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건 | 깨어있는시민과의동행 사무총장 | 제1기 평택시 물환경민관거버넌스 단장
| 평택시민환경연대 공동대표
| 한국시민사회재단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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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염 속 에어컨조차 켜지 못하는 시민이 있다. 누가 전기를 쓰고, 누가 비용을 부담하며, 누가 발전자산과 수익을 소유하는가? 복지는 가난을 판정하는 데 머물러야 하는가, 시민의 자산 형성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AI 재구성) |
2026년 여름, 평택에도 인간의 정상 체온을 넘어서는 39도 안팎의 폭염이 닥쳤다. 한낮의 열기가 집 안까지 스며들어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더위였다. 그런데 어떤 시민운동가는 그런 더위 속에서도 에어컨을 켜지 못했다. 에어컨이 없는 것도, 고장 난 것도 아니다. 전기요금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서민주택이 있지만 상당 부분이 금융채무와 얽혀 있고, 매달 소득의 대부분을 원금과 비싼 은행이자로 지출한다면 실제 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돈은 얼마나 남을까. 서류상 재산이 있다는 사실이 곧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이런 사람에게 먼저 “당신은 법적으로 취약계층입니까?”라고 묻고 싶지 않다. 먼저 이렇게 물어야 한다. “왜 이 더위 속에서 에어컨을 켜지 못하고 있습니까?” 어쩌면 우리 에너지복지의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행정은 먼저 자격을 묻지만, 삶은 먼저 고통을 말한다.
가장 가난한 사람의 전기요금이 가장 적을 수도 있다
전기고지서에는 사용한 전기만 찍힌다. 그러나 찍히지 않는 전기도 있다. 사용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사용하지 못한 전기다. 에어컨은 있지만 켜지 않았다. 보일러는 있지만 온도를 낮췄다. 더워도 참고, 추워도 견뎠다. 전기를 아낀 것이 아니라 자신의 건강과 생활을 희생하며 전기요금을 줄인 것이다.
그렇다면 낮은 전기사용량을 무조건 절약이라고 볼 수 있을까. 오히려 에너지빈곤의 흔적일 수도 있다. 우리는 흔히 전기사용량이 적으면 전기를 아껴 쓰는 가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절약이 자발적인 선택인지, 전기요금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감수하는 고통인지는 구별해야 한다. 에어컨을 켤 수 있는데 켜지 않는 것과, 켜고 싶어도 전기요금 때문에 켜지 못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에너지빈곤은 전기요금을 낼 돈이 부족한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간다운 생활에 필요한 냉난방조차 포기해야 하는 현실의 문제다. 따라서 에너지복지는 “전기를 얼마나 사용했는가”를 넘어 “필요한 전기를 왜 사용하지 못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몇 년의 여름 전기고지서는 무엇을 말하는가
한 해의 전기사용량만으로 생활형편을 판단할 수는 없다. 가구원 수, 주택의 크기와 단열상태, 냉방기기의 효율, 장기부재 여부 등에 따라 사용량은 달라진다. 그러나 가구원 수가 적다고 전기사용량이 인원수에 비례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냉장고처럼 한 사람만 살아도 기본적으로 소비되는 전기가 있다. 에어컨 역시 두 사람이 살다가 한 사람이 살게 됐다고 소비전력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다른 가구와의 단순비교보다 그 가구 자신의 몇 년간 사용패턴이다. 폭염은 갈수록 심해지는데 같은 사람이 같은 집에서 살면서 3년, 5년 동안 여름 전력사용량이 계속 지나치게 낮다면 어떨까. 행정은 한 번쯤 물어야 한다. “전기요금 때문에 냉방을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물론 낮은 전기사용량이 곧 가난의 증거는 아니다. 냉방을 적게 사용하는 생활습관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사용패턴은 적어도 생활조건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는 신호일 수 있다. 전기고지서는 단순한 청구서가 아니다. 몇 년의 기록을 생활조건과 함께 살펴보면 한 사람이 더위와 추위를 어떻게 견뎌왔는지 보여주는 생활기록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신호가 없어서가 아니다
지금 행정에는 소득자료가 있다. 재산자료가 있다. 복지수급 기록도 있다. 전력회사에는 전기사용 기록이 있고, 관리소에는 냉방과 관리비 관련 정보도 존재한다. 그런데 복지행정은 여전히 상당 부분 소득과 재산 등 자격기준을 먼저 살핀다. 물론 기준은 필요하다. 한정된 재원을 공정하게 배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자격기준 밖에 있는 사람의 실제 삶까지 놓쳐서는 안 된다. 소득기준을 조금 넘는다는 이유로 지원에서 제외되지만, 주거비와 의료비, 부채를 감당하고 나면 냉방비조차 부담스러운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서류상으로는 취약계층이 아니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에너지빈곤을 겪는 것이다. 몇 년 동안 여름 전력사용량이 지나치게 낮고, 겨울 난방도 충분하지 않으며, 주거비와 부채부담까지 크다면 그것은 적어도 확인이 필요한 신호다.
이 자료를 근거로 누군가를 자동으로 '가난한 사람'이라고 판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행정이 먼저 찾아가 “냉난방을 적절히 하고 계십니까?”라고 물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전력사용 기록과 복지정보를 활용하려면 법적 근거와 개인정보 보호가 전제되어야 한다. 필요한 범위에서 정보를 활용하고, 당사자의 권리를 보호하며, 기계적 판정이 아닌 상담과 현장 확인으로 이어져야 한다.
폭염 속에서 에어컨을 켜지 못하는 사람은 신청서를 쓰기 전에 이미 자신의 삶으로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문제는 신호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복지의 언어로 읽지 않는 데 있다.
신청을 기다리는 복지에서, 제도 밖의 빈곤을 찾아내는 복지로
우리 사회에는 실제 생활이 어려운데도 행정적으로는 가난한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시민들이 있다. 배우자와 별거하며 사실상 혼자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데도 법률상 혼인관계와 배우자의 소득이 복지 심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주택을 소유하고 있지만 상당 부분이 대출로 마련한 자산이고, 매달 소득의 대부분을 은행이자로 지출하는 사람도 있다. 서류상으로는 배우자도 있고 재산도 있지만, 정작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쓸 수 있는 돈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재산이 있다는 이유로 지원에서 제외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논과 밭을 상당히 소유하고 있지만 과거의 연대보증으로 발생한 채무 때문에 17년째 매월 600만 원의 이자를 부담하는 사람도 있다. 매월 같은 금액을 17년간 지급했다면 이자만 12억 2,400만 원에 이른다. 토지대장에는 재산이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금융채무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여름 전기고지서를 살펴보자. 폭염이 거듭되는 동안 전기사용량은 어떻게 변했는가. 에어컨을 적절히 사용할 수 있었는가. 아니면 매달 감당해야 할 이자 때문에 냉방마저 포기하며 살아왔는가. 토지가 있다는 사실과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경제적 여력이 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재산의 명목상 가치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생활비는 구별해야 한다. 특히 재산의 처분이 어렵거나 처분하더라도 채무를 상환하고 나면 남는 것이 거의 없다면, 그 재산이 실질적으로 어떤 생활보장 능력을 갖는지 살펴야 한다.
더욱이 연대보증은 법률이 허용하고 금융제도가 운영해 온 제도다. 정부 역시 그 폐해를 인정해 연대보증 관행을 단계적으로 폐지해 왔다. 그러나 과거 제도 아래에서 발생한 채무 부담은 여전히 누군가의 삶에 남아 있을 수 있다. 국가가 제도적으로 허용해 온 연대보증으로 발생한 부담이 한 시민의 생활을 수십 년 가까이 제약하고 있다면, 복지행정은 그 현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물론 현행 복지제도에도 일정한 부채를 재산평가에서 공제하는 장치가 있다. 그러나 부채를 공제한다는 것과 매월 수백만 원씩 지출되는 이자 부담이 실제 생활능력 평가에 충분히 반영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서류에는 소득이 있고 재산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전기요금이 두려워 에어컨조차 켜지 못할 수 있다. 행정이 보는 숫자와 시민이 견디는 현실 사이에 복지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이들에게 “왜 복지지원을 신청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묻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비켜갈 수 있다. 신청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신청해도 자격기준에 미치지 못하거나, 제도가 실제 생활조건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너지복지는 소득과 재산이라는 서류상의 숫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장기간의 실질적 별거, 실제 부양 여부, 부채와 이자 부담, 재산의 실질적인 처분 가능성, 냉난방을 포기해야 하는 생활조건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복지의 출발점은 법적으로 누가 가난한 사람인가를 판정하는 데만 있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누가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에너지복지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어떤 시민은 생존에 필요한 전기조차 사용하지 못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AI와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위해 막대한 전력과 기반시설이 요구되고 있다. 산업의 성장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 성장에 필요한 전기를 누가 사용하고, 추가 비용을 누가 부담하며, 성장의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함께 물어야 한다. 에너지빈곤의 문제는 여기서 에너지 정의와 경제적 소유의 문제로 확장된다.
그런데 산업은 전기의 절반을 사용한다
2025년 한국전력의 판매전력량은 약 549.4TWh(테라와트시·5,494억 킬로와트시)였다. 이 가운데 산업용은 약 280.2TWh로 전체의 약 51.0%를 차지했다. 주택용은 약 88.5TWh로 16.1%였다. 산업용 전력판매량이 주택용의 약 3.2배에 이른다. 그렇다고 “기업에는 싼 전기를 주고 시민에게 비싸게 판다”고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2025년 평균 전력판매단가는 산업용이 1kWh당 181.90원, 주택용이 158.97원으로 산업용이 더 높았다. 따라서 문제는 산업용·주택용 요금의 높낮이가 아니다.
진짜 질문은 다른 데 있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업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전력수요가 발생한다면 발전시설과 송전망, 변전시설 등에 추가투자가 필요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토지와 환경, 용수와 기반시설에 대한 지역사회의 부담도 커질 수 있다. 그렇다면 물어야 한다. 누가 그 추가수요를 만들고 있는가. 누가 새로운 기반시설의 비용을 부담하는가. 지역사회가 감당하는 환경적·사회적 부담은 어떻게 평가되는가. 그리고 그 전기를 통해 만들어지는 경제적 이익에는 누가 참여하는가.
산업이 전기를 많이 사용한다는 사실 자체가 불공정의 증거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전력수요에 따른 비용이 합리적으로 배분되고, 지역사회와 시민이 부담하는 비용과 성장의 편익 사이에 공정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같은 4만 원도 같은 부담이 아니다
전기요금이 모든 가구에 4만 원씩 더 부과됐다고 가정해 보자. 숫자만 보면 똑같다. 그러나 월소득 200만 원인 사람과 2천만 원인 사람에게 4만 원의 의미는 다르다. 월소득 200만 원인 가구에는 소득의 2%이지만, 월소득 2천만 원인 가구에는 0.2%에 불과하다. 같은 금액이지만 소득에 대한 부담비율은 열 배 차이가 난다.
더구나 전기는 사치품이 아니다. 폭염의 냉방과 한파의 난방은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는 문제다. 소득이 낮은 가구일수록 전기요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냉난방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 소득이 높은 가구는 에너지효율이 좋은 주택과 설비에 투자하기도 상대적으로 쉽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구는 단열이 부족한 주택에 거주하면서도 이를 개선할 여력이 없을 수 있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서류상의 소득만이 아니다. 같은 월소득 200만 원이라도 부채가 없는 사람과 매달 상당한 금융비용을 부담하는 사람의 실제 생활 여력은 다를 수 있다. 같은 가격을 적용한다고 같은 고통을 부담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에너지정책은 요금표만이 아니라 그 요금을 감당하면서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비용은 넓게, 자산은 좁게 소유된다면
AI와 반도체 산업이 성장하려면 막대한 전력과 전력망, 용수와 각종 기반시설이 필요하다. 기업은 투자하고 기술을 개발하며 고용과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이것은 경제발전의 중요한 동력이다. 그러나 산업의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기업의 투자만이 아니다. 전력과 용수, 도로와 교통망, 교육과 연구개발, 지역사회가 감당하는 환경적 부담 등 수많은 사회적 조건이 함께 작용한다.
그렇다면 그 성장으로 형성되는 경제적 자산과 수익은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사회가 함께 기반을 마련하고 위험과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는데, 생산자산과 수익의 소유가 지나치게 소수에게 집중된다면 성장의 공정성을 다시 물어야 한다. 이 말은 기업의 이익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기업이 혁신하고 투자해 얻는 정당한 이익은 존중되어야 한다. 문제는 그 성장을 위해 사회가 부담한 비용과 성장에서 발생한 편익을 어떻게 연결하느냐다.
성장의 비용을 시민이 분담한다면, 성장의 기회와 자산 형성에도 시민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AI 시대의 경제민주주의는 성장의 성과를 사후에 나누는 문제를 넘어, 성장의 기반이 되는 자산을 누가 소유하는가까지 물어야 한다.
가난을 증명하게 할 것인가, 자산을 갖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 에너지복지는 주로 소득과 자격을 심사해 전기요금을 감면하거나 냉난방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다.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폭염과 한파를 견디기 어려운 사람에게 당장의 지원은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시민은 계속 자신의 가난을 증명해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남는다.
다른 길도 있다. 공공청사, 공영주차장, 학교, 체육시설, 산업단지와 물류창고의 지붕 등 설치 여건이 적합한 공간에 시민참여형 태양광 발전시설을 확대할 수 있다. 시민과 협동조합이 발전시설의 소유와 운영에 참여하고, 경제적 여유가 없는 가구에는 공공기금이 지분 취득을 지원하는 방식을 설계할 수 있다. 지분을 직접 소유하기 어려운 시민에게는 공공·협동조합 발전사업의 수익을 공유하는 별도의 제도를 마련할 수도 있다.
발전수익 일부는 참여 시민에게 돌아가고, 일부는 에너지빈곤층의 냉난방비와 주택 에너지효율 개선에 활용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제도가 성공하려면 사업의 수익성과 안전성, 초기 투자비, 운영비, 투자위험, 공공자산의 사용조건 등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공공기금의 지원도 투명하고 공정해야 하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구에 무리한 투자위험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제도적으로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는 방향이다. 지원금은 당장의 생활비를 보탠다. 반면 적절하게 설계된 공동소유 자산은 지속적인 수익과 자산 형성의 기반이 될 수 있다. 바로 여기서 시민의 지위가 달라진다. 전기요금을 지원받는 사람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자산의 일부를 소유하거나 그 수익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것은 복지를 없애자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복지를 한 단계 발전시키자는 주장이다. 당장의 생존을 위한 지원과 내일의 자립을 위한 자산 형성을 함께 추진하자는 것이다.
전기요금을 내는 시민에서 발전자산의 공동소유자로
AI 시대의 에너지정책은 네 가지를 함께 물어야 한다. 누가 전기를 사용하는가.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가. 누가 발전자산을 소유하는가. 누가 그 수익을 가져가는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2026년 여름, 평택에도 숨 막히는 폭염이 찾아왔다. 에어컨이 있어도 전기요금이 두려워 켜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에게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당신은 법적으로 취약계층입니까?”가 아니다. “왜 인간다운 삶에 필요한 냉방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까?”여야 한다. 그리고 질문에서 끝나서도 안 된다.
몇 년째 여름마다 냉방을 포기하는 가구는 없는지, 전기요금 때문에 더위를 견디는 시민은 없는지 찾아야 한다. 소득과 재산뿐 아니라 전력사용의 변화, 주거비와 부채, 의료비와 실제 생활조건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특히 약간의 재산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삶의 어려움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별거하며 실질적인 부양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택채무와 이자 부담이 크거나, 과거 금융제도의 후유증으로 막대한 채무와 이자 부담을 감당하는 시민의 현실도 복지의 언어로 읽어야 한다.
하지만 복지가 사람을 더 정확하게 찾아내는 데서 멈춰서도 안 된다. AI와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위해 더 많은 발전설비와 전력망이 필요해지고, 사회가 그 비용을 함께 부담한다면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에너지 자산과 수익에도 시민이 참여할 길을 만들어야 한다. 비용은 넓게 분담하면서 자산은 좁게 소유하는 구조가 과연 공정한지 물어야 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는 가난한 사람을 더 정교하게 분류하는 사회가 아니다. 필요한 에너지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나아가 시민이 함께 자산을 형성하고 그 수익에도 참여할 수 있는 사회다. 전기요금 지원은 당장의 삶을 지킨다. 발전자산의 공동소유는 내일의 삶을 지탱할 새로운 기반을 만들 수 있다. 두 정책은 서로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한다.
폭염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복지도 기다려서는 안 된다. 복지의 다음 단계는 가난을 증명하는 절차를 더욱 정교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가난 때문에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고, 시민이 스스로 삶을 지탱할 경제적 기반을 함께 만드는 데 있다.
가난을 판정받는 시민에서, 자산을 함께 만드는 시민으로. 지원에서 소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