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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현종호 |
(제7회)-3
갑오년(1594년) 음력 1월 19일
바람이 크게 불더니 해 질 무렵에는 더욱 거세게 불었다. 아침에 출발하여 당포 바깥 바다에 당도해 바람에 따라 반쯤 돛을 올렸더니 순식간에 한산도에 다다랐다. 사저에 올라앉아 여러 장수와 대화를 나누었다. 저녁에 원 수사(원균)도 왔다. 소비포 권관 이영남에게서, 영남의 여러 배의 사부와 격군이 거의 굶어 죽어간다는 말을 들었다. 참혹하여 나는 차마 들을 수가 없었다. 원 수사와 공연수, 이극함이 눈독 들였던 여자들과 사통했다고 한다.
작전상 물러나는 적의 대선단을 인지하지 못한 원균이 자초한 패배였다. 적들은 천여 척이나 되는 대선단을 꾸려 쳐들어왔는데, 온종일 굶어가며 노를 저어대고 뱃멀미에 지칠 대로 지친 군사들을 정보가 없는 원균이 해전에 능한 적장들의 방사진에 무턱대고 일자진으로 들이댔다가 다음 날 새벽에 적의 기습을 받아 궤멸을 자초했다는 것이었다.
적들이 새벽에 다시 떼로 몰려오자 적의 기습에 놀란 원균과 그의 군사들은 배를 버리고 뭍으로 도망하기 급급했다. 배를 내팽개쳐둔 채 헐떡거리며 거제도 숲속으로 도망했던 원균은 미리 매복해 있던 적의 칼을 받아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허망하게 죽어갔다. 바둑과 술을 즐겨가며 이순신과 가까이 지냈던 우수사 이억기가 칠천도 앞바다에서 장렬히 죽었고, 충청 수사 최호(崔湖)와 뭇 장수들도 그때 바다에서 같이 죽어갔다.
선조가 황망함 가득한 표정으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신하들에게 거듭 묻고 있었다.
“대신들은 왜 말이 없는가?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왜놈들이 절로 물러난단 말인가?”
“…….”
“…….”
溺海者不可知(익해자불가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선의 군사들이 바다에 떨어져 수장돼버린 것이다. 연전연패를 거듭하며 수세에 몰렸던 왜군은 이순신에게 빼앗겼던 제해권을 마침내 온전히 찾았고, 전라도를 접수하고 충청도를 거쳐 한양까지 진격하는 일은 이제 손바닥 뒤집기 여반장(如反掌)이나 다름없었다.
거북한 침묵이 둘 사이에 한참 흘렀다. 둘의 오랜 침묵을 깨고 도원수 권율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일이 여기에까지 이르렀으니 대체 어찌하면 좋겠나?”
“…….”
“자네라면 어찌하겠는가?”
“…….”
“…….”
정유년 7월 18일, 맑음.
새벽에 이덕필과 변홍달이 와서, 수군이 칠천도 앞바다에서 대패하였고, 통제사 원균과 전라 우수사 이억기와 충청 수사 최호와 뭇 장수들이 살해당하였다고 하였다.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후 권율 도원수가 찾아와서,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나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서 오전 10시경까지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한숨만 뽑아내는 것이었다. 내가 직접 연해 지방에 가서 듣고 본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였더니 도원수가 크게 기뻐하며 돌아갔다. 방응원, 송대립, 유황, 윤선각, 이원룡, 이희남, 임영립, 현웅진, 홍우공과 함께 삼가현에 당도하니, 새로 부임한 수령 신효업이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효순의 셋째 아들 한치겸도 와서 오랫동안 같이 이야기하였다.
도원수의 얼굴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정보 없이 늙어서 갈피를 못 잡고 시종 허둥지둥하는 도원수를 보고 있자니 안쓰러운 마음이 그에게 생겨나지 않을 수 없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갑옷과 우렁찬 목소리에 전혀 안 어울리게 몹시 일그러져 씰룩거리는 그의 얼굴을 흘금거리며 이순신은 조용히 생각을 말한다.
“비책은 바다에 있을 겁니다. 우선 연해(沿海)를 더 둘러보고, 자세히 더 들어보고 나서 말씀드리겠소이다…….”
“자네가 그 비책을 정말 바다에서 찾아낼 수 있겠는가……?”
“…….”
“…….”
대역죄인 이순신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고개만 두어 번 끄떡여주었다.
“고맙네! 내 자넬 한 번 더 믿어보겠네. 속히 움직이시게…….”
비변사의 집요한 탄핵이 도원수도 그만큼 두려웠던 탓일까, 권율은 크게 기뻐하며 군관과 나졸들을 거느리고 사뭇 당당히 멀어져갔다.
서해와 남해의 바닷물이 만나 순류와 역류가 뒤엉켜 곤두박질치고 소용돌이치며 우우, 울어대는 울돌목 명량(鳴梁). 뒤로 더 물러날 데 없는 포구와도 같은 울돌목 명량은 적들이 서해로 진출하기 위해선 그러나 반드시 지나야 하는 물목이었다.
명량(鳴梁)의 물길은 암초에 부딪혀 오늘도 서글피 울면서 종잡을 수 없이 돌아나가고, 통제영을 불사르고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채 제 몸 하나 살려서 도망한 배설이란 놈을 당장이라도 잡아서 목 베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나 그가 진도 어딘가에 숨겨두었을 12척의 판옥선이라도 찾아내는 일이 그에겐 그래도 유일한 희망이었다.
무참히 죽어간 적들과 억울하게 스러져간 백성들의 원혼이 속속들이 스며든 바다가 급류 속에서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하루에 네 번 물길이 뒤바뀌는 울돌목. 지칠 대로 지쳐 기진맥진해진 몸은 이리도 축 늘어지건만 신망국활(身亡國活)이라는 한 가닥 희망을 절망으로 허망하게 부정할 수는 없었다.
머리를 풀어헤친 광녀처럼 역류와 순류가 뒤엉켜 미친 듯 울어대는 울돌목의 물길이 뒤바뀌는 시간이 어느새 다가와 있는 것이었다. 온갖 생각들이 그의 마음속에 들어가 울돌목처럼 곤두박질치고 요동치고 소용돌이쳤다. 한 가닥 희망의 급류가 쇠잔해진 그의 마음에서 점점 되살아나고 있었다. 허울뿐인 이름의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공허한 눈길이 줄곧 울돌목 명량에 꽂혀 있었다.
미로항첨사 김응함, 녹도만호 송여종, 거제현령 안위 등 칠천량에서 패전한 수령들이거나 지휘관들이 돌아와 이순신과 눈이 마주치자 마당에 엎드려 통곡하였고, 우수사 배설도 결국은 그의 휘하로 돌아와 그 앞에서 머리를 주억거렸다.
“군법에 내가 비록 홀로 죽어갈지언정 죽을 땅에 군졸들을 죄다 어찌 내가 그냥 내버려 둔단 말인가. 내가 거기서 바로 물러선 덕분에 우리가 열두 척의 배라도 어쨌든 온전히 건진 게 아닌가. 전략상 후퇴는 일종의 대응방안과도 같은 거요. 자네들도 다 알다시피 싸움에선 물러설 때를 미리 알고 물러서는 것 역시 병법에서 말하는 그 방책이란 말이오.”
군관들과 함께하는 회식에서, 배설은 잇새에 낀 돼지고기 찌꺼기를 거푸 툭툭, 입 밖으로 뱉어내며 변명을 줄줄이 늘어놓는 것이었다. 이순신의 칼이 속에서 차갑게 울었다. 배신자 배설의 목을 단칼에 자르고픈 마음이 그는 간절했다. 그러나 달래지지 않는 칼을 어떻게든 달래가며 배설의 그 황당한 넋두리를 그는 그저 잠자코 더 들어야 했다. 배설이 이순신을 흘금거리며 마치 조롱하듯 물었다.
“내 말이 틀리오, 통제공?”
“…….”
“…….”
안위의 눈빛이 순간 이글거렸다. 격분한 안위는 당장이라도 그의 목을 벨 기세였다. 배설이 순간 움칫했다. 움츠러든 채로 현령들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며, 한때 상관이었던 원균을 배설이 다시 사정없이 씹어대기 시작하는데, 기가 차서 이순신은 뭐라 더 할 말이 없었다.
【편집부 해설|제7회-3 】
칠천량 패전 이후, 조선 수군은 사실상 전멸 상태에 빠지고 제해권이 다시 왜군의 손으로 넘어간다. 원균의 무모한 전투지휘와 새벽 기습 대응 실패는 “궤멸”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낳고, 수많은 장졸이 바다에서 수장된다(溺海者不可知).
권율 도원수는 이 상황을 수습할 역량도 정보력도 갖추지 못한 채 당황하며, 결국 다시 이순신에게 의존한다. 대역죄인의 신분인 이순신에게조차 “자네라면 어찌하겠는가”라고 묻는 장면은, 임진왜란 전쟁지휘 체계의 공백과 정치적 모순을 드러낸다.
이순신은 답을 서두르지 않고 “비책은 바다에 있을 것”이라며 연해(沿海) 현장을 먼저 확인하겠다고 말한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 ― 울돌목 명량(鳴梁) 서해와 남해 물길이 부딪혀 역류와 순류가 뒤엉키며 울부짖는 협수로.
이곳은 후퇴할 곳 없는 벼랑 끝, 그러나 동시에 유일하게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의 가슴 속에서는 단 한 문장이 되살아난다.
身亡國活(신망국활)― “내 몸이 죽더라도 나라가 살아야 한다”
패주 지휘관들이 엎드려 통곡하며 돌아오고, 배설은 변명으로 자기 행위를 정당화하지만, 이순신은 분노를 삼킨 채 칼을 달래며 싸움의 때를 기다린다. 명량대첩으로 이어지는 결단의 그림자가, 바로 이 장에서 처음으로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난다.
【본문 용어 해설】
■ 당포(唐浦) Dangpo 이순신 수군이 주둔·작전하던 포구. 해전 준비와 정박지 역할을 한 군사 요충지.
■ 소비포(所比浦) Sobipo 한산도 인근 포구. 수군 이동·보급·접선이 이루어지던 해안 거점.
■ 사부와 격군(師傅 / 格軍) ship masters & oarsmen 사부 = 배를 지휘·관리하는 책임자 / 격군 = 노를 젓는 병사·노군.
■ 익해자불가지(溺海者不可知) “Those drowned at sea cannot be counted” 바다에 빠져 죽은 자가 너무 많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는 뜻.
■ 여반장(如反掌) as easy as turning one’s palm 손바닥 뒤집듯 매우 쉬운 일이라는 비유적 표현.
■ 삼가현(三嘉縣) Samga-hyeon (present-day Hapcheon) 도원수 권율의 군영이 있던 고을. 전략 회합지로 기능.
■ 연해(沿海) coastal region 바닷가 일대. 수군 작전·정탐·전략 판단의 핵심 현장.
■ 울돌목(鳴梁) Myeongnyang Strait 서해·남해 조류가 충돌하는 협수로. 명량대첩의 전장.
■ 포구(浦口) harbor / estuary 배가 드나드는 해안의 출입구. 보급·정박·회군 지점.
■ 신망국활(身亡國活) “I die, the nation lives” 개인의 죽음보다 국가의 생존을 우선한다는 결의.
■ 광녀(狂女) mad woman / wild woman 미친 여인에 비유된 이미지. 거친 물길의 혼란을 형상화한 표현.
■ 미로항첨사(彌老項僉使) Military navy officer at Miro-hang 수군 지휘관 직함. 칠천량 패잔병 집결 후 이순신에게 귀속.
■ 거제현령(巨濟縣令) Magistrate of Geoje 거제 지역 행정·군사 책임관. 칠천량 패전 후 생존 지휘관.
■ 현령(縣令) county magistrate 각 고을 행정·군사 책임자. 패전 직후 이순신에게 귀의한 인물.
【현대적 의미|제7회-3 】
이 장면은 리더십의 본질을 묻는다. 권력 계보와 정치적 후광으로 자리를 얻은 리더는 위기 앞에서 허둥지둥했고, 반면, 굴욕과 형벌, 유배와 빈곤을 겪은 이순신은 절망의 바닥에서조차 현장을 보고 판단하고, 섣불리 말하지 않으며,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비책은 바다에 있다”= 현장, 현실, 사람 속에서 길을 찾겠다는 선언
칠천량 이후의 조선은 오늘날의 사회 위기, 제도 붕괴, 시스템 실패와 닮아 있다. 정치적 책임은 사라지고 현장의 실패는 개인의 탓으로만 돌려지며 국가 시스템은 무너져가는데 그 한가운데서 누군가는 이렇게 묻는다.
“지금 나라를 다시 세울 사람은 누구인가”
이순신의 신망국활(身亡國活)은 “영웅적 희생”을 넘어 공적 책임에 대한 윤리적 결단으로 읽힐 수 있다.
명량(鳴梁) — 전략·지형 종합 분석
명량은 “후퇴 불가”이자 “역전 가능”한 지점이었다. 명량은 단순한 해협이 아니라 서해·남해 조류가 충돌하고 순류·역류가 하루 네 번 뒤집히며 내만과 외해를 가르는 병목수로였다. 이 말은 곧, 여기서 막지 못하면 → 서해 직통 → 전라도 곡창 지대 붕괴 즉,
•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고
• 그러나 유일하게 수적 열세를 전술로 극복할 수 있는 곳
이순신이 “연해(沿海)를 먼저 보겠다”고 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명량 수로(물길) — 전투가 아니라 “지형이 무기였다”
수로 폭
• 최협폭 약 290m 내외
• 조류 흐름이 가장 거칠게 집중되는 구간
조류 속도
• 최고 10~12노트(강물 수준을 넘는 급류)
• 경험 없는 함선은 방향 제어 불가
조류 전환 타이밍
| 시간 | 물길 상태 | 전술 효과 |
| 정조류 | 순류·역류 정렬 | 진입·대기 가능 |
| 전환 직전 | 혼합·소용돌이 | 충돌·좌초 위험 최대 |
| 전환 직후 | 반대 방향 급류 | 기동력 상실 |
이순신은 ‘전환 직전의 혼류 구간’을 전술 타이밍으로 선택했다.
적선(대형 일본 배)은 돌파 시도 → 소용돌이에 휩쓸림
판옥선(조선 전선)은 정지·대기 전투에 최적화
명량은 “움직이는 자가 패배하는 전장”이었다
조선·왜군 함선 성능 차이 = 결과를 좌우
일본 수군(왜선)
• 빠른 기동·돌격형
• 근접 백병전·사다리 전법 의존
• 조류 불리 시 전투력 급락
조선 수군(판옥선)
• 광폭·고중량
• 정지·차단·근접 화포전에 강함
• 정면 충돌전 + 수직 화력 투사에 최적화
따라서 명량은 왜군에게는 ‘움직여야 하는 전장’, 조선에게는 ‘버티면 이기는 전장’이었다.
이순신의 실제 전략 핵심 4가지
① ‘12척을 흩지 않고 한 줄로 세운 이유’
• 수적 열세에서는 전선 분산 = 패배
• 따라서
→ 단일 전열 유지
→ 협수로 중앙 차단
“적이 밀려오면 물목에서 하나씩 꺾는다”
② 화포 운용 패턴
• 연속 사격이 아니라
급류에 휩쓸려 접근하는 순간 — 단발 집중 사격
배가 회전하는 타이밍 — 선수부 파괴
→ 적선의 방향타 상실
→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감
“명량에서 화포는 ‘밀어 떨어뜨리는 무기’였다”
③ 아군 병력 심리전
• 칠천량 이후
탈영·패잔병 심리 극심
지휘관 권위 붕괴 상태
따라서 이순신의 1차 목표는 전투 승리가 아니라 “군심 복구”
→ 이는 이후 노량 해전까지 이어지는 전력 재건의 기초가 됨
④ 왜군의 판단 착오
• “협수로 돌파 시 전선 압축 전술 가능”이라 판단
• 그러나 대형 함선 → 급류 제어 불가
기동 병력 투입 지연
선두 파괴 → 후속 대열 붕괴
즉, 지형을 읽지 못한 병력 우위 = 전술적 자살
명량은 “한 번의 승리”가 아니라 “전쟁 방향을 되돌린 전투”
명량의 의의는 전멸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제해권을 다시 붙잡았다”는 데 있다.
결과적으로
• 왜군의 서해 북상 차단
• 전라도 곡창 지대 사수
• 조선 보급선 회복
• 명나라 원군 회로 확보
즉, 명량 = “조선이 패망하지 않도록 만든 마지막 잠금장치”
|요약: 명량 승리는 “싸움에서 이긴 것”이 아니라 ‘지형을 전술로 바꿔 전쟁의 흐름을 되돌린 사건’이었다.
작가 소개
현종호 (소설가)
• 평택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외국어대학 영어학과 조기졸업
• 명진외국어학원 개원(원장 겸 TOEIC·TOEFL 강사)
• 영어학습서 《한민족 TOEFL》(1994), 《TOEIC Revolution》(1999) 발표
• 1996년 장편소설 『P』 발표
• 1998년 장편소설 『가련한 여인의 초상』, 『천국엔 눈물이 없다』 발표
• 전 국제대학교 관광통역학과 겸임교수 역임
• 현재 평택 거주, 한국문인협회 소설가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