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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는 김누리 교수(사진=깨어있는시민과의동행 제공) |
“제도는 1등인데, 삶은 바닥입니다”
김누리 교수의 질문은 한국 사회의 역설을 정면으로 겨눈다. 국제 지표에서 한국은 ‘성공한 나라’로 분류된다. 그러나 내부의 삶은, 존엄과 안전과 신뢰가 허물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는 이것을 정치 스캔들이나 정권의 무능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이름을 붙였다. 사회적 파국.
우리는 제도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 제도 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관계가, 공동체가 부서지고 있다.
• 자살률 OECD 국가 중 1위, 20년 이상 지속
• 노인 자살률 세계 압도적 1위
• 아동·청소년 자살률 7년 연속 1위
• 출생률 세계 최저
■ 민주주의 성취와 ‘삶의 붕괴’가 동시에 일어나는 나라
김누리 교수는 국제 민주주의 연구기관인 스웨덴 예테보리대 연구소 자료를 인용했다. 2019년 발표된 세계 민주주의 순위. 176개국 중 한국은 12위. 그보다 앞선 국가는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 인구 수백만 명 규모의 소국들이었다.
김 교수는 말했다.
“인구 5천만이 넘는 국가 중에서는 사실상 한국이 1등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지표. ‘3050클럽’.
인구 5천만 이상,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국가.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그리고 한국. 전 세계 단 7개국. 그중 민주주의 지수 최고가 한국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에서 질문이 바뀐다.
“이렇게 민주적이고, 이렇게 부유한 나라에서 왜 사람들은 매일 죽어갑니까?”
■ 노인 자살, 세계 평균의 10배… “폐지 줍기가 생존 방식인 사회”
고립, 경제적 압박, 관계의 붕괴, 실패의 낙인, 도움 요청의 금기—이 요소들이 겹쳐질 때 개인은 ‘결정’이 아니라 ‘벼랑 끝에서 밀려나는 방식’으로 무너진다. 유독 두 집단에서 더 잔인하게 작동한다. 노인과 청소년.
김 교수는 단언한다.
“한국의 자살은 철학적 선택이 아닙니다. 생존의 벼랑 끝에서 밀려 떨어지는 겁니다.”
특히 노인 자살 문제는 한국 사회의 잔혹함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국은 2002년 이후 23년 연속 자살률 OECD 1위다.
그는 단언했다.
“이건 자살이 아닙니다. 사회적 타살입니다.”
노인 자살률, 세계 평균의 10배 특히 노인 자살률은 압도적이다. 유럽 국가 평균 5% 내외. 덴마크 3%, 프랑스 5%, 네덜란드 7%. 한국은 40~50%.
김 교수는 말했다.
“열 배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수치입니다.”
전문가들은 실제 수치는 더 높다고 본다. 가족들이 ‘자살’을 ‘노환’으로 신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잘 사는 나라에서 노인들이 폐지를 주워야 하는 사회는 문명국가가 아닙니다.”
노인의 삶이 무너질 때 그 사회가 잃는 것은 숫자가 아니다. 돌봄의 상식, 존엄의 기준, 공동체의 마지막 안전망이 함께 붕괴한다.
노인의 불행이 ‘개인 문제’로 처리되는 순간, 연대의 능력을 잃는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근육이 사라진다. 그 결과 공동체는 ‘시민’이 아니라 ‘경쟁자’들의 집합이 된다.
김 교수는 의사, 판검사, 고위 관료 집단의 행태를 이 구조의 결과로 본다. 공부 잘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교육, 그 끝에서 만들어진 왜곡된 엘리트.
그 결과
“지구상에서 이렇게 오만하고, 이렇게 미성숙한 엘리트는 드뭅니다.”
■ “임계장 이야기” — 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쉬운 사람들
김 교수는 『임계장 이야기』를 소개한다.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로, 현장에서 쓰이는 표현은 ‘고다자 임계장’이다.
• 고르기 쉽고
• 다루기 쉽고
• 자르기 쉬운 사람들
70대 노인들이 하루 일자리를 얻기 위해 수백 명씩 몰리고, 근육 상태를 만져보며 선별되고, 버티다 해고되는 장면들. 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읽으면서 여러 번 울었습니다.”
이 사례는 ‘사회적 파국’이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노인의 몸과 일터에서 이미 진행 중인 현실임을 보여준다.
■ 아이들도 죽어간다… “서울대 100개가 무슨 소용입니까”
비극은 노인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은 청소년 자살률이 매우 높다는 현실이 반복해 언급돼 왔다. 한국은 청소년 자살률 7년 연속 세계 1위. 지난해에만 221명의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산의 한 여고생이 학교 건물 20층에서 뛰어내린 사건이 있었지만, 교육 토론회에서조차 제대로 호명되지 않았다는 대목은 ‘침묵의 폭력’을 드러낸다.
김 교수는 당시 발언을 이렇게 전한다.
“서울대를 100개 만들든 무슨 소용입니까. 아이들이 매일 뛰어내리는데.”
그에게 문제는 ‘성적’이 아니라 사회가 아이들에게 삶을 지속할 이유를 주지 못하는 구조다.
■ “광장은 민주적이지만, 교실은 전쟁터입니다”
김 교수는 교육을 사회적 파국의 핵심 엔진으로 지목한다.
“광장은 민주적이지만, 교실은 전쟁터입니다.”
한국 학생의 81%가 고등학교 시절을 “전쟁터 같다”고 응답했다는 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그는 이 구조가 사회를 둘로 가른다고 말한다. 승자와 패자. 승자는 자신의 성공을 개인 능력으로만 오해하고, 패자는 삶 전체가 실패로 낙인찍힌다. 그 결과는 오만한 엘리트와 절망한 다수의 동시 탄생이다.
김 교수는 이렇게 정리한다.
“전교 1등을 양산하는 교육이 성숙한 인간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 민주주의는 있는데, 존엄은 없다
김 교수의 결론은 냉정하다.
“한국은 민주주의는 있지만, 존엄이 없는 사회가 됐습니다.”
권리는 외쳐지지만 책임은 사라지고, 성장은 이뤄졌지만 삶은 파괴되고, 체제는 민주적인데 일상은 폭력적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의 위기를 ‘정치의 부패’보다 더 무섭다고 말한다. 정치는 망가져도 사회가 건강하면 복구가 가능하지만, 사회가 무너지면 어떤 제도도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남기는 문장은 단순하다.
“민주주의는 투표로만 유지되지 않습니다. 함께 살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낼 때 유지됩니다.”
■ 기자의 시선 ― 민주주의 다음의 질문
김누리 교수의 강연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불편함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질문이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시민의 삶으로 이어지는가. 투표 이후, 촛불 이후, 탄핵 이후 우리는 무엇을 바꾸었는가. 불신·혐오·고립이 일상이 되면, 민주주의도 내부에서 썩는다. 김 교수의 강연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결론은 이것이다.
민주주의는 제도로 완성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사회로 완성된다. 민주주의가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면, 그 민주주의는 아직 미완성이다.
사회적 파국은 이미 시작됐다. 이제 남은 것은, 그 파국을 직시할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