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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박사, 글로 남긴 지구촌 이야기(11회)】: 미국 탐방기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이들을 지배하는 가치

- 조하식(칼럼니스트•문인, Ph.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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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땅에서 맞은 둘째 날 아침. 잠자리에서 그만 일어나려던 참에 느닷없이 비상벨이 울려댔다. 시계를 보니 06시 10분경. 그것도 처음에는 모닝콜인 줄 알고 참 별난 시그널(signal)도 다 있구나 치부하는 사이 밖에서는 벌써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요란스러운 종(鐘)은 다급한 목소리로 "awaken, awaken, awaken!"을 부르댔다. 피곤기에 실려 더욱 신경질적으로 울어대는 바람에 마지못해 삼삼오오 기어 나오는 발길들 틈에 끼어 마당으로 내려오니 그야말로 인종 전시장. 그 가운데 특별히 눈에 띈 팀은 인도 여행객이었는데 어쩌면 한결같이 그 얼굴에 그 체형인지 참으로 신기했다. 싼 숙박 요금에 비해 주차장은 넓은 편. 일행 중 하나가 출동한 경찰(Saddle Brook Police)에게 문의한 결과 방금 전 긴급구호를 요청한 손님이 있었단다. 내용인즉 어느 방에선가 어린이가 스위치를 잘못 건드려 벌어진 해프닝. 놀라운 건 전부터 이런 일이 종종 있었다는 건데 그때마다 기꺼이 출동을 마다치 않는 발 빠른 대처시스템이었다. 게다가 단잠을 깨운 처사에 짜증을 낼만도 하건만 거지반 여유만만. 보다 큰일을 막기 위한 기회비용이라고 담담히 수용하는 자세야말로 분명 배울 점이로되 왠지 소모적인 전시행정으로 여겨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나저나 이번 사건의 백미는 뚱뚱한 중년 여인의 호들갑. 덜커덩거리는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아주 재밌는 경험(exciting experience)이라고 호쾌하게 웃어 제치기에, 곧이어 “Nothing happen!”이라며 맞장구를 치니 억양이 꽤 쓸 만했는지 대뜸 영어를 구사하느냐고 물어왔다. 하지만 혀가 퍽 짧은 탓에 지레 “Some, something”이라고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어쨌거나 지난밤은 그래도 한숨은 붙인 편. 고맙게도 첫날을 아예 못 잔 게 되레 약이 된 듯했다. 화장실을 나오던 아내가 살짝 한숨을 짓는다. 말인즉슨 염색약이 빠지는 줄도 모르고 연거푸 머리를 감았단다. 수돗물에 석회질이 섞인 줄을 깜박했던 터. 그러고 보면 우리 한국의 물은 양질이다. 아직도 물 쓰듯 한다는 속담을 스스럼없이 써먹을 정도니까 말이다. 그러니 더욱 산 좋고 물 좋은 산하를 난도질하는 짓이야말로 발 벗고 막아내야 할 불법 중의 불법. 발차까지는 얼마간 시간이 남아 있어 아내와 담소를 나눴다. 주제는 때 이른 감이 있는 미국 사회의 단면이었는데, 한껏 복잡다단한 물질문명은 있으나 뭔가 고압적이고 가벼운 기류라는 데 쉬이 공통점을 도출했다. 그래서 더욱 인류에게 구원을 약속하신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주일예배를 드리고 아침을 챙겨 든 뒤 차분히 짐을 꾸려 차에 올랐다. 어제보다는 뚜렷이 덜 생소한 얼굴들.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고는 중간쯤에 자리를 잡았다. 아, 호기심 가득한 세상이여!

오늘 방문지는 수도 워싱턴. 여기보다 남쪽이니 가벼운 옷차림으로 떠나야 한다. 5시간 남짓 걸리는 짧지 않은 거리. 길과 길 사이에 녹지를 두고 곧게 뻗은 고속도로. 워낙 땅덩어리가 넓어 중앙분리대에 시멘트나 철판을 세우지 않고 녹지대를 조성해 놓아 무척 부러웠다. 양쪽 길을 번갈아 보며 뉴욕 지역을 벗어나자 가이드가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프로스포츠에 열광하는 미국인들을 두고 매우 설득력이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요지는 희망이 안 보이는 사회일수록 운동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 사시사철 비싼 입장권에 값싼 햄버거를 뒤섞어 질겅질겅 씹는 모양새를 보노라면 내심 한심한 생각이 치솟는단다. 숙제는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을 통해 얻는 부분이 급속도로 체제에 순응해 가는 몸뚱어리뿐임을 자기 자신조차 모른다는 지점. 가령 외모지상주의에 빠져든 성형만 해도 그렇다. 필자의 견해를 개진하건대 창조주께서 부여하신 나의 정체성을 잃는 대신 사회적 자신감을 얻는다는 논리 자체도 비약이거니와 예고된 부작용을 어쩔 셈인지 전방위적으로 고심해야 마땅하다. 오로지 돈벌이에 미쳐 세포의 균열이 불러올 심각성을 애써 외면하는 무지와 부도덕이 빚어내는 비극에 대해 장차 책임지려는 자가 없다는 고언이다. 결국 모든 일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속물근성으로 인해 인간미마저 상실하다 보니 정작 ‘관계’가 아닌 ‘거래’만 남는다는 일갈이었다. 무엇보다 사람의 가치를 중시하는 정책은 매몰되어 버리고 눈앞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풍토가 판을 친다는 진단에 귀가 솔깃했다. 필연적으로 물신주의에 녹아든 시대는 상황적으로 영상물을 통한 한탕주의나 깊이도 없는 코미디물에 집착하는 행태를 보이면서 저급한 연예 시장에 목을 매달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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