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설가 현종호 |
제6회 -2
찬바람 연이어 휘몰아치던 그 날 5월 3일 저녁에 부하 정운이 좌수사 이순신에게 단독면담을 요청해온다. 정운이 목소리에 힘을 줘가며 호통치듯 말했다. “우수사는 오지 않고 왜놈들은 한성 가까이 다가가니 통분한 마음을 금할 수 없고, 만일 이 기회를 놓친다면 그땐 후회해도 소용없을 겁니다, 좌수사 영감!”
서늘한 침묵이 한동안 흘렀다. 장수들이 서로 격분하여 제 한 몸을 돌볼 생각이 아예 없으니 실로 의사들이라 할만했다. 장고 끝에 좌수사 이순신이 마침내 중의장 이순신을 불러들인다.
“중의장!”
그는 중의장 이순신에게 출동준비를 지시했다. 그리고 내내 못마땅한 표정을 짓던 부하 정운을 바라보며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들의 생각이 정 그렇다면…… 내 기꺼이 출전하겠네…….”
드넓은 바다에 야속한 바람은 미친 듯이 연달아 휘몰아치고 무자비하게 거센 물결은 높디높기만 했다. 군관들은 비록 의기충천해 있더라도 그러나 아군이 보유한 판옥선은 24척, 협선 15척에 어선 46척이 전부였으니 두말할 것도 없이 존망을 결코 장담할 수 없는 불안한 출동이었다. 출정하는 그날 새벽에 백성들이 여수항으로 갑자기 모여들었다. 살아 돌아온다는 생환(生還)을 기약할 수 없는 전장으로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을 떠나보내는 자식들과 아내와 부모들. 여수항은 곧 눈물바다가 되었다.
임진년 5월 4일 새벽, 여수 모항에서 발진한 이순신의 수군은 경상도를 향하는 길에 남해도에 들러 군사를 더 모으려 했으나 남해 현령마저 이미 도망해버려 군사를 더 확보하긴커녕 아까운 시간만 바다에서 허비한 꼴이었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주리며 쉴 새 없이 노를 저어댄 격군(格軍)들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함대는 동진을 이어가 통영의 평산포, 상주포, 미조항을 거쳐 고성 소비포로 가 바다에서 어쩔 수 없이 하룻밤을 숙영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 한산도를 지나 당포 앞바다에 이르러 원균의 경상 우수군과 합류하였다. 배 몇 척 달랑 가지고 나타나 그가 알 턱이 없는 해괴한 소리나 해대는 경상 우수사 원균이 이순신은 한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원균이 자기에게 독살스러운 눈길을 주는 것만으로도 그는 심기가 몹시 불편했었다. 군관들이 갈피를 못 잡고 시종 허둥대자 이순신은 장수들에게 마침내 일침을 가한다.
“나가서 오직 싸우다가 죽을 뿐, 감히 나갈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내가 즉각 참수할 것이다……!!”
이순신의 함대는 다대포에서 숙영하고 나서 7일 새벽에 출발하여 정오쯤 옥포 앞바다에 당도하였다. 짙게 깔린 오리무중의 안갯속에서, 우 척후장 김완과 여도권관 김인영이 신기전을 발사해 마침내 적을 발견했다는 신호를 보내온다.
도도 다카도라의 적선 30여 척이 홍 백기를 펄럭거리며 해안가에 흩어져 있었다. 왜적들은 포구로 몰려가 길길이 날뛰며 노략질을 일삼느라 여념이 없었으나 돌다리도 두들겨간다는 마음으로 늘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적을 상대하는 이순신이었다. 적진을 꼼꼼히 살피던 좌수사 이순신이 갑자기 진격명령을 내린다.
“망령되게 가벼이 움직이지 마라! 함부로 행동하지 말고 태산처럼 신중하게 움직여라…….”
함대는 깃발의 신호를 받아가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선봉장 이운룡을 선두로 조선 수군 6척의 판옥선이 적함을 향해 돌진하며 천자, 지자총통이 일제히 불을 뿜고 화살을 우박처럼 퍼부어댔다. 부지기수의 적들이 우박으로 날아오는 화살을 맞고 단말마에 비명으로 피를 토하며 바다에 줄이어 고꾸라졌다. 조선 수군이 일제히 퍼붓는 함포사격에 적선 26척이 드디어 으깨져 버리고, 빗발치듯 퍼부어대는 불화살을 맞아 왜선들이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하자 전열을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 채, 지휘체계를 잃고 당황한 적들은 배를 버리고 뿔뿔이 흩어져 해안선을 따라 무작정 도주하기 시작했다. 이순신의 조선 수군은 적의 퇴로를 즉각 차단했다. 좌수사 이순신이 붉게 단 얼굴로 외쳤다.
“단 한 놈의 적도 절대 살려 보내지 마라!”
군관들이 따라 소리쳤다.
“단 한 놈의 적도 살려 보내지 마라…… 단 한 놈의 왜놈도 절대 살려 보내지 마라…….”
아군은 포격을 이어가 도도 다카도라가 이끄는 왜선 26척을 추가로 격파하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왜군을 바다에 떨어뜨려 수장시킨다. 옥포해전에서 이순신이 병력의 열세를 극복하고 적들과 싸워 마침내 이긴 것이다. 사기가 오를 대로 오른 조선 수군은 왜적에게 잡혀갔던 포로들 다수까지 구출해내고 달아나는 적들을 악착같이 추격해 합포에서 5척, 다음 날 적진포에서 11척을 추가로 불사르지만, 임금이 의주까지 달아났다는 보고에 그러나 이순신은 다시 갈등에 휩싸인다.
어딘가에 남겨져 눌어붙어 있을 적들을 소탕할 대책을 세우느라 고심하는 좌수사 이순신에게 송희립이 다가와 충고하듯 일침을 날렸다.
“임금이 의주까지 도망한 사실을 알게 된다면 군사들의 사기가 꺾일 것입니다. 병법에 이르기를, 달아나는 적은 끝까지 따라가지 말라 했습니다. 소탐대실, 과유불급입니다, 나으리……!”
“자네도 그리 생각하는가?”
“예…… 나으리…….”
“…….”
“…….”
군의 기강이 문란해질 것을 우려하여 그는 함대를 물려 결국 여수 모항으로 돌아온다. 돌격대장 나대용이 적의 탄환에 맞았고, 이순신 또한 적탄에 맞았으나 중상은 아니었으니 조선 수군의 두말할 것 없는 압승이었다. 이순신의 첫 출전, 첫 승이자 이순신 연승신화의 신호탄과도 같은 값진 승리였다. 패배를 거듭하기만 하던 조선군에겐 단비와도 같은 첫 승전의 쾌거였었다.
“끝까지 위용을 잃지 마십시오, 나으리!”
“자네가 여기까지 어쩐 일인가?”
“…….”
“…….”
“걱정하지 말게. 이 목숨 다하는 날까지 백의의 몸으로라도 난 조선의 바다를 끝까지 지켜낼 걸세. 자네 부모님은 하늘에서 잘 만나보셨는가?”
“…….”
“…….”
환청이었다. 저만치 아름드리 소나무 아래서 녹도만호 정운이 그를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강직한 성격에 끝까지 청렴했던 조선의 장수 정운. 순시할 때마다 그의 군사들은 전쟁준비가 가장 잘돼 있었고, 손질이 잘된 그의 함포들은 윤기로 늘 반질거렸었다. 조선 수군의 연전연승에 유독 기여가 컸던 녹도만호 정운. 부산해전에서 순왜(順倭)가 쏜 대조총 총탄에 이마를 맞아 유명을 달리한 그는 이순신의 무과 6년 선배로서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가장 신임하고 아끼던 부하 군관이었다.
이순신이 치른 해전들 가운데 단연 최고의 성과로 꼽았던 부산해전은 전라 우수사 이억기, 경상 우수사 원균의 함대와 연합하여 적의 심장부와 인후를 공략한 끝에 적들의 본진을 마침내 깨부수고 최고의 개가를 올린 해전이었고, 옥포해전은 그의 첫 출전 첫 승전이었고, 별다른 피해도 없이 학익진을 펼쳐서 완벽히 승리한 한산대첩은 평양에 진출해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와 함경도까지 올라가서 날뛰던 가토 기요마사를 비롯해 한양에 주둔해 있던 왜군 주력을 남하하게 만드는 성과였었다. 이순신이 3년 8개월 동안 굳게 지키던 한산도에서마저 왜군이 크게 패하자 히데요시는 급기야 왜군 전체에 해전금지령을 내리고야 만다.
일곱 명의 창 가운데 하나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임이 유독 두터웠던 최측근 와키자카 야스하루. 황금가면을 쓰고 떼로 몰려가 용인 광교산 자락에 피를 한껏 뿌려대며 계곡물 전부를 온통 빨갛게 물들였던 조선 백성들의 철천지원수 와키자카와 그의 왜군들. 뭍으로 도망한 적들이 민가에 피해 입히는 일이 없도록 암초가 많고 폭이 좁은 병목과도 같은 견내량에서 적의 주력 및 병력 전부를 끄집어내 바다 한가운데로 몰아놓고 교활한 적들을 재기불능으로 모조리 수장시키겠다는 것이 이순신의 전략이었다.
이순신과 정운은 늘 변화무쌍한 진을 펼쳐서 적들을 교란하였다. 그들이 펼치는 진은 고착되지 않고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수(守)와 공(攻)을 유연히 전환해서 수시로 변화하며 적을 맞이하는 삼국지 뺨치게 독특한 방식이었고, 그들이 전황에 따라 물 흐르듯 펼치는 진은 패색이 짙은 그들의 전쟁을 언제나 승리로 이끌곤 했었다. 성질 급한 와키자카는 이순신의 유인책에 넘어가 결국 병력 전부를 잃고 한산도 숲속으로 도망해 겨우 목숨을 부지하지만 먹을 것이 없던 그는 솔잎과 미역을 따 먹어가며 연명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십사일생(十死一生)이었다. 그것은 나의 완패였다. 나의 전술은 단순했고, 그의 전술은 치밀했다. 나의 군사 열 명 가운데 고작 하나만이 겨우 살아남았을 뿐이다. 그것은 나 와키자카 야스하루 생애 최악의 전쟁이었다. 나는 그곳 한산도에서 최대의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나는 성급했고, 그는 침착했다. 그가 펼친 진법에 나는 꼼짝달싹할 수도 없었다.
한산도 전투, 그것은 나 와키자카에겐 죽음보다 더한 치욕이었다. 적들의 함포는 성능에서 우리의 조총을 능가했고, 나의 함대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나는 이 싸움에서 73척의 전함 가운데 59척을 잃었다. 적들은 반달 모양의 진(학익진)으로 갑자기 나를 둘러싸고 맹렬히 공격해왔다. 완벽한 패배였다. 조선의 장수 이순신. 그는 경악할 정도로 단 한 번의 패배도 당하지 않은 채, 스스로 신화를 써낸 것이다. ”
믿었던 측근 와키자카의 패배는 히데요시의 격분을 유발하게 되고, 누구보다 냉철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급기야 왜군 전체에게 해전금지령을 내린다.
부산해전은 장사진(長蛇陣)을 펼쳐서 백여 척이 넘는 적함들을 깨부수고 조선 수군이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점에서, 이순신에겐 더욱 뜻깊은 전투요 최대규모의 해전이었다. 전라 좌수사 이순신은 그러나 자신이 가장 아끼고 자기의 심중을 가장 잘 헤아릴 줄 알았던 부하를 잃는 아픔과 슬픔을 겪는다.
적들이 흩어져 김해와 양산 등지로 남하하고 있으며 본국으로 철수하려는 것 같다고 경상우도 순찰사 김수(金睟)가 공문으로 알려왔다. 적들 가까이 승려를 가장하여 산속 사찰과 암자에 심어둔 승군 정탐과 척후들이 보내오는 첩보도 거의 그와 같았다. 정탐이 내륙과 배편으로 보내오는 첩보들은 늘 더디게 왔지만 주로 믿을 만한 정보들이었다. 전초기지 나고야와 끊임없이 연락을 주고받는 부산포는 적들이 한양으로 진격하기 위한 관문과도 같은 요충지인 까닭에 조선 수군이 어떻게든 빼앗아야만 하는 적들의 본진이었다.
의병장 곽재우와 의병들의 활약으로 웅치와 이치에서 이기고 왜군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전라도까지 마침내 이순신이 지켜내자 임금은 뜬금없이 이순신에게 부산을 즉각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사기가 오를 대로 오른 이순신의 조선 수군은 잠시 쉴 겨를도 없이 발진을 서둘러야 했다. 이순신의 제4차 출전이었다.
【편집부 해설】
제6회-2는 “첫 출전, 첫 승리”라는 군사적 성취와 동시에, 이순신의 리더십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전편이 전쟁 직전의 고독한 준비와 내부의 혼란을 조명했다면, 이번 회는 실제 전투의 돌입과 그 과정에서 드러난 결단·통찰·군기 확립을 전면에 드러낸다.
무엇보다 중요한 장면은 정운의 단독면담이다. 정운은 조선 장수들 가운데 드물게 대세를 읽는 장수였고, 그의 ‘지금 아니면 늦는다’는 외침은 단순한 충성이 아니라 전략적 판단이었다. 이순신이 고심 끝에 결단을 내린 것은 부하들의 충의와 상황 인식이 그만큼 정확했기 때문이다.
출정 장면의 비극성도 두드러진다. 수군의 규모는 초라하고, 부산포의 왜선은 350척 규모. 백성들은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전장’으로 가족을 떠나보내며 여수항을 눈물바다로 만든다. 이 비극적 분위기는 곧이어 펼쳐질 옥포해전의 승리가 왜 더 절박했는지를 설명해준다.
전투 묘사는 냉정한 계산과 조밀한 전략이 결합된 이순신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장군들이 동요할 때 그는 “태산처럼 신중하라”는 말로 진형을 통일시키고, 선봉을 규정하며, 포격과 불화살을 병행하는 복합전술을 실행한다.
옥포해전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군사적 원칙—기동, 명령 체계, 화력의 우선, 전열 유지—가 완벽히 작동한 첫 사례였다. 또한, 이 회차 후반부는 정운의 ‘환영(幻影)’ 장면을 통해 이순신의 마음속 깊은 상처와 책임감을 드러낸다.
정운은 이순신이 가장 신뢰했던 장수로, 그의 전사(戰死)는 이순신에게 전쟁의 잔혹함과 리더의 고독을 동시에 체감하게 한 사건이었다. 정운의 존재는 이순신 리더십의 정신적 축이자, “전투의 신(神)”이 아니라 “동료의 죽음을 끌어안고 버티는 인간 이순신”을 드러낸다.
【본문 용어 해설】
■ 중의장(中義將) middle field commander / mid-ranking military officer:지휘관과 실전 병력 사이에서 작전·출동 준비를 총괄하는 중간급 장교
■ 격군(格軍) oarsman / rower: 전선(戰船)에서 노를 젓는 병사. 장시간 노를 젓는 고강도 노동을 담당.
■ 우 척후장 김완(右 斥候將 金完) scout commander: 선단의 우측(오른쪽)에서 적을 먼저 탐지하는 정찰 지휘관.
■ 여도권관 김인영(麗島權官 金仁榮) Gim In-yeong, inspector of Yeo-do: 여도(고흥 앞바다)의 군사·행정 실무 책임자.
■ 천자총통(天字銃筒) Cheonja Cannon: 가장 큰 급의 대형 화포. 사거리 길며 파괴력 높음.
■ 지자총통(地字銃筒) Jija Cannon: 천자총통보다 한 급 아래의 중형 화포.
■ 단말마(斷末魔) death throes: 마지막 순간 죽기 직전의 비명·몸부림을 비유.
■ 소탐대실(小貪大失) gain the small, lose the great: 작은 이익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는 상황.
■ 과유불급(過猶不及) Too much is as bad as too little: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 ‘적당함’을 강조하는 말.
■ 순왜(順倭) pro-Japanese collaborator: 왜군에 협력하거나 그쪽에 붙은 자들을 비판적으로 지칭.
■ 인후(咽喉) throat / chokepoint: 전략상 ‘목’ 같은 지점. 장악하면 전체를 통제할 수 있는 핵심 요충지.
■ 견내량(見乃梁) Gyeonnaeryang Strait: 통영 앞 좁고 암초 많은 해협. 학익진·유인작전의 무대.
■ 수(守)와 공(攻) defense and offense: 방어와 공격. 이순신 전술의 핵심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전환하는 변칙성.
■ 십사일생(十死一生) one chance of life in ten deaths: “열 번 죽을 상황에서 간신히 한 번 살아남는다.” 극한의 전투 형세.
■ 장사진(長蛇陣) long-snake formation: 긴 뱀처럼 길게 늘어선 진형. 적을 깊숙이 파고들어 전열을 찢는 공격 진법.
【현대적 의미】
제6회-2는 단순한 전투 기록이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의 조직 리더십과 공동체·책임·용기의 의미를 오늘의 독자에게 묻는다.
1. 결단을 내리는 리더, 결단을 요구하는 부하
정운·송희립 같은 장수들은 위기의 본질을 정확히 읽고 이순신에게 ‘함대의 존재 이유’를 되묻는다. 리더는 때로 부하의 용기가 리더십의 눈을 열어주는 순간을 마주한다. 조직은 상하가 함께 깨어 있을 때만 위기를 넘어선다.
2. 숫자 열세를 뒤집는 힘은 전략과 군기
24척 vs 350척. 그럼에도 옥포해전은 완승. 오늘의 공공·기업 조직에서도 숫자나 자원이 아니라 전략·조직력·명확한 목표 설정이 성패를 가른다.
3. 위기 속에서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연대
여수항을 메운 백성들의 통곡은 “전쟁은 장수가 아닌 민중 전체의 일”임을 보여준다. 오늘의 사회 위기(재해, 기후, 경제)는 현실에서 가장 먼저 시민을 덮친다. 따라서 공직자의 리더십은 시민의 고통과 함께 출발해야 한다.
4. ‘승리의 기쁨 뒤에 있는 슬픔’을 직시하는 리더
이순신은 승전 직후에도 정운의 죽음을 떠올린다. 성공의 순간조차 ‘희생의 무게’를 잊지 않는 태도— 이는 한국 사회가 잃지 말아야 할 공적 윤리의 기준이다.
5. “달아나는 적은 쫓지 말라” — 절제의 전략
송희립의 조언은 흥분된 조직을 침착하게 만드는 견제의 리더십이다. 오늘의 리더에게 가장 부족한 가치가 바로 절제된 판단력이다.
핵심 메시지
옥포해전의 승리는 화려한 역사가 아니라, 불안·두려움·책임·비극을 뚫고 나온 ‘절제된 용기’의 결과였다. 이 회차는 오늘의 리더십과 공공윤리에 “준비와 결단, 그리고 절제가 리더를 만든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작가 소개
현종호 (소설가)
• 평택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외국어대학 영어학과 조기졸업
• 명진외국어학원 개원(원장 겸 TOEIC·TOEFL 강사)
• 영어학습서 《한민족 TOEFL》(1994), 《TOEIC Revolution》(1999) 발표
• 1996년 장편소설 『P』 발표
• 1998년 장편소설 『가련한 여인의 초상』, 『천국엔 눈물이 없다』 발표
• 전 국제대학교 관광통역학과 겸임교수 역임
• 현재 평택 거주, 한국문인협회 소설가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