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하식 박사, 글로 남긴 ‘뉴질랜드’ 풍경(5회)】   돌산을 품은 초목지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5회)----------

        그래서 물으니 똑같은 맥락이라며 가이드는 대뜸 지난날 미국 쇠고기 수입 파동을 들먹였다. 말하자면 그는 촛불시위 옹호론자였는데 일행 가운데 혹시 동참한 분이 있느냐고 물었다. 만약 무관심했다면 내 삶에 직결된 사안에 무임 승차한 거라고 단정했다. 중앙부처 간부 공무원 출신치고는 열린 사고의 소유자. 여기 교민들도 그 취지에 공감해 내내 마음의 응원을 보냈다고 덧붙였다. 직격탄은 곧바로 뉴질랜드 정부에서 한국산 소고기 라면의 수입을 전면 금지해버린 조치. 굳이 책임소재를 따지고 들어가면 신의 섭리를 거스른 데 있단다. 풀을 뜯어 먹고 사는 동물들한테 어쩌자고 양의 내장을 먹이고 소뼈를 갈아 마시게 하느냐는 추궁이다. 그간 검증된 결과에 의하면 잔류 항생제가 주요인. 그것이 고기에 낀 콜레스테롤을 녹여 적당한 마블링의 수치를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되었다는 논지다. 사료에 불순물을 섞을 경우 맛의 균형이 깨진다는 설명이었다.

        중간에 Crossing Laying Road에 내렸다. 가이드는 유명한 카푸치노 커피의 원산지에 왔다며 아이스크림을 권했다.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간 한국인 관광객들. 뉴질랜드 화폐로 3불(약 2,500원)이라기에 조심스레 카드를 내밀었더니 군말 없이 결제했다. 과연 신선하고 상큼한 우유 맛에 반할 만했다. 잠시 반경을 좁혀 주위를 돌았다. 눈길을 끈 건 길 건너 동네 한가운데 Museum. 이처럼 선진 국민일수록 문화시설을 보존하고 아끼는 법이다. 호기심이 발동해 야금야금 걸어가니 간격을 두고 지은 개인 주택가 끄트머리에는 허름한 목재소였고 아담한 학교가 있었다. 반가운 건 늘 교회당이어서 다가가 안내판을 보니 The Anglican Parish St. Mary's Church, 다행히 첨탑에 매단 십자가 크기가 너무 작아서 마리아의 존재가 크게 느끼지는 않았다. 이 또한 여행 중 얻는 묘미 가운데 낯선 일상을 보는 즐거움이랄까. 시간이 넉넉하면 저만치 외곽까지 돌아보고 싶었지만 이쯤에서 꾹 참는 수밖에. 도로변을 지키는 가로수의 잔가지들이 맘껏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간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소박한 경험치를 쌓고 떠난 지점의 이정표는 Winchester 11km. 그야말로 맘껏 어우러진 수목들이 자유를 누리는 공간이었다. 큰 분재 같은 잔솔을 감싸고 자란 갈대숲이 그토록 무성할 수는 없었다. 초목지를 주무대 삼아 서 있는 가축의 보호수는 이제 흔한 풍경화. 널리 퍼진 늪지대인데도 군데군데 얕은 연못을 따라 평야 지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짐작건대 축축한 구릉지에 담장을 두른 모양새가 흡사 수중 장애물 경기장 같았다. 간간이 보이는 깊숙이 파인 생채기들. 겨우내 설산에서 녹아내린 빙하를 견디지 못하고 휩쓸린 걸까? 허옇게 쌓인 눈인 듯 해맑은 하늘인 듯 분간이 가지 않는 곳도 있었다. 그 산자락에서 흩날리는 눈꽃이나 코앞에서 웃음 짓는 노랑꽃이나 싱그럽긴 마찬가지. 쌀쌀한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눈 쌓인 중턱을 오르내리는 양무리를 보노라니 어린 시절 할아버지 댁에서 키우던 누에들이 떠올랐다. 아른아른 수증기 속에서 피어나는 난초 꽃송이에 한 떨기 백합을 닮은 연꽃이며 담장 밑 이름 모를 풀꽃의 자태가 나그네의 심신을 고이 품어주듯이. 잔설이 녹아내리는 목장의 토양. 그 땅에 가시 달린 ‘고스’가 잔뜩 심술을 부릴라치면 토지매매 자체가 가로막힐 만큼 심각하단다.

        잘 가꾼 왕릉의 잔디밭이 연상되는 초원의 연속. 납작한 산야에 이어 펑퍼짐한 야산을 깎아 만든 도로를 지나자마자 느닷없이 서던 알프스(Southern Alps)의 일곱 봉우리가 나타났다. 최고봉 3,754m의 마운틴 쿡(Mt. Cook)을 품은 산정. 인지대를 포함한 입산료를 포함해 비용이 300여만 원이나 들어도 이미 대기자는 수개월씩이나 밀려있다는 말에 멀리서나마 고매한 인격자 힐러리 경(Sir Edmund Hillary, 1919~2008)이 후대를 가르치던 현장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족하리라. 떼를 지어 자생하는 싸리나무의 행렬. 그런데 험준한 산악지대를 뚫고 통과한 터널이 의외랄 만치 허술했다. 돌산마저 아까워 아주 조금씩 정으로 쪼아 동굴을 뚫었단다. 겨우 차 한 대 지나갈 정도로 구멍이 작았는데 그야말로 시멘트 자국 하나가 없었다. 차례를 기다린 끝에 아슬아슬 동굴을 빠져나온 뒤 만난 젖소 목장. 키다리 미루나무를 에워싼 수풀 사이로 깡마른 수종들이 군락을 이뤘다. 초지와 공생하는 소나무의 세계. 그때 가이드가 불쑥 사슴목장을 중심으로 불쑥불쑥 솟아난 나무를 보고는 세큐어라고 부른다고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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