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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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길이 날뛰며 헐떡거리던 적들이 마침내 숨을 고르는 모양이었다. 빈번하고 거세기만 했던 적들의 공격은 점점 지지부진해져 갔다. 가랑비 세우(細雨)는 전쟁에 허기지고 지칠 대로 지친 세상을 부드러운 손길로 조롱하듯 촉촉이 연일 적시고, 적들은 잠잠했고, 바다는 꾸준히 고요했다. 적들이 더 오지 않는 바다는 이제 고요하다 못해 적요하기까지 했다. 껄떡거림조차 돌연 멈추고 적들이 오지 않는 바다의 적요가 이순신은 그러나 못 견디게 두려웠었다. 하루도 깊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이해 못 할 두려움은 떨쳐낼 길이 없고, 넌더리 나게 이어지다 일시적으로 쉬어가는 듯한 싸움의 공포는 잊힐만하면 파도에 실려 와 혼곤해지는 그의 머릿속을 거푸 아프게 찔러댔다. 그에겐 온백원이 더 필요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조선의 수군은 한숨만 절로 나오는 오합지졸이었다. 고된 훈련은 필수였다. 그들에겐 죽음보다 더 무서운 적과 맞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극한의 훈련만이 그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었다. 전장에선 결국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법. 태종 사후(死後)에 시작된 세종대왕의 태평성대를 백성들과 같이 200년 동안이나 실컷 누려온 조선의 군사들이었다. 심약하고 좀체 모질지 못한 그들은 죽음과 삶을 넘나드는 극한의 훈련들을 이겨내고 어떻게든 살아남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야만 했다. 비가 억수로 퍼붓는다고 적들이 오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눈이 쏟아진다고 적들이 오지 않는다는 법도 없었다. 며칠째 잠 한숨도 제대로 못 잔 채 허구한 날 미역과 말린 청어로 끼니를 때우고 풍랑 속에서 노를 저어대느라 지칠 대로 지쳐버린 격군(格軍)들은 주먹밥과 소금에 절인 푸성귀를 넘기는 족족 토해내기 일쑤였다.
악천후와 거센 물결 위에서, 실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작전을 수차례 펼치고 나면 기진맥진해져서 걷잡을 수 없이 가라앉기는 지휘관의 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극한의 훈련 속에서도 오기로 버티는 법을 이젠 스스로 알게 된 그의 군사들이었다. 배의 이물과 고물을 사정없이 때려대는 물기둥과 간간이 스쳐 가는 바람에도 군사들의 몸은 거듭 휘어지고 휘청거렸지만 주린 배를 움켜쥐고 가쁜 숨을 연달아 몰아쉬면서도 그들의 눈빛만은 그러나 여전히 살아 있었다.
좌수사 이순신이 그의 군사들을 흡족한 눈길로 바라보며 녹도만호 정운에게 조용히 말했다.
“그동안 정말 수고가 많았네, 정운 장군!”
정운의 눈시울이 갑자기 붉어졌다.
악천후를 이젠 충분히 감당해낼 수 있는 조선의 격군들, 이젠 죽기 살기로 사력을 다해 싸울 준비가 충분히 돼 있는 그의 사부(射夫)들이었다. 냉철한 지휘관 이순신에게 결코 요행은 없었다. 군사들의 살아 있는 눈빛을 바라보는 기쁨이 그는 실로 컸다.
축 처진 어깨를 추슬러 함대를 이끌고 여수 모항으로 돌아오니 교서가 내려와 있었다. 병기는 이미 사라져버린 지 오래고, 궁궐까지 전소돼 조정에서 쓸 종이마저 바닥이 났으니 어서 종이와 무기를 구해 속히 올려보내라는 임금의 유시였다.
군관들까지 투입하여 좌수사 이순신은 열흘 내내 밤낮으로 종이만 만들어댔다. 한지 만드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늘이 며칠을 조용히 도와야 어쨌든 가능한 일이었다. 한지는 유독 손이 많이 갈 뿐 아니라 햇볕에 바짝 말려야 하는 일이라, 비라도 내리는 날엔 소중한 하루를 그냥 통째로 날려버리는 거였다. 연이은 격무(激務)로 화가 치밀어오른 송희립이 직속 상관을 앞에 둔 채, 들으란 듯이 대놓고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조정의 대신이란 놈들은 허구한 날 서로 꼬투리 잡아서 물고 뜯고 싸워대느라 종이 한 장을 제대로 지켜내지도 못했잖은가. 잠 한숨도 못 자가며 매일 주야로 종이나 만들고, 군관들은 조정으로 올려보낼 무기나 백방으로 구하러 다니느라 날마다 개고생이나 하고 있으니…… 우리가 정말 이렇게까지 생고생을 해야만 되는 거냐고…….”
혀를 차대며 연신 투덜거리는 송희립을 노려보며 좌수사 이순신이 엄히 꾸짖었다.
“이걸 어찌 조정의 잘못이라고만 탓할 수 있겠는가! 어명일세, 어명. 자넨 충(忠)이란 말의 진정한 의미를 벌써 잊었는가?”
“…….”
“…….”
바다로 나아가 수군을 호령해야 할 군관들까지 투입하여 이순신은 열흘 내내 지겹도록 종이만 만들었다. 서둘러 만든 종이를 그는 서둘러 배편으로 올려보냈다. 두어 달이 지나서 임금의 교서가 고기와 더불어 좌수영으로 내려왔다.
임금이 하사한, 섬세하게 퍼져나가며 지방이 곳곳에 황홀한 꽃을 피운 쇠고기는 고소한 냄새를 사정없이 풍겨대며 석쇠 위에서 지글지글 맛있게 잘 익어갔다. 바다를 호령하고 적선들을 깨부숴야 할 장군들이 비좁은 공간 안에서 주야로 종이나 만들고 있자니 무척이나 답답했을 것이었다. 쉽지 않은 작업이요 쉽지 않은 일정이었다.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이순신이 석쇠 앞에 모여 앉은 장수들을 둘러보며 흡족한 웃음으로 말했다.
“그동안 정말 수고가 많았네, 장군들! 전하께서 그대들에게만 특별히 내려주시는 고기일세. 마음껏 드시게!”
슬금슬금 좌수사의 눈치를 살피는 듯싶더니 송희립이 입맛을 쩝쩝 다시며 말했다.
“몰인정하기 짝이 없는 분인 줄로만 알았는데, 내가 그만 오해를 했던 거였네. 임금님이 내려주신 이 귀한 쇠고기를 여기서 우리가 다 같이 맛볼 수 있게 되다니, 거…… 참…… 정말이지 황송한 일일세……. 고기야…… 니가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이더냐……!!!……”
그런 그를 이순신이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도 어서 마음껏 드시게.”
송희립이 눈치를 살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먼저 드시지요, 나으리…….”
“…….”
“아따, 좌수사 어른께서 먼저 드셔야 우리도 이 귀한 쇠고기 한 번 지대로 한껏 먹어보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이순신은 앞에 놓인 죽그릇을 지긋이 내려다보며 거듭 거절하는 것이었다.
“난 누린내를 워낙 안 좋아해서…… 쇠고기는 아예 안 먹네……. 난 여기 이 좁쌀 죽 한 그릇이면 정말 됐네. 자네들이나 어서…… 한껏…… 많이…… 드시게…….”
“…….”
“…….”
한산 해전에서 승리하기가 무섭게 이순신은 전라좌수영을 여수에서 한산도로 옮겨줄 것을 조정에 거듭 요청하는데, 부산에서 몰려오는 적들을 멀리 여수에서 막아내야 할 일이 그는 막막했다. 물목마다 포진해 내륙 곳곳에 눌어붙은 적들을 어떻게든 퇴치해야 하건만 여수 가까이 몰려와 밤마다 취해 불러제끼는 왜놈들의 노래를 듣지 않게 될 날은 그저 멀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거제도 내해로 쳐들어오는 적들을 방어해낼 수 있고, 보급로가 졸지에 끊겨 거제도 곳곳에 성을 쌓고 육로를 통한 보급선으로 버티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적들을 또한 견제하며, 서해안을 거쳐 임금이 있는 한양으로 북진하려는 적들을 요격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서 한산 해역 견내량이 요충지인 까닭이었다.
연이은 승전보와 영도자와도 같은 그를 무조건 따르는 백성들의 두터운 신망 덕분이었을까…… 그의 탁월한 통솔력을 임금이 실로 알아주었던 때문이었을까…….
원거리 출전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수군사령부를 한산도 두올포로 옮겨가고 나서 한 달 뒤, 조정은 수군통제사라는 직책을 새로 만들고, 선조는 전라좌도 수군 절제사 이순신을 초대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는 조치를 단행한다. 그리고 조정은 한산도 본영을 ‘통제영’, 혹은 ‘통영’이라 부르기 시작하는데, 한산도는 거제도 내해와 외해 양쪽에서 쳐들어오는 적들을 막아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종이에 목말라하던 임금을 고려했음인지, 통제영에 또한 ‘12 공방’을 두게 하여 꾸준히 운영하였는데, 열두 명의 빼어난 장인들이 공예품을 만들어내는 공방이라는 의미로, ‘12 공방’은 그 후로도 갖가지 진상품을 만들어 조정에 올리고 종이와 무기 등을 꾸준히 생산하였다.
통제사의 권한은 막강했다. 군율을 어기는 자들을 본인 재량껏 처단할 수 있는 군권은 물론이고 세금 징수, 물류 유통과 12 공방 운영뿐만 아니라 상평통보를 자체적으로 발행하여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이 통제사에게 주어졌으니 그 역시 파격적인 권한이요 인사였다. 영의정 류성룡의 주청으로 선조임금이 끝까지 밀어붙인 끝에 단행된, 품계를 완전히 무시한, 한 번에 일곱 품계를 뛰어넘어 종2품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르는 인사였다. 몰락한 집안(?)의 가난한 집에서 자라야 했던 아들이, 늦은 나이에 관직을 얻어 겨울엔 살점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춥디추운 녹둔도 변방이나 미관말직(微官末職)으로 떠돌고 궁궐에서 하릴없이 말이나 키우던 불쌍한 아들이 정읍 현감(종6품), 진도군수(종4품)를 거쳐 조선의 3도(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를 총괄하여 지휘하는 종2품 관직에 올랐다는 말을 아들에게서 직접 듣고 그의 어머니는 눈시울을 훔쳐가면서까지 크게 기뻐했다.
“효성도 지극하지…… 순신아…….”
“예, 어머니…….”
어미인 그녀에게 이순신은 어려서부터 잔병치레를 많이 한, 가난을 뼛속 깊이 느끼며 자라야 했던, 언제나 안쓰럽고 불쌍한 아들이었다.
“이 어미는 네게 별 해준 것도 없는데, 스스로 네가 이렇게 큰사람이 되었구나! 먼저 가신 네 아버지께서도 이젠 크게 기뻐하실 거다. 대견스럽고 고맙다…….”
일찍 두 아들을 잃고 남편마저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였다. 이제 당신이 의지할 데라곤 셋째 아들뿐인 어머니였다.
”고맙긴요…… 어머니께서 보잘것없는 저를 잘 가르치고 키워주신 덕분이죠…….”
이순신은 가난한 집안의 아이였지만 주눅 드는 일이 결코 없었고, 영민한 아이라 또래 아이들 가운데 단연 도드라지게 자라났다. 어머니의 남다르고 엄격한 교육 덕분에 이 모두가 가능한 일이었다.
“순신아……!”
“예, 어머니……!”
모친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어미 걱정일랑 하지 말고 그만 어서 가보거라. 가서 백성들의 원수를 크게 갚거라!”
“예…… 어머니……!”
역사 해설 (편집부)
• 종이 만드는 군관들: 조선 수군이 전투 대신 한지 제작에 동원된 사건은, 전시 체제의 궁핍과 중앙 권력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 송희립의 불만과 충(忠): 군관이 토로한 불평은 민심을 반영하지만, 이순신은 충성과 명령의 무게를 다시금 각인시킨다.
• 죽과 고기: 군사들이 쇠고기를 즐기는 사이 이순신은 좁쌀죽을 택한다. 이는 사사로운 욕망을 절제하고 장수로서 군사들의 사기를 우선하는 그의 리더십을 드러낸다.
현대적 의미 (편집부)
1. 전시 행정과 물자 부족: 오늘날에도 위기 상황에서 물자 조달·행정 지원이 늦으면 현장의 고통은 가중된다.
2. 지도자의 검소함: 군사와 함께하되 사사로움은 절제하는 태도는 현대 리더십에도 중요한 교훈이 된다.
3. ‘충(忠)’의 재해석: 단순히 상명하복이 아니라, 국가와 공동체를 위한 책임과 헌신으로 읽을 수 있다.
작가 소개
현종호 (소설가)
• 평택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외국어대학 영어학과 조기졸업
• 명진외국어학원 개원(원장 겸 TOEIC·TOEFL 강사)
• 영어학습서 《한민족 TOEFL》(1994), 《TOEIC Revolution》(1999) 발표
• 1996년 장편소설 『P』 발표
• 1998년 장편소설 베스트셀러『가련한 여인의 초상』 발표
• 1998년 장편소설 베스트셀러『천국엔 눈물이 없다』 발표
• 현재 평택 거주, 전 국제대학교 관광통역학과 겸임교수
• 한국문인협회 소설가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