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민사회재단 상임대표)
철학 수업에서 시작된 질문
대학 시절, 조요한 선생의 ‘철학개론’과 ‘서양철학사’, 그리고 대학연구소 시절 그의 ‘그리스철학’ 청강수업은 내게 오래도록 남는 질문을 던져주었다. 그중에서도 플라톤의 『크리톤』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의 태도는 깊은 울림을 주었다. “악법도 법인가?”라는 물음은 단지 철학 수업의 주제를 넘어, 내 삶과 사회적 실천에 깊이 스며든 근본적 고민이 되었다.
당시는 전두환 군사정권의 권위주의적 법 집행이 일상화되던 시기였다. 억압적인 법이 ‘합법’이라는 이름 아래 정당화되던 현실에서, 법과 정의의 괴리는 날카로운 질문으로 다가왔다. 시민을 억압하는 법도 과연 정당한가? 정의가 실종된 법 앞에서 시민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악법도 지켜야 할까? 이 질문들은 그저 철학적 성찰이 아니라, 나 자신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 실천의 물음이었다.
그 물음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계획한 비상계엄과 같은 황당한 국가폭력 시도 앞에서, 법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은 다시 살아났다. 그래서 나는 지난해 겨울, 평택과 서울 여의도, 광화문 거리에서 거의 매주 시민들과 함께 서 있었다. 헌법을 위반한 권력을 규탄하고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는 단지 정치적 시위가 아니라, 내 삶의 실천적 행동이자 ‘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응답이었다.
소크라테스: 공동체 질서를 위한 법의 존중
“악법도 법이다”라는 표현은 소크라테스의 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는 플라톤의 『크리톤』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배심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고도 도망치지 않고 그 판결을 따랐다. 그의 친구 크리톤은 그를 탈옥시키려 했고 당시 가능한 현실이기도 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도피를 거부하며 말한다. “나는 이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났고, 그 법의 보호 아래 살아왔다. 법이 불리하다고 해서 내가 그 계약을 일방적으로 깨는 것은 옳지 않다.” 그는 공동체의 질서와 법의 지속성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가 법을 절대적으로 선하다고 본 것이 아니라, 법이라는 공적 약속을 지키는 것이 정의로운 삶의 방식이라고 본 점이다. 이것은 단순한 ‘법에 대한 맹종’이 아니라, 공동체 윤리의 실천이었다. 공리주의처럼 결과 중심적 판단이 아닌,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약속과 책임’의 관점에서 법을 바라본 것이었다.
마틴 루터 킹: 정의가 빠진 법은 법이 아니다
반면, 소크라테스와 정반대의 길을 선택한 인물이 있다. 바로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다. 그는 “악법은 법이 아니다”(An unjust law is no law at all)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시민불복종 운동의 정당성을 강력히 주장했다. 1963년 ‘버밍햄 감옥’에서 쓴 편지에서 킹은 이렇게 밝혔다.
“정의로운 법은 인간의 존엄을 고양시키지만, 불의한 법은 인간성을 억누른다. 그러므로 불의한 법에 대한 불복종은 오히려 도덕적 책임이다.”
그는 법의 형식이 아닌 내용과 효과에 주목했다. 백인우월주의에 근거한 분리 정책, 흑인 참정권 제한, 흑인에 대한 구조적 차별은 모두 ‘합법’이라는 외피를 쓴 불의였다. 킹은 체제 내의 합법적 절차를 통해 저항하면서, 법의 정신과 현실이 불일치할 때 시민의 양심은 그것을 거부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저항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정의의 회복을 위한 신념의 행위였다.
두 철학의 충돌, 그러나 같은 중심
소크라테스는 공동체 질서와 법의 지속성을, 킹은 실질적 정의와 인간 존엄을 강조했다.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두 인물 모두 ‘법의 정신’을 지키고자 했다. 소크라테스는 공동체의 약속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죽음을 받아들였고, 킹은 정의 없는 법을 거부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두 사람 모두 법을 단지 권력의 명령이 아닌, 인간의 윤리적 계약으로 이해했다. 그들은 법이 권위이기 전에 정의여야 한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오늘,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
오늘날 우리는 어떤가. 법의 형식은 그럴듯하지만, 누가 법을 만들고, 어떻게 집행하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종종 묻히곤 한다. 그러면서 현실에서는 정의가 침묵하고 약자의 권리가 무시되는 일이 반복된다. 정당한 법이라면 왜 수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서야 했는가. “악법도 법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는 단지 법률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바라는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윤석열 검찰공화국처럼 법의 이름으로 침묵을 강요하는 체제에 맞서, 행동하는 시민의 양심은 법보다 깊고 멀리 나아간다. 형식상 정당한 절차로 이뤄진 법이라 해도, 그것이 사회적 약자를 억압하고 침묵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질서 감각보다 킹의 도덕적 용기를 더욱 필요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