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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호 연재소설 (제9회)-1】 노량에 피는 꽃

소설가 현종호

(제9회)-1


  정유년(1597년) 10월 11일 맑음.
  새벽 2시경에 바람이 잦아드는 것 같아서 첫 나팔을 불고 닻을 올렸다. 바다 가운데로 가 정탐 이순, 박담동, 박수환, 태귀생을 해남으로 보냈다. 해남에 연기가 가득했다고 하는데, 이는 필시 적의 무리가 달아나면서 불을 지른 것이다.

  명량에서 패하여 해남으로 도망한 적들이 산속에 숨어든 백성들까지 닥치는 대로 도륙하고, 집들을 모조리 불태우고 나서 경상 해안 쪽으로 이동하였다는 보고였다. 적들이 물러간 뒤에도 백성들은 고향 마을로 돌아올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명량에서 대승을 거두고 적들을 물리쳤으나 새로운 수군 진영을 꾸릴 마땅한 장소가 이젠 그에게 절실했다. 지치고 주린 장졸들을 이끌고 어의도와 법성포, 위도와 고군산도를 거쳐 이순신은 수군 진영을 결국 ‘보화도’로 옮겨가는데, 갯벌이 많아 큰 배를 대기에 어려운 목포 앞바다와는 달리 영산강 하구의 보화도(고하도의 옛 이름) 앞바다는 수심이 깊어 배를 정박하기에 우선 좋았다. 남해 연안에 눌어붙어 수시로 집적대는 적들을 언제든 견제할 수 있고, 크고 작은 섬으로 둘려져 있어 바람이 잔잔해 서북풍을 잘 막아낼 수 있는 데다 배를 감추기에도 적합하고, 지형이 좋아 진을 치고 군막과 창고도 쉽게 지을 수 있는 섬 보화도(寶花島)가 적합한 까닭이었다.
  피로에 지친 배들도 겨울잠이 필요했을 것이었다. 적들은 오지 않았다.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꾸준히 고요했다.
  전쟁이 지지부진해지면 군량을 충분히 확보하는 쪽이 결국은 이기게 되는 법이었다. 그의 수군 병사들은 양식이 부족해 늘 배고픔에 시달렸고, 그의 격군과 사부들 또한 노를 젓고 활을 당길 기운마저 없을 정도로 기진맥진해져 있었다. 궁궐을 지키는 병사들조차 끼니를 때우지 못하고 허덕인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조정의 궁상(窮狀) 역시도 심각했다. 조정의 지원이 없는 최악의 궁핍 속에서도, 명나라 천병을 먹이려고 정작 그의 군사들은 보급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속절없이 굶어 죽어가야 하는 형편이었다. 군량 조달 문제로 이순신은 고민이 많았다. 명량에서 대승을 거두었으나 수군 재건이라는 중압감 탓에 그는 하루도 편히 쉴 겨를이 없던 것이었다. 이순신은 발 빠르게 움직인다. 조정의 지원이 아예 없는 궁핍 속에서도 수군 재건에 박차를 가하느라 이순신은 여념이 없었다. 통제사 이순신의 행보는 눈물겨웠다.

  한때 녹둔도에서 둔전을 운영했던 경험을 되살려, 병사들 가운데 전장에 나가지 못하는 늙고 병든 이들을 둔전에 보내 농사를 짓게 하는 등 이순신은 병력 확충과 군량 확보에 전념하였다. 밤에 운주당을 찾아온 병참 담당 이의온이란 젊은이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 장수들과 상의한 끝에 서둘러 ‘해로 통행첩’을 발행하며 그는 또한 군량미를 확보하는데, 통행첩을 소지하지 않은 배는 왜군의 탐망선으로 간주하고 피난민과 어선의 안전한 통행을 보장해준다는 명목으로 발행하는 ‘해로 통행첩’을 백성들이 다행히 반기게 되니, 추수철이 지났음에도 통행첩(通行帖)을 발행한 지 열흘도 안 돼 1만여 섬의 식량을 이순신이 확보하는 것이다. 백성들의 말 없고 탈 없는 지원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힘겨운 전쟁을 치르고 나서도 이순신은 한 시도 쉴 틈이 없던 것이었다.

  성취감에 젖어 제 한 몸 돌보지 않고 어딘가에 남겨져 눌어붙어 있을 요망한 적들을 소탕할 대책을 세우느라 너무 고심하며 무리했던 때문일까…….
  고요하고 평화롭던 고하도에 어느덧 어둠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정유년(1597년) 10월 14일, 맑음.
  말을 타고 가다가 말이 발을 헛디뎌 냇물 한가운데로 떨어졌으나 거꾸러지지는 않았다. 막내아들 면이 다가와 끌어안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꿈에서 깨었다. 이것이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
  늦게 배 조방장과 우후 이의득이 찾아와서 만났다. 조방장 배홍립의 종이 영남에서 찾아와 적의 형세를 전했다. 황득중 등이 찾아와서, 내수사의 종 강막지(姜莫只)라는 자가 소를 너무 많이 기르는 탓에 왜놈들이 소 12마리를 훔쳐간 거라 하였다.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으로부터 찾아와서 집안 편지를 전하는데, 아직 봉함을 열어보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마음이 조급해지고 어질어질하였다. 대충 겉봉을 펴서 아들 열이 쓴 글씨를 보니, 겉면에 ‘통곡(慟哭)’이란 두 글자가 씌어 있는 것이 아닌가. 아들 면이 전사하였음을 직감하고 나도 모르게 간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리도 인자하지 못하단 말인가! 간담이 찢어지는 것만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어찌하여 이치에 이리 어긋난단 말인가. 천지가 온통 어둡고 밝은 해조차도 빛이 바랬구나. 슬프다, 아들아! 나를 버리고 대체 어디로 간 것이냐……?……”

  조산만호로서 녹둔도에 몸담고 있던 탓에 아버지의 타계(他界)를 늦어서야 알았고, 종군하는 중죄인이었던 까닭에 어머니의 임종 또한 지키지 못했던 천하의 불효자식 이순신. 자격 없는 부모로서 이젠 아비보다 앞서 아들마저 떠나보내다니, 불효자식에 아비 자격 없는 자로서 숨 막히는 심회를 그는 걷잡을 수 없었다. 그는 더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정유년(1597년) 10월 16일, 맑음.
  우수사 김억추와 미조항 첨사 김응함을 해남으로 보냈다. 해남 현감 유형도 보냈다. 내일이 막내아들의 죽음을 들은 지 나흘째가 되는 날인데, 마음껏 통곡하지도 못했다. 소금 굽는 이 강막지의 집으로 갔다. 밤 10시쯤에 순천부사 우치적, 우후 이정충, 급감도 만호 이정표, 제포 만호 주의수 등이 해남에서 돌아왔는데, 왜적의 머리 13급에 투항해 왜군에 들어가 빌붙었던 송원봉 등의 머리를 베어 가지고 왔다.

  장졸들 앞에서 차마 눈물을 보일 수 없었던 조선 수군 총사령관 이순신. 아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며 한껏 울어보지도 못할 만큼 그는 무엇이 그리도 시급하였던 걸까…….
  며칠 후, 강막지의 소금 창고로 숨어 들어가 아비보다 앞서간 자식 면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고 부르며 이순신은 한참을 운다.

【편집부 해설|제9회-1】

명량의 승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이순신은 대승 직후에도 한순간도 안도하지 않는다. 전투의 환호가 가시기도 전에 그는 곧바로 수군 재건이라는 더 무거운 책임 앞에 선다. 제9회-1은 영웅의 화려한 전과가 아니라, 전쟁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행정·조직·생활의 전장을 그린다.

이순신은 보화도와 고금도를 중심으로 진영을 옮기며 바다와 땅을 함께 관리한다. 갯벌과 수심, 바람과 섬의 배치를 따져 배를 숨기고, 군사를 먹이고, 백성을 살리는 체제를 만든다. 둔전 운영, 통행첩 발급, 무기 제작, 피난민 수용까지—그의 싸움은 더 이상 포성과 화살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대목에서 작품은 분명히 말한다. 전쟁의 승패는 싸움터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에서 갈린다고. 명량이 전술의 승리였다면, 제9회-1은 국가를 버티게 한 생활의 전략이다.

【본문 용어 해설|제9회-1】

• 어의도 於義島 Euido Island 전라남도 신안 인근의 섬. 조류가 복잡하고 섬이 많아 수군이 몸을 숨기거나 적의 동태를 살피기에 유리한 해역이다. 이순신 수군의 해상 완충지대 역할을 한 공간이다.

• 법성포 法聖浦 Beopseong Port 전라남도 영광군에 위치한 포구. 조선 시대 서해안의 대표적 군항이자 조운·군수 거점이었다. 군량과 물자의 집산지로 전략적 가치가 컸다.

• 위도 蝟島 Wido Island 전북 부안 앞바다의 섬. 서해 항로의 요충지로, 조류와 암초가 많아 대규모 함대의 기동이 어려운 지형이다. 방어에 유리한 천연 요새였다.

• 고군산도 古群山島 Gogunsan Archipelago 군산 앞바다에 흩어진 섬 무리. 섬과 섬 사이 물길이 복잡해 수군의 은신·기습·차단 작전에 적합한 해역이다. 서해 방어의 핵심 섬군이다.

• 보화도 寶花島 Bohwado Island 현재의 고하도(목포 인근)의 옛 이름. 수심이 깊고 바람을 막아주는 지형으로, 이순신이 겨울을 나며 수군을 재건한 곳이다. 회복과 재기의 공간을 상징한다.

• 군막 軍幕 Military Camp / Command Tent 군대가 주둔할 때 설치한 막사 또는 지휘용 천막. 전투 중에는 임시 본부이자 작전 지휘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 격군 格軍 Oarsman / Naval Rower 군선에서 노를 젓는 병사. 전투 중에도 쉼 없이 노를 저어야 했기에 가장 혹독한 임무를 맡았다. 수군의 체력과 생존을 떠받친 존재다.

• 사부 射夫 Archer 활을 쏘는 병사. 조선 수군의 근접·중거리 공격을 담당했다. 총통과 함께 전투의 화력 축을 이루는 병과다.

• 궁상 窮狀 State of Extreme Hardship 극도로 궁핍하고 몰린 처지. 작품에서는 군량 부족, 병력 열세, 퇴로 차단 등으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을 뜻한다.

• 운주당 雲住堂 Unjudang Pavilion 이순신이 머물거나 집무하던 당호(堂號). ‘구름처럼 머물다’는 뜻으로, 번다한 세상사 속에서도 마음을 다잡는 공간을 상징한다.

• 통행첩 通行帖 Travel Permit / Passage Certificate 백성과 선박의 안전한 이동을 보장하기 위해 발급한 증명서. 이순신은 이를 통해 군량 확보와 민생 안정을 동시에 꾀했다.

• 내수사 內需司 Office of Royal Supplies 왕실의 재정과 물자를 담당한 관청. 공물·재물 관리 기관으로, 전쟁 중에도 궁중 중심의 재정 운용을 상징하는 존재다.

• 조산만호 助山萬戶 Josan Manho (Naval Post Commander) 조산진을 관할하던 수군 지휘관 직책. ‘만호’는 종4품 무관으로, 해안 방어와 지역 수군 통솔을 맡았다.

• 명량 鳴梁 / 울돌목 Myeongnyang Strait 전라남도 진도와 해남 사이의 매우 좁은 바닷길. 폭은 약 300m 안팎으로 좁고, 조류는 시속 10~13km로 매우 빠르며 하루에도 여러 번 방향이 바뀐다. 이 때문에 대규모 함대는 진형을 유지하기 어렵고, 지형을 모르면 스스로 충돌·난파한다. 이순신은 이 특성을 이용해 적의 수적 우위를 무력화할 수 있는 유일한 전장으로 명량을 선택했다.

• 해남 海南 Haenam Peninsula 한반도 남서쪽 끝에 위치한 반도형 지역. 바다·섬·육지를 동시에 통제할 수 있는 지형으로, 일본군이 서해로 진출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이다.망금산·달마산 등 산악 지형은 봉화와 정탐에 유리했고, 이순신은 해남 앞바다를 이용해 적을 명량으로 유인하는 전략적 관문으로 활용했다.

【현대적 의미|제9회-1】

제9회-1은 오늘의 사회에도 깊은 질문을 던진다.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종종 ‘강한 리더의 결단’만을 기대한다. 그러나 이순신이 보여준 리더십은 다르다. 그는 싸운 뒤 가장 먼저 군량, 주거, 이동, 안전을 점검한다. 백성이 굶지 않게 하고, 군사가 도망치지 않게 하며, 공동체가 다시 설 수 있도록 기반부터 복원한다.

이는 오늘날의 재난 대응, 국가 위기관리, 조직 리더십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영웅은 위기를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위기 이후에도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사임을 이순신은 보여준다.


작가 소개
현종호 (소설가)

• 평택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외국어대학 영어학과 조기졸업
• 명진외국어학원 개원(원장 겸 TOEIC·TOEFL 강사)
• 영어학습서 《한민족 TOEFL》(1994), 《TOEIC Revolution》(1999) 발표
• 1996년 장편소설 『P』 발표
• 1998년 장편소설 『가련한 여인의 초상』, 『천국엔 눈물이 없다』 발표
• 전 국제대학교 관광통역학과 겸임교수 역임
• 현재 평택 거주, 한국문인협회 소설가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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