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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박사, 글로 남긴 지구촌 이야기(15회)】: 미국 탐방기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수도 워싱턴의 진면목

- 조하식(칼럼니스트•문인, Ph.D.) -

----------(15회)----------


  맨 처음 들른 장소는 화이트하우스. 9.11테러 사건 이후 보안경비가 크게 강화돼 울타리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구경해야 했다. 그것도 지근거리가 아닌 뒤뜰에서만. 백악관의 소재지는 펜실베이니아가(街). 워싱턴에서 가장 오래된 본관 건물을 포함해 주위 부지가 모두 72,000평방m(약 25,000평, 참고로 청와대는 72,000평)로 그리 넓지 않은 데다 한눈에 허술한 느낌. 군데군데 잔디가 죽어있고 잡풀마저 뒤섞여 있었다. 내심 선호하는 명소여서 몹시 붐빌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한산해 인파에 부대낄 일은 없었다. 유모차를 끌고 그늘을 오가는 엄마의 낯빛에 여유가 넘칠 만치. 덩그러니 피어있는 몇 송이의 장미가 우리 부부를 반겼다. 그 앞을 배경으로 추억을 담았다. 역시 장미란 담장을 타고 넝쿨째 올라가야 제격. 두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니 옥상마다 레이더가 돌아간다. 그 사이로 간간이 업무를 보는 인부들의 움직임. 무장한 경호원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1800년 제2대 애덤스 대통령 시절 완공해 1814년 독립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재건 후 외벽을 하얗게 칠한 데서 ‘White House’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제26대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 때 정식 명칭이 되었단다. 대통령은 타원형 집무실(Oval Room)에서 방문객을 접견하며, 가족과 함께 관저 2층을 사용하는데 130개가 넘는 방들 가운데 이전까지는 일반인에게 댄스파티와 리셉션 등을 여는 동관(East Wing)을 개방했지만 아쉽게도 얼마 전부터 그마저 둘러볼 수 없게 됐다는 설명.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소환하자니 백악관 앞에서 연일 스페인 정부의 환경정책에 대항한 할머니 한 분이 1인 시위를 벌였다. 말하자면 지구촌 오염을 경고하는 퍼포먼스(performance). 전직 여기자(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 출신의 지성인이라니 한껏 믿음이 갔다.

  차창으로 구경하는 워싱턴기념탑.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본떠 만든 것으로 백악관 인근에 168m 높이로 지은 석조탑이었다. 1884년에 공사를 마쳤는데 꼭대기 전망대를 끼고 주위에 미국 50개 주를 상징하는 국기들로 빙 둘러싸여 있었다. 무엇보다 워싱턴에는 고층빌딩이 없어 좋았다. 게다가 습도가 그리 높지 않아 고온에 비해 체감온도는 낮은 편. 미상공회의소(Chamber of Commerce of USA) 건물을 지나 ‘Special Service Institute’라는 간판이 보여 가이드에게 물으니 경호실이란다. 성조기에 올라있는 50개의 별에 예약한 식민지가 푸에르토리코, 바하마, 괌까지 세 곳. 국가의 힘이 세다 보니 서로들 앞다퉈 하나의 주정부로 편입해 달라고 매년 아우성인 모양이다. 지금이야 세계를 향해 불호령을 내리지만 천하의 미합중국 위세도 언젠가는 추락할 터. 성경에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린도전서 10:12)’고 일렀거니와 과거 로마제국처럼 만사는 흥할 때가 있으면 쇠할 때가 있을 테니까 말이다. 상주인구는 75만 정도로되 인근 볼티모어시를 포함해 대략 670만 명의 통합도시권을 형성하고 있단다. 특이하게도 구성원의 70% 이상은 흑인들. 현대 여느 도시처럼 정치, 경제, 사회의 제반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을뿐더러 각계각층이 모여든 만큼 학력과 소득 면에서 큰 격차를 보인단다. 다행히 아직 노숙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서편에 있는 제퍼슨 대통령 기념관으로 가는 길. 내리쬐는 햇볕이 제법 따가웠다. 이런저런 사진이 두루 걸려 있을 뿐 전반적으로는 허접한 느낌. 건물의 모양은 로마의 판테온과 유사한 형태로 지붕은 돔형이고, 기둥은 이오니아 양식이었다. 제퍼슨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1943년에 지은 건물. 내부에 회의를 주관하는 제퍼슨 기념상이 있는데 가이드의 말을 빌리면 링컨은 건강이 좋지 않아 앉아있고 제퍼슨은 몸이 좋아 꿋꿋이 서서 있단다.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점으로 보면 문필의 힘이 그를 대통령으로 끌어올린 원동력은 아니었을까? 다들 포토맥 강변에 담긴 풍치에 흠뻑 감탄하는 표정들이었지만 딴 곳과는 달리 자질구레한 유품이 없는 걸 빼고는 이렇다 할 감동은 없었다. 지하에 전시한 사진이 있다는데 굳이 내려가 보고 싶지 않아 그냥 나와버렸다. 아쉽게도 일천한 역사가 그려내는 한계를 보는 느낌. 야릇한 서글픔과 더불어 참을 수 있는 무거움을 담은 인공호수를 코앞에 두고 발걸음을 돌렸다. 연간 두어 차례 홍수로 범람할 때면 흡사 한국처럼 온갖 쓰레기를 치우느라 미화원들이 곤욕을 치른단다. 물가가 아닌 길가를 따라 세워둔 싸리울이 어색하면서도 정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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