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호 소설가
노량에 피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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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던 삶의 터전을 졸지에 빼앗겨버린 백성들은 싱그럽던 봄날이 사무치게 그립기만 했을 것이다. 바다가 있는 쪽으로부터 소금기 머금은 바람이 한바탕 불어올 때마다 둔전에 심어진 옥수수들은 물기를 잃고 시들어가며 해풍에 종일 서걱거렸다. 뙤약볕 아래 여염집 담장에 능소화는 그래도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었다. 하늘을 향해 뒤틀려 뻗어 올라간 덩굴에 악착같이 달라붙어 사뭇 고아하게 피어난 꽃을 황홀한 눈길로 바라보며 이순신이 탄성을 흘렸다.
“내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능소화꽃이구나……!”
수시로 올라오는 정탐의 보고에 그는 안도의 한숨을 여러 번 내쉬곤 했었다. 왜적들이 갑자기 진주로 몰려가 진주성에 연일 공격을 퍼붓는다는 소문에 불안하기 짝이 없었는데, 충청 병마사 황진이 왜군들을 그래도 어쨌든 잘 막아낸다고 하니,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
첩보전에 능하고, 정보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 지휘관이었지만 그러나 진주(晉州)의 전황에 대해서 만큼은 엇갈리는 보고가 수시로 올라왔던 탓에 안이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었던 전라 좌수사 이순신이었다.
계사년(1593년) 음력 6월 25일.
장대비가 온종일 퍼부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 우수사 이억기와 함께 ‘운주당(運籌堂)’에 앉아 적을 칠 일을 상의하였다. 가리포첨사 구사직(具思稷)이 오고, 경상 우수사 원균(元均)도 합류해 머리를 맞대고 같이 전략을 짰다. 소문에 따르면, 진주에선 성이 포위되었는데도 감히 누구도 진격해오지 못했다고 한다. 며칠 내내 비가 내린 덕분에, 불어난 물에 막혀 적들이 미쳐서 날뛰지 못하게 한 것으로 보면 하늘이 호남지방을 도왔음이 틀림없다.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군량미 130섬 9말을 낙안(순천부) 고을에 나눠주었다. 순천부사 권준(權晙)이 군량미 200섬을 가져다주고 벼를 찧어 매갈이(왕겨만 벗겨내고 속겨는 벗기지 않은 쌀)를 만들었다고 한다.
새벽부터 지짐거리던 빗줄기가 어느덧 장대비로 바뀌는 듯싶더니 폭우는 한나절 내내 지겹도록 퍼부었다. 먹구름 몰려든 하늘이 번쩍거릴 때마다 천지가 진동하며 자지러지듯 무섭게도 연방 울어댔다. 갖가지 생각들이 심란한 그의 마음에 잇달아 파도처럼 식겁하게 몰려왔다.
“여수에 홀로 계신 어머니는 무탈하신지…… 아산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도 무사하고 안쓰러운 조카들 또한 갑작스러운 이 장마에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지…….”
놀랍게도 애절하고 다급한 하늘의 울음이었다. 도대체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이름에 걸맞게 하늘을 능멸하며 붉은 열정의 꽃을 흐드러지게 피운 능소화(凌霄花)가 그에겐 오늘따라 유난히 서글프게 다가왔었다. 비에 젖은 꽃잎마다 백성들의 고초와 불만, 원망과 눈물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니, 꽃잎에 스며든 백성들의 눈물은 이순신의 가슴에 깊이 박힌 슬픔이요 아픔이었다. 아주 불길한 예감이 순간 그의 생각을 스쳤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 예감은 적중했다.
누구도 선뜻 달려와 도와주지도 않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의 가마솥 무더위 속에서, 총집결한 9만3천의 적들에 둘러싸여 고작 6천의 관군과 의병으로 사력을 다해 싸워가며 버티고 또 버텼건만 적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흉계에 말려든 명나라 제독 유정은 그들을 지원할 의도가 아예 없었고, 진주성이 결국 함락되고 말았다는 비보가 빗줄기 속에서 그의 진중(陣中)으로 날아들고야 만 것이다.
부산해전으로 전함 다수를 잃어 소진된 병력을 뭍으로 수송할 능력도 떨어지고, 보급로마저 완전히 막혀 결국 약탈에 의존하는 지경에 이르자 진주성을 점령하여 조선의 백성들은 물론이고 개와 고양이, 소와 닭 할 것 없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생물은 모조리 죽여없애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의 명령이 적장들에게 하달되었다. 피아간의 평화로운 공존은 이제 물 건너간 일일 수밖에 없었다. 조선 정벌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다인(茶人) 센리큐(千利休)에게 즉석에서 할복을 명령했던 왜인들의 우두머리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니던가. 적들에게 합하(閤下) 히데요시의 명은 결코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었고, 부산으로 남하하던 적들은 갑자기 진주로 몰려가 목표물을 변경하여 진주성에 밤낮으로 일주일 내내 맹공을 퍼붓는데, 제2차 진주성전투는 김시민 장군에게 굴욕을 맛보았던 1차전 참패에 대한 왜의 보복으로 치러진, 그야말로 혈전(血戰)이었다.
若無湖南 是無國家(약무호남 시무국가)
왜적들이 집요하게 퍼부어댄 기갑 부대의 공격에, 천혜의 곡창지대 전라도로 들어가는 관문 진주성이 계사년 여름에 이윽고 함락되고 말았다. 조선의 보고(寶庫)가 마침내 적들의 수중에 넘어갈 위기에 처한 것이다. 포구에 묶인 배들은 걷잡을 수 없이 몰아치는 바람에 쉴 새 없이 삐걱거리고, 적들이 헐떡거리며 노 저어 바다를 건너 떼로 몰려오는 소리가 좌수사 이순신에게 떨쳐낼 길 없는 환청으로 거듭 또렷이 들려왔다.
분노에 찬 눈빛으로 지도만호(智島萬戶) 송희립이 목소릴 떨어가며 보고했다.
“진주성에서 생존하여 돌아온 조선의 장수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성 밖 시체 더미 속에 숨어서 왜놈이 쏜 총탄에 맞아 충청 병마사 황진이 죽었고, 창의사 김천일과 경상우병사 최경회가 자결로 죽었고, 김해 부사 이종인과 황명보가 또 죽었고, 무려 5천 명이 넘는 관민이 으깨진 성안에서 도륙되었고, 도륙된 그 백성들의 부녀자들과 아녀자들이 놈들에게 집단강간을 당하고 무참히 죽거나 코가 잘렸습니다, 나으리…….”
황진 장군이 끝내 죽었다는 말에 이순신이 한숨을 두어 번 길게 뽑아내며 탄식했다.
“나랏일이 앞으로 정말 크게 잘못되겠구나…….”
명사수 황진(黃進) 등 무술에 출중한 장수들과 급조된 의병들만을 철석같이 믿고 진주성전투를 그저 안이하게 여겼던 좌수사 이순신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적들의 학살로 폐허가 되어버린 진주의 아수라가 그 앞에 몇 번이고 서글프게 펼쳐졌다.
복구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 진주의 참담한 폐허가 그의 마음을 한동안 어지럽혔다. 불에 탄 마을에 버려진 우물 속에선 풀이 자라고, 우물에 그나마 남아 있던 물까지도 핏물로 변해 백성들은 마실 물조차 구할 길이 없다는 송희립의 보고가 이어졌다.
언제 비를 뿌렸냐는 듯 햇빛은 다시 군막에 쏟아져 내리고, 칼자루를 거머쥔 이순신은 굳게 다문 입술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몸을 줄곧 부르르 떨었다. 그가 빼든 서슬 퍼런 칼이 햇빛을 사정없이 튕겨대며 쇠 비린내를 강하게 풍겼다.
활활 불타는 초막 앞마당에 모여 겁탈을 일삼던 자들의 폭발하는 웃음은 좌수사 이순신에겐 조각조각으로 가슴을 저미는 아픔이었다. 선과 악이 극명하게 갈리는 현장이었다. 순진한 사람들의 순수한 아이들이 적의 칼에 무참히 죽어간 것이다. 울먹이며 고통을 호소하는 부녀자들을 집단으로 짓이기며 왜놈들은 줄곧 헐떡거리고, 꼴깍거리고, 낄낄거렸다. 가랑이 속으로 파고드는 적들에게 거부감을 드러내며 악을 쓰는 부녀자들 누구든 적들은 무자비하게 목 베었다. 아수라장으로 돌변한 성안 흙바닥에선 나신(裸身)으로 널브러져 여인네들이 통곡하고, 숨죽여 곁에서 울먹이는 아이들의 코와 귀를 왜놈들이 잘라내는 웃지 못할 아비규환의 아수라들이 좌수사 이순신의 눈앞에 아찔하게 거듭 펼쳐졌다.
적들이 잘라낸 그 코들은 소금에 절여져 전리품이자 승전 증거물로서 왜놈들의 상부에 바쳐졌을 것이었다. 그는 살기 어린 칼의 비릿한 쇠 냄새를 폐부 깊숙이 밀어 넣으며 보이지 않아 벨 수 없는 원흉을 눈앞에 다시 떠올렸다.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주체가 되어야 할 조선을 따돌린 채, 암암리에 명나라와 왜국(倭國)의 강화협상이 행해지는 가운데, 비겁하게 자행한 왜놈들의 학살이 결국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만 것이다.
“풍신수길(豐臣秀吉), 네 이놈……!!!……”
서슬 시퍼런 이순신의 칼이 한 번 더 차갑게 울며 부르르 떨었다. 주체할 수 없는 살기가 검의 혈조(血潮)에 끓고, 통제할 수 없는 분노가 그의 칼날에서 시리게 꿈틀거렸다. 송희립의 부연설명과 보고는 그러나 계속되었다.
“진주성이 결국엔 점령당하고 촉석루로 밀려나면서까지 저항했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고 난 뒤였습니다. 의병장 고종후와 창의사 김천일과 경상우병사 최경회는 북향 사배를 올리고 절벽에서 뛰어내렸고, 김해 부사 이종인은 왜놈 둘을 겨드랑이에 끼고 같이 남강에 투신하였습니다. 그리고 경상우병사 최경회의 첩실이었던 논개는 자결한 최경회에 대한 복수로, 기생으로 변장하여 적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촉석루 아래 절벽 바위까지 꾀어내 그자를 끌어안고 함께 남강에 떨어져 죽었답니다, 나으리…….”
그의 눈앞에서 한 떨기 꽃이 유유히 흐르는 강물 위로 허망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좌수사 이순신이 한숨을 뽑으며 흐려진 눈으로 말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희생이로다…….”
빗방울이 군막에 똑똑 떨어지는 듯싶더니 천둥소리가 다시 요란했다. 날이 살아 있는 그의 예리한 칼은 이제 천둥소리마저 단번에 벨 기세였다. 의성 건마산(乾馬山)에 진을 치고 필사적으로 버티다 생을 마감한 의병 김치중(金致中)과 그 식솔들의 안타까운 최후가 그의 머릿속에 다시 씁쓸히 떠올랐다. 순신은 기억을 더듬었다.
적들이 몰려오자 곳곳에서 의병들이 자발적으로 조직되었다. 비댓골(比大谷)에 허수아비들을 병졸로 가장하여 세워두고 충정의 뿌리를 지켜내기 위하여 사력을 다해 저항했지만 생전 처음 보는 조총과 서슬 퍼런 검으로 무장한 적장 가토의 임진년 출병 제2군에 그러나 의병들은 속수무책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노인은 물론이고 아녀자들의 코 10만 개 이상을 산 채로 잘라 소금에 절여 상부로 보낼 만큼 적들은 무자비한 자들이었다. 너무 늙어서 안쓰럽고, 너무 어려서 가엾어 조선의 백성들을 살려 보내줄 자들이 아니었다. 파죽지세로 포구에 몰려온 왜적들은 건마산 숲속으로 숨어든 부녀자들과 아녀자들까지 모조리 잡아다가 서로 돌아가면서 윤간(輪姦)을 일삼았고, 널브러져 흐느끼는 그녀들의 목을 단칼에 베어 코와 귀를 취하고, 관아와 민가를 닥치는 대로 불태우며 충정의 고장에 한껏 피를 뿌려댔다.
김치중의 동생 김치화와 김치윤과 김치공, 그리고 그들의 숙부 김응주가 길길이 날뛰는 자들의 칼을 받아 피를 토하며 하나씩 차례로 죽어갔다. 대세가 이미 기울자 김치중은 건마산 꼭대기로 올라가 뒤를 부탁하며 ‘미천강’이 흐르는 절벽 아래로 끝내 몸을 던지고야 만다.
의성 화진포 갯벌은 목이 잘리고 코와 귀가 잘려나간 사체들과 음부가 훼손된 시체들로 섞여서 썩어가는 냄새로 연일 진동했고, 목숨이 붙어 있는 부녀자들은 적에게 욕보이기 전에 스스로 극단을 선택하였는데, 김치중의 아내 신 씨는 김치중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바위로 올라가 혼자 외로이 스러져간 남편을 자기도 따라가겠다며 종일 서글피 흐르는 그 강물에 기꺼이 몸을 던졌다. 머리를 풀어헤친 그녀의 비녀가 강물에 먼저 떨어지고, 하얀 저고리 아래로 하얀 치마가 바람에 휘날릴 때, 하늘이 비를 한껏 뿌렸다.
역사 해설 (편집부)
• 능소화의 상징: 전란 속 붉게 핀 능소화는 백성과 어머니, 조국의 아픔을 상징한다.
• 진주성의 함락: 若無湖南 是無國家(약무호남 시무국가) –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는 절박한 현실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 히데요시의 잔혹성: 센리큐를 죽인 폭군의 명령은 결국 진주성의 민간인 학살로 이어졌다.
현대적 의미 (편집부)
1. 민간인 보호– 국제 인도법의 필요성을 되새기게 한다.
2. 전쟁과 폭력의 상징성– 권력자의 명령 하나가 민중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3. 징후와 리더십– 지도자는 작은 징후 속에서도 공동체의 미래를 읽어내야 한다.
작가 소개
현종호 (소설가)
• 평택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외국어대학 영어학과 조기졸업
• 명진외국어학원 개원(원장 겸 TOEIC·TOEFL 강사)
• 영어학습서 《한민족 TOEFL》(1994), 《TOEIC Revolution》(1999) 발표
• 1996년 장편소설 『P』 발표
• 1998년 장편소설 베스트셀러『가련한 여인의 초상』 발표
• 1998년 장편소설 베스트셀러『천국엔 눈물이 없다』 발표
• 현재 평택 거주, 전 국제대학교 관광통역학과 겸임교수
• 한국문인협회 소설가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