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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박사, 글로 남긴 지구촌 이야기(9회)】: 미국 탐방기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 상생을 도모한 결과물

- 조하식(칼럼니스트•문인, Ph.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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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이드가 소개하는 소호(Soho)의 면모. ‘South of Houston’의 약자로 원래는 휴스턴 스트리트(Houston St.)의 남쪽, 즉 브로드웨이의 서쪽 지역을 가리켰단다. 처음에는 공장이 밀집한 지대였는데 대공황을 거치면서 하나둘씩 다른 데로 이전해 감에 따라 비어있는 건물마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들었고, 차츰 오늘날처럼 번화한 패션 거리이자 화랑 거리로 탈바꿈했다는 게 요지였다. 하지만 오늘 나의 관심사는 이름만 엿들어도 아찔한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그러고 보니 일행은 어느새 그 빈터를 훔쳐보고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는 1946년 7월 뉴욕타임스에서 맨 처음 사용한 용어로써 사전적으로는 핵무기가 폭발한 지점의 바로 아래나 위를 뜻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자면 제2차 세계대전의 말미 1945.8.6일과 9일 양일에 일본의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떨어뜨린 원자폭탄의 피폭 지점을 일컫는 말이었다. 약 2만 평(16에이커가량)의 땅에 둘러친 높다란 담장에 가로막혀 그 참혹한 잔해를 직접 살필 수는 없었으나, 서기 2001년 9월 11일의 아침을 깨뜨렸던 무시무시한 굉음을 잊은 세인들이 있으랴. 후세인은 가고 한국인 이희돈(당시 세계무역센터 수석부총재)은 살아남아 수많은 신앙인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 현장을 밟아보고 돌아서는 참이다. 하나님을 새까맣게 모른 채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일세를 풍미하며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진 독재자의 처참한 말로와 자연스레 비행기 시간을 늦춰 아직 못다 한 청지기의 소명을 위해 힘차게 뛰게 하신 극명한 대조. 그렇지만 정작 출근길에 목숨을 잃은 총 2,943명의 영혼을 거론하지 않는 한 더 이상의 수식마저 무익하리라.

  유엔본부로 가는 길. 잠시 아담한 뉴욕시티 파크에 들러 아내와 마주 앉았다. 주위는 시끄럽고 바닥은 지저분한 곳. 흘끔 보도블록 뒤편을 보니 어쩌면 우리네 공사마무리와 빼닮았는지 그저 놀라울 지경. 대충대충 설렁설렁 해치우는 관행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이제는 일본과 스페인의 섬세한 기법을 따라잡아야 한다. 이스트 강가 그리 넓지 않은 마당에 위치한 고층건물은 예상대로 경계가 삼엄했다. 언감생심 반기문 사무총장을 만나기라도 하는 듯 저마다 상기된 얼굴들. 서슬 퍼런 검색대를 세 번이나 통과한 뒤 들어간 로비에는 대한민국의 전통문화전(Traditional Korean Crafts)이 열리고 있었다. 지필묵연(紙筆墨硯)을 비롯한 반닫이, 반상, 장독, 불상, 선승, 가야금, 거문고, 갓 등 우리네 생활 전반을 소개하는 코너를 돌아보고 다른 전시공간으로 옮기니 역대 총장들의 액자가 걸려있었다. 한국은 1991.9.18. 제46차 총회에서 북한과 동시에 가입할 때 팔만대장경 목판본을 기증했단다. 지하 화장실을 들러 기념품점(Gift Centre)과 서점을 구경한 뒤 출구를 잘못 드는 바람에 뜻하지 않은 배려를 받아야 했다. 짧은 영어로 연신 “Thank you very much!”라고 웃으며 감사 인사를 건네니 어찌나 호들갑스럽게 받는지 한참이나 들어줘야 했다. 방명록에 기록을 남기고 총총히 빠져나오는 길. 무려 192개(이루 남수단 추가)) 나라 대사가 거주하는 치외법권 지역. 국제평화를 위한 세계인의 연합체를 떠나기 전, 다시 한번 앞뜰에 서서 높고 넓은 곡선형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환경오염을 경고하는 철제 조각품(지구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한 현역 이탈리아 작가의 작품)을 뒤로하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동서로 뻗은 도로를 Street, 남북을 Avenue로 구분한다는 건 상식. 우리 부부는 거대한 도시 뉴욕 관광을 콜럼버스 동상이 있는 센트럴파크의 기점에서 마감하고 있었다. 150년 전, 섬을 떠받친 암반 위에 조성했다는 인공공원. 곳곳에 쓰레기 더미가 쌓인 걸 World New York(후에 N.Y.Times) 기자 브라이언트의 필봉과 발행인 조지프 퓰리처(Joseph Pulitzer, 1847~1911)의 논설로 이처럼 바꿔 놓았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남북 4km, 동서 800m에 이르는 대지를 울창한 숲과 멋진 바위산, 잔잔한 호수와 푸르른 잔디로 단장하고, 동물원, 음악당, 스케이트장, 미술관 등을 갖춘 휴식처로 꾸몄으되 여전히 천민자본주의의 행태는 그칠 줄 몰라 아직도 오물과의 전쟁은 벌어질뿐더러 빈발하는 범죄 사건으로 인해 밤중 출입은 물론 한낮에도 몸조심해야 한다니 말이다. 그러나 반가운 돌파구는 늘 있는 법, 당국의 끈질긴 노력에 힘입어 눈에 띄게 도심의 허파 기능을 되찾았단다. 마땅히 이름 없는 자원봉사자(volunteer)의 노고를 높이 평가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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