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종호 연재소설 (제6회)-3】 노량에 피는 꽃
    • 소설가 현종호

      소설가 현종호



      (제6회)-3



        출전을 며칠 앞두고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깊어가는 밤에도 그는 아주 이상한 불안과 초조감에 휩싸여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누워서 한참을 뒤척이다 그는 숙소 밖으로 나갔다. 사정(射亭)으로 가서 활 열다섯 순(화살 75발)을 쏘았다. 불화살도 쏘았다. 명나라에서 보내온 화살이었다. 불이 붙지 않은 그의 불화살은 밤의 대기를 가르며 과녁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갔다. 열두 발 모두 명중이었다.
        꽃향기에 휩싸인 내아 앞마당에서 살기 어린 그의 칼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가상의 적들이 칼을 맞고 연달아 바다에 고꾸라졌다. 명중의 기쁨과 가상의 적을 베는 희열도 그러나 잠시였을 뿐.
        어떻게든 적을 물리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너무 무리하여 쉬지 않고 칼을 휘둘러댔던 탓일까…….
        두개골이 지근거리고, 속이 갑자기 쓰리고, 이내 속절없이 타들어 갔다. 고질적인 그 토사곽란과 오한이 그에게 또 찾아오는 것이었다.

        “아직 안 주무시고 계십니까, 나으리……”
        숙소에 엎드려 신음하며 가쁜 숨을 잇달아 몰아쉬는데, 장지문 밖에서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녹도만호 정운이었다. 이순신의 방안은 토사물의 악취로 자욱했다. 그는 창문을 얼른 열어 방안의 탁한 공기를 우선 갈아 넣었다. 그의 이부자리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어서 들어오시게.”
        정운은 가문비나무 상황버섯을 한 보따리 손에 들고 있었다. 좌수사 이순신이 장지문 앞에서 머리를 주억거리는 정운을 흘금거리며 물었다.
        “이 한밤에 자네가 어쩐 일인가!?”
        흠뻑 젖은 이부자리를 내려다보며 정운이 대답을 얼버무렸다.
        “적적하실 것 같아서…….”
        정운의 거무튀튀한 얼굴에 묘령의 여인 진랑화의 뽀얗디뽀얀 얼굴이 잠시 겹쳤다.
        “내가 지금 적적하다는 걸 자네가…… 어찌…… 아는가……!?”
        “…….”
        “…….”

        정운이 보따리를 앞으로 내밀며 머리를 조아렸다.
        “지친 속을 달래고 원기를 조금이라도 보충하시라고 제 어미가 마련해서 나으리 앞으로 보내주시는 말벌주와 상황버섯입니다. 꾸준히 드시다 보면 효험이 있을 것이니 사양 말고 드십시오, 나으리……”
        자리보전을 하고 병석에 누운 사람도 아니고, 뜬금없는 그의 선물이 고맙다기보다는 마치 자기를 환자 대하듯 하는 것만 같아서 그는 왠지 서글프기만 했었다.
        “내 몸은 내가 아주 잘 알고 있네. 내 이 몸은 꿀이나 버섯으로 곧 나을 그런 병이 아니란 말일세. 이 귀한 상황과 좋은 꿀일랑 연로하신 자네 부모님께 다시 갖다 드리게. 난 마음으로만 감사히 받겠네. 알겠는가?”
        “그래도…….”
        “아시겠는가……?”
        “그래도……!”
        정운은 몹시 서운해하는 눈빛이었다. 한 몸 기꺼이 바쳐 충성하며 자기를 늘 보필하는 측근 정운이 아니던가. 이순신이 그런 그의 눈빛을 바로 읽었다.
        “어머님의 뜻이 정 그렇다면 내 기꺼이 먹어보겠네. 이제 됐는가?”
        “가…… 감사하옵니다, 나으리…….”
        “감사하긴…… 어머님께, 이 귀한 선물 아주 감사히 잘 받았다고 잘 말씀드리게.”
        “예……나으리…….”

        은빛쟁반에 수북이 담긴 별들이 때때로 우수수 쏟아져 내리고, 숙소에 은은히 흐르는 달빛이 비단결처럼 곱디고운 밤이었다.
        “거기에 대해선 저도 생각이 같습니다, 나으리.”
        술병 기울이며 둘은 명나라 산서성의 소금장수 나관중이 쓴 『삼국지』를 이야기하며 착잡한 마음을 거듭 달랬다. 사석(私席)에서 둘은 흉금을 터놓고 지내는 사이였다. 그들은 당파로 얽힌 조정의 정치(?)를 이야기하며 연달아 혀를 찼다. 한숨 끝에 이순신이 말했다.
        “시대는 수없이 달라졌어도 정치는 아직 하나도 변한 게 없네.”
        정운이 다시 혀를 차며 말했다.
        “자기를 믿고 따르는 백성들의 신망이 그때까지도 두터웠으니 제갈공명은 생각만 고쳐먹었다면 촉나라의 권력을 얼마든지 손쉽게 거머쥘 수도 있었을 겁니다.”
        뜬금없는 그 말에 이순신은 고개를 갸웃했다. 전쟁에 지칠 대로 지친 정운의 입에서 나오는 말엔 왠지 어린애처럼 순진한 데가 있었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에둘러 들려주는 정운의 알쏭달쏭한 말에 이순신은 그러나 쓰게 웃으며 일축했다.
        “천문을 읽어낼 줄 알았던 제갈량이었네. 의주리종 견리사의(義主利從 見利思義)일세.”
        손익을 따지기 전에 의로움을 생각하라는 맹자의 말에 정운은 공감하긴 하나 여전히 수긍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사지가 찢겨 죽어간 임꺽정이 백성들의 마음속에 아직 은인으로 살아 있습니다, 나으리…….”
        말을 마치고 나서 정운은 이순신의 표정을 꼼꼼히 살폈다. 무인 된 자로서의 마지막 사치를 정운이 종용하고 있다니 놀랄 일이었다. 이순신은 단호히 말했다.
        “역사의 물줄기는 누구도 함부로 바꿀 수 없는 법일세. 자네와 나의 역할 또한 여기까지여야 하는 걸세.”
        “…….”
        “…….”

        잠시 후 정운이 그만 물러가려 하자 이순신이 못내 아쉬워하며 정운에게 술을 권했다.
        “잠은 아니 오고 자네가 쓸데없는 소릴 들려주는 바람에 이상하게도 내가 오늘따라 무진장 적적하네. 누추한 내 방이네만 한잔하고 가시게, 정운…….”
        “아…… 예…….”
        이순신이 문갑에서 술을 꺼냈다. 정운이 좋아하고 이순신이 때때로 즐겨 마시는 고흥 백일주였다. 정운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나리만 나타나면 모두가 무서워서 벌벌 떠는데, 이렇게 자상한 모습까지 보여주시니…….”
        “내가 정말 그런가……!?”
        마음 여리고 눈물도 많은 그를 그의 장졸들은 호랑이보다 더 무섭고 인정머리 없는 사령관으로 여기고 있을 것이었다. 하긴…… 군율을 어기는 자들은 지위고하 막론하고 그 앞에서 곤욕을 치러야 했고, 돌 줍는 일에 태만했다는 이유로 승군들까지 가차 없이 곤장을 쳐대곤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돌아보면 감회어린 추억들이었다. 10년 전에 만호로서 몸담았던 ‘발포’를 찾아가 검열할 때마다 좌수사 이순신은 감회가 늘 새로웠었다. 이순신이 쓰게 웃으며 한소리로 또 일축했다.
        “모두가 대의를 위함일세!”
        어색한 웃음이 오가는 가운데 밤이 점점 깊어갔다. 갑자기 생각난 듯 이순신이 웃음을 멈추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타이르듯이 당부했다.
        “준사 사야가와 손문욱은 자네가 끝까지 믿을만한 부하들이네. 그들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항왜(降倭)란 말일세.”
        “저도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으리…….”
        적을 물리칠 비책을 다시 세워가며 서로의 목구멍으로 백일주 서너 잔이 더 넘어갔다. 치열했던 탄금대전투를 돌아보며 정운이 말했다.
        “물러날 자리가 없는 사지와도 같은 곳이 탄금대인데, 신립이 배수의 진으로 적의 기병들을 맞았을 때부터 참패는 예고됐던 겁니다, 나으리.”
        “자네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
        “…….”


      【편집부 해설】

      제6회-3은 전투 외면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순신의 내면 전쟁을 가장 깊이 드러낸 장이다. 전략가·지휘관·국가의 방패 뒤에 숨어 있던 “한 인간 이순신”의 고독·불안·육체적 고통이 응축되어 있다.

      첫 장면의 핵심은 잠들 수 없는 밤이다.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자 이순신의 몸은 먼저 반응한다. 토사곽란·오한은 단순한 병증이 아니라 압박, 책임감, 예민한 감각이 만들어낸 심리적 신체반응이다. 이것은 이순신을 영웅의 신격에서 떼어내고, 의무 때문에 병드는 한 인간으로 돌려놓는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정운이다. 정운은 이번 회에서 “동료”이자 “거울”의 역할을 한다. 그는 상황버섯·말벌주를 들고와 이순신의 신음에 귀 기울이며, 장수이기 전에 한 인간이 지탱해야 하는 정서적 기반을 제공한다.

      두 사람의 대화는 단순한 술자리 수작이 아니다. 『삼국지』를 매개로 이어지는 그들의 신념 논쟁은 사실상 ‘권력’과 ‘의리’, ‘도(道)’의 기준을 묻는 정치철학적 대화이다.

      • 정운: “공명이 마음만 먹으면 권력을 잡았을 것”
      • 이순신: “의주리종 견리사의, 의(義)가 먼저다.”

      이 대비는 곧 정치 현실주의 vs 신념 윤리의 충돌이며, 이순신 리더십의 정체성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주는 순간이다.

      또한 항왜 사야가·손문욱에 대한 언급은 “적이라도 올바른 자는 받아들여 쓰는 포용 전략”을 보여준다. 그는 배타적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전략가적 실용주의자였다. 제6회-3은 그래서 전쟁 장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작보다 더 깊은 긴장과 울림을 만들어낸다. 전쟁을 이기는 힘은 병법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는 정신’에서 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회차이다.

      【본문 어구 해설】

      사정(射亭) archery pavilion: 관아나 군영에 있던 활쏘기 연습 공간. 이순신이 밤마다 찾아 집중을 가다듬던 장소.
      토사곽란(吐瀉霍亂) diarrhea & acute dysentery: 갑작스러운 구토·설사·경련이 함께 오는 급성 장염 증상. 이순신의 지병.
      오한(惡寒) chills: 몸속이 으슬으슬 춥고 떨리는 병증.
      장지문(障子門) paper sliding door: 한지(일본 쇼지와 유사한 종이문)로 만든 미닫이문. 소설에서는 방과 복도를 구분하는 문.
      ■ 묘령의 여인 진랑화(陳娘花) Jin Lang-hwa (a young courtesan): 허구적 등장인물. ‘묘령(妙齡)’은 아름다운 꽃다운 나이의 여인을 뜻함.
      산서성의 소금장수 나관중(山西省 鹽商 羅貫中) Luo Guanzhong, a salt merchant from Shanxi: 『삼국지연의』의 저자. 실제로는 문인(作家)으로 알려졌으나, 전통적 설화에서는 산서성의 소금가문 출신으로 전해짐.
      의주리종 견리사의(義主利從 見利思義) “Righteousness first, profit follows; Before gain, consider justice.”: 맹자(孟子)의 가르침. 의(義)를 우선하고 이익보다 도리를 먼저 생각하라는 뜻.— 이순신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문구.
      문갑(文匣) document chest / small cabinet: 문서를 보관하는 작은 장(함). 술병을 넣어둔 장소로 묘사됨.
      발포(鉢浦) Balpo Naval Post: 전남 여수 인근 포구. 젊은 시절 ‘만호’로 근무했던 곳. 이순신에게 특별한 추억이 있는 요새.
      ■ 준사 사야가(沙也加) Saya-ga, Japanese defector officer: 항왜(降倭, 투항한 일본 병사)로 설정된 인물. 이순신이 신뢰하는 전술 인력.
      손문욱(孫文郁) Son Mun-uk: 마찬가지로 항왜 출신으로 설정된 부하. 적의 내부 정보를 잘 아는 참모적 역할.

      【현대적 의미】

      이 회가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1) 리더는 강해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약함을 직시해서 버틴다

      이순신은 병에 걸리고, 잠을 못 자고, 압박으로 신음한다. 그러나 그는 이를 숨기지 않는다. 오늘의 리더십에 필요한 것은 ‘강한 척하는 리더’가 아니라 약함을 인정해 균형을 찾는 리더다.

      2) 조직을 지탱하는 것은 ‘전략’이 아니라 ‘신뢰’

      정운과의 대화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수군 조직이 무너지지 않은 이유는 이순신의 신념뿐 아니라 믿을 만한 동료들의 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공직·조직에서도 성과보다 앞서는 것은 동료 간 신뢰다.

      3) “의(義)가 먼저다” — 원칙이 흔들릴 때 리더십도 흔들린다

      의주리종 견리사의(義主利從 見利思義)는 이순신 리더십의 결정적 원칙이다. 조직이 위기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결정 순간에 ‘의(正義)’보다 ‘이익·편의’를 택하기 때문이다. 이순신의 밤은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 치러야 했던 대가였다.

      핵심 메시지

      제6회-3은 전투의 함성이 아닌, 고독·병고·책임·신념이라는 보이지 않는 ‘내면의 전쟁’을 다룬다. 이 밤을 넘기지 못하면 이순신의 승리도 존재할 수 없었다. 오늘 사회의 리더와 공직자에게도, “전쟁은 전장보다 마음에서 먼저 시작된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한다.

      작가 소개

      현종호 (소설가)

      • 평택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외국어대학 영어학과 조기졸업
      • 명진외국어학원 개원(원장 겸 TOEIC·TOEFL 강사)
      • 영어학습서 《한민족 TOEFL》(1994), 《TOEIC Revolution》(1999) 발표
      • 1996년 장편소설 『P』 발표
      • 1998년 장편소설 『가련한 여인의 초상』, 『천국엔 눈물이 없다』 발표
      • 전 국제대학교 관광통역학과 겸임교수 역임
      • 현재 평택 거주, 한국문인협회 소설가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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