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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민주주의 강화, “실행 로드맵 없는 개헌이 국정과제 1호?”

송운학 강연…“국민발안개헌회의 추진, 국민개헌협약 체결로 직접민주제 도입 앞장설 것”
[서울=주간시민광장] 조종건 기자 = “실행 로드맵 없는 개헌이 국정과제 1호라니, 정부정책과 의지를 신뢰하기 어렵다. 이제 국민이 직접 나서야 한다.” 지난 18일 저녁 서울특별시의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121차 남북경협 전략포럼에서 송운학 개헌개혁행동마당 상임의장이 던진 말이다. 그는 “국민발안개헌회의를 개최해 직접민주주의 도입을 강화하겠다”며 국민발안제 도입과 국민개헌협약 체결을 촉구했다. 이는 단순한 문제제기를 넘어, 국민 스스로 권리를 되찾고 국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호소였다.

헌정사의 굴곡과 개헌의 왜곡

송 의장은 먼저 광복 이후 헌정사의 흐름을 개괄하며, 국민이 개헌 과정에서 어떻게 철저히 소외되어 왔는지를 되짚었다. 그는 “1969년 삼선개헌 반대투쟁이 불씨가 되어 서울대 문리대 시위, 민청학련 사건,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1987년 6월 항쟁으로 폭발했다”며 “이 모든 거대한 흐름은 결국 국민의 손으로 헌정을 바로 세우려 했던 ‘국민개헌운동’이었다”고 요약했다.

특히 1952년부터 1987년까지 아홉 차례 개헌이 있었지만, 그는 “대부분 독재정권이 주도했고 국민 주권은 철저히 배제됐다”고 지적했다. “헌법은 권력자들의 필요에 따라 개정됐을 뿐, 국민의 의지와 권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었다.

국민발의권의 부여와 박탈

송 의장은 개헌 발의권이 권력자에 의해 어떻게 변질되어 왔는지 구체적 사례를 제시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제2차 개헌에서 대통령 중임 제한을 철폐하는 동시에 개헌 발의권을 국민에게 부여했으나, 박정희 정권이 유신헌법을 제정하며 이를 삭제한 것이다.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도 정치권은 국민에게 발의권을 돌려주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청원법에서도 개헌청원 자체를 금지해 국민 권리를 원천 봉쇄했다”며, 이는 단순히 권리를 제한한 차원을 넘어 국민주권을 구조적으로 배제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따라서 단순히 발의권을 회복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 ‘헌정 파괴를 막아낸 주체’로서 더 강력한 권리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개헌협약: 개헌의 첫 단추

이날 강연에서 송 의장이 강조한 핵심은 ‘국민개헌협약’이었다. 그는 “현행 헌법은 개헌 발의권을 대통령과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에만 부여한다. 국민발안제가 도입된다면 국민 발의안과 국회·정부 발의안이 병존할 경우, 최종 선택은 국민투표로 귀결된다. 결국 발의와 선택 모두 국민의 권리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개헌협약은 각 정당, 시민사회, 학계가 함께 참여해 단계적 부분개헌의 로드맵을 합의하는 절차적 문서다. △국민발안제 도입 △국민주권행사 보장 기본법 제정 △직접민주주의 확대 도입 등을 구체적 시한과 일정으로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개헌 로드맵 없는 개헌은 공허한 구호일 뿐”이라며 “국민개헌협약이야말로 개헌안 국민발안제와 직접민주제를 도입·강화하는 첫 단추”라고 역설했다.

지정토론자들의 목소리

강연 뒤 토론에 나선 지정토론자들은 다양한 제안을 내놓았다.최용기 창원대 명예교수는 “이재명 정부가 개헌을 국정과제 1호로 채택했으니, 협약 논의 단계에 머물 게 아니라 즉각 국민발안 개헌을 요구해야 한다”며 “국민의힘의 개헌저지선을 돌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수영 입법과정책연구소장은 독일의 사회적 협약과 ‘아젠다 2010’을 언급하며, “국민이 개헌 과정에 참여하면 헌법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본질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진철 청미래재단 이사장은 “국민주권행사 보장 기본법에 가칭 ‘국민주권부’라는 독립기관 설치를 포함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개헌운동이 제도적 기반을 갖추고 직접민주제가 조기에 뿌리내릴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 밖에도 참석자들은 △개헌 국민투표 정례화 △국민발안과 국민발의 요건 구분 △개헌과 법률안 처리 차별화 △법관 증원 문제 우선 해결 △정부 불응 시 민간 개헌강령 선포 △서명방식 외 숙의 과정 보완 등 다채로운 보완 의견을 개진했다.

국민발안제와 주권자의 권리

송 의장은 마무리 발언에서 국민발안제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국민은 개헌안뿐 아니라 법률 제정·개정·폐지, 정책 제안, 대통령 등 고위공직자의 소환·파면까지 발의하고 국민투표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단순히 헌법 조항 문제를 넘어 ‘실질적 주권자의 권리 회복’이라는 정치철학적 과제를 담고 있다.

그는 또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처럼 상향식·하향식은 물론 옆구리 찌르기식 방식까지 총동원해야 한다”며 정부가 8월 말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국민발안개헌회의’를 직접 개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6월 항쟁처럼 밑으로부터 제2의 국민개헌운동이 일어날 수 있음을 예고한 것이다.

의미와 전망: 제2의 국민개헌운동 불씨

이번 강연은 단순한 정부 비판에 머물지 않고, 국민개헌협약 체결과 직접민주제 강화라는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송 의장이 제안한 국민발안+(플러스)알파 개헌, 국민개헌운동의 재점화 구상은 정치권과 시민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특히 국민이 직접 헌법을 발의하고 고위공직자를 소환할 수 있도록 하는 제안은 대의민주주의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를 촉발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제도 개혁이 아니라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패러다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날 포럼은 민청학련동지회가 주최한 개헌세미나(8월 6일)에 이어 사실상의 공론화 과정으로 평가된다. 앞으로 정부와 국회가 어떤 태도를 보일지, 그리고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얼마나 확산될지가 향후 개헌 논의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투명 고지|이 기사의 작성자인 조종건 기자는 한국시민사회재단 상임대표를 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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