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
----------(6회)----------
농장주 이름이 붙은 나무 울타리 틈새로 김밥을 닮은 기차가 달려간다. 둔치가 있는 큰 강변에 가로놓인 녹슨 철길을 따라 퍽 날카롭게 솟아오른 침엽수림. 그 모양마저 까칠하지 않은 건 순전히 너그러운 평야 덕분이다. 그때 가이드가 내민 카드는 뉴질랜드 청소년들의 학교급식 정책. 모든 예산책정에 앞서 우위를 점한다니 부러울 따름이다. 그것이 안경 쓴 아이가 극히 드문 이유. 뉴질랜드산 블루베리에서 나오는 식물질이 눈에 특효여서 얼마 전에는 단국대 식물학과 연구팀이 다녀갔단다. 그에 덧붙여 대중국 대책 회의를 열었다는데 주제는 최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우주선을 띄우는 그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초점이었단다. 막상 심각하게 진행된 토론의 막장은 여전히 중국이란 나라에서는 온갖 가짜가 판을 치고 있으니 향후 반세기는 별다른 고민이 필요 없다는 것. 곧 부실과 부패가 만연하고 무조건 싸야 팔리는 핸디캡을 상당 기간 그들 스스로 극복하지 못할 거라는 결론이었다. 오죽하면 중국에서 가짜가 아닌 것은 엄마뿐이라는 빈정거림도 모자라 그마저도 믿을 수 없다는 자탄이 흘러나오랴마는, 누구든 중화인민공화국의 앞날을 쉽사리 예단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주소는 어떤가? 잠정적 중론은 향후 15년이 고비라는데, 평소 평가절하하던 유럽에서 한국경제를 연구하는 기관이 50군데에 이른다니 아무튼 기분 좋은 일이다. 2차 대전 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거늘 새삼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에 인구 5,000만 이상에 개인당 3만 불 이상의 소득을 구가하는 7개 나라(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에 속한다니 참으로 민족적 자긍심이 흘러넘치는 대목이로되 세계 최저 출산율로 인한 초고령사회를 극복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네들의 목표는 ‘Excellent & Beautiful’, 그런데 아직도 교민사회에서 벌어지는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인해 종종 불이익을 감수하는 사례가 있다니 부끄러운 노릇이다. 제아무리 저력이 있다고 해도 겉모양부터 혼란스럽다면 중국인들과 동일시하지 말란 법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실제 가게에서 중국인들이 시끌벅적 떠들다가 밀물처럼 빠져나가면 이들은 뒤에다 대고 ‘Chinese!’라고 내뱉으면서 고개를 내젓는단다.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여행객도 그 나라의 위상인 셈이다.
단적으로 행여 앞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봐 일을 볼 때면 차분하게 대기하며 50~60cm를 떨어져 기다리는 모습이나,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일지라도 살짝 비켜주는 교양을 소개하더니 느닷없이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일화를 회고했다. 사실 아무리 힘없는 나라일망정 명색이 국가원수인데 의전상 국제관례마저 어겼다면 지나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즉 수상은커녕 외무장관조차 공항에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이들을 위해 예정에 없던 오찬을 마련했다니 자존심이 무너진 대목. 그런 우여곡절 끝에 비육우 500두를 지원받아 서산과 대관령목장에 풀어 종잣돈을 마련했다는 뒷얘기였다. 한 독재자의 공과를 따진대도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착잡한 기분과 감사의 마음이 교차한다. 당당히 G-20을 주도하는 오늘날 지긋지긋한 빈곤을 털고 일어선 산업국의 지위가 거저 얻어진 게 아니라는 일갈이다. 이어진 덤은 해박한 가이드를 만난 즐거움의 연속. 앞으로 어느 나라에 가든 입국목적을 적을 때는 단순히 ‘관광(Holiday)’이라 말고 ‘우방국 방문(Friend Country)’으로 표시하란다. 대번 직원의 눈빛이 달라질 거라는 유용한 팁! 아울러 해외여행을 고작 기념사진을 찍기 위한 절차쯤으로 여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석양에 부대껴 빛나는 진노랑의 건초더미랑 작은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한 줄기 연기는 언제 보아도 정겹다. 해지는 자줏빛 들판이며 흰빛으로 채색한 바윗돌의 교집합을 직접 목격하였으니 굳이 비유를 들자면 태초의 풍경화로다. 그중 하나가 인위를 가미한 식물원이라면 다른 하나는 천연의 미를 살린 에덴이라고 감히 명명하리라. 하지만 안타깝게도 온난화의 돌풍이 불어닥친 뒤 오랜 시일 비가 내리지 않아 갈수록 황무지가 되어가는 현장. 그로 인해 고원지대는 식물들이 자라보았자 300mm 이하인 코렉스풀이 전부. 그 건초 덕분에 메리노 양들은 고가의 의복과 이불을 생산한다니 역설적이다. 예컨대 롬맛 양처럼 고기와 양모를 주는 종이 있고, 링컨 양은 고기를 제공한다는 건데 고가를 유지하기 위해 짐짓 두수를 제한하는 조치였다. 80여 년에 걸쳐 원래 더운 지방에서 자라던 종을 추위에 견디도록 개량해 왔다는 내력을 듣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