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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박사, 글로 남긴 지구촌 이야기(14회)】: 미국 탐방기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현실을 되짚는 말솜씨

- 조하식(칼럼니스트•문인, Ph.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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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색 간판이 공통적으로 국립공원을 가리킨 지는 얼마나 될까? 물론 유적지나 명승지를 표시할 때도 함께 쓰이긴 하지만 그렇게 통일을 기해 놓으니 알아보기 수월했다. 조금 뒤면 그 이름도 찬란한 NASA(National Air Space Association)를 지난다는 예고표지. 해설자에 따르면 다른 나라를 믿지 못하는 데는 미국을 따라갈 데가 없단다. 대사관을 지을 때면 필히 자국 기술자를 데려다 공사를 마친다는 건 일종의 상식인데 흔히들 알고 있는 CIA(미국중앙정보국, Central Intelligence Agency)와는 별도로 NSA(National Security Agency)라고 부르는 국가정보원(미국국가안전보장국)을 따로 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권력 3부를 칭할 때 순서도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순. 오래간만에 줄줄이 이어진 교회당은 반가웠다. 현재 지상에 건재한 기독교 국가라야 고작 한국과 미국뿐이거늘 땅덩어리가 원체 넓어서인지 생각보다는 십자가가 성글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흩어진 30만여 개 가운데 하나가 바로 St. Phillips Baptist Church(빌립침례교회). 문제는 그 앞에 나붙은 말이었다. 예수님께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조르던 빌립인데 뭐가 그리 거룩했길래 한갓 사람을 높이는지 모르겠다. 모름지기 ‘성(聖)’이라는 글자는 누구에게든 함부로 쓸 수 없는 수사라고 단언한다. 더구나 이 경우는 침례교와 천주교의 기묘한 결합처럼 기이한 육감으로 다가왔다.

  도통 갯벌이랄 게 없고, 자잘한 섬이 드문 대륙. 그중 시방 지나는 알파인 동네는 경찰서, 우체국, 초등학교만 있고 이상하게 번지수조차 없는 부자들의 아성이란다. 이를테면 그네들만의 성채(城砦)인 셈인데 남과 색다르게 살라고 허용하는 마을을 보면서 우리처럼 부(富)를 부끄럽게 여기거나 대놓고 시기하지 않는 풍토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반면에 하층민을 위한 정책도 있었는데 일부 주유소에 셀프서비스를 없앤 조치가 그것으로 서민들의 고용증대를 겨냥한 조치였다. 청소년을 포함한 무절제한 음주문화의 확산을 틀어막은 법규 또한 벤치마킹할 대상. 예컨대 슈퍼마켓에서 파는 주류는 21도 이하만 취급하며, ID카드를 확인한 후라야 손에 쥘 수 있단다. 하긴 교묘한 이단이든 말든 몰몬교(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 일명 예수그리스도 후기 또는 말일성도교회) 신도가 모여 사는 유타(Utah, 주도는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솔트 레이크 시티) 주의 경우 아예 주류 소지 자체를 금하고 있다니 알만한 일. 그렇다면 한국이야말로 방종을 넘어 무질서로 치닫는 참이 아닌가? 가다 보니 바지런히 중앙분리대를 오가며 신문을 파는 사람도 있었다. 안쓰럽게도 'Sale'이라는 팻말을 들고 온갖 대기오염에 노출된 채 팔아주기를 애원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도심 한가운데 접어든 리무진. 번듯한 현대식 건물이 즐비했다. 매끄러운 보도블록 또한 수준급. 그렇지만 여기저기 쓰레기가 널브러진 광경은 여전했다. 점심은 목을 빼고 기다리던 한식. 모두들 얼굴이 밝아졌다. 교포가 운영하는 궁전식당에서 괜찮은 뷔페를 실컷 들었다.

  흔히들 부르는 워싱턴DC는 약칭이고 정식 명칭은 ‘워싱턴 컬럼비아 특별구(WASHINGTON, DISTRICT OF COLUMBIA)’였다. 포토맥강 연안의 메릴랜드주와 버지니아주 사이에 있는 연방 직할지로써 지하철과 외곽지역을 오가며 통근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프랑스 공병 장교 피에르 샤를 랑팡의 설계로 건설된 계획도시.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중심으로 도시 전체가 하나의 정원과도 같은 구조라지만 실제로 둘러보니 그만치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가장 돋보이는 점은 방사형으로 뻗은 도로에 각주의 이름을 붙여놓은 것. 연방제 특성을 십분 활용한 듯 거리마다 주명을 쓴 발상은 탁월했다. 수도를 맨해튼에서 이곳으로 옮긴 까닭은 이러하다. 첫째는 한쪽으로 치우쳐 전국 방방곡곡에서 접근하는 거리가 불공평했고, 둘째는 대서양 해변에 위치해 적에게 노출되기 쉬웠다는 점. 하지만 정작 대여섯 군데 후보지 가운데 선택받은 곳은 워싱턴 장군의 집에서 제일 가까운 데였다니 사람 속은 알다가도 모를 일. 물론 일부 호사가들이 퍼뜨렸다 하더라도 남부 농장주의 서자로 태어나 돈 많은 미망인과 결혼하고, 독립군으로서 맹활약하다가 초대 대통령에 올랐으니 그만하면 성공한 인생이로되 진정 그가 붙잡은 분은 하나님이었다. 제아무리 후세인들이 기념관을 짓고 떠받들지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무슨 가치가 있으랴. 1790년 국회의 동의를 얻어 수도로 지정했고, 1878년 조지타운을 워싱턴의 일부로 삼은 이후 어느 주에도 속하지 않도록 정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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