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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의 성과를 알리는 보도자료와 시민의 삶이 펼쳐지는 현장 사이에서 기자가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언론의 역할은 어느 한쪽의 주장을 받아쓰는 것이 아니라, 행정의 설명과 시민의 증언을 함께 듣고 사실을 검증하는 데 있다. “언론은 두 목소리를 모두 듣고 있는가?” [AI재구성=주간시민광장] |
언론사 이메일에는 매일 수많은 보도자료가 들어온다. 구청장이 어디를 방문했고, 어떤 협약을 맺었으며, 무슨 사업을 시작했고, 얼마의 예산을 확보했는지가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다. 제목도 있고 사진도 있으며 담당자의 연락처까지 붙어 있다. 기자는 조금만 손보면 기사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도시는 보도자료 안에 있는가, 아니면 보도자료 밖에 있는가. 행정이 보내는 보도자료에는 대개 성공이 있다. 성과가 있고, 계획이 있으며, 기관장의 발언이 있다. 그러나 억울해서 밤잠을 이루지 못한 시민의 목소리, 불허처분 한 장을 들고 관공서를 오가는 사람의 한숨, 변상금과 강제집행 앞에 선 주민공동체의 절박함은 좀처럼 담기지 않는다. 강도 만난 자의 신음은 보도자료에 잘 나오지 않는다.
보도자료가 나쁜 것은 아니다
행정의 보도자료는 필요하다. 시민에게 정책과 사업을 알리는 중요한 자료이고, 기자가 행정을 취재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출발점이 종착점이 될 때다. 보도자료의 제목을 조금 바꾸고, 기관장의 발언을 옮기고, 사진 한 장을 붙여 기사라고 내보내는 일이 반복된다면 언론과 행정의 경계는 희미해진다.
행정은 자신이 알리고 싶은 것을 보도자료로 만든다. 언론은 시민이 알아야 할 것을 찾아야 한다. 이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예컨대 행정은 “주민과 소통하며 사업을 추진했다”고 발표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자의 질문은 그다음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어떤 주민을 만났는가. 반대하는 주민도 만났는가. 회의록에는 무엇이 남아 있는가. 사업으로 불이익을 받는 사람은 없는가. 보도자료가 말하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홍보라면, 보도자료가 말하지 않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취재다.
현장에는 다른 이야기가 있다
책상에서 보면 불허처분은 문서 한 장이다. 현장에 가면 그 문서 때문에 수년간 준비한 일이 멈춘 사람이 보인다. 변상금은 행정문서에서는 금액이다. 현장에서는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주민이 있다. 강제집행은 법률용어다. 현장에서는 오랫동안 사용해 온 공간에서 물건을 빼야 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있다.
그래서 기자는 현장에 가야 한다. 현장에 간다고 시민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장에 갔기 때문에 더 엄격하게 확인해야 한다. 시민의 말도 확인하고, 행정의 설명도 듣고, 공문과 회의록도 살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을 만나지 않은 기사는 사람의 삶을 이해하기 어렵다.
기자는 보도자료의 편집자가 아니다
지역언론이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기자는 부족하다. 취재지역은 넓다. 광고와 경영의 어려움도 크다. 하루에도 여러 기사를 생산해야 한다. 모든 현장을 직접 찾아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 사정을 외면하면서 “기자가 게으르다”고 비난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놓친다.
그러나 현실적 어려움이 언론의 본질을 바꿀 수는 없다. 기자의 역할은 보도자료를 잘 정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권력이 제공한 설명과 현실 사이의 간격을 확인하는 사람이다. 그 간격에서 뉴스가 나온다. 행정은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시민은 “억울하다”고 한다. 행정은 “충분히 의견을 들었다”고 하는데 당사자는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행정은 “법과 원칙에 따른 결정”이라고 하는데 시민은 “왜 나에게만 이런 기준을 적용하느냐”고 묻는다. 누가 옳은지는 취재해야 한다. 바로 그때 기자가 필요하다.
강도 만난 자를 찾아가는 언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언론에 대입하면 흥미로운 장면이 보인다. 강도 만난 사람이 길가에 쓰러져 있다. 제사장이 지나간다. 레위인도 지나간다. 만약 오늘의 기자가 그 길을 지나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사람에게 보도자료를 보내 달라고 할 것인가. 공식 입장이 정리되면 연락하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멈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을 것인가.
선한 사마리아인은 멀리서 관찰하지 않았다. 가까이 갔다. 언론도 그래야 한다. 현장으로 가고, 사람을 만나고, 상처가 왜 생겼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다. 강도 만난 자를 찾아간다는 것이 그의 말을 무조건 믿는다는 뜻은 아니다. 언론의 이웃사랑은 편들기가 아니다. 사실을 확인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목소리를 낼 힘이 없는 사람에게 질문받을 기회를 주고, 그의 주장을 검증하며, 권력기관에도 같은 사실을 묻는 것이다.
행정이 말하지 않는 한 문장을 찾아야 한다
좋은 지역기사는 거창한 특종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보도자료 한 장을 읽다가 한 문장을 더 묻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왜?” “누가 반대했습니까?” “피해를 보는 사람은 없습니까?” “그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봤습니까?” “그 판단의 근거자료를 공개할 수 있습니까?” 이 질문 하나가 홍보기사와 저널리즘을 갈라놓는다. 행정이 99개의 성과를 발표했다면 언론은 그 성과를 보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이 부당하게 희생됐다면 그 한 사람의 이야기도 찾아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가치는 다수의 박수를 더 크게 전달하는 데만 있지 않다. 박수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 한 사람의 신음을 찾아내는 데 있다.
지역언론이 사라지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목소리
중앙언론은 지역의 작은 행정처분 하나를 찾아오기 어렵다. 한 주민의 변상금 문제, 작은 마을의 갈등, 개발행위허가 하나, 학교나 복지시설의 분쟁이 전국 뉴스가 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지역언론이 중요하다. 지역언론마저 현장을 떠나면 작은 시민에게 남는 언론은 거의 없다. 시장과 기관장의 목소리는 언론이 없어도 전달될 방법이 많다. 홈페이지가 있고, SNS가 있고, 홍보부서가 있으며 예산도 있다. 그러나 평범한 시민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그에게 언론은 마지막 마이크일 수도 있다. 그래서 지역언론의 존재 이유는 오히려 작은 사건에서 더 선명해진다.
보도자료 밖으로 걸어 나가야 한다
보도자료는 버릴 것이 아니다. 읽어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보도자료를 읽고 현장으로 가야 한다. 행정의 설명을 듣고 시민에게 가야 한다. 시민의 주장을 듣고 다시 행정에 물어야 한다. 그리고 자료와 기록을 통해 어느 말이 사실에 가까운지 확인해야 한다. 그 왕복이 취재다. 행정에서 기자실로 오는 문서의 길보다 기자실에서 시민에게 가는 기자의 길이 더 길어야 한다.
예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끝에서 말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언론에도 어울리는 말이다. 가야 한다. 책상에서 현장으로. 보도자료에서 사람에게. 기관장의 말에서 시민의 삶으로. 성과의 숫자에서 그 숫자 뒤에 가려진 사람에게. 그리고 강도 만난 자가 있다면 멈춰야 한다. 그의 말을 그대로 기사로 쓰라는 것이 아니다. 왜 그가 그곳에 쓰러져 있는지 취재하라는 것이다. 언론은 보도자료를 받아쓰는 기관이 아니다. 세상이 보지 않으려는 곳을 찾아가는 기관이다. 보도자료에는 행정이 보여주고 싶은 도시가 있다. 현장에는 시민이 실제로 살아가는 도시가 있다. 지역언론이 끝까지 지켜야 할 곳은 바로 그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