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종건 칼럼연재 ⑰회]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강도 만난 자 곁에 끝까지 남는 사람 ― 《Citizen Jane》이 묻는 시민의 책임
    • 조종건  깨어있는시민과의동행 사무총장 본지 발행인
      조종건
      | 깨어있는시민과의동행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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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배심원이라면 어떻게 판단하겠는가. 한 노인이 자신의 집에서 참혹하게 살해됐다. 집 안은 누군가 침입해 물건을 훔쳐간 것처럼 어질러져 있었다. 그러나 이상했다. 값나가는 물건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단순한 강도사건(burglary)처럼 보였지만 무엇인가 맞지 않았다. 살해된 사람은 88세의 거트루드 매케이브(Gertrude McCabe)였다. 그리고 그녀의 조카 제인 알렉산더(Jane Alexander) 곁에는 당시 한 남자가 있었다. 톰 오도널(Tom O'Donnell)이었다.

      1. 한 노인의 죽음, 그리고 한 남자에 대한 의심

      톰은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제인은 그를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사실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톰은 자신에게 거액의 신탁재산(trust fund)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제인에게 돈을 빌리게 하고 투자 명목으로 거액을 가져갔다. 제인은 집에 2차 담보(second mortgage)까지 설정했다. 돈은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 날 톰도 사라졌다. 여기까지라면 한 남자의 사기(fraud) 사건일 수 있다.

      그러나 제인은 한 가지 질문을 버리지 않았다. “내 이모의 죽음과 이 남자는 정말 아무 관계가 없는가.” 이 질문에서 《Citizen Jane》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흥미로운 것은 제인이 처음부터 톰을 살인범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반대였다. 그녀는 상당 기간 톰을 믿었다. 경찰이 그가 자신을 속였다고 설명해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신이 사랑하고 신뢰했던 사람이 자신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믿음과 사실은 다른 문제였다. 객관적인 사실(objective facts)이 하나씩 그녀의 믿음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2. 669마일이 무너뜨린 알리바이

      살인 당시 톰에게는 돈이 필요했다. 거트루드가 죽으면 제인이 재산을 상속(inheritance)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톰에게는 그 돈을 통해 자신의 재정문제를 해결할 동기(motive)가 생길 수 있었다. 그러나 동기가 있다고 해서 범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다음 질문이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톰은 어디에 있었는가. 톰은 살해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그의 알리바이(alibi)였다.

      그런데 렌터카 기록을 확인하면서 이상한 숫자 하나가 나타났다. 669마일.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톰이 주장한 이동경로만으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주행거리였고, 살인현장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경로와 놀라울 정도로 맞아떨어졌다. 여러분이 배심원이라면 여기에서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우연인가. 아니면 그가 실제로 살인현장에 다녀왔다는 흔적인가. 그러나 형사재판(criminal trial)은 “수상하다”는 느낌만으로 사람을 처벌하지 않는다. 의심(suspicion)과 입증(proof)은 다르다. 바로 이것이 형사사법의 출발점이다.

      3. 의심은 있었지만, 증거가 부족했다

      경찰도 톰을 의심했다. 그러나 의심한다고 곧바로 살인죄로 기소(indictment)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직접 목격자(eyewitness)가 없었다. 지문(fingerprint)이나 머리카락 같은 결정적 물증(physical evidence)도 부족했다. 살인무기(murder weapon) 역시 톰을 곧바로 범행과 연결해주지 못했다. 검사(prosecutor)가 법정에서 배심원에게 입증해야 하는 것은 “이 사람이 의심스럽지 않습니까?”가 아니다. “합리적 의심을 넘어(beyond a reasonable doubt) 이 사람이 범인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까?”이다. 당시에는 그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웠다.
      사건은 멈춘 듯 보였다. 시간이 흘렀다. 수사기관에게는 수많은 사건 가운데 하나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제인은 멈추지 않았다.

      4. 제인에게 있었던 것은 질문과 기록뿐이었다

      여기서부터 나는 이 이야기를 단순한 범죄영화로 보지 않는다. 제인은 경찰관도 아니었다. 검사도 아니었다. 변호사도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수사권(investigative authority)도, 강제수사권(compulsory investigative powers)도 없었다.

      그녀에게 있었던 것은 몇 가지뿐이었다. 질문, 기록,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시간이었다. 제인은 경찰기록(police reports)을 읽었다. 재정자료(financial records)를 살폈다. 전화기록(phone records)을 확인했다.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들었다. 사건 당시의 작은 사실들을 하나씩 다시 맞추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서 권력이 없는 시민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 가운데 하나를 본다. 기록(record)이다. 시민에게 체포권(power of arrest)은 없어도 날짜를 기록할 수는 있다. 압수수색권(search and seizure authority)은 없어도 공문을 보관할 수는 있다. 증인을 강제로 소환(subpoena)할 수는 없어도 누가 언제 무엇을 말했는지 남길 수 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시점에 나온 진술들을 비교해 모순된 진술(inconsistent statements)을 찾아낼 수 있다. 무엇보다 시간이 흘러 모두가 사건을 잊으려 할 때 질문을 다시 꺼낼 수 있다. “그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5. 범인만 알고 있을 법한 사실들

      시간이 지나면서 중요한 사실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톰은 거트루드의 시신이 발견되기 전에 이미 한 친척에게 그녀가 죽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것은 단순한 말 한마디가 아니었다. 아직 일반인이 알기 어려운 시점에 그는 어떻게 거트루드의 죽음을 알고 있었는가. 또 하나가 있었다. 톰은 살해방법과 관련해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세부사항(nonpublic detail)을 알고 있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수사에서 이런 정보는 매우 중요하다. 범행을 저지른 사람만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정보를 guilty knowledge, 즉 ‘범인만 알고 있을 법한 지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사건현장의 개인수표기록(checkbook register)을 둘러싼 정황도 문제였다. 초기 사건현장 사진과 이후 확인된 기록 사이에 설명이 필요한 변화가 있었다. 누군가 사건현장의 상황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무엇인가를 감추거나 되돌려놓으려 한 것은 아닌가.

      이제 질문은 달라진다. 처음에는 “톰이 범인일 가능성이 있는가?”였다. 그러나 여러 독립된 사실(independent facts)이 한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하면서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이 모든 사실을 우연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가?”

      6. 작은 증거들이 한 사람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형사재판에서 정황증거(circumstantial evidence)는 흔히 오해받는다. 직접 목격자가 없으면 약한 사건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정황증거라는 말 자체가 약한 증거라는 뜻은 아니다. 작은 사실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같은 결론을 가리킬 때 정황증거는 오히려 강력해질 수 있다.

      다시 배심원이 되어보자. 톰에게는 돈이 필요했다. 거트루드의 죽음은 제인에게 상속 가능성을 만들었다. 렌터카에는 669마일이라는 설명이 필요한 주행거리가 남아 있었다. 톰은 시신이 발견되기 전에 거트루드의 죽음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말을 했다. 그는 일반인이 알기 어려운 범행의 세부사항까지 알고 있었다. 사건현장의 기록에서도 이상한 정황이 발견됐다.

      각각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반론(counterargument)은 가능하다. 669마일은 다른 곳을 다녀온 거리일 수도 있다. 돈이 필요했다고 모든 사람이 살인을 하는 것도 아니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검사가 배심원에게 묻는다면 질문은 달라진다. “여러분은 이 모든 사실이 서로 아무 관계가 없는 우연이라고 믿습니까?” 이것이 정황증거의 힘이다. 하나의 거대한 증거가 범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개의 작은 화살표가 독립적으로 같은 사람을 가리킨다.

      7. 이번에는 제인이 법정에서 심문받았다

      마침내 사건은 법정으로 갔다. 제인은 검찰 측 핵심증인(key prosecution witness)이 되었다. 그러나 법정은 제인에게도 가혹했다. 변호인(defense counsel)은 그녀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공격해야 했다. 왜 그렇게 집요하게 톰을 추적했는가. 복수(revenge)때문이 아니었는가. 톰에게 돈을 잃었기 때문에 분노한 것 아닌가. 경찰도 처음에는 제인을 의심하지 않았는가. 거트루드가 죽으면 제인 역시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것 아닌가. 제인 자신에게도 금전적 동기(financial motive)가 있었던 것 아닌가. 당신이 사람들을 만나고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증인들의 기억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닌가.

      이것이 반대신문(cross-examination)이다. 듣기에 잔인할 수 있다. 그러나 형사재판에서 변호인의 역할은 검찰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검찰의 증거를 흔들고, 증인의 신빙성(credibility)을 검증하고, 다른 설명이 가능한지를 묻는 것이다. 그 과정을 견뎌내지 못하는 유죄라면 국가가 한 사람을 감옥에 보내서는 안 된다. 그래서 형사재판에서 반대신문은 진실을 방해하는 절차가 아니라, 때로는 진실을 검증하는 절차다.

      8. 분노가 아니라 사실로 말해야 했다

      제인이 법정에서 해야 할 일은 분노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facts)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톰을 얼마나 미워하게 되었는지는 부차적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녀의 감정이 아니었다. 렌터카 기록이었다. 전화기록이었다. 재정자료였다. 증언이었다. 사건 당시부터 존재했던 객관적 자료(objective evidence)였다.

      여기서 《Citizen Jane》은 시민운동에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 억울하다고 외치는 것과 억울함을 입증하는 것은 다르다. 목소리가 크다고 사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랫동안 싸웠다고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다.

      결국 남는 것은 질문이다. “무엇으로 입증할 것인가.”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옳다”는 확신보다 “이것이 사실이다”라고 보여줄 수 있는 기록이 강하다. 결국 배심원(jury)은 톰 오도널에게 1급 살인(first-degree murder) 유죄평결(guilty verdict)을 내렸다. 그에게는 25년에서 종신형(25 years to life)이 선고됐다. 13년 가까이 이어진 싸움의 끝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인의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9. 자신의 상처에서 다른 피해자의 곁으로

      자신의 사건이 해결됐다면 제인은 이제 돌아가도 됐다. 그녀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 재산을 잃었다. 가족을 잃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 사건을 붙들고 살아야 했다. 누구도 그녀에게 더 이상의 책임을 요구할 수 없었다. “나는 할 만큼 했다.” 그렇게 말해도 누구도 비난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제인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다른 살인 피해자 가족들과 함께 ‘Citizens Against Homicide’ 단체를 만들고, 해결되지 않은 살인사건(cold cases)과 피해자 가족들을 돕기 시작했다. 나는 바로 이 지점이 《Citizen Jane》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개인적 고통(private pain)이 시민의 책임(public responsibility)으로 변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제인은 처음부터 시민운동가(civic activist)가 아니었다. 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질문을 포기하지 않았던 평범한 시민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문제가 해결된 뒤에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 “내 억울함을 해결해 달라.”에서 “나와 같은 억울함을 겪는 사람이 다시 생기지 않게 하자.”로 넘어갔다. 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민운동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10. 오늘의 기름과 포도주는 ‘기록’일 수 있다

      여기서 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다시 생각한다. 예수께서는 강도 만난 사람을 본 제사장과 레위인이 왜 지나갔는지를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둘 다 보았다. 그리고 지나갔다. 사마리아인도 보았다. 그러나 그는 멈췄다. 가까이 갔다. 상처를 돌봤다. 그리고 끝까지 책임졌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우리는 너무 자주 ‘착한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로만 읽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강도 만난 사람 곁에 잠시 서 있는 것과 그 사람이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지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사마리아인이 들고 가야 할 기름과 포도주의 모습도 달라질 수 있다. 정보공개청구(freedom of information request)일 수 있다. 공문(document) 한 장일 수 있다. 사진 한 장일 수 있다. 녹취(recording)일 수 있다. 전화기록일 수 있다. 수년 동안 정리한 사건일지(timeline)일 수도 있다. 누군가가 버리지 않고 보관한 기록 하나가 몇 년 뒤 한 사람의 억울함을 밝힐 수도 있다. 누군가가 적어놓은 날짜 하나가 거짓말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누군가가 보관한 사진 한 장이 사라질 뻔한 사실을 다시 법정으로 불러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기록은 단순한 행정행위가 아니다. 때로 기록은 이웃사랑의 기술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경계도 필요하다. 시민의 집요함(persistence)이 정의를 향하려면 반드시 자기검증(self-examination)이 따라야 한다. 처음부터 누군가를 범인이라고 확정해놓고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만 수집한다면 그것은 진실을 찾는 일이 아니다. 시민은 경찰을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다. 검사를 대신하는 사람도 아니다. 판사를 대신해 먼저 유죄를 선고해서도 안 된다.

      시민이 해야 할 일은 판결을 먼저 내리는 것이 아니라 판단할 수 있도록 사실을 끝까지 살아 있게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Citizen Jane》을 보며 한 문장에 오래 머물게 된다. 시민의 힘은 판결을 대신 내리는 데 있지 않다. 판결할 수 있도록 사실을 끝까지 살아 있게 만드는 데 있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신앙의 문제이기도 하다. 제인의 행동을 단순히 수사·법률·시민운동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타인의 고통을 본 사람이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라는 신앙적 질문으로 확장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도 우리는 말할 수 있다. “누군가 처리하겠지.” “경찰이 알아서 하겠지.” “법원이 판단하겠지.” “나는 관련 없는 사람이다.” 제사장과 레위인에게도 지나가야 할 나름의 이유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그 이유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단 하나다. 누가 멈추었는가.

      오늘 우리 사회의 강도 만난 자는 길가에만 쓰러져 있지 않다. 행정절차 속에도 있다. 수사기록 속에도 있다. 재판기록 속에도 있다. 학교에도 있다. 아파트에도 있다. 노동현장에도 있다. 금융채무 속에도 있다. 그리고 때로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거대한 영웅이 아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기록하겠습니다.” “그 문서를 다시 보겠습니다.”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질문하겠습니다.”라고 말해주는 한 사람일 수 있다. 예수는 율법교사에게 물었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어 주었느냐.” 오늘 같은 질문을 다시 던져본다. 사건이 끝나도 떠나지 않는 사람. 자료를 버리지 않는 사람. 사실을 확인하는 사람. 권력 앞에서 질문하는 사람. 자신의 사건이 해결된 뒤 다른 피해자의 곁으로 가는 사람. 그 사람이 아닐까.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니다. 강도 만난 자의 곁에 끝까지 남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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