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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
----------(12회)----------
뉴질랜드가 자랑하는 MAF에 관한 소개도 들을 만했다. 이는 한국의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을 합친 시스템으로 농축수산물에 대한 검역체계를 수립하고 집행하는 기관이란다. 하지만 양심과 사명이 지배하는 곳에 비리의 잡티가 끼어들 리 없다지만 사람이 하는 일에 어찌 완전함이 있으랴. 그래도 세관에 근무하는 공무원이 청렴하면 그 사회는 희망이 있다는 말에는 일리가 있다. 가이드 자신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다가 실제 도수장 현장을 보고 나서부터 육회를 먹기 시작했단다. 생살뿐만이 아니라 뼈까지 철저한 검역을 거친다는 전언. 사육부터 유통까지 전 과정을 승인하고 관리하는 담당자에 의해 통제되고 책임을 지는 체제가 이 나라의 신용을 담보하고 있었다. 따라서 여기 경주마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는 건 당연지사. 자고이래 동물이란 관절이 튼튼해야 잘 달리는 법이니까. 참고로 술을 가게에서 마시는 건 되지만 사서 들고 가면 안 되는 게 이 나라의 법. 18세 이하의 청소년에게 술을 팔다가 걸릴 경우 폐업을 각오해야 한단다. 반면에 한국의 법 집행 실태를 보면 법망 자체가 심히 허술할뿐더러 공무를 집행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부터 문제라는 지적이다.
가이드가 잠시 차에서 내려 떠나고 나면 내내 그리울 법한 와카티푸 냄새를 실컷 맡고 가잔다. 한껏 감성을 자극하는 말에 고맙게 들이켠 신선한 바람에는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과 향기가 배어있었다. 손에 든 홍보물에서 본 퀸즈타운시 관광객 유치 3대 정책은 영화 촬영을 위해 무료로 설비를 제공하고, 3년간 부족한 일손을 도우면 영주권을 획득하는 데 인센티브를 부여하며, 퀸즈타운 방문자에 한해서만 귀한 용혈을 판매한다는 내용. 그 가게에 갔더니 극구 전문용어로 Deer Blood(녹혈)이 아닌 Belbet Blood(용혈)라고 강조했다. 조혈작용을 통해 간과 신장에 좋을뿐더러 항암효과와 노화 방지는 물론 나처럼 몸에 열이 많아도 하등 부작용이 없단다. 아내 역시 이전에 볼 수 없이 전폭적인 신뢰를 담보한 표정. 해외여행 중 처음으로 비싼 가격대에 카드를 긁었다. 오는 길에 가이드가 덤으로 알려준 묵직한 상식은 제품에 ‘Made in’으로 기재하면 그 나라에서 마무리했다는 뜻이고, 완제품이 나오기까지 전 공정을 처리하면 ‘Product of’라고 적는단다. 웬일인지 나는 학창 시절부터 이상하리만치 영어시간 밖에서 들려주는 낱말이 눈과 귀에 쏙쏙 들어오곤 했었다. 다시금 가느다란 가랑비가 내렸다. 음산해서인지 비행기 소음이 제법 크게 들렸다.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복용한 용혈의 약효는 금세 나타났다. 내내 추위를 느끼던 아내의 혈관에 피가 돌면서 몸이 따뜻해지는 감도를 직접 확인한 참. 다행히 150명 중 하나꼴로 나타난다는 부작용의 범주는 일단 벗어났나 보다. 옛날 장희빈이 경종을 잉태했을 때 혈액순환을 위해 복용했다는 사슴뿔 피보다 뛰어나다는 말이 허사가 아닌 듯하다. 그제야 깔끔한 단층 호텔의 시설들이 눈에 들어왔다. 수돗물의 압력이 너무 센 건 좀 그랬지만 뜨거운 스팀 난방을 비롯해 전반적으로 시설은 괜찮은 편. 아내를 위해 주둥이가 특이한 주전자에 물을 끓였다. 차를 마시며 나눈 화제는 단연 용혈의 효험. 한 알씩을 들고 올린 감사기도는, “오 주님, 저희 부부를 보호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내일이면 또 미지의 세계로 날아갑니다. 영육 간에 늘 강건토록 지켜주옵소서!”
일어나자마자 하룻밤 묵은 곳의 이름을 확인하니 파인호텔. 비교적 괜찮은 메뉴의 아침을 들고 여유가 생겨 로마서를 길게 묵상하며 밀린(?) 예배를 은혜롭게 드렸다. 오늘의 백미는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이 찾았다는 골프장. 세계 최고의 경관을 자랑한다기에 잔뜩 기대치가 올라간 낯빛들. 가는 길에 자주 보이는 글자는 ‘For Sale’, 자본주의 체제를 체감케 하는 특징 중 재화를 사고파는 행위를 목격한 터다. 점점 목적지에 다가 서자 가이드가 비장한 비화(秘話)를 하나 꺼내 든다. 강대국 미합중국이 힘없는 우방을 속인 채 핵폐기물을 싣고 슬그머니 지나갔다가 뒤늦게 들키는 통에 오랜 시일 양국 관계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던 기억을 들춘 것. 약소국인지라 좋은 게 좋지 않냐며 결국 유야무야 넘기고 말았지만 여태껏 앙금이 괴어있단다. 골프장 입구에는 호화로운 집들이 즐비했다. 여기 거주할 경우 4명까지는 평생 무료라는데 간판을 보니 발음도 어려운 Millbwolc Resort. 호기심이 충만한 나는 잽싸게 주변을 둘러본 뒤 실가지를 잔뜩 늘어뜨린 능수버들 앞에서 아내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예상처럼 현란하게 꾸미진 않았으나 지형을 최대한 살린 게 압권. 클린턴이 방문할 때 군사작전을 방불하듯 모든 항공기의 이착륙을 금지했단다. 지나치게 호들갑을 떤다는 주민들의 불만은 극히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