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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얼굴인식 기술, 인권 침해냐 공공안전이냐

도민인권배심회의 ‘조건부 허용’ 결론…제도화와 정치 성숙의 시험대

[수원=주간시민광장] 조종건 기자 = 실시간 원격 얼굴인식 기술을 둘러싼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경기도 도민인권배심회의가 내린 “인권 침해 아님” 결론은 단순한 기술 논쟁을 넘어, 공공안전과 인권의 균형, 나아가 민주주의 성숙을 가늠하는 시험대로 평가된다.

공익과 기본권, 오래된 갈등의 현장

경기도가 지난 27일 개최한 ‘도민인권배심회의’는 실시간 얼굴인식 기술을 범죄 대응에 활용하는 것이 인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회의는 국제인공지능윤리협회 이희대 이사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인권·윤리 전문가와 도민 배심원단이 함께 참여해 기술과 인권의 충돌을 숙의했다.

실시간 원격 얼굴인식은 공공장소에서 특정인을 즉시 식별할 수 있는 기술로, 범죄 예방과 수사에서 높은 효용성을 지닌다. 그러나 오인식으로 인한 부당 체포,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 프라이버시 침해 등 심각한 인권 침해 우려도 제기돼 왔다.

공공안전의 필요성

배심회의는 우선 공공안전을 위한 기술적 필요성을 인정했다. 특히 살인이나 테러 같은 중범죄 대응에서 얼굴인식은 신속한 대응을 가능하게 하고, 사회 전체의 안전망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유럽연합 AI법이 원칙적으로 공공장소 얼굴인식을 금지하면서도 극단적 상황에서는 예외를 허용하는 점을 근거로, 이번 판단 역시 “조건부 허용”의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남은 과제와 잠재적 위험

하지만 이번 결론은 한계를 안고 있다.첫째, ‘중범죄 대응’이라는 적용 범위가 모호해 과잉 적용 가능성이 남아 있다.
둘째, 오인식 피해 방지나 편향적 적용 차단을 위한 실질적 장치가 제시되지 않았다.
셋째, 국제 규범과의 괴리도 우려된다. 유럽은 극도로 제한된 상황만 예외로 인정하지만, 이번 판단은 상대적으로 허용 범위를 넓게 해석할 소지가 있다.

전문가들은 “감독기구 설치, 사용 기록 공개, 피해 구제 절차 마련 등 제도적 안전장치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도화와 정치 성숙의 과제

궁극적으로 얼굴인식 기술 논란은 기술적 효용을 넘어 사회적 합의와 제도화의 문제로 귀결된다. 해외 사례와 국내 시범 적용 경험을 면밀히 검토한 뒤, 법과 제도로 구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번 도민인권배심회의는 그 자체로 정치 성숙의 징표라는 평가를 받는다. 민감한 쟁점을 전문가와 도민이 함께 숙의하고 결론을 도출한 과정은, 정책을 일방 추진하던 방식에서 시민 참여 민주주의로의 진전을 보여준다.

결국 얼굴인식 기술은 단순한 치안 수단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성숙과 직결된 주제다. 이번 판단이 기술과 인권의 균형, 그리고 정치의 성숙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출발점이 될지 주목된다.

[우리의 과제] 얼굴인식 기술, 국제 동향과 국내 현실

■ 해외 동향
• EU: 2024년 ‘AI법’으로 공공장소 얼굴인식 전면 금지. 다만 테러·실종 아동 수색 등에서 예외 인정.
• 영국: 런던 경찰 2019년 시범 도입, 인권단체 소송 제기 중.
• 중국: 지하철·공항 등 전국 감시망 운영. 범죄 억제 효과 있으나 감시사회 비판 거셈.

■ 국내 상황
• 경찰청: 2023년 시범 도입, 검거율 향상 보고.
• 시민단체: “위헌적 감시 기술” 주장, 헌법소원 준비 중.

■ 숫자로 보는 얼굴인식
• 정확도 격차: 백인 남성 인식률 99% vs 흑인 여성 최대 35% 오인식(MIT, 2019).
• CCTV 인프라: 전국 공공 CCTV 127만 대, 절반 이상이 AI 분석 연동 가능.
• 시장 규모: 2023년 55억 달러 → 2030년 두 배 이상 성장 전망.

■ 전문가 한마디

박종서 박사는 “기술 발전은 빠른데 인권 장치는 뒤따라가지 못한다.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제도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투명 고지 | 이 기사의 작성자인 조종건 기자는 일상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한국시민사회재단 상임대표를 겸하고 있으며, 지역 환경·거버넌스·법 개선을 위한 시민운동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본 기사는 공공 안전과 인권의 균형, 그리고 도민 참여 민주주의의 의미를 짚은 심층기획 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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