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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누리 중앙대 교수, “전환의 힘은 시민에게 있다”(사진=깨어있는시민과의동행) |
[평택=주간시민광장] 조종건 기자
“지금 세계에는 분명 전쟁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한 위기는 전쟁 그 자체가 아니라, 전쟁을 관리해오던 전후 국제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김누리 중앙대학교 교수는 평택대학교에서 열린 「깨어있는시민과의동행」 창립기념 특강에서 오늘의 국제정세를 이렇게 규정했다.
“1945년 이후 약 80년 동안 세계를 떠받쳐 온 전후 체제가 붕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붕괴의 최전선에 한반도가 놓여 있습니다.”
■ “우리가 느끼는 불안은 사건이 아니라 체제의 붕괴다”
김 교수는 시민들이 체감하는 국제정치적 불안이 개별 전쟁이나 외교 갈등 때문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 근거로 다음과 같은 구조 변화를 제시했다.
• 1991년 미·소 냉전 종식
• 냉전 이후 패권 질서의 해체
• 미·중 전략 경쟁의 상시화
• 강대국 간 세력 균형의 재편
“지금은 사건의 위기가 아니라 구조의 위기입니다. 1945년 체제가 무너지는 과정 그 자체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 한국 사회는 아직도 ‘공산 전체주의’와 싸우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 정치 담론이 여전히 냉전기의 언어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을 열거했다.
• 공산 전체주의
• 반국가 세력
• 간첩 프레임
“이 개념들은 이미 역사적으로 사라진 대상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만 아직 존재하지 않는 유령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는 이를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등장하는 “신은 죽었지만 사람들은 아직 그것을 모른다”는 구절에 비유했다.
“공산 전체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사라졌는데, 한국 사회만 그것이 살아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 중국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중국 특색 자본주의”
김 교수는 중국을 직접 방문하며 경험한 사례를 들었다. 그는 중앙대학교·베이징대학교·도쿄대학이 독일 정부 지원으로 공동 컨퍼런스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중국 학계와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체제 명칭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 (Socialism with Chinese characteristics)”
김 교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특색 사회주의’라는 말 자체가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고백입니다.”
그는 이를 한국의 과거 “한국적 민주주의”와 비교했다.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한국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김 교수는 2024년 9월 베이징대학교 국제학술대회에서 중국 관료들이 반복적으로 같은 표현을 사용한 사실도 소개했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이렇게 발언했다고 전했다.
“이건 사회주의가 아니라 ‘중국 특색 자본주의(Kapitalismus chinesischer Prägung)’입니다.”
베이징대 교수들조차 웃으며 동의했다고 한다. 그가 제시한 중국의 현실 지표는 다음과 같다.
• 극단적 빈부격차
• 자본 축적의 급속화
• 사치 소비의 극대화
• 자본주의 역사상 최악 수준의 불평등 구조
■ 러시아: 국가 자산을 KGB가 나눠 가진 ‘마피아 자본주의’
김 교수는 러시아 역시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그는 1989년 독일 체류 시절 푸틴이 동독에서 KGB 요원으로 근무했던 사실을 언급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 소련 국가 자산: “인민 소유(Volkseigentum)”, “국가 소유(Staatseigentum)”
• 실질적 주인 부재
• 정보와 권력을 독점한 KGB 출신 집단이 자산을 사유화
• 신흥 재벌 ‘올리가르히’ 등장
“그래서 서구 학계는 러시아를 ‘마피아 자본주의’라고 부릅니다.”
■ 북한의 전략 목표: 미국과의 수교
김 교수는 북한의 전략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김정은의 목표는 핵이 아니라 수교입니다. 미국과의 수교를 통해 중국·베트남 모델로 가는 것입니다.”
그 근거로 다음 사례를 제시했다.
• 중국: 한국전쟁 참전 → 이후 미국과 수교 → 고도성장
• 베트남: 미군과 전쟁 → 수교 이후 고속 성장
“중국과 베트남은 경제성장을 하면서도 정치 권력은 유지했습니다. 김정은은 그 모델을 원합니다.”
■ 미국 전략의 전환: ‘조기 붕괴론’과 ‘위성국가론’의 실패
김 교수는 미국 외교 전략의 변화 근거로 다음을 제시했다.
키신저 독트린의 두 가지 오류
• 북한 조기 붕괴론
• 북한은 중국의 위성국가라는 가정
“둘 다 틀렸습니다.”
■ 핵심 자료 ①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김동기, 2024)
• 미국 국무부·의회 보고서 분석
• 기존 대북 전략의 전면 오류 지적
• 북한의 전략적 가치 재평가
김 교수는 저자를 “월스트리트 출신 변호사이자 최고의 미국 전략 분석가”라고 소개했다.
■ 핵심 자료 ②
Foreign Affairs (2021년 7월)
Vincent Brooks (전 주한미군사령관)논문: The Grand Bargain with North Korea
주요 주장:
• “비핵화 요구는 하수 전략”
• 핵의 ‘보유’보다 ‘방향’이 중요
• 워싱턴 → 베이징으로 핵 억지 방향 전환
• 미·북 대타협 필요
■ 핵심 자료 ③
미 의회 보고서 (2021년)
China–North Korea Strategic Rift
• 북·중 관계 80년 분석
• 상호 불신 구조
• 북한의 최대 위협 인식 대상 = 중국
김 교수는 김정은의 발언도 인용했다.
“미국과 일본은 100년 숙적, 중국은 5천년 숙적”
■ 핵심 자료 ④
뉴욕타임스 (2024.12.29)
칼럼 제목:
Trump–Kim Part II Could Shake the World
주요 내용:
• 미·북 수교 = 미국의 “greatest benefit”
• 한반도 군사비 대폭 절감
• 중국 견제 전략 집중 가능
■ “지금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역사상 최고 수준”
김 교수는 이렇게 정리했다.
• 트럼프
• 시진핑
• 푸틴
“이 세 명이 모두 김정은을 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는 트럼프의 지속적 구애와 김정은의 냉담한 태도 역시 이러한 전략 변화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 “한반도는 지금 체제 붕괴의 교차로에 있다”
김 교수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한반도는 생태 위기 이전에 핵 위기를 먼저 맞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구 전체보다 먼저 붕괴가 가시화되는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의 불안은 북한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여전히 1945년의 세계관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 본 기사는 2025년 12월 30일 김누리 교수의 강연 녹취를 바탕으로, 강연 중 언급된 주요 국제 학술·언론 자료(Foreign Affairs, 미 의회 보고서, 뉴욕타임스 등)를 추가 반영하여 사실관계와 분석을 보강한 개정판입니다.
■ 기자의 시선
김누리 교수의 국제정치 진단은 이념 비판도, 정권 비판도 아니다.
그는 반복해서 말했다.
• 체제가 바뀌었다
• 전략이 바뀌었다
• 세계가 바뀌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언어와 인식만 바뀌지 않았다.
연재 ⑤는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여전히 냉전의 유령과 싸우고 있는가,
아니면 붕괴 이후의 세계를 준비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외교관이나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에게 먼저 던져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