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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현종호 |
(제6회)-5
정운이 돌아가고 나서 한 젊은이가 술병을 들고 내아 숙소로 이순신을 찾아왔다.
“아직 안 주무시는지요?”
그때 그 아이 송준이었다.
“들어오너라.”
장지문 앞에 호리병을 들고 멋쩍게 선 청년을 올려다보며 이순신이 웃음 끝에 물었다.
“왜 온 것이냐?”
“적적해하시는 것 같아서…….”
이순신이 픽 웃었다.
“누구도 못 말리는 사람이군. 저녁은 먹었느냐?”
“먹었습니다, 나으리…….”
아이 송준의 목소리엔 왠지 힘이 실려 있지 않았다. 좌수사 이순신은 여종 순화를 불렀다.
여종 순화가 저녁 밥상(?)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익힌 돼지고기 몇 점이 올려지긴 하였으나 아주 조촐하게 차려진 밥상이었다. 된장찌개와 무장아찌도 상 위에 올라와 구미를 한층 돋구고 있었다. 밥상을 내려다보며 이순신이 타이르듯 조용히 말했다.
“먹어라. 사흘 뒤 발진이다. 많이 먹어두어라.”
“아…… 예…….”
아이는 그러나 선뜻 숟가락을 들지 못하였다. 이순신이 문갑에서 백일주를 꺼내 들며 한 번 더 권했다.
“많이 먹고 많이 마셔두거라.”
그러자 송준이 머뭇거리며 말하는 것이었다.
“같은 배를 타고 함께 싸우며 고생하는 저와 같은 병졸들이 밤마다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나으리…….”
아이의 마음 씀씀이가 기특했다. 그런 그에게서 의협심 강하고 늠름한 조카들이 언뜻언뜻 느껴졌다. 일찍이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극진히 모시며 흐트러지지 않는 의로운 길을 가는 조카들이 아니던가.
식솔들을 너무 많이 데려간다는 주변의 비난에도, 일찍 부친을 여의고 의지할 데 없는 조카들과 지아비를 먼저 떠나보낸 형수들을 정읍 현감으로 가면서 함께 데려갈 정도로 이순신은 조카들과 형수님들을 끔찍이도 아끼는 숙부요 시동생이었다.
이순신이 흡족하게 웃으며 물었다.
“노를 젓는 일을 네가 제대로 감당해낼 수 있겠느냐?”
“물 위에 뜬 수군으로서 소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내게 청이 있느냐?”
“…….”
“주저 말고 내게 말해보아라. 청이 무엇이냐?”
“…….”
“어서 말해보아라.”
“소인은 칼을 잡고 싶습니다, 나으리…….”
“…….”
“…….”
임진년 1592년 8월 24일, 여수 전라좌수영에서 발진한 이순신의 함대는 다음 날 원균의 경상 우수군과 합류하였다. 이억기의 군대와도 곧 합세하여 연합함대는 곳곳에 정박해 있는 적선들을 차례로 깨부수며 당포 견내량 서평포를 거쳐 가덕도까지 진출하였고, 8월 29일엔 낙동강 하구 장림포에서 적선 6척을 추가로 깨부수고 불살라버린다. 연합함대의 항해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여정이었다.
어느새 밤이었다. 이순신의 전라 좌수군, 이억기의 전라 우수군, 원균의 경상 우수군으로 이루어진 연합함대는 가덕도에서 하룻밤을 더 숙영하고 나서 다음 날, 맞바람 동풍이 불어오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동진을 이어가 10여 척의 왜선들을 차례로 불사라 궤멸시킨다. 군대는 동진을 꾸준히 이어갔다.
가을날의 강렬한 햇빛은 바다 깊이깊이 연달아 꽂히건만 적의 주력함대는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구부러진 물길 어딘가에 눌어붙어 도사리고 있을 적의 심장부와 인후는 여전히 찾아낼 길이 없었다. 서로의 적의 팽팽한 바다 위에서 숨 막히는 시간만 지겹도록 흘렀다. 이순신은 밀려드는 긴장감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적의 근거를 그는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낼 수 없던 것이다.
거듭된 승전으로 사기가 오를 대로 오른 녹도만호 정운과 장수들은 초량목으로 황급히 빠져나오려는 적함 4척을 추가로 불사르고 다수의 적을 바다에 떨어뜨려 수장시켜버린다. 그런데도 가덕도에 머무는 닷새 동안 적의 주력함대는 찾아낼 수 없었다. 도망하는 적들이 곳곳에서 이따금 목격되었으나 적의 본진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수색은 그래도 계속되었다.
승군 정탐과 척후는 적들이 숨겨놓은 주력을 찾아내지 못한 채, 물결 사나운 바다 위에서 머무는 시간만 허비하고 있을 뿐이었다. 바다는 며칠째 쥐 죽은 듯 그저 고요하기만 했다.
어느새 다시 밤이었다. 어쩔 수 없이 함대를 가덕도 앞바다에 하루 더 정박시켜야 했다. 다음 날에도 이순신은 가덕도 주변 해역을 한 번 더 뒤졌다. 역시 허사였다. 그다음 날에도 수색은 계속되었다. 그 역시도 허사였다. 수색은 그래도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 척후의 숨 가쁜 보고가 드디어 올라온다.
척후선이 적의 함대를 발견했다는 보고에 수군 연합함대는 즉각 새벽에 발진한다. 함대는 초량목을 지나 부산 앞바다로 당당히 나아갔다. 바다는 꾸준히 고요했다. 그러나 안개가 자욱이 깔려서 지척을 분간할 수도 없었다. 끈적끈적하게 흘러내리는 오리무중의 안갯속에서, 구부러진 물길 어딘가에서 헐떡거리고 있을 적들은 이번에도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병풍처럼 늘어선 기암절벽으로 겹겹이 둘러싸여 물길이 험해 쉽게 찔러 들어갈 수 없는 적의 심장부와 인후(咽喉)였다.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바다는 쥐 죽은 듯 여전히 고요하기만 했다.
어느덧 여명이 밝아왔다. 바다에 짙게 깔린 끈적끈적한 입자들을 녹여대며 해가 떠오르자 적의 실상이 마침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정탐의 보고는 정확했다. 척후가 보고했던 대로 바닷물 넘실거리는 험준한 단애 앞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적의 배들이 널려 있는 것이 아닌가. 적들은 세 무리로 나누어 함대를 정박하고 있었고, 여섯 군데로 진을 나누어 응전태세를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적들 또한 그만큼 철저히 대비하고 있던 것이다.
아군에게 불리한 맞바람 동풍이 그때 갑자기 또 불기 시작했다. 바람은 여전히 적의 편이었다. 걷잡을 수 없이 휘몰아치는 바람 앞에서 이순신은 난감했다. 한때 문과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주역에 푹 빠져보기도 했으나 이순신은 제갈공명이 아니었다. 지략으로 구름의 움직임과 바람의 방향까지 정확히 읽어내 패색이 짙은 전쟁을 매번 기적 같은 승리로 이끌었던 제갈량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하늘이 차츰 흐려지는 듯싶더니 먹구름이 성난 소 떼처럼 몰려왔다. 물기둥이 높이 치솟고, 조용하던 바다가 돌연 요동쳤다. 척후를 보내 재차 확인해 보니 470여 척의 왜 선단이 정박해 있고, 포구 안쪽엔 조선군으로부터 노획한 천자총통과 각종 함포 등으로 방어망이 확고히 구축돼 있다는 것이었다.
이번 역시 악화일로의 전황이었다. 이순신은 한동안 다시 난감했다. 그렇다고 함대를 다시 물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적진을 꼼꼼히 다시 살펴보고 나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좌수사 이순신은 그러나 갑자기 진격명령을 내린다.
“망령되이 움직이지 말고 태산처럼 무겁고 신중하게 행동하라!”
한동안 사라졌던 거북선이 돌연 나타나 바다를 휘저으며 위용을 떨치기 시작했다. 실전을 방불케 하며 하루에도 수십 번이나 녹초가 되도록 교란작전을 꾸준히 펼쳐온 이순신의 함대였다. 조선함대는 재빨리 모이고 흩어지며 적들 앞에서 일자진과 학익진의 위용을 한껏 과시하였다. 수군의 선봉은 이번 해전에서도 거북선이었다. 돌격장인 이언량과 이기남이 지휘하는 거북선이 선두에 나서고, 함포를 장착한 판옥선들은 장사진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적진 깊숙이 찔러 들어갔다. 보기만 해도 적들이 겁에 질려 벌벌 떠는 거북선이 돌연 나타나 바다를 휘젓고 다니자 당황한 적들은 배를 포구에 묶어둔 채 뭍으로 도망하기 급급했다. 연패를 거듭해온 터라 적의 사기는 급격히 떨어져 있었다. 오래 주리고 지칠 대로 지친 적병들은 싸울 의지가 아예 없어 보였다. 이순신의 술수에 넘어가 한산도에서 크게 패한 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적장 와키자카 야스하루에게 이순신을 만나면 무조건 도망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무조건 도망하여 뭍으로 올라가 부산포를 사수하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특명을 적들은 충실히 따르고 있던 것이었다.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조선 수군이 시종 함포를 쏴대 적함들을 깨부수고, 볏단을 잇달아 갑판에 던지며 불화살을 우박처럼 퍼부어댈 때마다 부지기수의 적들이 단말마에 비명으로 피를 토하며 바다에 잇따라 고꾸라졌다. 몸을 사리지 않는 군관들과 군사들의 용맹 덕분에 적들의 바다가 아니라 이젠 이순신의 바다가 된 시점에서, 30척에도 못 미치는 전선 24척으로 초라하게 출정했을 당시와 비교하면 포구 깊숙이 숨어 들어가 몸집을 한층 키운 적의 대선단일지라도 조선 수군의 일방적인 우위가 점쳐지는 싸움이었다.
아주 쉽게 적들이 궤멸하리라 여겼던 전투는 그러나 끝나지 않는 전쟁과도 같은 싸움으로 돌변하고 있었다. 피 터지게 격렬하던 혈전은 어느덧 난전으로 치닫고, 어이없게도, 조선함대가 달려들어 퍼부어대는 함포 공격에 적선들이 부서져 불길에 휩싸일 때마다 적의 노잡이로 끌려온 조선 백성들이 비 오듯 바다에 우수수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바다를 포기하고 뭍으로 도망한 적들 또한 방비 태세를 굳건히 하고 저항하기 시작하는데, 적의 공격은 식겁할 정도로 매서웠다. 불쌍한 백성들의 머리 위엔 칼이 걸려 있는 거나 다름없었고, 적들은 노획한 조선의 함포와 파괴력을 극대화한 편전을 사정없이 쏴대며 초량목(草梁項)을 필사적으로 지켰다. 장차 아군이 입게 될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조선인들만 쏠 수 있는 편전까지 마구 쏘아대며 적들은 죽기 살기로 저항하였다. 섣부른 형세판단으로 인한 패착이었다. 전략의 오류와 패착으로 인한 낭패였다. 무고한 백성의 희생은 이순신에겐 가슴 저미는 아픔이었다.
선미로 갈라지는 거품 같은 포말(泡沫)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이순신은 다시 한동안 고민에 빠져든다. 그는 결국 후퇴하라는 깃발 신호를 보내서 함대를 뒤로 물리고야 만다. 물러서서도, 아니, 결코 물러나서도 안 되는 싸움이거늘 무고한 백성들이 죽어가는 마당에 적의 파상공격 때문에 이순신의 수군이 후퇴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순신은 함대를 물려 선상 회의를 다시 열었다. 적의 기세에 눌려 조방장 정걸과 우수사 이억기와 경상 우수사 원균은 다음 날 다시 공격하자는 주장만을 집요하게 펼쳤다. 이순신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녹도만호 정운은 그러나 여기서 적의 기를 다시 살려줄 수는 없다며 오늘 당장 다시 공격하자는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물 위에 떠다니다 원균의 작두에 잘려나가던 아군의 목을 떠올리며 함대 총사령관 이순신은 마침내 결의를 밝힌다.
“우리는 오늘 당장 다시 공격할 것이다. 오늘 여기서 우리가 물러난다면 적들은 우리를 우습게 여길 것이다. 오늘 왜놈들을 모조리 소탕해서 나는 후환을 아예 없애버릴 것이다!”
【편집부 해설|제6회-5】
제6회-5는 임진왜란 연합함대가 부산 앞바다에 도달하기까지의 ‘가장 숨막히는 정적(靜寂)’과 ‘본진 탐색전의 고통’을 정면으로 다룬 회차다. 전편의 감정선이 정운과의 ‘내밀한 밤’이었다면, 이번 회는 청년 송준과의 조우를 통해 드러나는 이순신의 인간적 온기로 시작한다.
1. 전쟁의 전술적 완급
가덕도에서 닷새를 머무는 동안 ‘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전황은 역사적으로는 단순한 기록이지만, 전술적으로는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전투보다 더 무서운 건 ‘보이지 않는 적’이다. 이순신은 연속된 승리에도 두려울 정도로 신중했고, 이 점에서 지휘관의 품이 드러난다.
2. 청년 송준—전쟁의 민낯
송준은 역사의 기록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소설은 그를 통해 임진왜란의 민중 서사(lived history)를 뾰족하게 드러낸다. 그의 “병졸이 굶고 있습니다”라는 말은 전쟁의 비극이 귀족·장수의 전쟁이 아니라 피를 흘리는 가장 아랫사람들의 전쟁임을 보여준다.
3. 초량목 앞 장면—전략의 딜레마
초량목에 매달린 왜선들의 방어는 예상 외로 견고했고, 조선 백성들이 노잡이로 끌려왔다는 사실은 이순신에게 도덕적 충격이었다. 전술적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백성 보호’라는 이순신의 원칙이었고, 그 원칙이 결국 후퇴 명령이라는 결단을 끌어냈다.
4. 정운과 다른 장수들의 의견 대립
정운은 “오늘 당장 다시 공격”을 주장하고, 원균·이억기·정걸은 “내일 다시”를 말한다. 이 장면은 조선 수군 내부의 전술관의 차이와 압박감을 그대로 투사한다. 이순신은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마지막에 내린 결정은 단순한 ‘강함’이 아니라, 인간적 고뇌에서 짜내는 용기다. 이 회차는 그 ‘고뇌의 심장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본문 용어 해설】
■ 장지문(障子門) paper sliding door: 종이로 바른 미닫이문. 조선시대 방과 방 사이 공간을 가르는 구조.
■ 발진(發陣) set sail / embarkation: 전투를 위해 부대나 함대가 진을 펴고 출발함.
■ 당포(唐浦) Tangpo: 임진왜란 당시 왜선이 정박했던 포구. 당포해전의 무대.
■ 견내량(見乃梁) Gyeonnaeryang Strait: 통영 근처 좁고 험한 해협. 학익진·유인전술의 대표적 전장.
■ 서평포(西坪浦) Seopyeongpo: 경상도 연안의 포구. 초기 해전 항로에 등장.
■ 가덕도(加德島) Gadeok Island: 부산 서쪽의 전략적 섬. 이순신 연합함대의 핵심 정박지.
■ 초량목(草梁項) Choryangmok: 부산 초량 방면의 바닷목. 왜군의 방어·저항 거점.
■ 척후선(斥候船) scout ship / reconnaissance boat: 적의 위치를 탐지하는 정찰선.
■ 지척(咫尺) within arm’s reach: ‘바로 눈앞’. 매우 가까운 거리.
■ 인후(咽喉) throat / chokepoint: 군사 전략에서 반드시 뚫어야 하는 ‘목줄기’, 요충지.
■ 여명(黎明) dawn: 새벽빛이 터오는 시각. 전투의 기습·타이밍과 밀접.
■ 일자진(一字陣) straight-line formation: 좌우로 긴 일렬 대형. 화포 일제타 공격에 유리.
■ 돌격장(突擊將) shock-unit commanders / assault commander
: 돌격·선봉 돌파를 전문으로 맡는 장수를 뜻함. 특히 거북선 선두에서 적의 진영을 깨는 임무를 담당하는 장수에게 쓰는 표현.
■ 단말마(斷末魔) death throes: 죽음 직전의 비명·날숨. ‘마지막 절규’를 비유.
■ 난전(亂戰) melee battle: 질서 없이 뒤엉켜 벌어지는 전투.
■ 식겁할(俗語) terrifying / frightening enough to jump: 갑자기 겁이 나서 움찔 놀랄 만한 상황.
■ 편전(片箭) short arrow / armor-piercing dart: 짧고 날렵해 관통력이 강한 조선식 특수 화살.
■ 포말(泡沫) foam / froth: 물결이 부서지며 생기는 하얀 거품. 문학적으로 ‘격전의 흔적’.
■ 조방장(助防將) assistant defense commander: 수군 지휘라인에서 방어·전술 보조를 맡던 장수.
【현대적 의미|제6회-5】
이번 회의 메시지는 오늘 한국 사회의 리더십·정책·조직 문제와 직결된다.
1. 전쟁은 전투 이전에 이미 시작된다
적의 위치가 보이지 않는 혼미한 상황에서도 정보를 수집하고, 함대를 지키며, 병사들의 사기를 관리하는 능력—이는 오늘날 공공조직의 위기관리와 똑같다.
2. “민간인 보호”는 어떤 전략보다 우선한다
백성을 노잡이로 끌려온 것을 본 순간 이순신은 전술적 우위를 내려놓았다. 이는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윤리적 우선순위를 명확히 보여준다.
승리보다 사람.
조직보다 생명.
이 원칙은 재난대응·군사·정책 어디에도 적용된다.
3. 젊은 송준—공동체의 희망
충성·의협·고통을 알고도 다가오는 청년의 존재는, 위기 앞에서 공동체를 버티게 하는 새로운 세대의 역할을 상징한다. 이순신은 그런 청년에게서 ‘미래의 힘’을 본다.
4. 리더는 외롭다—그러나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정운이 떠난 뒤, 이순신은 송준을 통해 인간적 위로를 얻지만, 동시에 한층 더 깊은 책임에 잠긴다. 리더십의 본질은 ‘홀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이며, 그 결정의 무게는 고독에서 나온다.
5. 전략적 후퇴는 패배가 아니다
후퇴는 용기의 반대가 아니다. 때로는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이다. 조직·정치·기업 모두 같은 교훈을 갖는다.
이 회차의 핵심 메시지
“승리의 기술보다 어려운 것은 승리를 멈추는 용기다.”
이순신은 그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 용기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도 똑같이 필요하다.
작가 소개
현종호 (소설가)
• 평택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외국어대학 영어학과 조기졸업
• 명진외국어학원 개원(원장 겸 TOEIC·TOEFL 강사)
• 영어학습서 《한민족 TOEFL》(1994), 《TOEIC Revolution》(1999) 발표
• 1996년 장편소설 『P』 발표
• 1998년 장편소설 『가련한 여인의 초상』, 『천국엔 눈물이 없다』 발표
• 전 국제대학교 관광통역학과 겸임교수 역임
• 현재 평택 거주, 한국문인협회 소설가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