명이 죽어가면 곧 다른 생명이 피어나고 세상은 그렇게 돌고 돌며 물 흐르듯 유연히 윤회하는 것이리라. 혹독한 시련의 겨울을 이겨내고 나니 만물이 소생하는 희망의 봄이 조선에도 드디어 스스로 찾아온 것이다. 비쩍 마른 황소가 끄는 함거가 서빙고로 접어들 때,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는가 싶었는데, 일부는 어느새 매화가 져 있다니, 다른 생명을 꽃피우기 위해 속절없이 시들어가는 윤회의 꽃잎을 바라보는 기분이 그는 실로 감개무량했다.
임금을 기만하고 함대를 움직이지 않았던 대역죄인 이순신의 두 번째 백의종군이었다. 천여 기의 여진족 기병들을 물리치고 기지를 발휘해 60여 백성들을 구출했음에도 북병사 이일의 모함으로 녹둔도에서 처음 종군한 이래 그가 두 번째로 치르게 되는 백의종군이었다.
숭례문을 나와 여염 윤간(尹侃)의 종 집으로 가서 그는 둘째 아들 울과 조카들을 비로소 만나볼 수 있었다. 얼굴은 일그러지고, 봉두난발에 허름한 누더기 흰옷을 걸친 그를 보자마자 그의 아들 울이 숨죽여 한참을 울었다.
“나의 잘됨을 가장 기뻐하고 나의 잘못됨을 가장 슬퍼할 자가 누구인가…….”
옥에서 풀려나와 꿈에도 그리던 가족을 다시 만나볼 수 있었으나 여수에 홀로 계신 어머니 모습이 그의 눈앞에 한참을 어른거렸다. 지사 윤자신이 직접 찾아와서 그를 위로하였고, 비변랑 이순지도 몸소 다녀갔다. 방답첨사 이순신이 저녁에 또 술병을 들고 찾아와서 함께 취하며 위로해 주었지만 울적한 기분은 그러나 오래도록 가실 줄 몰랐다. 영의정 류성룡, 판부사 정탁, 판서 심희수 또한 위문했는데, 그들은 직접 나타나지 않고 다만 종들을 보내 위로의 말을 전했을 뿐이다. 임금의 불편한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무지 애쓰는 듯 영의정 류성룡은 매우 조심스러웠었다.
이튿날엔 한나절 내내 비가 내렸다. 곤장에 녹아내리고 형틀에 으깨지던 몸이 종일 욱신거렸다. 우중충하고 햇빛 한 가닥 들지 않는 차디찬 초막에 누워 잠 못 이루고 내내 뒤척이는 동안 자신을 모함한 사헌부 관료들과 어떻게든 살려내려 애쓰던 은인들의 면면이 중죄인 이순신의 눈앞에 하나씩 차례로 떠올랐다.
의금부 형틀에 묶여 죽어가면서 그는 자기를 기소하고 탄핵한 자들 모두를 마침내 알아낼 수 있었다. 그래도 믿었던 경상 좌수사 박홍(朴泓)이 탄핵에 가세했었다니, 놀랄 일이었다. 사헌부는 사냥개 뺨치게 물고 늘어지며 자신을 집요하게 탄핵했었다.
“……통제사 이순신은 나라의 은혜를 크게 입어 관직이 최고조에 이르렀는데도 힘을 다해 공을 세워 보답할 생각을 하긴커녕 남의 공로를 빼앗으려고 거짓된 장계를 올리는가 하면, 적을 토벌하지 않고 국가를 배반한 그의 죄가 실로 크오니 대역죄인 이순신을 당장 잡아 오라고 명하여 그 죄를 엄히 물으소서, 전하…….(선조실록)”
그날 저녁 무렵에서야 그는 숭례문 안으로 다시 들어가 재상 류성룡을 겨우 만나볼 수 있었다. 영의정 류성룡은 봉두난발에 수척해진 그를 보자마자 눈시울부터 닦았다.
“내가 자네 여해(汝諧)에게 정말 할 말이 없네!”
굳이 그가 그리 변명하지 않아도 이심전심(以心傳心)이요 불립문자(不立文字)였다. 대역죄인 이순신은 백의의 지친 몸으로 고개를 푹 숙이며 재상 류성룡 앞에서 머리를 거듭 조아렸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영의정 대감!”
“내가 자꾸 나서면 전하의 불편한 심기만 오히려 건드리는 꼴이었네. 자네가 보내준 일기를 내가 전하께 애써 직접 보여드리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만 같았네. 전하는 원래 신하가 강해지는 꼴을 그냥 못 지켜보는 그런 분일세. 정탁은 자네가 그동안 써왔던 일기를 읽어보고 나서 원균의 모함과 자네의 억울한 심정을 그래도 제대로 알아주는 것 같더군.”
의금부는 일단 불려가면 도저히 살아서 나올 수 없는 곳이었다. 1차 고문만으로도 태반이 죽어서 시구문 밖으로 실려 나가고 2차에선 여태껏 살아서 돌아온 자가 없다 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그 의금부 형틀에서 이순신이 초주검이 됐을 때, 정탁의 거듭된 상소와 대신들의 끈질긴 설득 덕분에 선조가 결국 마음을 바꾸고 그를 풀어주었던 것이었다.
“종사관 정경달이 근정전 대청마루에 이마를 찧어대며 거듭 아뢰고, 돌격대장 나대용과 녹도만호 정운과 지도 만호 송희립이 궐문 밖에서 죽을 각오로 몇 번이고 탄원한 덕분에 그래도 자네가 달포 만에 어쨌든 죽지 않고 이렇게라도 풀려난 걸세.”
의금부 형틀에 묶였던 기억들이 그의 뇌리에 퍼뜩 되살아났다. 답을 이미 정해놓고 짜 맞추듯 집요하게 물어오는 위관들의 문초는 답변할 가치조차 없는 심문들이었다. 끈덕지게 퍼부어대는 허망한 내용의 문초와 잇따른 고문과 위관들의 쓴웃음은 조선의 장군 이순신에겐 씻지 못할 모멸이요 치욕이었다. 절벽 앞으로 몰렸던 이 나라 조선의 운명을 회생불능의 침몰 직전으로 다시 몰아가는 대신들이 그는 그저 한탄스러웠었다. 저만치 절망과도 같은 절벽 저편에서, 임금과 관료들과 원균이 그에게 손가락질하며 한껏 비웃고 있었다.
형리들은 이순신의 깨진 정강이에 거듭 주리를 틀었다. 너덜너덜해진 그의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기진해진 몸은 덜덜덜 떨리고 마비된 다리 역시도 무거웠다. 그의 몸을 무참히 으깨는 주리틀기와 혹독한 매질에 그는 여러 번 실신했다. 퍼뜩 정신을 차리기가 무섭게 시뻘겋게 달궈진 쇠붙이가 그의 허벅지를 다시 깊이 찔러오는가 싶더니 살을 태우고 뼈를 무참히 으깼다. 살이 타서 익어가며 뿜어내는 악취가 한동안 그의 콧속을 지긋지긋하게 후벼댔다. 사천해전에서 어깨 깊이 찔러 들어오던 적의 총알보다 더 견디기 버거운 형리(刑吏)들의 인두질이었다. 깨문 입술 사이로 삐져나오던 신음은 오후가 되자 비명이 되었다. 이빨 사이로 이윽고 비명이 삐져나왔다.
“억……!!!……”
삐져나오는 신음을 그는 도무지 깨물 수가 없었다. 임금의 물음과 섞여서 희롱에 지나지 않는 위관들의 허무맹랑한 모략과 문초가 꺼져가는 등잔불처럼 희미해지는 그의 의식을 다시 쿡, 찔러왔다.
“조선의 장군이란 놈이 벌써 이 난리야. 너는 당나라 군대냐? 네놈은 대체 어느 나라 어느 놈의 군대냐? 너는 왜놈 가토의 졸개가 아니냐? 지금도 이 천하가 공물(公物)이라서 세상 주인이 아직도 따로 없다는 게냐?”
“…….”
“…….”
위관들은 무고한 그를 정여립의 대동계 조직원으로 몰아가고, 충신인 그를 길삼봉의 끄나풀로 여드레 동안 부지런히 엮어갔다. 정여립의 역모 사건을 빌미로 천여 명의 무고한 선비들을 무참히 죽여야 했던 기축옥사(己丑獄事). 구름을 타고 곳곳에 속출하며 피를 부르는 길삼봉은 인간의 두려움과 헛된 욕망과 착각이 만들어낸,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허깨비인데, 자신을 그런 허깨비 길삼봉으로 둔갑시키려는 위관들의 처절한 노력이 그는 그저 안쓰러웠었다. 형리들의 고문이 거듭될수록 길삼봉의 얼굴은 임금의 용안과 정철의 상판에 거듭 겹쳐질 뿐이었다. 유배지에서 어느 날 갑자기 풀려나 돌연 궁으로 돌아온 좌의정 정철이 애꿎은 선비들을 무참히 죽이는 그 추국을 주도하는 자였다. 앞서간 선배들이 그랬듯 와신상담(臥薪嘗膽) 낙향하여 때를 호시탐탐 노리며 기다리고 기다리던 자가 바로 정철이었다. 천재 문인 허난설헌의 필력을 높이 평가하는 이순신에게 얼토당토않은 수사로 수다스럽게 충(忠)을 고백하는 정철의 시는 가증스러운 학식이 만들어내는 한낱 잡문에 불과한 글이었을 뿐. 번뜩이는 정철의 눈빛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대역죄인 이순신은 속이 몹시 불편했었다.
위관에게 무슨 말이라도 건네려 했으나 목이 잠겨서 그는 이제 소리를 목구멍 밖으로 끄집어낼 수도 없었다. 서로의 적의 팽팽한 바다에서 목숨을 걸고 적들과 싸우며 겪었던 기억들이 그는 무상했다. 고개를 떨군 채, 이순신이 근정전을 향해 속으로 묻고 있었다.
“신이 가진 보잘것없는 권력이 두려우신 겁니까, 전하? 신이 세운 공이 너무 커서 신을 용납할 수 없는 겁니까, 전하……?”
허깨비 길삼봉에 겹쳐 임금의 곤룡포 자락이 그의 눈앞에 한동안 어른거렸다. 이순신은 신음하며 위관에게 겨우 답했다.
“당신들이 찾고 있는 그 길삼봉이란 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허깨비일 뿐이란 말이오…….”
술을 좋아하고 아부하지 못하는 강직한 성격에 발 빠르고 손재주가 좋고 눈치 빠른 나대용과 매사에 신중하고 대담하며 똑똑한 정운은 그가 자기 몸처럼 늘 아끼며 소중히 여기는 부하들이었다. 그들의 그 길은 영의정 류성룡이 또한 열어주었을 것이었다. 이순신이 고개를 꺾으며 말했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대감……!”
“대감은 무슨…… 전처럼 그냥 형님이라 불러…….”
“예, 형님……!”
갑자기 생각난 듯 류성룡이 무언가를 꺼내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어둡고 춥디추운 옥에서 그동안 정말 고생이 많았네. 우선 이것부터 어서 드시게, 여해(汝諧)!”
환약이었다.
“허준 어의께서 이번에도 온백원을 처방해 보내주시더군.”
복통이 아주 심각한 경우에만 극약처방으로 쓰는 약이 온백원이라는 사실을 그도 나중에 속이 망가지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대역죄인 이순신은 그 온백원 한 알을 못 얻어 먹어보고 형틀에서 한 달 동안 으스러지며 속병으로 시종 시달려야 했던 거다. 형틀에서의 아팠던 기억이 퍼뜩 스쳤다.
끊임없는 문초와 고문들 사이에서 그가 혼절할 때마다 몰인정한 형리들은 찬물을 얼굴에 몇 번이고 끼얹어가며 스러져가는 그의 의식을 무자비하게 깨워댔다. 형틀에 묶여 무의미한 문초와 모진 고문에 시달리면서 중죄인 이순신은 난생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했다. 그는 더 살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도, 자식도, 아내도 없는 형틀에서 이대로 허망하게 죽어갈 수는 없었다. 정신을 차릴 때마다 자신의 마지막은 잔악한 적들을 물리치고 난 뒤의 안온한 죽음이기를 이순신은 몇 번이고 갈망했었다.
형틀에 으깨지던 몸의 기억이 서운한 그의 마음에 다시 불을 지폈다. 암울하고 아프기만 했던 기억들이 그에게 하나씩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한 몸 바쳐 절벽 앞으로 몰린 나라를 구해낸 사람이요 지휘관으로서 명나라가 탐내는 조선의 장수인 자신을 대하는 조정의 푸대접이 괘씸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상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위관과 형리들만 무턱대고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편집부 해설】
한산 통제영에서 대역죄인으로 끌려간 지 한 달, 이순신은 의금부의 옥문을 나선다. 그러나 풀려났다는 말은 공허했다. 몸은 부서지고 마음은 무너졌지만, 그는 여전히 중죄인이었다. 햇빛 아래서도 스스로를 옭아매는 보이지 않는 사슬 — 그것이 ‘낙인’이었다.
1597년 정유년 이른 봄, 의금부에서 풀려난 이순신은 다시 백의종군의 길에 오른다. 형틀에 으스러진 몸을 이끌고 숭례문을 나서며, 그는 가족과 조정, 그리고 백성의 얼굴을 떠올린다. 영의정 류성룡과의 만남에서 그가 받은 위로는 따뜻했으나, 조정의 냉정한 현실은 그대로였다. 그는 “신이 가진 보잘것없는 권력이 두려우신 겁니까, 전하?”라며 스스로 묻는다. 국가의 무능과 왕권의 불안, 그리고 충성의 왜곡이 만들어낸 고통 속에서, 이순신은 ‘죽음을 넘어서서 싸우는 자’로 다시 태어난다.
이번 회는 ‘의금부의 고문과 이순신의 침묵’을 통해 권력과 정의의 갈등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형리의 인두질과 문초는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권력이 진실을 짓누르는 정치적 폭력의 상징이다. 이순신이 끝내 “길삼봉은 허깨비일 뿐”이라 답하는 장면은 거짓의 구조 속에서도 양심의 진실을 지키려는 인간의 마지막 저항으로 읽힌다. 특히 류성룡과의 재회는 감정의 절정이다. “전하의 불편한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 속에서 정의와 권력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순신의 침묵은 복종이 아니라, 시대의 폭력에 대한 절제된 항거다.
【본문 어구 해설】
義禁府(의금부) 조선시대의 최고 사법기관으로, 왕명을 받아 중죄인을 심문하던 곳. 오늘날로 치면 대법원·검찰·경찰을 합친 국가 사법기구 정도.
囹圄(영어) 감옥(監獄)을 뜻하는 한자어. 이순신이 “영어의 몸”이라 한 것은 옥에 갇혀 자유를 잃은 상태를 의미. 단순한 수감이 아니라 진실이 억눌린 사회의 부조리를 상징.
達浦(달포) ‘한 달 남짓’이라는 뜻의 옛 표현. 이순신이 의금부 감옥에 갇혀 있던 기간(약 28일).
槿花鄕(근화향) 무궁화의 나라, 즉 조선의 시적 별칭. ‘근화(槿花)’는 무궁화를 뜻하며, ‘향(鄕)’은 고향을 의미. 조국의 아름다움과 덧없음을 동시에 상징. 나라의 상징이자 끈질긴 생명력을 뜻함.
北兵使 李鎰(북병사 이일) 조선 북방의 군사 책임자. 녹둔도 사건 때 이순신을 모함해, 그의 첫 번째 백의종군(죄를 입고 다시 군에 복귀함)을 초래한 인물.
鹿屯島(녹둔도) 함경도 국경 근처의 섬. 젊은 장교 이순신이 여진족을 막다 실패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처벌받은 장소.
崇禮門(숭례문) 서울 남대문. 옛날에는 죄인을 형장으로 압송할 때 지나던 문이어서, 치욕과 굴욕의 상징.
閭閻 尹侃(여염 윤간) ‘閭閻(여염)’은 평범한 백성의 집을 뜻함. 윤간은 감옥에서 풀려난 이순신을 찾아와 위로한 한양의 선비의 이름. 여기서는 지사(志士)의 우정과 의리를 상징. 이순신의 친척으로, 장군이 풀려난 뒤 몸을 추스르며 머문 집의 주인. 가족적 온정의 상징으로 등장.
蓬頭亂髮(봉두난발) 머리가 헝클어져 어지러운 모습. 이순신이 옥살이 중 겪은 고통과 인간적 수모를 표현.
志士 尹自新(지사 윤자신) ‘志士(지사)’는 뜻이 곧고 절개가 굳은 선비. 윤자신은 이순신의 의로움을 이해한 충직한 인물.
防踏僉使(방답첨사) 전라도 여수의 방답진을 지키던 해군 지휘관. 이순신과 함께 싸웠던 동료 무장.
判書 沈喜壽(판서 심희수) 조선 병조판서(국방부 장관격). 이순신을 위로했지만 직접 나서지 않고 종을 보내는 소극적 태도를 보임.
司憲府 官僚(사헌부 관료) 관리의 비리를 감시하는 관청 관리들. 이순신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몰아 탄핵한 세력.
慶尙左水使 朴泓(경상 좌수사 박홍) 경상도 해안 방어 책임자. 겉으로는 동료였지만 결국 이순신을 탄핵하는 데 가담.
汝諧(여해) 이순신의 字(자, 어른이 된 후의 이름). 조선시대에는 예의를 지켜 이름 대신 ‘자’를 불렀음.
以心傳心(이심전심) 마음과 마음이 통한다는 뜻. 이순신과 류성룡의 묵언의 교감을 나타냄.
不立文字(불립문자) 말이나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진실. 이순신과 류성룡의 묵묵한 신뢰와 우정을 보여줌. 진정한 신의(信義)를 상징.
屍口門(시구문) 서울 서남쪽에 있던 성문. 사형수의 시신을 내보내던 문으로, 죽음을 상징.
勤政殿(근정전) 경복궁의 중심 전각으로 임금이 정무를 보던 곳. 이순신이 억울함을 호소했던 장소로 상징.
突擊隊長 羅大用(돌격대장 나대용) 거북선을 만든 발명가이자 이순신의 부하 장수. 과학기술에 밝은 군관.
鹿島萬戶 鄭運(녹도만호 정운) 이순신의 충성스러운 부하 장수. 한산도 해전 등에서 공을 세움.
智島萬戶 宋希立(지도만호 송희립) 전라 좌수영 소속의 장수. 명량해전과 노량해전까지 끝까지 이순신을 따름.
委官 問招(위관 문초) ‘委官(위관)’은 죄인을 심문하던 관리, ‘問招(문초)’는 신문을 뜻함. 이순신이 당한 고문과 권력의 폭력을 상징.
刑吏(형리) 고문을 집행하던 관리. 당시 의금부에서 이순신의 육체적 고통을 가한 인물들.
형틀·주리틀기 죄인을 묶어 고문하던 도구와 형벌. 이순신의 육체적 고통은 곧 권력이 정의를 짓밟는 현실을 보여줌. 形帋(형지): 형벌(刑罰)과 관련된 ‘형(形)’은 ‘형벌·형틀’을 뜻함. 주리틀기의 ‘주리’는 周利刑具(주리형구) 또는 拘絞刑具(구교형구)로 풀이할 수 있음. 역사적으로는 ‘주리틀다’가 ‘다리나 팔다리를 꼬아 비트는 형벌’을 의미했기 때문에, 한자식으로는 拘絞刑具(구교형구) 또는 扭絞刑(뉴교형)이 가장 근사. 形具(형구, Torture Device)– 죄인을 묶어 고문하던 도구. 拘絞刑(구교형, Twisting Torture)– 팔이나 다리를 비틀어 신체를 고통스럽게 하는 형벌.
泗川海戰(사천해전) 1592년 이순신이 일본 수군을 대파한 첫 승전. ‘형리의 고문이 사천해전보다 더 괴로웠다’는 표현은 권력의 잔혹함을 뜻함.
公物(공물) 나라에 바치는 세금물품. ‘공물을 탐내는 위관’은 부패한 관료의 상징.
委官(위관) 왕의 명을 받아 범죄를 조사하던 임시 관리로, 오늘날의 ‘특별검사’에 해당. 대개 권력의 의중에 따라 움직였다는 점이 작품의 비판 대상.
鄭汝立(정여립)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한 조선 중기의 선비. 조선시대에 평등사상을 내세웠다가 역모죄로 몰려 처형. 반역 누명을 쓰고 죽은 학자. 이순신처럼 억울한 충신의 전형으로 그려짐.
大同契(대동계) 정여립이 만든 결사체. 평등과 협동을 내세웠으나 조정은 이를 반역단체로 몰았음.
吉三峯(길삼봉) 실존 인물이 아닌, 옛날에 반역의 상징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인물. 작품에서는 ‘허깨비 같은 누명’을 상징하며, 거짓으로 만든 죄의 비유로 쓰임.
八日間(여드레) 여덟 날 동안. ‘여드레 문초’는 이순신이 계속된 고문을 당했다는 뜻.
己丑獄事(기축옥사) 선조 때 정철이 주도한 대규모 숙청 사건. ‘길삼봉의 허깨비’와 연결되어 권력의 광기를 풍자.
君顏(임금의 용안) 임금의 얼굴을 뜻하는 존칭. 왕권의 상징이자,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
鄭澈 上版(정철 상판) 권세를 등에 업고 정적을 탄압한 정치가 정철의 ‘얼굴’을 비유적으로 낮춰 부른 말.
白衣從軍(백의종군) 벼슬이나 관직을 잃은 신하가 흰옷 차림으로 자원해 종군하는 것. 이순신이 다시 전장에 나서는 충절과 자기희생의 상징.
懲毖錄(징비록) 영의정 류성룡이 쓴 책으로, 임진왜란의 경험을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자는 교훈서. ‘징(懲)’은 꾸짖다, ‘비(毖)’는 조심하다의 뜻.
追鞫(추국) 죄를 다시 따져 묻는 특별 심문 절차. 이순신의 재심 과정으로, 정치적 음모의 재현을 드러냄.
臥薪嘗膽(와신상담) 원수를 갚기 위해 고생을 참고 견딘다는 뜻.
許蘭雪軒(허난설헌) 천재 여류 시인. 권력과 거리를 둔 ‘진정한 문학의 상징’으로 대비되어 언급.
雜文(잡문) 품격 없는 글. 이순신은 권력자들의 글을 ‘잡문’이라 하며 비판.
敵之澎湃海(적지팽패해) “적의 거센 파도처럼 요동치는 바다”,전투의 긴장감과 생사의 경계를 표현한 비유적 문장.
袞龍袍(곤룡포) 之裾(자락) 임금이 입는 옷의 자락. 왕의 권위와 이순신의 복잡한 심정을 상징.
丸藥(환약) 둥근 약 알약. 이순신의 병든 몸과 고통을 달래주는 약을 의미하며, 육체의 고통과 정신적 치유의 상징.
溫白元(온백원) 허준이 처방한 진통제 겸 강심제. 당시로서는 극약에 속했으며, 이순신의 육체적 고통과 함께 의학적 현실을 보여줌.
【현대적 의미】
오늘의 사회에서도 ‘낙인’은 여전히 존재한다. 진실을 말한 사람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고, 공익을 위한 목소리가 체제에 의해 짓눌릴 때, 이순신의 고통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의 거울이다. 법과 양심 사이에서 고뇌하는 이순신의 모습은, ‘조직에 충성할 것인가, 진실에 충성할 것인가’의 질문을 던진다.
작가 소개
현종호 (소설가)
• 평택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외국어대학 영어학과 조기졸업
• 명진외국어학원 개원(원장 겸 TOEIC·TOEFL 강사)
• 영어학습서 《한민족 TOEFL》(1994), 《TOEIC Revolution》(1999) 발표
• 1996년 장편소설 『P』 발표
• 1998년 장편소설 『가련한 여인의 초상』, 『천국엔 눈물이 없다』 발표
• 전 국제대학교 관광통역학과 겸임교수 역임
• 현재 평택 거주, 한국문인협회 소설가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