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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현종호 |
(제7회)-5
폐허로 몰락한 한산 통제영을 바라보노라니 몇 번이고 억장이 무너져내렸다. 그에겐 배 한 척이 남겨져 있지 않았다. 그는 이제 통솔할 병력이 없는, 배 한 척도 가지지 못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요 삼도수군통제사였다.
外無匡扶之柱石, 內無決策之棟樑(외무광부지주석, 내무결책지동량)
밖에는 나라를 바로잡을 주춧돌 같은 인물이 없고, 안에는 계책을 세울 버팀목 같은 인재가 없는 현실이 임금 역시 개탄스러울 것이었다. 불에 탄 채로 떠다니다가 갯가에 처박힌 판옥선에선 건져 쓸만한 게 하나 없을 정도로 배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궤멸이었다. 무엇으로도 긍정할 수 없는 절망 그 자체였다. 배설의 얼굴이 퍼뜩 스쳤다. 이순신은 혼잣말하듯 불만을 바다에 연거푸 뱉었다.
“한산 통제영을 불사르고 도망한 이유와 내 운주당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연유와 원균의 기생 열두어 명이 내 운주당에서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된 까닭을 내가 나중에 네놈에게 엄히 따져 물을 것이다……!!!……”
돌아온 군관 아홉 명과 군사 여섯 명이 그에게 전부였다. 도원수가 보내온 군사들은 모두 아무런 말도 없고, 활과 화살 또한 없으니 아무 쓸모가 없는 자들이었다. 건져 쓸 만한 건 널빤지 한 장, 나무못 하나 없는 궤멸의 암울한 현실에서, 텅 빈 연안을 돌아보는 동안 이상한 어떤 뜨거운 것이 자꾸 그의 몸속에서 치받고 올라오며 부글부글 끓었다. 아연함을 떨쳐낼 길이 없었다. 불가능한 현실이 환각인가 싶었으나 결코 환각이 아니었다. 오해인가 싶었으나 오해도 아니었다. 절벽 앞으로 몰아세우는 절망을 그는 도저히 긍정할 수 없었다. 온갖 노략질로 몸집을 키운 괴물과도 같은 부지기수의 적들을 극소수의 병력으로 물리친다는 건 확실한 불가능이었다. 그것은 긍정할 수 없는 절망이나 다름없었다. 허망한 전멸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정유년 8월 5일, 맑음.
아침을 먹고 나서 옥과(지금의 곡성) 고을에 이르니, 쓰러져 누운 피난민들이 길 위에 가득하였다. 남녀가 서로 부축하여 절뚝거리며 길을 가는 그 개탄스러운 모습을 나는 차마 눈으로 볼 수가 없었다. 정사준과 정사립이 마중 나왔으나 옥과 현감 홍요좌는 처음엔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다가 얼마 후 슬며시 나타났다. 그를 잡아다가 처벌하려고 했기에 내가 온 것이다.
정사준은 이순신과 같이 정철 총통을 만들어낸 장인(匠人)이다. 이순신은 훗날 정사준과 정사립 형제에게 화포제작에 관한 일을 맡긴다.
정유년 8월 7일, 맑음.
옥과에서 자고 이른 아침에 길에 올라 곧장 순천을 향해 가는 도중에 선전관 원집을 만나 임금의 유시를 받았다. 전라 병마사 이복남의 패잔병들이 길 위에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그들에게서 말 3필과 활과 화살을 좀 빼앗아왔다.
정유년 8월 8일, 맑음.
곧장 길에 올라 순천에 당도하니 성 안팎이 쥐죽은 듯 적막했다. 승려 혜희(惠熙)와 승병들이 찾아와 인사하므로 혜희에게 의병장의 직책을 주고 병기 가운데 장전, 편전은 군관들이 져 나르게 하고, 총통 등 운반하기 어려운 무기들은 땅에 깊이 묻고 표식을 세워두도록 하였다.
정유년 8월 9일, 맑음.
일찍 출발하여 낙안군에 이르니 관사와 창고와 병기가 모두 소실(消失)돼 있는 것이었다. 관리와 백성들도 모두 눈물 흘리며 개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보성군 관아로 가서 지인을 찾아가고, 귀인을 만나보며 숨 가쁘게 돌아다닌 끝에 이순신은 군사 120명을 겨우 확보한다. 보성은 그의 장인이 한때 군수로 있던 곳이라 그것마저도 어쨌든 가능한 일이었다. 저녁 무렵 조양창에 으르니 사람은 하나도 안 보이고 창고의 곡식은 봉해둔 채 그대로였다. 산속에 덩그러니 남아 스러져가는 노을빛에 젖은 조양창엔 한동안 정적만이 감돌았다. ‘청야책(淸野策)’에 의해 불태워진 지금까지의 창고들과는 그러나 그 느낌이 상당히 달랐다. 고내리(庫內理)라는 이름에 걸맞게 세곡 창고를 열어보니 가마니가 새끼줄에 그대로 묶여 곡식이 안에 가득했다. 마른침 삼켜가며 지켜보던 군사들이 환호의 탄성을 질렀다. 이순신은 고내리 마을 뒷산 조양창에서 군량미를 또 수습한다. 그래 봐야 군사 120명에 말 네 마리 분량의 무기가 전부였다.
“극소수의 병력으로 무슨 진을 펼친단 말인가!”
너무 긴장했던 탓일까, 피로가 임진년에 몰려오던 적군들처럼 날개를 펼치고 한꺼번에 또 그에게 몰려온다. 조양창에서 내려오자 긴장이 풀린 탓이었다. 이순신은 기진맥진해진 몸을 추슬러가며 김안도의 집을 겨우 찾아가 그의 집에서 그때에서야 깊은 잠에 푹 빠져든다.
피로에 지친 몸은 걷잡을 수 없이 가라앉고, 소진된 체력은 회복될 기미가 아예 없고, 토사곽란이 더 심해져 김안도의 집에서 그는 이틀을 더 묵어야 했다.
시간은 쏜살처럼 미친 듯 날아갔다. 의금부 형틀에서 거듭 으깨졌던 몸이 성할 리 없었으나 이순신은 군사들을 격려하며 다시 강행군을 이어가는데, ‘다전(茶田) 마을’에 당도하여 양해 부사 양산항(梁山沆)의 집을 찾아간다. 양산항은 양팽손의 손자로 이순신과 대대로 정을 나눠온 사이였다. 집주인은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곡식을 그냥 버려둔 채로 벌써 피난을 갔는지 창고 안에는 식량이 가득했다. 이순신은 군사들에게 식량을 거두도록 하였다.
이순신이 군량미 걱정을 떨쳐내고 양산항의 집에 머물던 저녁나절에 자신을 최측근에서 보좌했던 부하 군관 송희립과 칠천량에서 역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최대성이 찾아와 지칠 대로 지친 그에게 한 가닥 희망을 안겨준다. 거제현령 안위와 발포만호 소계남(蘇季男)까지도 합류했다. 첩보수집에 동원됐던 군관들 또한 속속 돌아와 왜군의 동태와 도망한 배설의 소재를 파악해 이순신에게 낱낱이 보고했다.
보성군 관아 무기고로 가니 무기고 밖에 무기들이 버려진 채, 무기고 안에 무기가 그래도 좀 남아 있었다. 성한 무기는 몇 안 됐으나 보성군 무기고에서 이순신은 또 무기를 손쉽게 수습하였다. 순천부사 우치적이 합류하였고, 거북선 돌격대장 이기남도 합류하였으며, 승군 소수에 패잔병들 또한 돌아왔으니 소규모일지라도 군대의 면모가 어느 정도 갖춰진 셈이었다. 패전 직후 식솔들을 데리고 달아났던 경상우후 이몽구까지 찾아와 그 앞에 엎드렸다. 반가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으나 전라좌수영 소유였던 군량미를 챙기지도 못한 데다 본영의 군기(軍旗)를 가지고 오지도 않았으므로 아침에 그에게 곤장을 치라고 명령할 수밖에 없었다. 이몽구는 힘겨운 곤장을 겨우 견뎌냈다. 통제사 이순신은 ‘열선루’를 찾아가 열선루에 당당히 앉아서 보성군수를 오라 이르고, 나주 목사와 어사 임몽정에게도 편지를 보냈다. 통제사 이순신의 숨 가쁘게 이어지는 행보였다.
【편집부 해설|제7회-5】
이 회차는 “전투 이전의 전투” — 군대가 궤멸된 뒤, 다시 군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가장 치열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임에도
• 배 한 척 없고
• 병사 몇 명만 남은
• 완전 붕괴 상태에서 출발한다.
폐허가 된 통제영 앞에서 외치는 절규는 “전쟁에서의 패배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 전체의 붕괴를 목격한 고통”이다.
이 회차의 핵심 서사는
1. 군사·물자·지휘체계가 모두 사라진 상황
2. 그럼에도 이순신은
• 피난민 속을 걸으며 현장을 확인하고
• 각 고을을 돌며
• 군사
• 무기
• 군량미를 하나씩 “수습”해 나간다.
3. 이 과정은 전쟁터가 아니라 폐허 속에서 진행되는 전쟁 준비이다.
중요한 장면적 의미
• 군사 120명 확보
• 말 3필
• 활과 화살 약간
• 버려진 무기 일부
• 조양창 군량 수습
이순신이 얻은 것은 전력이라기보다 최소 생존선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전력의 양이 아니라 의지·책임·목표가 군대를 만든다“는 이 작품의 주제가 선명해진다.
인물 관계의 긴장
• 살아 돌아온 부하들이 합류하고
• 배설을 뒤쫓기 위한 첩보망이 작동하며
• 이순신 곁으로 다시 “핵심 전우들”이 모인다.
이것은 단순 귀환이 아니라 ‘리더십 중심으로 군대가 재결집되는 과정’으로 묘사된다.
감정선
• 극도의 피로
• 토사곽란
• 육체 붕괴
• 그러나 멈추지 않는 움직임이 대비된다.
그래서 이 회차는 “이순신의 위대함은 ‘승리의 명장’이 아니라 패잔의 폐허에서 다시 시작한 리더십“이라는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본문 용어 해설|제7회-5】
■ 외무광부지주석(外無匡扶之柱石) no pillar-stone to uphold the state 나라를 바로 세울 주춧돌 같은 인물이 없음.
■ 내무결책지동량(內無決策之棟樑) no pillar to decide great affairs 국정의 계책을 세울 핵심 인재가 없음.
■ 갯가(—) seashore / tidal shore 바닷가, 포구 주변 해안 지대.
■ 운주당(運籌堂) Strategy Hall / command residence 통제영 내 이순신의 지휘·작전 공간.
■ 유시(諭示) royal directive / instruction 임금이 내려 보낸 공식 지시문.
■ 전라 병마사(全羅兵馬使) provincial army commander of Jeolla 전라도의 육군 최고지휘관.
■ 장전(長箭) long arrow / standard arrow 긴 화살. 주력 화살 종류.
■ 편전(片箭) short dart-arrow / light projectile 짧은 화살 또는 소형 투사체.
■ 총통(銃筒) cannon / firearm tube 화약식 화포 또는 총통류 무기.
■ 소실(消失) destruction / disappearance 불타거나 사라짐.
■ 조양창(朝陽倉) Joyang granary / state grain warehouse조세 곡식을 보관하던 국가 세곡창.
■ 청야책(淸野策) scorched-earth strategy 적에게 물자·식량을 남기지 않기 위해 자원·시설을 불태우는 전략.
■ 고내리(庫內理) Gonae-ri (granary village) 창고(庫)가 위치한 마을 이름.
■ 다전 마을(茶田村) Dajeon village (tea-field village) 차밭이 있던 고을. 지역 지명.
■ 경상우후 이몽구(慶尙右候 李夢龜) Vice-commander of Gyeongsang, Yi Mong-gu 경상우도 지휘관급 무관.
■ 열선루(閱善樓) Yeolseon Pavilion / command pavilion 관아·군영의 상징적 누각, 지휘·집무 공간.
【현대적 의미|제7회-5】
이 장면은 현대 사회·조직·국가 시스템의 위기 상황과 겹쳐 읽힌다.
① “자원이 없는 상태에서 출발하는 리더십”
• 조직이 무너졌을 때
• 시스템이 사라졌을 때
• 책임자만 남았을 때
많은 리더는
• 실패의 책임을 회피하거나
• 권한이 없음을 이유로 멈추지만
이순신은 “없는 상황 속에서 있는 것을 찾아내고 가능한 범위에서 전력을 복구한다” 즉, 재건형 리더십을 보여준다.
② “현장 기반 의사결정”
책상이 아니라
• 도로 위의 피난민
• 불탄 고을
• 버려진 무기고
• 곡식 창고을 직접 확인하며 판단한다.
이는 데이터보다 현장을 우선하는 위기 리더의 모습이다.
③ “책임의 범위를 회피하지 않는 지휘관”
이순신은
• 병력도 없고
• 권력적 보호도 없고
• 건강도 무너졌지만
그럼에도 “도망간 지휘관을 문책하고 돌아온 병력을 재편성하고 군량을 수습하고 네트워크를 복구”한다.
현대적으로 보면
• 조직 붕괴 이후 복구 리더십
• 거버넌스 재구축 과정
• 현장–인적 네트워크 재가동의 전형이다.
④ “승리의 조건은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는다”
이 장면은 말한다.
“승리는 화려한 전력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폐허에서 다시 일어나는 의지에서 출발한다.“
작가 소개
현종호 (소설가)
• 평택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외국어대학 영어학과 조기졸업
• 명진외국어학원 개원(원장 겸 TOEIC·TOEFL 강사)
• 영어학습서 《한민족 TOEFL》(1994), 《TOEIC Revolution》(1999) 발표
• 1996년 장편소설 『P』 발표
• 1998년 장편소설 『가련한 여인의 초상』, 『천국엔 눈물이 없다』 발표
• 전 국제대학교 관광통역학과 겸임교수 역임
• 현재 평택 거주, 한국문인협회 소설가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