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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
----------(11회)----------
듣자니 주위 풍광이 무지갯빛을 띠어 밀퍼드 사운드라고 지었다는데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었다. 바닷속으로부터 솟아오른 봉우리가 사자 모양이라서 라이언 마운틴(1,302m)이고, 나아가 코끼리산(Mt. Elephant, 1,518m)이랬다면 더욱 싱거운 터. 다양한 금속 성분을 매장하고 있는 구리포인트(여기선 볼만한 곳을 지칭할 때 Point를 붙임)를 지나니 제법 길고 웅장한 폭포가 나타났다. 폭포수를 식수원으로 사용하다 보니 물길을 살리고 자연을 복원하려는 노력이 절박할 참이다. 방금 스쳐 지나간 비석은 터널을 뚫다가 목숨을 잃은 3인의 추모비. 높이 548m, 길이 79m에 달하는 바위에 분재 같은 소나무 하나가 붙어있었다. 때마침 하늘을 날아가는 흰 갈매기는 가까이 헬기를 겸한 경비행기와 많이 닮았다. 퀸즈타운의 와카티푸를 직접 누비지는 못했으나 거기에 비하면 여기는 바다 위 같은 느낌이다. 밀퍼드 사운드의 절정인 마이터 피크(1,694m)를 보고 운무를 내뿜는 엔젤 폭포를 지나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물줄기를 직접 맞아볼 수 있는 스털링 폭포에 다가왔으나 세차게 몰아치는 비바람이 싫어 그대로 눌러앉아 있었다. 가이드의 농담인즉 저 물로 목욕을 하면 천사를 만난다나 뭐라나?
차에 올라서도 이어지는 가이드의 진단. 학술적 접근에 따르면 빙하골짜기는 원래 V자가 아닌 U자였단다. 온난화를 탓할 겨를도 없이 흘러내리는 물이 말라붙어 눈꽃처럼 피어난 이끼가 지레 시들어 버린 땅에서 태고의 신비를 논하던 시절은 어디로 가고 서서히 마지막 운명을 맞이하는 모습이 서글펐다. 다시금 주위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칠까봐 조심조심 바위를 쪼아냈다는 그 터널은 돌아올 때 보니 곡선이었다. 길지 않은 길이거늘 속력을 낼 수 없도록 일부터 비틀었다는 설명인데, Slow Valley Bay는 그래서 붙인 이름이리라. 내친김에 차에서 내려 나름 고도를 감지해 보니 골짜기에 머문 바람이 한 바퀴 돌아나가는 지점. 기실 문외한이라도 무언가 기류가 심상치는 않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느낄 만했다. 그사이 나는 뜬금없이 이 비밀이야말로 전능자만이 기획하실 수 있다는 데 착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묘하리만치 날이 갈수록 계곡물이 말라가는 흐름이 그 신비로움을 푸는 열쇠일 거라고들 추측할 뿐이란다. 그러고 보니 시야를 가릴 만큼 온갖 잡풀만 무성할 뿐 도대체 쓸모 있는 식물군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시계는 하오 한 시를 가리켰다. 출발하면서 가이드에게 어느 대학 교정이라도 좋으니 한 군데 들를 수 없느냐고 물었다. 혹여 가고 싶은 데가 있으면 말하라고 하기에 속마음을 꺼냈으나 겉모습만 보고서야 무슨 소용이냐며 사절. 비록 겉모양일망정 그냥 지나치는 것보다는 보는 편이 낫다는 게 나의 지론이었는데 아쉬웠다. 서로 일치한 지점은 방목에 길든 짐승이 싱싱하듯 인간 역시 자율이 몸에 밸 때라야 안간힘을 낼 수 있다는 것. 지형이 지형인지라 시시때때로 찌푸렸다 맑았다 반복하는 날씨는 요술을 부렸다. 상당한 고지대여서 귓구멍이 멍멍한 상태서 내려오자마자 만난 입간판은 Ford Land. 드높은 하늘에는 새들이 날고, 드넓은 땅에서는 양들이 기어갈 뿐이다. 좀체 인적이라곤 드문 곳. 신기하게도 일가족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능선을 따라 곡선으로 이어진 산야. 사막 같은 땅에서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났다. 이르기를 ‘튜삭’이란 풀은 새파랗되 중간 줄기는 갈색이요 가장자리는 은빛이란다. 그러니 더욱 갖가지 초목과 동물로 가득 찬 뉴질랜드 원시림이 이처럼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는 것 아닌가.
뉴질랜드 복지제도에는 우선순위가 있었다. 첫째는 기회균등에 초점을 맞춘 터. 기본적으로 교육을 받는 데 능력이 아닌 여타 요소로 차별하지 말자는 취지에서다. 둘째는 의료행위를 받는 데 누구라도 주저해서는 안 된다는 것. 셋째는 최소한의 의식주를 국가에서 해결하는 시스템. 중학교까지 이론 중심의 교과서 자체가 없다는 데는 우려와 함께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나, 왜 8년여를 오로지 생활교육에만 치중하는가에 대해서는 갸우뚱한 측면이 있었다. 예컨대, 줄을 서고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어떻게 쓰느냐를 훈련하는 일의 중요성을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는 제안인데, 다행히 필자 주변에 이에 관련된 실제 사례가 있다. 호주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초등학생이었는데 끝내 적응하지 못한 채 꼴찌로 전락해 버린 참. 공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고 접근하는 방법론이 달라 공중에 떠버린 경우였다. 어쨌거나 한창 올바른 습성을 기를 때 생활문화를 바꾸려면 한층 신중해야 하지만 이들에게 본받을 점은 아이 하나를 천하보다 소중히 여기는 정신문화다. 뉴질랜드 정부에서 4년 전까지 속지주의를 유지하다가 고심 끝에 속인주의로 바꾼 것도 그 맥락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