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이재오)는 지난 10월 31일 서울 용산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1970년대 초 민주화운동의 출발점이 된 민주수호청년협의회(민수청) 민주수호전국청년학생연맹(민주수호전학련) 관계자들을 초청해 감사패를 전달했다.
반세기 전 거리와 교실, 강단에서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외쳤던 청년들은 이제 백발의 원로가 되어, 민주주의의 뿌리를 함께 되짚었다.
조직적 민주화운동의 시작, ‘민주수호 4개 단체’
1971년 결성된 민수청은 제야 최초의 청년 민주단체로, 이후 민주수호국민협의회(민수협)로 이어지며 재야 민주화운동의 기반을 닦았다.
당시 민주수호국민협의회·민주수호청년협의회·민주수호전국청년학생연맹·민주수호기독청년협의회로 이어지는 ‘민주수호 4개 단체’의 결성은 한국 민주화운동이 조직적 형태를 갖춘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4·19혁명과 6·3 한일회담반대운동 이후 ‘민주화운동’이란 이름으로 조직된 활동은 1971년 민주수호국민협의회가 처음이었다”며 “민주수호 4개 단체가 만들어지며 민주화운동이 제도권 밖에서 체계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함께한 분들은 민주화운동의 첫 주역이자, ‘민주화운동’과 ‘재야운동’의 개념을 현실로 만들어낸 세대”라며 “이제는 많지 않은 생존 당사자들이지만, 그 뜻을 잊지 않고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억을 잇는 만남, 그리고 기록
이날 행사에는 정수일, 전대열, 박영석, 송수일, 이신범 선생 등이 참석해 민주화운동기념관을 둘러보고 당시의 기억을 나눴다.
참석자들은 민주화운동의 기록 보존과 후대 전승의 중요성에도 뜻을 모았다.
이신범 전 국회의원은 “미주 지역의 민주화운동 자료도 남겨 진실된 기록으로 보존하고 싶다”며 추가 기증 의사를 밝혔다.
또한 2003년과 2009년에 이어 이날도 사료를 직접 전달한 정수일 선생은 “이곳을 찾으니 그 시절의 열정이 되살아난다”며 “이 공간이 살아 있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남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억의 제도화를 이끌다
2001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에 따라 설립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사료 수집·연구·교육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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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후 참가자들이 민주화운동기념관 M2(옛 남영동 대공분실)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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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부터는 남영동 옛 대공분실을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전환·운영하며, 국가폭력의 현장을 민주주의 교육의 장으로 복원했다.
또한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의 위탁 관리와 추모사업, 전시·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민주화운동의 유산을 시민의 일상 속으로 확장하고 있다.
한눈에 보는 한 줄 요약
• 행사명|1970년대 민주화운동 청년운동 주역 초청행사
• 일시|2025년 10월 31일(금) 11시
• 장소|서울 용산 민주화운동기념관
• 주요 참석자|이재오 이사장, 정수일·전대열·박영석·송수일·이신범 선생
• 핵심 의미|‘민주화운동의 출발점’ 민수청·민주수호전학련의 역사 재조명
• 주요 활동|감사패 전달, 전시관 관람, 민주화운동 사료 추가 기증
기자의 시선
민주주의는 ‘이념’이 아니라 ‘기억’ 위에서 자란다. 오늘의 헌정 질서와 시민의 권리는 누군가 거리에서 외쳤던 청년의 언어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의 용기와 신념을 잊지 않고 기록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현재형으로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