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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하식(칼럼니스트•문인, Ph.D.) - |
---------뜬눈으로 지새운 뉴욕(4)-----------
우리와는 사뭇 다른 주차비 정산시스템. 요금을 지불하고 각자가 버튼을 눌러 계산서를 뽑아가는 형태였다. 검색대나 계산대의 일은 대부분이 흑인들 몫. 물론 피부 색깔에 따라 노숙자가 정해지지는 않는다. 가이드가 여기서 Homeless라는 용어를 함부로 쓰다가는 봉변을 당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일렀다. 어디서나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사는 인간들의 자존심을 섣불리 건드리는 일은 금물이라는 충고. 이른 새벽이어서 길은 한산했다. 이렇게 신나게 씽씽 내달리긴 하나 매일 아침 8시경이면 어김없이 꽉 막힌단다. 10년째 미국에 살며 남동생 공부까지 시키고 있다는 자신은 한때 은행원이었다면서 이곳의 면면을 풀어헤친다. 당장 가진 현금이 없어도 이행 각서 한 장만으로 대수술을 받을 수 있다며 미국의 복지정책을 자랑했다. 하지만 연방정부가 수십 년째 적자재정에 허덕이는 현실을 들여다본다면 드러내놓고 홍보할 바는 아닌 성싶었다.
뉴욕에 대한 첫인상은 퍽 분주하게 돌아간다는 것. 시장경제를 꽃피운 자본주의의 본거지답게 너나없이 바쁘게 살고 있었다. 노면 상태는 한국과 엇비슷. 맨홀의 이음새가 대체로 울퉁불퉁한 거하며 군데군데 지워지거나 흐릿한 차선들이 어쩌면 그리도 한국을 빼닮았는지 기이할 지경이었다. 가드레일은 유럽처럼 낮은 편인데 간간이 녹이 슬었고, 확연히 다른 형태라면 가로 신호등이 세로로 매달려 있는 품과 도로 경계석이 우리네보다 나지막하다는 점. 시멘트로 만든 보도블록은 한껏 실용성을 중시한 듯 널빤지 크기로 잘라 깔았는데 푹 꺼진 부분은 그리 없어 보였다. 재밌는 건 횡단보도의 너비를 한 줄 흰색으로 그려 놓고, 빨간불의 표지 그림을 손바닥(잠깐만 기다려달라고 양해를 구하는 듯함)으로 표현한 참. 그때 가이드가 지금 건너는 다리를 허드슨강의 워싱턴 다리라 칭했다. 뉴욕에 정착한 교민은 줄잡아 40만 명, 중국인들과 엎치락뒤치락 응집력이 강하다는 평이고 보면 억척스러운 성정은 밖에 나와서도 변치 않는 모양이다. 뭐 나올 게 있다고 이역만리에서 생고생들인지 원!
'감미옥', 새벽 3시에 들른 설렁탕집의 간판명이었다. 24시간을 쉬지 않고 돌아가는 식당답게 활기로 넘쳤다. 한인교포가 운영하는 곳임에도 종업원이나 손님 가운데 현지인이 더 많은 건 기분 좋은 일. 감미로운 이름처럼 구수한 국물이며 감칠맛 나는 김치가 예사롭잖았다. 국물이며 김치가 한국에 비해 하등 손색이 없을 정도. 그 때문인지 전연 먹힐 거 같지 않던 음식이 희한할 만치 술술 넘어갔다. 한여름에 얼었던 속이 풀리는 일 또한 매우 드문 터, 그야말로 손맛이 일품이었다. 식후 1달러의 팁이 어색한 바는 낯선 적응 과정이로되 이 시각에 무슨 식사냐고 볼멘소리로 되물은 머쓱함은 포만감으로 바뀌었다. 입맛을 다시고 나오며 주위를 둘러보니 ‘윤미용실’을 비롯한 한글 상호가 즐비했다. 물설고 말 설은 땅에 모여들어 끼리끼리 살아가는 게 그래도 편한 연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여간 잘 나가지 않고서는 좀처럼 주류사회로의 편입이 어려운 땅. 그 미주대륙을 밟자마자 토박이 뉴요커(New Yorker)를 만나보기도 전, 지레 유색인종의 처절한 생존 법칙을 알아버린 성급함이 가슴팍을 짓눌렀다.
다들 한창 단잠에 빠져있을 꼭두새벽, 이른 네 시가 가까워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아직 어둠에 물든 미명, 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미국에서는 공짜가 없다는 이치를 환기한 국면이 이어졌다. 노고를 치하하며 건넨 20불. ‘Holiday Inn Hotel’은 카운터 하나를 빼고는 뚱보 흑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말이 호텔이지 장급 여관에 불과한 시설. 방문을 여는 방식이 우리와 달라 당황했고, 아무리 찾아도 슬리퍼가 없어 황당했다. 면도기는커녕 치약과 칫솔이 없는 건 당연하고 냉장고는 물론 식수마저 제공하지 않았다. 석회질 섞인 수돗물이 싫으면 사서 마시라는 것. 뒤늦게 알아보니 일회용품 자체가 금지된 국내법에 근거한 거라지만 사전에 아무 공지 없이 당한 일인지라 적잖이 의아했다. 아침 7시 반 모닝콜을 담보하고 누운 침대. 밤낮이 뒤바뀐 마당에 쉬이 잠이 올 리 없다. 게다가 대로변이어서 시끄럽기 짝이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취침등마저 꺼지질 않는다. 방안을 훤히 밝힌 채 뜬눈으로 맞은 아침. 머리는 띵했고 사지는 나른했다. 한국보다 무려 14시간이 느리다면 우리네 육신의 생체리듬은 시방 오후 2시를 막 넘기는 중이렷다. 톡톡히 치르는 시차 적응의 대가이긴 하지만 이렇게 열악한 데서 이틀 밤을 지새우라니 실로 걱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