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하식 박사, 글로 남긴 지구촌 이야기(1회)】 미국 탐방기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  조하식칼럼니스트문인 PhD

      - 조하식(칼럼니스트•문인, Ph.D.) -



      -연 재-



      * 미국행이 까다롭던 때 --------------- 1회
      * 타이페이 항공의 민낯 --------------- 2회
      * 머나먼 미주와의 만남 --------------- 3회
      * 뜬눈으로 지새운 뉴욕 --------------- 4회
      * 강을 관통한 하저터널 --------------- 5회
      * 잠시 조망해본 빌딩숲 --------------- 6회
      * 과거사를 소환한 기억 --------------- 7회
      * 허름한 대학교 캠퍼스 --------------- 8회
      * 상생을 도모한 결과물 --------------- 9회
      * 낯선 도시의 이모저모 -------------- 10회
      * 이들을 지배하는 가치 -------------- 11회
      * 미대륙의 정책적 방향 -------------- 12회
      * 고속도로에 비친 그림 -------------- 13회
      * 현실을 되짚는 말솜씨 -------------- 14회
      * 수도 워싱턴의 진면목 -------------- 15회
      * 기도하던 링컨 대통령 -------------- 16회
      * 무명용사가 지킨 평화 -------------- 17회




      --------------------(1회)--------------------


      신대륙(?)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뭔가 내키지 않아 하는 아내를 달래 콧대 높은 미국대사관으로 향하는 날. 서울행 우등열차에 올라 어린 시절 소풍이라도 가듯 삶은 달걀과 과일로 대충 요기한 뒤 서울역사에 내렸다. 곧바로 잡아탄 택시. 눈앞을 가린 기다란 줄이 초장부터 사람을 질리게 만들었다. 이따금 영상을 통해 볼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막상 내가 그 대열에 끼여 마냥 시간을 죽일 줄이야! 게다가 열 가지가 넘는 구비서류 가운데 ‘소득금액 증명원’을 빠뜨려 부랴부랴 종로세무서를 찾았다. ‘며칠 관광 좀 하자는데 무슨 놈의 비자가 이리도 까다롭담?’ 어딘가 모르게 고압적인 담당 직원들에게 지문을 채취당하며 지레 주눅 들지 않으려 의식하는 사이 우리 부부의 인터뷰 차례가 되었다. 긴 기다림에 짧은 문답. 미국인 심사관이 예의주시하는 가운데 한국인 보좌관이 두툼한 서류를 뒤적거리며 초행길이냐고 물었다. 현직 교사라는 신분 확인도 모자라 전공이 무엇이냐, 법적 부부가 맞냐는 등 별것도 아닌 몇 마디 물음을 끝으로 적선하듯 잘 다녀오란다. 그야말로 상투적인 통과의례에 불과한 절차. 어쨌거나 나의 오랜 숙원은 그렇게 풀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 여름방학을 맞은 아들에게 빈집을 내맡기고 터미널에 나오니 공교롭게도 공항리무진의 시간표가 바뀌어 있었다. 30분 이상 늦어졌으니 약속 시각에 맞추려면 빠듯할 수밖에. 설마하고 미리 확인하지 않은 건 내 탓이로되 고객의 편의는 아랑곳하지 않고 변경을 거듭하는 영리상의 생리를 어쩌랴. 하지만 뜻하지 않은 소득도 있었다. 화장실을 다녀오다 집어 든 천주교 소개 책자가 그것.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꼼꼼히 읽다가 줄줄이 나오는 의문에 공항버스에서 꼬박 한 시간을 더 투자했다. 역시나 마리아는 여신(女神)이자 예수그리스도를 앞서는 중보자. 어머니의 품 안에 꼭 안겨있는 아기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자라지도 않은 채 그대로였다. 개신교의 신랄한 비판을 십분 고려한 듯 구절구절 교묘히 빠져나가려는 말장난. 하지만 빗나간 술수로 복음의 본질을 꿰뚫을 수는 없는 법이어서 각색한 교리에 놀아나는 영혼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동시에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들었다. 흩뿌리는 부슬비로 인해 미끄러운 노면. 계양을 지날 무렵 빚어진 체증을 뚫고 가까스로 공항에 도착하니 아니나 다를까 10시 약속을 20분이나 넘기고 있었다. 굳은 표정으로 설명하는 젊은 직원. 우리는 그의 사무적인 태도에 기분이 상할 겨를도 없이 그보다는 낯선 뉴욕까지 동행할 일행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무척 당황해야 했다.

      오후 1시 20분, 힘차게 이륙하는 기체를 통해 빨려드는 지표면의 풍경화. 하늘 아래 펼쳐지는 지상의 잔치는 푸르고 싱싱했다. 난개발 중인 한국의 풍광은 이러하거늘 과연 미국의 산야는 어떤 색깔일까? 알려진 만큼 캐나다는 한 점 오염이라곤 없는 별천지일까? 영종도를 감싸고도는 자줏빛 갯벌이 시야로부터 금세 멀어졌다. 황토색 물결이 출렁이는 서해 바다와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 기장은 벌써 일렁이는 해상에 점점이 박힌 섬들을 쓰다듬듯 검푸른 바다를 빙글 한 바퀴 돌더니 착륙을 알렸다. 중국어, 영어, 한국어 순으로 알리는 공지사항. 그나마 우리말 서비스는 타이베이에 내리면 끝날 가능성이 높다. 영어를 십 년 이상 배우고도 여태 말문 하나 제대로 트지 못한 현실이 못내 원망스러웠다. 해묵은 과제를 안고 내린 장개석공항은 청사 내부만 멀끔할 뿐 공항 주위 풍경은 허름한 인상이었다.

      이제는 앵커리지발 항공기로 갈아타야 한다. 우리 부부는 조금 전 한국인 승무원의 설명을 떠올리며 D4를 찾았다. 마무리 바닥공사만 보자면 인천보다 정교한 편. 군데군데 공항직원의 안내를 따라 걷다가 화장실에 들렀다. 문화 수준은 일단 합격점. 처음 접하는 ‘男盥洗室’이라는 명칭이 낯설어 귀국 후 옥편을 뒤져보니 대야 ‘盥(관)’은 씻고 양치질한다는 뜻이었다. 다만 영어와 일어 표기 옆에 한글이 빠뜨린 건 이들의 실수. 대충 면세점을 둘러본 뒤 往登機門(왕등기문) 밑 ‘To Gate’ 옆에 앉았다. 의미인즉 ‘가는 비행기에 오르는 문’, 공중전화(Public Telephone)는 공공전화(公共電話)여서 비슷했고, 재활용하는 자원회수통(資源回收筒)은 Recycling과 일치하는 느낌. 조금 있으려니 중화항공에서 뭔가를 전달했다. 신경을 곤두세워도 도통 모르는 소리뿐, 그렇다면 눈치라도 빨라야 하리라. 그 와중에 ‘중화항공’이라는 낱말은 신기하게도 딱딱한 경음과 어우러져 우리말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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