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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박사, 글로 남긴 지구촌 이야기(10회)】: 미국 탐방기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낯선 도시의 이모저모

- 조하식(칼럼니스트•문인, Ph.D.) -

----------(10회)----------


  할렘가로 뵈는 일련의 아파트단지. 흥미롭게도 이제는 저간의 사정이 역전되어 서서히 흑인들의 수중에서 탈피하고 있단다. 연유인즉 나날이 더해가는 교통체증으로 인해 출퇴근이 어렵다 보니 도심으로 몰려드는 주택 수요를 소화하느라 급속도로 오명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전언. 나도 모르게 안심이 되어서인지 허름한 연립주택을 지날 무렵 밀린 잠이 몰려왔다. 하지만 다행히 속절없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어서 실시간 차창에 펼쳐지는 낯선 풍경화를 뇌파에 저장하느라 졸릴 자유조차 허락받지 못한 처지였다. 시차를 극복하는 데는 통상 인체의 특성상 1시간마다 만 하루가 필요하다는데, 그렇다면 한국과 미국은 꼬박 2주일이 걸린다는 계산. 말하자면 무지근한 눈꺼풀은 나이가 들수록 버거운 일이니 앞으로 더욱 각오를 단단히 하라는 발신음이었다. 고무적인 건 유난히 잠이 많은 아내의 꿋꿋한 거동. 낮 동안 도통 졸지를 않으니 자못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맘껏 추어줄 요량으로 슬며시 그 비결을 물은즉 대뜸 “아니 이게 얼마짜리 구경인데 주책없이 졸아요, 졸기를!”하고 맞받더니, 곧이어 “위험천만한 곳곳을 이리저리 누비고 다니며 어떻게 기도 없이 다닐 수 있겠느냐?”고 일갈했다. 골백번 옳거니와 천만번 지당하신 말씀. 이래서 부부란 서로에게 의지가지가 되고 힘이 되는 존재인가 보다. 저녁은 해물전골. 그러나 한국과 같이 얼큰하고 구수한 냄새를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국물은 짜고 내용물이 없는 식탁이나마 오롯이 감사해야 한다는 당위가 있을 뿐이다.

  식당을 나와 미합중국의 하늘을 쳐다보았다. 끝없는 허공을 배경 삼아 하얀 양털을 잔잔히 깔아놓은 듯했다. 보면 볼수록 오묘한 조물주의 솜씨. 태초에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신 걸 모르고 머리 좋다는 학자들은 앞다퉈 빅뱅을 운운하니 안타깝다. 누가 뭐라고 할지라도 나는 냉큼 시인 다윗이 시편에서 사용한 신묘막측(神妙莫測)이란 어휘를 떠올렸다. 컬럼비아대학 메디컬센터를 지날 때 가이드는 이곳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폐 수술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만치 세계적 권위를 자랑한다는 말까지는 좋았는데, 동시에 띄엄띄엄 걸어가는 흑인들을 보면서 덧붙인 말에는 문제가 있었다. 즉 새벽에 걸인들을 보거들랑 모른 척하며 지나치고, 위협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이들을 만나면 절대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걸어가야 한다는 조언. 이는 물론 이민자로 살아가는 마당에 얕잡아 보이면 큰일을 당할 수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라는 게 그의 본심이로되, 그것이 별 탈 없이 사는 요령인지는 모르겠으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해당하는 듯싶어 마음이 좀 불편했다. 보도는 비교적 깨끗한 편. 거칠게 단속하는 탓에 드문드문 리어카 장수들이 눈에 띌 뿐 거리에 펼쳐놓은 노점상은 없었다. 그래서인가, 복권을 파는 부스에 앞에는 줄이 길었다. 여기서는 구좌 없는 노무자들을 상대로 수수료를 물게 하고 돈을 찾아가는 환전소(Check Cashed)도 있단다. 이윤이 발생하는 곳에는 어김없이 유혹이 따르는 법이거늘 온갖 편법이 횡행하는 현장을 두 눈으로 확인한 셈이다. 새삼스레 천박한 시장주의의 폐해를 진원지처럼 드러낸 시공을 졸지에 견학 당한 느낌이랄까?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조지 워싱턴의 이름을 붙인 다리를 건넜다. 지나간 얘기지만 아침에는 물밑을 통해 섬으로 들어왔다가 저녁에는 물 위로 빠져나오던 때가 있었단다. 브루클린 다리 이후 가장 긴 현수교로써 길이가 무려 1,067m. 이전에 세운 앰배서더 다리의 거의 배여서 1937년 금문교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최장 교량이었다. 그때 안내자는 2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웨스트포인트(West Point, 육군사관학교)가 여기서 멀지 않다고 힘주어 말했다. 평소 “I like~”를 즐겨 썼다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라더니 기찻길 건너를 가리키며 여기 주민 4만여 명 가운데 1/3이 한인이라고 흥분했다. 그 정도 점유율이라면 힘을 합쳐 이룰 일도 많다는 소스? 아닌 게 아니라 보도블록 사이 잡초가 무성했다. 게다가 후줄근한 공터에 쌓아놓은 건자재는 우리와 닮은꼴. 가이드는 뉴욕을 떠나는 마당에 한사코 맨해튼의 야경을 구경하라고 권했지만 다들 숨 가쁜 여정에 지친 나머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신호등 옆 기다랗게 이어진 방음벽을 따라가며 들은 설명은 대단한 부촌. 숙소에 들어와 쉬려니 다소 이른 시각인 데다 어제 들었던 자동차 소음이 더 크게 들려 좀처럼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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