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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생활 민주주의로 가는 아파트… ‘엄정 심의’로 뽑은 모범·상생관리단지 9곳


[수원=주간시민광장] 조종건 기자 = 경기도가 아파트를 단순히 ‘대한민국 분쟁과 갈등의 축소판’이라는 냉소에서 끌어올려, 주민 참여와 투명한 운영이 살아 있는 생활 민주주의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도는 9월 3일 ‘2025 경기도 공동주택 모범·상생관리단지’ 9곳을 발표했다. 이번 선정은 형식적 서류 점검을 넘어 세부 배점표와 현장 확인이 결합된 엄밀한 평가기준을 적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평가 체계는 ▲일반관리 ▲시설안전·유지관리 ▲공동체 활성화 ▲재활용·에너지 절약 등 4개 분야로, 세부 항목과 배점이 촘촘히 설계되어 정량·정성 평가가 함께 작동한다.

엄밀한 평가체계, ‘보여주기’ 대신 실적을 본다

우선 일반관리(19점)는 관리의 투명성과 운영 역량을 정면으로 겨눈다. 관리규약·공지사항 공개, 공사·용역 입찰·계약 결과 공개, 감사결과 조치 공개 같은 정보공개 실천이 점수의 핵심이다. 특히 K-apt(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 공개 성실도는 관리비를 제때 공개했는지, 외부·내부 감사결과를 기한 내 공개했는지까지 따져 가감점을 준다. 입주자대표회의 의결사항을 생중계(또는 녹화·녹음)까지 했는지 여부도 반영되어 회의의 개방성을 점검한다. 여기에 입대의 윤리교육 이수율, 컨설팅 신청·반영, 주민 의견수렴·반영, 입대의 구성 충족도 등 운영의 기본기가 꼼꼼히 합산된다.

시설안전 및 유지관리(31점)는 반기별 안전점검, 재난·안전 교육과 훈련, 화재·지진 대응 매뉴얼 등 사전 예방 체계를 확인한다. 어린이 놀이시설은 법정 정기점검 횟수와 안전점검기관의 2년 주기 검사 이행을 모두 본다. 장기수선은 계획 검토·조정 기록, 교육 이수, ㎡당 장기수선충당금 적립 수준, 계획에 따른 주요시설 교체·보수 실적까지 실제 이행여부를 따진다. 화재·승강기 등 필수 보험 가입, 설계도서·수선이력·점검 매뉴얼의 기록물 관리, 사용검사일 기준 경과 연수도 평가 대상이다. 단순 점검표가 아니라 예산 확보·책임자 지정·현장 작동성까지 확인하는 구조다.

공동체 활성화(37점)는 생활 민주주의를 좌우하는 참여의 두께를 측정한다. 자생단체 구성·활동, 단지 자체 교육, 취미·강좌 참여율 같은 참여율의 실수치가 잡힌다. 축제·체육대회·고령친화 프로그램, 단지 소식지 발행, 소년소녀가장·독거노인·장애인가구 지원, 사회복지시설 연계 같은 사회공헌 활동도 점수로 이어진다. 특히 층간소음·흡연·리모델링 분쟁 등 생활 갈등의 제도적 해결력을 규정 제정→자치조직→홍보·교육→조정권고→실적 순으로 계단식으로 평가한다. 금연아파트 지정·교육·표지·홍보 등 건강권 보호 노력도 포함된다. 무엇보다 경비·미화 등 근로자 상생 항목이 강화됐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의 휴게시설 11개 기준 충족 여부를 점검하고, 1년 이상 고용(갱신)계약 비율과 괴롭힘 금지 규정·휴게시간 보장등 인권 조치까지 현장에서 확인한다.

재활용 및 에너지 절약(13점)은 분리수거·재사용·다회용품 확산, 음식물쓰레기 감량, 수돗물·전기 사용량의 전년 대비 절감률(단지 전체 기준), LED·자동점멸·신재생 도입, 절약 교육과 캠페인 등 데이터 기반 성과를 본다. 감량 실적은 ‘공용’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전체 사용량으로 바뀌어 실효성을 높였다.

또한 가점(우수사례 10점)은 단지 고유의 혁신과 타 단지 확산 가능성을 평가하고, 감점(-3점)은 행정처분 이력을 반영해 공정성을 담보한다.

선정 결과와 의미

이번에 선정된 9개 단지는 규모별 그룹에서 상위 3곳씩이다. Ⅰ그룹(500세대 미만)에는 남양주 더힐포레4단지, 수원 영통건영2차, 광주 e편한세상광주역3단지, Ⅱ그룹(500~1,000세대 미만)에는 화성 병점역동문굿모닝힐, 부천 래미안어반비스타, 평택 청북이안아파트, Ⅲ그룹(1,000세대 이상)에는 남양주 다산반도유보라메이플타운, 평택 지제역더샵센트럴시티, 양주 제일풍경채레이크시티1단지가 이름을 올렸다.

그룹별 1위 단지의 공통점은 참여-투명-상생-절약의 선순환이다. 예컨대 다산반도유보라메이플타운은 작은도서관을 중심으로 공동체 프로그램을 활성화했고, 병점역동문굿모닝힐은 텃밭 나눔·재활용 참여·관리종사자 고용안정을 함께 이뤘다. 더힐포레4단지는 에너지 절감 교육과 평생학습, 정기 봉사로 생활 민주주의를 구현했다.

선정 단지에는 도지사 표창·인증동판이 수여되고, 3년간 도 기획감사 면제와 노후 공동주택 개선사업 우선 고려혜택이 주어진다. 그룹별 1위 단지는 국토교통부 ‘우수관리단지’후보로도 추천된다.

홍일영 경기도 공동주택과장은 “이번 평가에 참여해 주신 관리주체, 입주자대표회의, 그리고 무엇보다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신 입주민께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도민의 주거 수준을 높이고 공동체 문화를 활성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아쉽게 선정되지 못한 단지들도 시·군에서 1위로 추천된 만큼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며 “내년에도 적극 참여해 더 많은 단지가 모범 사례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기자의 시선 | ‘진지한 심의’가 만든 신뢰

아파트를 향해 쏟아지는 “대한민국 분쟁과 갈등의 축소판”이라는 냉소는 익숙하다. 층간소음, 관리비 갈등, 주민 갈등 등 수많은 분쟁이 압축된 공간이 바로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심사는 이런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심사위원들은 보여주기식 이벤트가 아닌 운영 기록과 현장 실적을 근거로 점수를 매겼다. K-apt 공개 성실도, 장기수선 적립 수준, 근로자 휴게시설 기준 충족, 전기·수돗물 절감률 등 데이터와 현장을 함께 검증했다. 가점과 감점 제도를 통해 혁신은 장려하고, 법 위반에는 단호했다. 그 결과 선정된 단지들은 ‘평범한 생활’ 속에서 어떻게 민주주의와 공동체를 구현할 수 있는지를 입증했다.

전망 | 생활 속 민주주의, 아파트에서 시작된다

이번 평가는 아파트 민주주의의 실험장이 단순한 구호가 아님을 보여준다. 작은도서관에서의 만남, 회계의 투명한 공개, 층간소음 갈등 조정, 경비·미화 노동자의 권리 보장, 절약과 재활용의 생활화…. 이 항목들은 수상의 조건을 넘어 주거문화의 새로운 표준이 되어가고 있다.

경기도의 ‘엄정 심의’는 단지 관리 수준을 끌어올리는 행정적 수단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분쟁과 갈등의 냉소”를 넘어서려는 정책적 신호탄이다. 생활 민주주의는 먼 곳이 아니라, 주민총회와 작은도서관, 분리수거장과 휴게시설에서 시작되고 있다.

투명 고지|이 기사의 작성자인 조종건 기자는 일상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한국시민사회재단 상임대표를 겸하고 있으며, 지역 환경·거버넌스·법 개선을 위한 시민운동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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