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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박사, 글로 남긴 ‘인도’ 비전트립(16)】 단잠을 허락하신 주님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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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거나 지금 나의 바람은 재빨리 어디든 이 한 몸 의탁할 처소를 찾는 일이었다. 자꾸만 물먹은 솜처럼 몸이 처지고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너무 자주 쭈그리고 움츠린 탓에 항문이 밑으로 빠지는 증세까지 겹쳐왔다. 그야말로 고립무원에 사면초가. 서두르는 바람에 아직 탑승 수속을 밟기에도 너무 이른 시각이었다. 일단 공항 근처에 방을 잡은 건 그래서였다. 전번 첸나이보다는 훨씬 괜찮은 시설. 곧바로 누추한 침대에 몸을 눕혔다. 다들 바람을 쐬러 나간 틈에도 잠은 몰려왔다. 얼핏 드는 풋잠이 아니었다. 자도 자도 하릴없이 쏟아지는 단잠이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이 사랑하는 자에게 숙면을 통해 회복시키시는 뜻(시편 127:2)이라 확신했다. 나중에 전해 들으니 쓰러져 앓는 나를 위한 눈물 어린 기도가 있었단다. 그때 엎드려 울면서 예수님께 전심으로 간구한 분들이 있었기에 이처럼 멀쩡한 모습으로 글월을 다듬는 내가 존재함에 감사한다. 값비싼 올리브유를 구해다 온몸에 발라가며 마디마디 정성스레 마사지를 해주던 쿠마 형제의 시원한 손끝의 감촉이 바로 이 순간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 같다.

  잠시 잠에서 깨어나니 반갑게도 허기가 느껴졌다. 그 사이 별 탈이야 나겠냐며 가져온 수박을 몇 입 베어 물었더니 곧장 배설로 이어졌다. 입안에서는 풀풀 독한 양약 냄새가 진동했다. 며칠 도통 먹지를 못했으니 약 기운마저 체내에 들어가 작용할 기력을 잃은 모양새였다. 어쨌거나 현재 중요한 일은 어떻게든 이겨내야 한다는 의무감. 이 난국을 극복하는 길이야말로 최고선이었다. 링거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의견이 일부 있었으나 단호히 거절했다. 그럴 경우 자칫 입원할 처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실을 수밖에. 그렇지만 정작 내가 믿는 구석은 따로 있었다. 나의 장부를 조직하신 이가 지켜주시리라는 믿음이었다. 그리하여 마지막 남은 힘을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데 쓰라시는 주님의 긍휼히 여기심이었다.

  이윽고 탑승 수속을 밟을 시각이었다. 사모가 눈시울을 붉혔다. 사나흘 전 남편인 쿠마는 그녀를 ‘Simple man’이라고 지칭한 바 있었다. 그간 정들었던 다섯 명의 일행과 석별의 정을 나눴다. 혹여 서로 간에 벌어진 간극이 있었다면 아쉬운 작별의 시공에 모조리 녹여 내리라는 바람을 안은 채. 8시 반경 짐들을 부치고 또 지루한 2시간 반의 기다림을 더 지탱하고서야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시원하게 털어놓자면 이젠 솔직히 인도 냄새까지 역했다. 한 인간으로서 막다른 한계에 다다른 느낌. 그러나 내가 겪고 있는 이 사태는 단순한 육적 시련이라기보다는 영적 충돌로 빚어진 총체적 불협화음이었다. 우상숭배로 찌든 땅에서 작은 육신 속에 깃든 한줄기 복음의 빛마저 없었다면 언감생심 어찌 170여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으랴.

  밤 11시를 넘겨 육중한 동체는 중력을 떨치고 힘차게 이륙했다. 인도여 안녕! 나는 얼른 싱그러운 나라 싱가포르만을 떠올리기로 했다. 승객을 맞는 스튜어디스의 상냥한 미소에 생기가 넘쳤다. 앉자마자 음료수를 서비스하는 승무원들. 웬일인지 콜라 냄새가 코끝에 향긋했다. 평소에는 잘 마시지도 않던 탄산음료의 냄새가 좋다니 조금은 의외였다. 냉큼 한 모금을 들이켰다. 아니나 다를까 그게 또 빌미가 되어 화장실을 찾았다. 나오려는데 길목을 지키던 이선생이 나를 이끌었다. 때마침 뒷좌석이 통째로 비어 있었던 터. 딴에는 속죄를 위한 극진한 배려였다. 덕분에 얼마간 편안한 잠자리를 누릴 수 있었다. 나를 지으신 이가 쏟아부으시는 은혜. 푹 잔 뒤 착륙을 불과 30여 분 앞둔 시점에 깨어났다. 일단 중간 기착지까지는 안착한 셈이었다.

  가까이 있는 스튜어디스에게 싱가포르 시각을 물었다. 2시간 20분을 앞당기랬다. 이른 06시 05분. 드디어 귀국 예정일을 맞은 참이었다. 순간 집에 한 걸음 더 가까이 왔다는 생각에 기운이 불끈 솟았다. 창이(Changi)공항의 모습은 일주일 전 그대로였다. 아니 내겐 전보다 훨씬 안온한 처소로 다가왔다. 생목이 말라 헤매던 나그네에게 나타난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라고나 할까. 나만을 위한 듯 흘러간 팝송이 귓속을 간질였다. 경쾌한 ‘Top of the world’랑, 은은한 ‘Sing sing a song sing a loud sing a strong……’이랑 내가 좋아했던 그룹 카펜터스의 곡들이 연거푸 이어졌다. 급히 화장실을 다녀와 감미로운 음률에 젖으려니 또 눈꺼풀이 무거웠다. 체면 불고하고 카펫이 깔린 바닥에 벌렁 누워버렸다. 남의 시선 따위는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랑자인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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