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층취재 시리즈 제2호] “최재천 교수, ‘생태 백신’ 강조… 파란 하늘을 손녀에게 물려주자”
    • — 2025 청정대기 국제포럼 기조연설
    • [수원=주간시민광장] 조종건 기자 =
      “코로나 팬데믹은 단순한 질병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 변화와 생물다양성 파괴가 불러온 생태적 경고였습니다. 이제 우리에겐 ‘행동 백신’보다 더 근본적인 ‘생태 백신’이 필요합니다.”

      지난 6일 오후 경기도가 주최한 「2025 청정대기 국제포럼」에서 기조연설에 나선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전 국립생태원장)는 특유의 학문적 통찰과 개인적 고백을 버무리며 청중에게 강한 울림을 던졌다.

      ■ 개인적 서두, 그리고 “손녀에게 미안하다”

      연단에 오른 최 교수는 “최근 복간된 잡지 사상계에 시인으로 등단했다”며 “이번 가을호에는 ‘파란 하늘’이라는 시를 실었다. 오랜만에 새파란 하늘을 보며 기뻤지만 마지막 구절은 ‘유모차에 누워 있는 손녀에게 너무 미안하다’로 끝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포럼이 경기도의 리더십 아래 미래 세대가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세상을 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연설을 시작했다.

      ■ 지역 문제를 넘어선 지구적 위기

      최 교수는 기후 위기를 “인류가 처음으로 맞닥뜨린 전 지구적 환경 문제”라고 규정했다. 과거 태풍, 산불, 수질오염 같은 사건은 특정 지역에 국한됐지만, 기후 변화는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모두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의 배경에도 기후 변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열대 지방에 머물던 박쥐들이 기온 상승으로 온대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인간과의 물리적 거리가 좁혀졌다. 그 과정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간 사회로 침투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을 인용하며 “지난 100년 동안 중국 남부, 라오스, 베트남 북부 지역에 40여 종의 열대 박쥐가 정착했다. 이는 곧 100종 이상의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가 온대 지역에 들어왔음을 뜻한다”며 “앞으로도 기후 변화가 멈추지 않는 한 전염병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 인류의 압도적 ‘생태적 존재감’

      연설의 중반부에서 그는 생물학자로서 인류의 생태적 위치를 수치로 풀어냈다.

      “농경 이전, 만 년 전 인류는 지구 전역을 합쳐도 지금의 대한민국 인구와 비슷한 규모에 불과했습니다. 전체 포유류와 조류의 생체량에서 인간과 개·고양이가 차지한 비중은 1%도 안 됐습니다. 그런데 불과 만 년 만에 인류는 80억 명으로 불어나 지구 전역을 점령했습니다.”

      그는 현재 인류와 가축이 차지하는 무게가 전체 포유류·조류의 96~99%에 이른다고 설명하며 “야생동물은 1% 남짓으로 쪼그라들었고, 그들의 몸에 살던 바이러스들은 이제 인간과 가축으로 몰려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행동 백신 vs. 생태 백신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한국 사회가 보여준 높은 방역 의식에 대해 그는 “국민들이 행동 백신—거리두기, 손 씻기, 마스크 쓰기—을 철저히 지켰기에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더 근본적인 것은 생태 백신”이라며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생태 백신은 인간 팔뚝에 주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계에 접종하는 것입니다. 숲을 지키고, 서식지를 보존해 바이러스가 인간 사회로 넘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 그것이야말로 원천적 해법입니다.”

      그는 “백신이 사회적 집단면역을 형성하려면 70~80%가 참여해야 하듯, 전 세계 인구 70~80%가 자연 보호에 동참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 “호모 사피엔스 아닌, 호모 심비오스”

      최 교수는 인류의 학명을 비판적으로 성찰했다.

      “호모 사피엔스—현명한 인간이라는 뜻인데,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똑똑한 두뇌로 자기를 죽이는 짓을 서슴없이 하는 동물이 어떻게 현명하겠습니까. 차라리 다른 생명과 공생하는 호모 심비오스라는 이름이 더 맞습니다.”

      그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개념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손녀를 떠올리며 “추상적 후손이 아니라 눈앞의 구체적 존재를 위해서라면 냉장고도 버리고 차도 버릴 수 있다”고 고백했다.


      ■ 문학이 던진 메시지, 그리고 구체적 목표

      강연 말미, 그는 2002년 세계생태학대회에서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전한 메시지를 다시 꺼냈다.

      “박 선생은 ‘원금은 건드리지 말고 이자만 가지고 살아보면 안 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지속가능발전 개념의 핵심을 정확히 찌른 표현이었죠.”

      그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대한 구호가 아니라 손에 잡히는 구체적 목표와 정책”이라며, 경기도가 추진하는 ‘기후보험’ 같은 실천적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포럼의 울림과 과제

      이번 기조연설은 단순한 학술 발표를 넘어, 기후위기와 생태 전환의 절박성을 생활 세계와 문학적 상징으로 풀어낸 자리였다. 청중들은 그의 발언에 여러 차례 고개를 끄덕였고, 마지막에는 긴 박수로 화답했다.

      최 교수는 마지막으로 “경기도의 선도적 노력이 대한민국과 세계로 확산돼, 우리의 아이들과 손주 세대가 다시 파란 하늘을 보며 살아가길 바란다”며 연설을 마쳤다.

      기자의 시선

      최재천 교수의 연설은 과학적 데이터와 개인적 경험, 문학적 울림이 어우러져 있었다. ‘행동 백신’을 넘어 ‘생태 백신’을 제안한 것은 팬데믹의 교훈을 기후위기 대응으로 확장한 중요한 메시지다. “원금은 건드리지 말자”는 박경리의 말처럼, 자연을 원금으로 지켜내는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투명 고지|이 기사의 작성자인 조종건 기자는 일상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한국시민사회재단 상임대표를 겸하고 있으며, 지역 환경·거버넌스·법 개선을 위한 시민운동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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