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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⑳회에서 《In the Name of the Father》를 통해 물었다. 검사가 유죄를 확신하는 순간, 누가 무죄를 의심하는가. 그런데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검사는 수사(investigation)와 공소제기(prosecution)를 통해 한 사람의 자유와 명예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가가 법률에 따라 부여한 권한이다.
그렇다면 그 권력은 누구의 것인가. 검찰권(prosecutorial power)은 누구의 것인가. 검사의 것인가. 검찰조직의 것인가. 법무부장관의 것인가. 대통령의 것인가. 아니다. 검찰권은 시민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에 맡긴 공권력(public power)이다.
현행 검찰청법 제4조는 검사를 ‘공익의 대표자(representative of the public interest)’로 규정한다. 동시에 검사는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부여된 권한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두고 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검찰권의 가장 어려운 문제가 시작된다.
사건을 맡는 것과 사건을 소유하는 것은 다르다
검사는 사건을 맡는다. 그러나 사건을 소유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 사건에서 진실을 찾아야 한다”와 “이것은 내가 반드시 이겨야 할 사건이다”는 전혀 다른 말이다. 전자는 책임(responsibility)이다. 후자는 소유(possession)가 될 위험이 있다.
수사와 공소가 개인의 실적, 중요사건 처리경력, 조직 내부의 평가와 연결될수록 더욱 경계해야 한다. 사건이 한 시민의 자유와 피해자의 회복을 다루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성공해야 하는 사건’으로 변한다면 자신의 처음 판단과 충돌하는 증거를 받아들이기도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피고인에게 유리한 새로운 증거(exculpatory evidence)가 나타났을 때 검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신의 공소를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판단부터 다시 의심해야 하는가. 피고인의 무죄(acquittal)가 검사의 패배가 되는 순간, 검사는 진실을 찾는 사람에서 자신의 판단을 지키는 사람으로 변할 위험이 있다. ⑳회에서 던졌던 질문이 여기에서 다시 돌아온다. What if I am wrong? 만약 내가 틀렸다면?
정의가 ‘존재’에서 ‘소유’로 바뀌는 순간
나는 이것을 존재(being)와 소유(having)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검사의 존재 이유는 국가의 형벌권(punitive power of the state)을 법률에 따라 행사하여 범죄로부터 공동체와 피해자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무고한 사람이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되지 않도록 법과 증거에 따라 판단하는 데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건이 승진과 명예, 영향력과 권력을 축적하는 자원이 되는 순간 관계는 달라진다. 정의를 위해 권력을 사용하는 것과 권력을 위해 정의를 사용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래서 검찰개혁(prosecutorial reform)에서 인사와 평가제도를 빼놓을 수 없다. 무엇을 ‘잘한 검사’라고 평가할 것인가. 구속을 많이 한 검사인가. 기소를 많이 한 검사인가. 유죄판결(conviction)을 많이 받아낸 검사인가. 아니면 잘못된 수사를 발견했을 때 멈추고, 무죄 가능성을 확인하고, 자신의 처음 판단까지 수정할 수 있는 검사인가.
2026년 마련된 공소청법안은 이 문제와 관련된 제도적 장치를 포함하고 있다. 법무부가 공개한 법안에는 검사 근무평정에 항고(appeal against non-prosecution)·재항고(re-appeal)와 재정신청(application for adjudication)의 인용률과 인용사유, 무죄판결률과 무죄사유 등을 합리적으로 반영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거나 공정성이 우려되는 사건의 구속영장 청구와 공소·상소 여부 등을 심의하는 공소청 사건심의위원회(case review committee)도 두도록 했다. 검찰개혁이 조직의 간판을 바꾸는 데서 끝날 수 없는 이유다.
사건보다 더 위험한 것은 정보의 소유다
검찰권에는 또 하나의 막강한 힘이 있다. 정보(information)다. 수사기관은 시민이 평생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을 수 있는 정보까지 적법한 수사절차와 강제처분을 통해 확보할 수 있다. 금융거래(financial transactions), 통신자료(communications data), 인간관계, 진술, 압수물과 디지털 자료 등이 사건기록에 들어갈 수 있다.
특히 압수·수색(search and seizure)과 같은 강제수사(compulsory investigation)는 개인의 사생활과 기본권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반드시 물어야 한다. 국가가 수사를 통해 알게 된 정보는 누구의 것인가. 그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의 것인가. 검찰조직의 것인가. 정권의 것인가. 아니다. 범죄혐의를 규명하고 형사사법절차를 수행하기 위해 법률이 허용한 범위에서 국가가 보유·관리하는 정보일 뿐이다.
그래서 한국 정치에서 흔히 사용되는 이른바 ‘검찰 캐비넷’이라는 표현도 정치적 구호만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 실제 비공개 수사정보가 정치적 목적으로 보관·유출·활용됐는지는 개별 사안에서 구체적 증거로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제도적 질문은 분명하다. 수사를 위해 수집한 정보가 언젠가 누군가를 움직이고 침묵시키고 공격하는 권력의 자산으로 변하지 않도록 우리는 어떤 통제장치(accountability mechanisms)를 가지고 있는가. 누가 자료에 접근했는가. 누가 열람했는가. 누구에게 보고했는가. 얼마나 보관하는가. 수사목적이 끝난 자료는 어떻게 처리하는가. 외부로 유출됐다면 누가 책임지는가. 검찰개혁은 이런 질문에도 답해야 한다.
강한 검찰과 통제받는 검찰은 반대말이 아니다
여기서 검찰권 자체를 악으로 보는 오류에도 빠져서는 안 된다. 권력형 비리(abuse-of-power corruption)와 부패범죄(corruption crimes), 경제범죄(economic crimes)와 조직범죄(organized crime)에 대응하려면 국가에는 실효성 있는 형사사법기관(criminal justice institutions)이 필요하다.
범죄를 제대로 수사하지 못하고 피해자(victim)를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 역시 정의로운 국가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문제는 검찰이 강하냐 약하냐가 아니다. 그 힘을 누가, 어떤 절차로, 누구를 위해 행사하며, 잘못 사용했을 때 누가 멈추게 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법무부는 2026년 10월 2일 시행 예정인 제도개편에 맞춰 검찰청을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형사사법체계의 후속 법령을 정비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를 수사와 기소의 제도적 분리라는 방향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조직을 둘로 나눈다고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권한의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권한을 통제하는 구조다. 검찰청이 공소청(Prosecution Office)으로 바뀌더라도 사건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는 문화가 남는다면 문제가 남는다. 수사기관을 별도로 만들더라도 수사정보가 권력의 자산처럼 관리된다면 문제가 남는다. 간판이 바뀌어도 권력의 주인이 바뀌지 않는다면 개혁은 완성되지 않는다.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누구인가
여기에서 다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돌아가 보자. 검찰의 수사를 받는 사람이 모두 강도 만난 자인 것은 아니다. 범죄에는 실제 피해자가 있다.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피의자(suspect)나 피고인(defendant)의 권리만 이야기하는 것도 정의가 아니다. 그래서 검찰권은 필요하다.
그러나 국가가 사람을 잘못 지목했을 때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때 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결론을 끝까지 관철하는 검사가 아니다. “혹시 우리가 틀렸는가”라고 다시 묻는 검사다. 새로운 증거를 다시 보는 사람.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실도 외면하지 않는 사람. 합리적 의심(reasonable doubt)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 자신이 내린 판단이라도 잘못됐다면 수정하는 사람. 그리고 그런 용기가 특별한 한 사람에게만 요구되지 않도록 제도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 사람도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다.
검찰권은 누구의 것인가
2026년 한국의 형사사법제도는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검찰청이라는 이름을 없애고 공소청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보다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검찰권은 누구의 것인가. 검사의 것이 아니다. 검찰조직의 것도 아니다. 법무부장관의 것도 아니다. 대통령의 것도 아니다. 어느 정당의 것도 아니다. 시민의 것이다. 시민이 범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피해자를 구하고, 동시에 무고한 사람이 국가권력에 의해 쓰러지지 않도록 국가에 위임한 권력(delegated public power)이다.
그래서 검사는 정의를 소유하는 사람이 아니다. 정의를 위해 시민이 맡긴 권한을 잠시 행사하는 사람이다. 그 차이를 잊는 순간 공권력은 봉사(public service)에서 지배(domination)로, 책임(responsibility)에서 특권(privilege)으로, 존재(being)에서 소유(having)로 변하기 시작한다.
⑳회에서 우리는 물었다. “검사가 유죄를 확신하는 순간, 누가 무죄를 의심하는가.” ㉑회에서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남기고 싶다. “검찰을 누가 갖느냐”가 아니라, “검찰권이 끝까지 시민의 것으로 남아 있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