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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의회 독도사랑·국토사랑회와 역사바로세우기 경기연대 의원단이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 앞에서 순국선열의 희생을 기리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 내부 모습. 좁은 방 안에서 임시정부 요인들이 독립의 불씨를 이어갔던 공간이다. (사진=경기도의회 제공) |
[항저우=주간시민광장] 조종건 기자 = 광복 80주년을 맞아 중국 내 독립운동 유적지를 순방 중인 경기도의회 ‘독도사랑·국토사랑회’(회장 김용성 의원)와 ‘역사바로세우기 경기연대’(수석부회장 김성수 의원)가 10일, 임시정부 이동의 첫 기착지
항저우(杭州) 임시정부 청사를 찾아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과 고난의 역정을 되새겼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커우공원 의거는 일제의 심장을 겨눈 쾌거였지만 동시에 임시정부에겐 시련의 시작이었다. 일제의 대대적인 검거 작전 속에서 임시정부는 상하이를 떠나 항저우로 피신했다.
그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나라의 명맥을 등에 지고 뛴 처절한 피난길이었다.
■ 좁은 방 안에서 꺼지지 않은 불꽃
항저우 시절 임시정부의 삶은 참혹했다. 좁고 낡은 건물,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언제 닥칠지 모를 위협 속에서도 그들은 하루하루를 버텼다.
김성수 의원(더불어민주당, 안양1)은 현장에서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꺼져가던 독립 의지에 다시 불을 붙였지만, 그 불꽃을 지키기 위해 ‘정부’라는 이름조차 숨겨야 했다”며 “이곳 항저우까지 오는 길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되찾는 여정이었다”고 말했다.
유종상 의원(더불어민주당, 광명3)도 “이 작은 공간에서 선열들은 흩어진 조직을 재건하고 조국의 미래를 설계했다”며 “절망 속에서 피어난 희망이야말로 임시정부 정신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 8년, 6천km의 피난길… 독립군의 씨앗이 되다
임시정부의 여정은 항저우 이후에도 계속됐다. 전장(鎭江)–창사(長沙)–광저우(廣州)–치장(綦江)을 거쳐 1940년 충칭(重慶)에 이르기까지 8년, 6천km에 달하는 긴 피난길이었다.
김동규 의원(더불어민주당, 안산1)은 “창사에서는 김구 주석이 친일파의 총탄에 쓰러졌고 수많은 요원들이 병과 폭격으로 희생됐다”며 “그러나 결국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을 창설한 것은 그 모든 고난의 결실이었다. 그 길은 후퇴가 아니라, 독립을 향한 전진이었다”고 말했다.
탐방단은 이날 항저우 청사 앞에서 묵념을 올리고,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선열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음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한눈에 보는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
● 위치: 중국 저장성 항저우시 상청구 융허로(杭州上城区永和路)
● 활동 기간: 1932년 5월 ~ 1935년 11월
● 배경: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일본군의 추적을 피해 상하이에서 피신
● 주요 활동: 조직 재건, 독립운동 자금 확보, 한인사회 복원
● 역사적 의미: 임시정부 재기의 출발점, 한국광복군 창설의 기반
기자의 시선|“희망의 기술, 항저우에서 다시 피어나다”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는 낡은 벽돌 건물이지만, 그 안에는 희망을 ‘기억하는 기술’이 살아 있었다. 절망 속에서 다시 서는 능력, 그것이 대한민국이 일어선 힘이었다.
오늘의 민주주의는 바로 그 ‘버티며 꿈꾼 사람들’의 역사 위에 세워져 있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금, 독립운동의 흔적을 단순한 기념으로 두지 않고 ‘현재의 민주주의를 새로 세우는 거울’로 읽는 일, 그것이 후대의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