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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호 연재소설 (제7회)-6】 노량에 피는 꽃

소설가 현종호

(제7회)-6

  삼나무로 만들어 충격에 취약한 왜선들보다 소나무로 판을 짜고 쇠못을 쓰는 대신에 나무못으로 물 샐 틈 없이 널빤지를 연결해 선체가 훨씬 더 튼튼한 단 한 척의 판옥선이라도 어떻게든 찾아내려고 동분서주하건만 배설은 그러나 조선 수군의 배를 돌려주긴커녕 뱃멀미를 핑계로 나오지 않거나 약속을 매번 어기며 거짓말로써 그를 조롱할 뿐이었다. 그는 통탄을 금할 수 없었다. 임금이 백의종군 이전의 계급보다도 더 낮은 정3품 절충장군으로 강등시켜서 자신을 통제사로 임명한 까닭에 같은 계급의 수사인 배설을 엄벌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극상(下剋上)이 이제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었다. 이를 지켜보던 명나라 관리가 조정에 여러 번 따져대고 나자 임금이 결국 그의 계급을 올려주긴 하지만 이순신은 역시 영감으로 수사들과 품계가 여전히 같았다. 이젠 부하들의 하극상까지 신경 써야만 하는 통제사 이순신은 갈수록 속만 타들어 갔다.

  남해의 제해권을 온전히 장악한 왜는 승승장구의 기세로 들이닥친다. 전라도를 점령한 후 충청도를 거쳐 조선의 임금에게로 가는 것이 적들의 1차 목표였고, 수륙 협공으로 왜는 한양을 향하는 길목 남원까지 진격하여 마침내 남원성을 겹겹이 포위하기에 이른다.
  고작 4천여 명의 조명연합군만으론 정예화된 5만6천의 왜군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사력을 다해 죽기 살기로 저항했으나 성능을 극대화한 적의 조총 앞에서 조선의 활은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이순신이 흩어진 군사와 군량을 모으고 배설이 숨겨둔 판옥선 12척을 찾아 헤매는 동안 남원성은 닷새를 못 넘기고 8월 15일에 끝내 함락되고 만다.
  성이 무너질 때, 황진 장군의 6촌 동생 양건당(兩蹇堂) 황대중(黃大中)은 장렬히 최후를 맞는다. 함께하자고 합류를 권하는 이순신에게, 본인은 남원성(南原城)을 끝까지 사수하겠다며 정중히 거절했던 이순신의 은인 구례 현감 이원춘 역시 화약고에 불을 붙여 장렬히 죽어간다. 향년 38세였다.
  성에서 잽싸게 도망한 명나라 총병 양원과 휘하의 50여 명을 제하고 성안 사람들을 모두 적들이 죽여서, 적에게 생포된 자가 하나 없었다. 훗날, 남원으로 돌아온 백성들이 성안에서 죽어간 백성들과 조명연합군의 시신을 모아 합장하는데, 이것이 ‘만인의 총’이다.
  남원성이 무너지고 난 다음 날, 이순신과 그의 군사들은 장흥의 회령포로 가서 배설이 숨겨두었던 배 12척을 찾아낸다. 판옥선들은 노 몇 개가 부러졌을 뿐이지 상태는 그을린 데 하나 없이 그래도 온전한 편이었다. 배를 이제 겨우 얻게 되었으나 이순신의 군대는 그래도 여전히 참담한 수준이었다.
  “열두 척의 배로 대체 무슨 작전을 펼친단 말인가!”
  이젠 배에 태울 군사와 노를 저을 격군이 필요하건만 군사들이 여전히 부족하니 그 꼴이 놀랄 만했다.

  흩어졌던 군사를 모으고 군량미를 확보하며 수군 재건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무렵, 만신창이가 된 그의 몸을 축 늘어지게 하는 일이 다시 벌어지는데, 선전관 박천봉이 ‘열선루’에 머무는 그를 갑자기 찾아온 것이었다.
  선전관 박천봉이 교서를 전하는데, 통제사 이순신은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에 떠오른 달이 온 세상을 훤히 비추던 추석날, 그날은 어머니가 무척 그립고, 아내가 보고프고, 가족이 무진장 걱정됐었다. 수군을 폐하고 도원수의 육군에 합류하라는 ‘명공육전(明公陸戰)’의 교서가 조정으로부터 내려온 것이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임금의 명령이었다. 적의 북진을 어떻게든 막아내며 사력을 다해 지켜온 바다를 적에게 다시 통째로 내주라는 임금의 교지였다. 기가 막혀서 무어라 더 할 말이 없는 왕명서였다. 그렇다고 추상같은 임금의 명령을 다시금 거역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기진맥진해져 축 늘어지는 몸을 가까스로 추슬러가며 이순신은 인적이 끊어진 연안을 홀로 한참 떠돈다.

  큼지막한 해는 서편으로 가만히 기울고, 허기진 그의 몸에 잊힐만하면 슬며시 감겨오는 갯바람이 못 견디게 짭짤했다. 혼자서 해변을 타박거리는 동안 떠올리고 싶지 않은 잔상들이 눈앞을 자꾸자꾸 막아섰다. 마을 정자나무에 걸려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던 머리들의 감기지 못한 눈들, 종일 서글피 흐르는 강물 위로 기꺼이 몸을 던지는 여인, 뻘밭에 처박혀 원망 어린 그 죽은 눈으로 총사령관 자신을 줄곧 쳐다보며 저주하던 얼굴들, 혀를 빼물고 죽은 얼굴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잔상들, 아~ 끔찍한 기억들.
  호국영령들의 서글픈 넋이 스며든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바다가 숨을 쉬고 있었다. 바닷가마을의 처자들은 갯벌에서 어쩌다 한 번씩 일어나 허리를 펴는가 싶으면 낙지를 잡아 올리고 부지런히 바지락을 캐면서 그가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을 줄곧 노래하였다. 갯가에서 맴을 도는 소리에 이순신은 귀를 기울였다. 뻘밭을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 같기도 했고, 묵은 어떤 한을 풀어내려는 한숨 소리 같게도 들려왔다.
  섬 처자들 곁 뻘밭에선 마지막 노을빛에 젖은 황새 한 쌍이 세상만사 잊은 채 한가롭게 노닐고, 들릴 듯 말 듯 들려오는 그녀들의 신세를 한탄하는 것과도 같은 애절한 노랫가락이 그의 귓가를 자꾸 못 견디게 간지럽혔다.
  긴 칼 허리에 차고 감당할 수 없는 넓이로 펼쳐진 바다 앞에 선 조선의 장군 이순신. 누구를 위해 대체 칼을 휘두르고 누구를 위한 전쟁을 여태 수행하느냐며 불쌍한 백성들이 무의미한 전쟁을 치르는 자신을 질타하는 소리가 그에게 거듭 환청으로 또렷이 들려왔다. 한바탕 불어오는 바람이 소리를 다시 말아 올렸다. 그의 칼은 천근만근의 무게로 다시 늘어졌다.
  백성들의 평화로운 삶 앞에서 그는 한없이 작아지고 또 작아졌다. 힘없는 백성들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력(無力)이 그는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평범한 그녀들의 일상 앞에서 조선의 무인 이순신은 극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깊이 근심하는 중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고 있나니



  다음 날,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피폐해진 몸을 추슬러 붓끝에 힘을 주어 교서의 답신을 겨우 끝맺는다.

  “……지금 수군을 폐하시면 적들은 한강을 통해 바로 전하께 달려갈 것이 분명합니다. 수군이 적어 비록 외롭긴 하나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미천한 신의 몸이 죽지 않고 아직 살아 있는 한 적들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전하…….”


  정유년 8월 19일, 맑음.
  내가 회령포에서 수군통제사에 취임하는 날, 장수들 모두 임명장 교서에 숙배했는데, 배설만은 교서에 절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같은 계급의 그를 엄벌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오만한 행실을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기에 그의 영리(營吏, 비서관)를 잡아다가 곤장을 쳤다. 회령포 만호 민정붕이 전선에서 받은 물품을 피난민 위덕의 등에게 사사로이 건넨 죄로 곤장 20대를 쳤다.

  정유년 8월 20일, 맑음.
  창사로 진을 옮겼는데, 몸이 몹시 불편하여 음식도 먹지 못하고 종일 앓았다.

  정유년 8월 21일, 맑음.
  새벽 두 시쯤에 곽란이 또 일어났다. 소주를 마셔서 치료하려 했다가 그만 인사불성이 돼서 다시 깨어나지도 못할뻔하였다. 토하기를 십여 차례나 하고 밤새도록 괴로워했다.

  정유년 8월 22일, 맑음.
  곽란으로 인사불성이 되었다. 용변도 보지 못했다.


  이순신은 방안에서 나흘 동안을 곽란으로 사경을 헤매며 끙끙 앓는다. 시간이 지나 몸이 겨우 회복되기는 했으나 속이 불편하고 기진맥진해져 있긴 마찬가지였다.

  정유년 8월 25일, 맑음.
  어란 앞바다 한가운데서 선잠을 잤다. 아침밥을 먹는데, 당포의 포작(匏作)이 소를 훔쳐가면서, 왜적이 쳐들어온다는 거짓 정보를 흘렸다. 나는 그것이 거짓말임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허위정보를 발설한 포작 둘을 잡아다가 목 베어 효시하고 나니, 비로소 크게 안정되었다.

  정유년 8월 28일, 맑음.
  한동안 잠잠하던 적들이 적선 8척을 이끌고 뜻밖에도 우리 진영 안으로 넘어 들어오자 우리 군사들은 겁을 먹고 허둥대기만 하고, 우수사 배설 또한 급히 도망하려는 눈치였다. 적선들이 가까이 왔으나 나는 망설이지 않고 호각을 거듭 불어대고 초요기를 들어 올려서 적을 쫓게 하였다. 결국엔 적들이 물러갔다. 해남의 갈두(葛頭)까지 뒤쫓아갔다가 돌아왔다. 저녁에 장도(獐島)로 옮겨가 정박했다.

  꽁무니 빠지게 도망했던 적선 13척이 밤에 다시 공격해왔으나 한 치의 물러섬도 있어선 안 된다며 역공을 가해 이순신은 적들을 다시 멀리 내쫓는다. 그 후 며칠 동안 적의 기습은 없었다. 적은 때때로 척후를 보내 수시로 집적대다 돌아갈 뿐, 적의 공격은 이제 아예 없었다. 물살은 비단결처럼 곱고, 바다는 꾸준히 고요했다. 폭풍전야의 고요와도 같은 대규모 공격의 조짐이었다.

【편집부 해설|제7회-6】

이 회차는 세 가지 축이 동시에 진행된다.
① 남원성 함락 — 조명연합전선의 붕괴
② 회령포에서의 ‘12척 확보’ — 수군 재건의 현실적 한계
③ 명공육전(陸戰 전환) 왕명 — 해상전략 해체 위기

이순신의 고뇌와 절망, 그리고 결단은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라
● 국가지휘체계 붕괴
● 군사조직 균열
● 정치 권력에 의한 작전 왜곡 속에서 이루어지는 고립된 지휘관의 의사결정 드라마입니다.

특히
• 배설의 비협조
• 동일 계급 체계로 인한 징계 불가
• 명나라 장수의 압박
• 왕권의 지속된 불신이 결합되며
“군사적 위기 + 조직적 위기 + 정치적 위기”가 동시에 폭발합니다.

이순신의 대응은
• 분노가 아니라 질서 유지
• 보복이 아니라 지휘권 회복
• 감정이 아니라 전투의 지속 가능성을 우선합니다.

이는 지휘관의 정의감이 아닌전쟁 수행 능력을 우선하는 태도라는 점에서 매우 현대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본문 용어 해설|제7회-6】

■ 정3품 절충장군(正三品 折衝將軍) Jeong 3rd-rank Jeolchung General 통제사 임명 시 낮춰 부여된 품계. 수사와 같은 급이라 지휘권 행사에 제약이 따름.
■ 수사(水使) Naval commander / Provincial naval chief 각 도의 수군을 관할하는 최고 지휘관.
■ 양건당 황대중(兩蹇堂 黃大中) Hwang Dae-jung pen-name Yanggeondang 남원성에서 끝까지 항전하다 전사한 장수.
■ 명나라 총병 양원(明 總兵 楊元) Ming dynasty General Yang Yuan 남원성 전투 당시 조명연합군 지휘관. 성 함락 직전 탈출.
■ 명공육전의 교서(明公陸戰 敎書) Royal edict ordering transition to land warfare 수군을 해체하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왕명.
■ 추상같은 임금의 명령(秋霜같은 命令) Severe / absolute royal command 거역이 사실상 불가능한 국왕의 지엄한 명령.
■ 갯바람(—) Sea breeze 해변에서 불어오는 짠기 어린 바람. 전쟁과 민중의 삶을 대비시키는 상징적 이미지.
■ 호국영령들(護國英靈) Souls of those who died defending the nation 전장에서 산화한 장졸·백성의 영혼을 상징.
■ 수루(樓 / 戍樓) Watch-tower pavilion 성 위 망루 겸 정자. 시적 사색과 전쟁의 긴장이 교차하는 장소.
■ 일성호가(一聲胡歌) A solitary call / lamenting song 멀리서 들려오는 호곡(울음 섞인 노래)을 상징적 표현으로 묘사.
■ 숙배(肅拜) Formal prostration in reverence 교서나 임명장 앞에 삼가 절하는 의례.
■ 위덕의 등(—) Wideŏk’s back / shoulders 피난민 위덕에게 전선 물품을 사적으로 건넨 사건 기록.
■ 창사(倉舍) Storage quarter / depot area 진영의 군량·물자 집결지.
■ 어란(魚卵 / 魚蘭 — 지명) Eoran (coastal anchorage) 통제영 이동 과정에서 정박한 전라 해역 지명.
■ 당포의 포작(匏作) Harbor laborer / dock worker 포구에서 일하는 하급 인물. 허위정보 유포자.
■ 효시(梟示) Public execution and body display 경계·경고를 위해 참수 후 시신을 공개하는 제도.
■ 초요기(招搖旗) Command flag / signal flag 지휘관의 명령·전투지시를 알리는 군깃발.
■ 해남의 갈두(葛頭) Galdu, Haenam 적을 추격해갔던 남해 연안 지점.
■ 장도(獐島) Jangdo Island 야간 정박 및 작전대기 기점이 된 섬.

〈한산도가〉 구절 해석·분석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깊이 근심하는 중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고 있나니

閑山島 月明夜(한산도 월명야)
樓 獨坐中(수루 독좌중)
深愁 未能寐(심수 미능매)
一聲胡笳遠(일성 호가 원)
斷人腸(단인장)

■ 의미 해석
이 시(詞)는 단순한 서정시가 아니라, 전쟁·국가·백성·지휘관 책임이 겹쳐 있는 응축된 정서 표현이다.

달 밝은 밤 — 달빛이 환히 비치는 밤
→ 전쟁터의 밤이지만 풍경은 평화롭게 보이는 역설. 전쟁의 고요와 고독의 대비
수루에 홀로 앉아—수군 지휘·관망을 위한 누각(전술 관측 장소)
→ 지휘관의 고립된 책임 “함대와 백성들의 운명이 내 어깨 위에 있다.”
깊이 근심
→ 국가·백성·부하의 삶에 대한 윤리적 자각 개인 감정이 아니라 ‘국가적 근심’ 전쟁의 지속, 장병의 죽음, 백성의 피난과 굶주림
일성호가
→ 멀리서 들려오는 울음·통곡의 노래 
외로운 한 줄기의 소리, 단 한 번 울려 퍼지는 소리, 변방의 피리 / 유배·전쟁·이산의 비애를 상징, 멀리서 울려옴, 전쟁터에 울려 퍼지는 타인의 비통한 소리. 전통적 의미에서 胡笳는 떠난 사람,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한 남편, 이별과 고난을 겪는 이들의 슬픔을 상징하는 비애의 음악이다. 여기서는 전쟁에 끌려간 장병의 가족, 유랑하는 백성, 고향 잃은 백성들의 울음까지 포괄한다.
남의 애를 끊고 있나니
→ 타인의 슬픔이 ‘나의 고통’이 됨 이순신은 자기 연민이 아니라 ‘백성의 고통을 대신 느끼는 감각’을 표현한다.

이 시는 “승리의 자부심”이 아니라 “전쟁의 고통을 짊어진 자의 슬픔”을 노래한다.
이순신에게
• 적은 단지 전쟁 상대가 아니라
•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백성이었다.

그래서 그는
● 명예를 위한 전쟁을 거부하고
● “백성의 고통을 막기 위한 전쟁”으로 재정의한다.

이 지점에서 전쟁 지휘관이 윤리적 주체로 서게 된다. 이 회차는 이순신이 ‘무장(武將)’에서 ‘시대의 양심’으로 승화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 이순신 당시 상황

이 시는 한산도 승전의 영광의 순간이 아니라
• 군사들 죽음
• 백성의 유랑과 고난
•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 사령관의 죄책이 겹쳐 있는 비극적 자각의 순간이다.

▶ 전쟁 승리 후에도 즐겁지 못한 이유
• 승리 = 전술적 성과
• 그러나 백성의 고통은 계속됨
• 장수로서 책임감은 더 무거워짐
“내가 승리해도, 누군가의 가정은 무너지고 있다.” 이 감각이 바로 斷人腸(단인장).

■ 핵심 정리 — 시의 정조
이 시는 승전의 환희가 아니라 “국가·백성·전쟁·책임”을 자각하는 윤리적·비극적 성찰이다.

• 달빛 — 평화처럼 보이는 겉풍경
• 수루 — 권력/지휘/책임의 자리
• 깊은 근심 — 국가적 통증
• 호가의 소리 — 백성의 고통
• 단인장 — 장수의 죄책과 공감

전쟁을 이끄는 자가 전쟁의 의미를 가장 깊이 고통스럽게 인식하는 순간

【현대적 의미|제7회-6】

1) “12척”은 물리적 전력이 아니라 전략적 존속선(存續線)
이순신의 유명한 답신은 단순한 명문장이 아니라
● 해상전략 해체를 거부하는 정책적 선언
● 국가 생존선(海上 차단선) 유지 의지였다.

만약 수군이 해체되었다면
• 한강 방어선 붕괴
• 후방 수송로 개방
• 수도 직격로 확보
전면 항복 국면으로 전환된다.
따라서 “12척은 최소 방어선이자 최대 전략선”이다.

2) 정치권력 vs 전문지휘관의 충돌

왕명은
• 육군 중심 사고
• 감정적 통치
• 체면·명분 중심 의사결정의 산물이다.

반면 이순신은
• 현실 기반 위기 판단
• 작전 지속성 중심 사고
• 민간 피해 최소화
전쟁을 ‘현실’로 본 지휘관이었다.

3) 백성 앞에서 느끼는 ‘부끄러움’

이 장면은 매우 중요하다.
“전쟁의 명분보다 백성의 삶이 더 크다”

이순신은
• 전쟁 영웅이라서 고뇌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백성에게 남기는 상흔 때문에 고뇌한다.
이는
‘무용(武勇) 영웅’이 아니라
‘윤리적 지휘관’으로서의 초상을 보여준다.

4) 명량으로 이어지는 내적 전환

이 회차는 “군사적 결단 이전의 정신적 결단”을 보여주는 전환점이다.
• 육전 전환 명령 거부
• 해전 존속 의지 선언
• 민중의 고통을 전쟁 목표로 재규정
→ 이후 명량 해전의 정치·윤리·전략적 기초가 된다.

작가 소개
현종호 (소설가)

• 평택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외국어대학 영어학과 조기졸업
• 명진외국어학원 개원(원장 겸 TOEIC·TOEFL 강사)
• 영어학습서 《한민족 TOEFL》(1994), 《TOEIC Revolution》(1999) 발표
• 1996년 장편소설 『P』 발표
• 1998년 장편소설 『가련한 여인의 초상』, 『천국엔 눈물이 없다』 발표
• 전 국제대학교 관광통역학과 겸임교수 역임
• 현재 평택 거주, 한국문인협회 소설가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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