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종건 칼럼연재 ⑫]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 ‘불허’와 ‘특혜’ 사이에는 다른 길이 없는가 ― 법을 낮추지 않고도 사람에게 가까이 가는 행정
    • 조종건  깨어있는시민과의동행 사무총장  본지 발행인
      조종건 
      · 깨어있는시민과의동행 사무총장
      · 본지 발행인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라는 질문은 처음부터 누군가를 ‘강도’로 지목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행정과 시민, 교회와 신자, 제도와 개인을 선과 악의 두 편으로 나누려는 것도 아니었다.

      예수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내가 오래 붙잡아 온 것은 다른 장면이다. 제사장도 보았다. 레위인도 보았다. 사마리아인도 보았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멈추었다. 가까이 갔다. 상처를 살폈다. 자기 것을 내놓았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므로 이 연재의 중심 질문은 “누가 강도인가”가 아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우리 앞에 있을 때 누가 멈추는가. 누가 가까이 가는가. 누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길을 찾는가.

      이 질문은 교회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행정에도, 정치에도, 시민사회에도, 언론에도, 그리고 글을 쓰는 나 자신에게도 돌아온다. 모든 갈등에는 강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갈등 속에서 우리는 이웃이 될 수 있다.

      갈등은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모습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과 행정의 의견이 충돌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개발과 보전이 충돌할 수 있다. 개인의 권리와 공익이 충돌할 수 있다. 더 어려운 경우도 있다. 어느 한쪽이 사익이고 다른 한쪽이 공익인 것이 아니라 공익과 공익이 충돌하기도 한다.

      앞서 살펴본 박종서 목사의 비영리 아동복지시설 개발행위허가 문제도 그렇게 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에게 더 나은 돌봄과 생활공간을 제공하려는 것은 중요한 공익이다. 동시에 산림을 보전하고 재해를 예방하며 안전한 진입도로와 배수시설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공익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단순히 ‘아이들이냐 산림이냐’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아동복지를 이야기한다고 환경보전의 가치를 낮출 수도 없고, 환경을 이야기한다고 아동복지의 가치를 가볍게 볼 수도 없다. 행정이 해야 할 어려운 일은 바로 이것이다. 공익과 공익 사이에서 법과 사실을 가지고 균형점을 찾는 일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갈등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그 갈등을 얼마나 공정하고 충분하게 다루었느냐이다.

      도시계획위원회에도 고민의 흔적은 있었다

      앞서 살펴본 회의록을 보면 도시계획위원회가 아무런 이유 없이 신청을 부결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위원들은 산림과 경사도, 사면 안정성, 진입도로, 배수, 보행 안전 등의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아이들이 이용할 시설이라면 안전 문제를 일반 시설보다 더욱 엄격하게 살펴야 한다. 위원장이 사회복지적 측면을 고려해 곧바로 불가로 결론 내리기보다 보완 후 재심의하는 방안을 언급한 흔적도 있다. 보전녹지를 줄이고 경사가 완만한 방향으로 위치를 조정하는 가능성도 논의됐다.

      그러나 논의 끝에 일부 보완만으로 해결할 수준이 아니라는 판단이 우세해졌고, 새로운 입지나 재설계 후 다시 신청하는 방향으로 부결 의견이 모였다. 

      여기까지는 도시계획위원회의 판단 영역이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서 이 칼럼의 질문이 시작된다. 재설계의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다시 심의하는 길은 정말 불가능했는가.

      ‘왜 안 되는가’에서 ‘무엇을 고치면 되는가’로

      사면이 위험하다면 전문기관의 안정성 검토를 요구할 수 있다. 진입도로의 경사가 문제라면 설계를 변경해 위험을 낮출 수 있는지 검토할 수 있다. 아이들의 보행동선이 위험하다면 차량과 보행자의 동선을 분리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배수가 문제라면 수리계산과 최종 방류계획을 다시 검증할 수 있다. 보전녹지 훼손이 지나치다면 시설 위치나 규모를 조정해 훼손면적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실제로 회의 과정에서도 사면 안정성에 대한 추가적인 전문가 검토와 진입도로 계획 수정 가능성이 언급됐다. 물론 모든 문제를 보완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설계를 변경해도 안전을 확보할 수 없다면 불허해야 한다. 산림 훼손이 허용 가능한 수준을 넘어선다면 역시 허가해서는 안 된다. 아동복지라는 선한 목적이 안전기준이나 환경기준을 면제해주는 이유가 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행정의 질문은 더욱 정교해야 한다. “왜 안 되는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엇을 고치면 가능한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쳐도 안 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위험한 것은 정확하게 위험하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고칠 수 있는 위험과 고칠 수 없는 위험을 구별하는 것 역시 행정의 능력이다.

      서류에는 ‘60명’이 있지만 현장에는 60명의 아이가 있다

      행정에는 숫자가 필요하다. 평균경사도 19도, 부지 3,002㎡, 약 12m의 사면, 시설 이용자 60명. 숫자와 도면이 없다면 객관적인 행정도 어렵다. 그러나 행정의 마지막에는 사람이 있다. 경사도 19도 뒤에는 그 길을 오갈 아이들이 있고, 3,002㎡라는 면적 뒤에는 아이들이 생활할 공간이 있다. ‘노유자시설’이라는 행정적 용어 뒤에는 돌봄을 필요로 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있다. 그래서 현장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서류가 틀렸기 때문이 아니다.

      서류가 말하지 못하는 것을 현장이 말하기 때문이다.

      실제 도로의 폭과 경사는 어떤지, 주변에는 어떤 시설이 있는지, 배수시설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차량과 아이들의 동선을 어떻게 분리할 수 있는지, 신청인이 제시하는 안전대책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를 현장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당사자가 항상 옳기 때문에 듣는 것이 아니다. 행정이 무엇을 판단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기 위해 듣는 것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가장 먼저 한 일

      선한 사마리아인은 멀리서 쓰러진 사람을 바라보며 좋은 말을 한 사람이 아니다. 성서는 그가 “가까이 가서” 상처를 돌보았다고 기록한다. 이 ‘가까이 감’이 중요하다. 가까이 갔기 때문에 상처를 볼 수 있었다. 상처를 보았기 때문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이 필요한지 알았기 때문에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내놓을 수 있었다.

      오늘의 행정에서도 나는 이 ‘가까이 감’을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개발행위허가 신청인’이다. 도면으로 보면 ‘보전녹지 개발’이다. 통계로 보면 ‘60명’이다. 그러나 가까이 가면 사람이 보인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이름으로 산림을 훼손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산림을 보호하면서도 아동복지라는 공익을 실현할 합법적인 대안이 존재하는지를 충분히 검토해 보자는 것이다.

      대안이 없다면 불허해야 한다. 그러나 대안이 있다면 그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해 보는 것 역시 행정의 역할이 아닐까. 이것이 내가 말하는 ‘사람에게 가까이 가는 행정’이다.

      법은 자물쇠인가, 길을 찾는 기준인가

      행정은 먼저 물어야 한다. “법적으로 허가할 수 있는가.” 당연한 질문이다. 법률과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허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공익을 담당하는 행정이라면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질 수 있다. “법의 목적을 지키면서 이 공익도 실현할 방법은 없는가.”

      법은 시민의 선한 의도를 무조건 실현시키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시민의 시도를 좌절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안전과 환경, 공공복리를 지키면서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조화시키는 것이 법치행정의 중요한 과제다.

      따라서 좋은 행정은 무조건 허가하는 행정도 아니고 무조건 불허하는 행정도 아니다. 왜 안 되는지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고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며, 고쳐도 안 되는 것은 왜 안 되는지를 객관적인 근거로 시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행정이다.

      박종서 목사에게 특혜를 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동복지시설이라고 환경규제를 면제하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법대로 심사하자. 다만 끝까지 제대로 심사하자. 현장을 보고,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객관적인 자료를 확인하고, 안전상의 위험은 전문가의 판단을 받고, 보완 가능한 문제와 불가능한 문제를 구별하고, 아동복지와 환경보전이라는 두 공익을 충분히 비교한 뒤 판단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법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법의 목적에 더 충실한 행정일 수 있다.

      이웃이 된다는 것은 상대방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이웃’이라는 말의 의미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웃이 된다는 것은 상대방의 요구를 무조건 받아주는 것이 아니다. 공무원이 신청인에게 유리하도록 법을 해석해주는 것도 아니다. 기준에 맞지 않는 사업을 인정으로 허가해주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것은 이웃사랑이 아니라 특혜가 될 수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보여준 이웃의 핵심은 무원칙한 동정이 아니라 책임 있는 가까이 감이었다.

      행정의 언어로 바꾸면 그것은 경청이고, 사실확인이며, 충분한 설명이고, 가능한 대안에 대한 검토다. 그래서 ‘이웃이 되는 행정’과 ‘특혜를 주는 행정’은 전혀 다르다. 특혜는 원칙을 특정인을 위해 낮추는 것이고, 이웃이 되는 행정은 같은 원칙 안에서 가능한 길이 있는지를 끝까지 살펴보는 것이다. 바로 이 차이가 중요하다.

      ‘강도’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찾는 질문

      다시 이 연재의 제목으로 돌아간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 이 질문의 방점은 처음부터 ‘강도’가 아니라 ‘이웃’에 있었다. 누가 나쁜 사람인지 찾아내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누군가를 가해자로 지목하기 위한 질문도 아니다. 우리 앞에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있을 때 나는 지나갈 것인가, 멈출 것인가. 멀리서 판단할 것인가, 가까이 가서 사실을 볼 것인가. 규정을 설명하는 것으로 끝낼 것인가, 원칙 안에서 가능한 길이 있는지 함께 살펴볼 것인가. 그 질문이다.

      그래서 이 질문은 행정에만 향하지 않는다. 교회에도 향한다. 시민사회에도 향한다. 정치에도 향한다. 언론에도 향한다. 언론 역시 예외가 아니다. 행정에 객관적인 근거를 요구한다면 언론 자신도 객관적인 사실 위에서 질문해야 한다. 신청인의 주장이라고 무조건 믿어서도 안 되고, 행정기관의 판단이라고 무조건 의심해서도 안 된다. 확인된 사실과 당사자의 주장, 그리고 필자의 판단을 구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은 결국 이 글을 쓰는 나에게도 돌아온다. 나는 충분히 가까이 가서 보았는가.

      갈등은 정상이다, 그러나 이웃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은 정상이다. 시민과 행정이 다툴 수 있다. 개발과 환경이 충돌할 수 있다. 서로 다른 공익이 맞설 수도 있다. 그 갈등을 법과 절차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그러나 갈등이 정상이라는 사실은 그 과정에서 누구도 힘들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행정심판 과정에서 지치고, 어떤 사람은 소송비용 앞에서 돌아선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오랫동안 해온 공익활동을 이어갈 공간을 마련하려다 ‘불허’라는 결정 앞에 멈춰 서기도 한다.

      그 사람이 항상 옳다는 뜻은 아니다. 그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우리 앞에 있다면 물어볼 수 있다. 사실은 충분히 확인되었는가. 그의 이야기는 충분히 들었는가. 고칠 수 있는 것과 고칠 수 없는 것을 구별했는가. 다른 합법적인 길은 정말 없는가.

      그리고 모든 검토 끝에 불허해야 한다면, 그때는 분명하게 불허해야 한다. 그러나 시민이 그 이유를 이해하고 다음 선택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행정이다. 법을 낮추는 행정이 아니라 사람에게 가까이 가는 행정. 원칙을 버리는 행정이 아니라 원칙 안에서 길을 찾아보는 행정. ‘불허’와 ‘특혜’ 사이에는 바로 그 길이 있을 수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누가 강도인지를 찾아내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누가 이웃이 될 것인지를 묻는 이야기다. 그 질문은 2천 년 전 여리고 길에서 끝나지 않았다. 오늘 도시계획위원회 회의실에서도, 교회에서도, 언론에서도, 그리고 시민의 삶 속에서도 계속된다. “너는 누구의 이웃이 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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