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하식 박사, 글로 남긴 지구촌 이야기(2회)】: 미국 탐방기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  조하식칼럼니스트문인 PhD

      - 조하식(칼럼니스트•문인, Ph.D.) -


      -------------- 타이페이 항공의 민낯(2회) ------------

         설마 비행기야 놓치랴마는 아내는 안절부절못했다. 늘어서 있는 사람의 표를 기웃거리는가 하면 손짓을 섞어가며 뉴욕에 가는 줄이 맞느냐고 물어보는 활약에 힘입어 겨우 제자리를 찾아들었다. 그런데 어이없게 예약한 좌석이 겹치는 일이 벌어졌다. 최첨단 시대에 이따위 원시적 실수를 저지르다니 원! 이어진 약간의 실랑이.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둘이 떨어져 가면 안 되겠냐는 승무원의 무리한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고 원래대로 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건 단답형 영어일망정 상대방과 의사소통만 할라치면 익히 알고 있는 영어단어까지 지레 까먹는 현상은 도대체 왜일까? 이런 나의 몹쓸 핸디캡을 무릅쓰고 비교적 쉽사리 “couple”이란 어휘를 소환해 “We are a couple.”을 수차례 거듭한 건 잘한 일이었다. 끝내 뒷맛이 씁쓸한 바는 자기네들 과실이 분명한데도 별다른 사과조차 없었다는 점. 비록 경미한 해프닝일지라도 대만이란 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하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판단할 만한 충분한 요소였다. 잔뜩 상해버린 마음처럼 험상궂게 찌푸린 날씨. 기창(機窓) 밖으로 비행기를 후진시키는 차량이 보였다. 정교하지 못한 시멘트 바닥의 이음매가 의자에 둔탁하게 전해왔다. 육중한 동체에서 내뿜는 후폭풍에 떠밀려 뿌리째 뽑혀버릴 듯 요동치는 잡초들의 신세가 안쓰러웠다. 흩뿌리는 궂은비로 인해 좁다란 창들이 얼룩지는 가운데 기체는 서서히 비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쉴 새 없이 뜨고 지는 일상의 반복. 예정보다 1시간 반이나 늦은 오후 5시경, 거대한 추진력을 축적한 동체가 허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착륙할 때 흘려버린 풍광을 또다시 놓칠세라 공들여 지상을 주목하니 아내 말마따나 우리나라의 어느 중소도시를 연상케 하는 모양새. 키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박힌 대지 위 저만치서 가물거리던 주홍색 아치 다리가 가물가물해졌다. 유난히 크고 작은 저수지가 많은 곳. 푸르른 평야를 끼고 여기저기 산재한 민가들이 눈동자에 들어왔다. 금세 바다 물결. 섬나라 타이완(Taiwan)의 수도 타이베이(Taipei 약자: TPE)는 해안가에 있었다. 갯벌이 없고 섬이 드문 언저리에 자리한 대만의 심장부. 자료를 보니 크고 작은 79개의 섬을 포함한 면적이 남한의 약 1/3 남짓, 전체 인구 2,300여만 중 1/10가량이 수도에 모여 살며 어엿한 민주주의에 힘입어 괄목할 만한 경제발전까지 이뤘다. 적어도 수치상으로는 전 국토에 골고루 퍼져 사는 게 좋아 보이지만 필자가 보기에 불교가 지배하는 의식구조는 문제의 근원이렷다. 선교사들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전파된 기독교의 복음은 미미하기 짝이 없고, 여전히 미신이 창궐하고 있어 사회 전체가 영적 침체의 늪에 깊숙이 빠져있는 형국이다. 이네들의 근현대사를 볼작시면 17세기 이래 이주한 한민족(현재 타이완인의 80%)이 줄곧 지배했고, 1895년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1945년 중국 본토에 복귀했다가, 1949년 12월 장개석 국민당 정부가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중공업과 석유산업 등 화학공업을 중심으로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한국, 홍콩, 싱가포르와 더불어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는 칭송을 들으면서 말이다.

         바닷가를 따라 엉금엉금 기어가는 고깃배. 고작 두 척이어서 그런지 한줄기 뱃길마저 흐릿했다. 희끄무레한 모래사장을 꽁무니에 매달고 기체가 하늘로 더 높은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귓속이 따갑도록 굉음을 내며 동체가 두꺼운 구름층을 뚫고 나가니 솜사탕 같은 구름 조각들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우주는 온통 새하얀 허공. 흡사 하늘과 맞닿은 설산(雪山)을 넘어 끝없이 펼쳐진 설원(雪原)을 걷는 듯한 기분이랄까. 새벽부터 서두른 탓인지 아내는 이내 눈을 감았다. 나의 삶을 돕는 동반자. 곁에 늘 사랑하는 아내가 있어 머나먼 여로에도 곤비치 않은 터다. 다소 이르다 싶게 내온 기내식. 아까는 쇠고기덮밥이더니 이번엔 닭고기였다. 아쉬운 점은 제공하는 식수가 부족해 갈증이 내내 목젖에 머무는 참. 귓구멍이 멍멍해 남아도는 자투리 시간 역시 고역이었다. 찰스 램의 수필집을 꺼내 뒤적이며 주어진 시공을 슬기롭게 경영하려니 엷은 졸음이 밀려왔다. 무거운 눈꺼풀을 뗐을 때는 누리는 어느새 황혼. 나는 광대한 태평양을 내려다보며 검붉게 물들어가는 석양을 즐겼다. 계기판이 가리키는 곳은 목하 오키나와. 조각조각 나뉜 땅덩어리에 드리운 녹음처럼 잦은 지진에도 굴하지 않고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대견한 데가 있다. 하지만 내내 음습한 신사에서 곰팡이가 피어나 죽어가던 나뭇가지의 애처로운 몰골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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