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종호 연재소설 (제13회 마지막회)】 노량에 피는 꽃
    • 소설가 현종호
      소설가 현종호

      (13회)


        이순신의 조선 수군은 진린의 함대와 연합작전에 들어간다. 야음을 틈타 적들은 이번에도 밤에 왔다. 찢어진 불법(佛法)의 살기등등한 깃발들을 펄럭거리며 바다를 가득 메우고 적들이 또 넘실거리며 들이닥치고 있는 것이었다. 싸움에 관한 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적장들이 이순신과 목숨 걸고 한 판 겨루겠다며 장사진을 보란 듯 펼치고 지금 다가오는 것이다. 철수하는 수륙병력 전체를 싣고 넘실거리며 식겁하게 들이닥치는 적들을 이순신은 숨죽여 기다렸다. 적들은 식겁하게 들이닥치고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관음포 내항에 머물며 적당한 때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남해안 일대에 견고히 성을 쌓고 주둔하다 걸핏하면 쳐내려와 약탈과 살육을 서슴없이 자행하던 적들, 섬나라 기질에 걸맞게 잔악무도하고 유독 밤을 좋아하는 놈들, 이순신이 그동안 벼르고 벼르던 왜놈들이 500여 척의 대선단을 꾸려서 누구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의 바다 ‘노량(露梁)’을 향해 사뭇 당당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휘몰아치는 바람의 서슬은 무자비하고도 야속했다. 시래기와 무와 배춧국으로 겨우 끼니를 때운 격군(格軍)들은 거듭 휘어지고 꺾이며 온몸으로 줄곧 노를 저었고, 연달아 날아드는 살얼음조각에 얼굴이 찢기면서도 사부들은 다가오는 적을 향해 꾸준히 활을 겨누었다.
        적들이 무방비상태로 노출되고 있었으나 적의 급소가 곧 나의 급소라는 바둑의 원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조선 수군 총사령관 이순신. 통제사 이순신은 함대를 두어 번 더 물려 적과 거리를 둔 채 근접전을 피하고 마른침 삼켜가며 때를 또 기다렸다. 이번에는 그러나 조선 수군이 먼저 급습에 나선다. 적들이 사정권 안으로 들어오자 이순신이 마침내 발포 명령을 내린다.
        “발포하라……!!!……”
        조선 수군의 판옥선에서 총통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주도면밀하게 펼치는 이순신의 전술과 군사들의 일사불란한 대응에 적의 배들이 속수무책으로 깨져나가고 비명이 바다를 온통 덮었다. 불타던 적의 배 100여 척이 순식간에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설상가상으로, 때마침 북서쪽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통제사 이순신이 탄성을 흘렸다.
        “북서풍이다……!……”
        불길에 휩싸인 채로 점점 가라앉는 아다케부네를 바라보며 이순신이 감흥에 젖어 외쳤다.
        “화공을 펼쳐라……!!!……”
        화공은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펼치는 최고의 전술. 화약통을 단 화전이 어둠을 가르며 일제히 날아오르고 총통이 잇달아 불을 뿜었다. 판옥선에선 왜 함대를 향해 신기전과 조란환을 연방 쏴대고, 비격진천뢰는 아다케부네의 갑판을 산산조각 부수었다. 진퇴양난 속에서 적의 배들이 깨져나가고 불길에 휩싸일 때마다 부지기수의 죽으려고 환장한 적들이 단말마에 비명으로 바다에 연달아 고꾸라진다. 적들이 쏟아낸 피로 바다는 순식간에 붉게 물들고, 불타는 함선들로 밤바다의 전장은 대낮을 방불케 하며 미친 듯이 끓었다.
        상대를 빤히 들여다보며 서로 죽이고 죽는 근접전이 한동안 펼쳐졌다. 그의 군사들은 억울하게 죽어간 식솔들을 떠올리며 적을 죽였고, 이순신은 아비보다 앞서간 자식 면을 떠올리며 상대를 베었다. 이순신의 전략은 치밀하고도 완벽했다.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명나라 부총병(副摠兵) 등자룡이 판옥선을 몰고 선두로 나가는 듯싶더니 시마즈의 함대를 향해 갑자기 돌진하고 있었다. 적장 시마즈 요시히로가 예사내기가 아님을 모르고 무턱대고 달려드는 명나라 부총병 등자룡. 조총을 열도에서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칠천량에서 원균의 함대를 궤멸시킨 시마즈의 최정예 조총부대.
        속수무책으로 시종 얻어맞다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세키부네들이 갑자기 전략을 바꾸고 등자룡(鄧子龍)의 판옥선에 이제 막무가내로 달려들고 있었다. 적들이 조총 사격을 부총병 등자룡에 집중하여 퍼붓고 있었다.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 삽시간에 판옥선을 에워싸고 펼치는 ‘등선육박전술(登船肉薄戰術)’에 명의 수군들은 시종 갈피를 못 잡고 갈팡질팡한다. 등자룡의 판옥선에서 끝내 함포 오발 사고가 발생한다. 왜군들이 갈고리를 던지고 사다리를 내걸어 등자룡의 판옥선에 올라타고 있었다. 이순신이 소리쳤다.
        “부총병 등자룡을 구하러 가자. 포위망을 뚫어라……!!!……”
        그러나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명의 병사들은 활을 쏘고 창검과 낫으로 연방 찍고 훑으며 사력을 다해 저항했지만 끝내 적의 칼을 받아 갑판 위에서 허망하게 죽어간다. 명의 부총병 등자룡 역시 씁쓸히 최후를 맞는다.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적들이 이젠 진린 도독의 판옥선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혹독한 훈련으로 단련돼 속도라면, 내로라하는 세키부네와 아다케부네들. 적들이 어느새 진린 도독을 에워쌌다. 휘둥그러진 눈으로 통제사 이순신이 외쳤다.
        “도독을 구해야 한다. 포위망을 뚫어라……!!!……”
        통제사 이순신의 명령에 따라 조선 수군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칠천량의 아픔을 겪고 다시 만나 지휘관으로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을 깍듯이 모셨던 전 거북선 돌격대장 이언량(李彦良). 그는 몸을 사리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한 명나라 도독을 구해내기 위하여 빗발치듯 퍼붓는 적의 공격을 꿋꿋이 견뎌내며 그는 앞장서서 적진을 뚫고 돌격했다. 결과는 그러나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수군에게 활로를 열어주다 이언량은 끝내 비장한 최후를 맞는다.
        이순신이 직접 자신의 기함(旗艦)을 몰고 선두로 나섰다. 진린 도독의 판옥선에 달라붙은 세키부네들을 향해 정교한 함포사격이 꾸준히 가해지면서 도독을 공격하던 적의 배들이 속속 깨지고 선체에 구멍이 뚫리며 속수무책으로 한 척 한 척씩 바다에 가라앉았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나 안도의 한숨을 거푸 뽑아내며 진린 도독이 말했다.
        “고맙소, 이야!”
        “…….”
        “정말 고맙소, 통제……!!!……”
        “…….”
        “…….”


        치열한 전투는 밤새 이어졌다. 양측 함대 수백 척이 뒤엉켜 불을 뿜어대고, 피로 뒤덮인 아수라를 어떻게든 돌파하려는 싸움은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한 치의 착오도 허용될 수 없는, 적을 죽여야 내가 살아남는 이 비정한 전장. 생사가 달린 바다에서 조선 수군은 죽기 살기로 적을 죽였고, 적들도 이젠 죽을 힘을 다해 저항하며 쉴 새 없이 달려들었다. 상대에게 어마어마한 피해를 준 듯싶었는데, 조명연합군이 입은 피해도 적지 않았다.
        나주목사 남유, 낙안군수 방덕룡, 통제영 우후 이몽구, 초계군수 이언량, 가리포첨사 이영남 등 이순신이 아끼는 장수들이 노량에서 물거품처럼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어느새 감쪽같이 도망해버리고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전투는 새벽에 재개되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격전. 북소리가 느린 점고에서 난타와 다급한 뇌고(雷鼓)로 바뀌며 다시 바다를 뒤흔들었다. 서로가 흘려댄 피로 온 바다가 삽시간에 다시 붉게 물들었다. 잇따른 단말마에 비명이 피로 얼룩진 바다를 거듭 찢어대고, 불길에 휩싸여 적의 배들이 바다 밑으로 하나씩 가라앉을 때마다 부지기수의 적들이 피비린내 진동하는 바다에 잇달아 고꾸라졌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부하 군관 손문욱에게 갑자기 새로운 명령을 조용히 내린다.
        “퇴로를 열어줘라!”
        기세가 잔뜩 오른 격군들이 바닷길을 슬며시 내주기가 무섭게 시종 수세에 몰려 깨져나가던 적들이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는 듯싶더니, ‘가청곡(假靑谷)’을 향해 갑자기 전속력으로 내달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바닷속에서 솟아오른 작은 뭍 가청곡을 바닷길로 오인하고 적들이 달려가 다다른 곳은 남해도 깊숙이 들어간 관음포. 시마즈의 섣부른 판단으로 인한 패착이었다, 이순신의 계략에 말려들어 적들은 이제 관음포 내항에 또 꼼짝없이 갇혀버리고 만 셈이었다. 좁은 관음포 내항에 갇힌 적의 배들이 속수무책으로 깨져나가며 불길에 휩싸였다. 좌표를 잃고 줄곧 허둥대는 적 함대를 노려보며 이순신이 외쳤다.
        “관음포로 가자! 단 한 놈의 적도 살려 보내지 마라……!!!……”

        총통이 일시에 불을 뿜고, 사부들이 볏단을 마구 집어던지며 화전을 일제히 쏴대자마자 적함들이 또 속수무책으로 불길에 휩싸인다. 적장 시마즈 요시히로만은 그러나 아다케부네에 꼼짝 않고 앉아서 사뭇 우렁차게 외치고 있었다.
        “포위망을 뚫어라……!!!……”

        어차피 죽을 목숨. 수세에 몰린 적들은 이젠 ‘필사즉생(必死卽生)’의 각오로 죽을 힘을 다해 정말 넌더리 나게 달려드는 것이었다. 적의 화력이 어둠 속 이순신의 대장선에 집중되고 있었다. 다급한 뇌고(雷鼓)로 끊임없이 바다를 흔들어대던 북소리가 채 멎기 전에 이순신이 가장 아끼는 부하 송희립이 적의 총에 투구를 맞아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송희립이 적의 탄환에 맞아 쓰러졌다는 보고에 이순신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소리쳤다.
        “희립아, 너만은 죽지 말아야 한다……!!!……”
        임진년에 총 맞은 어깨가 오늘따라 그는 몹시 불편했다. 갑옷 밑으로 진물이 흘렀다. 3층 대장선 지휘대에서 벗어나 갑판 위로 내려와 독전고(督戰鼓)를 혼자서 찾아가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순신이 외쳤다.
        “너마저 죽어가면 절대 안 된다, 송희립 장군……!!!……”

        진퇴양난에 빠져 허우적대던 적들이 전략을 대폭 수정한 모양이었다. 궁지에 몰리면, 적장을 공격하여 위기를 모면하는 시마즈 특유의 전술이 꾸준히 전개되고 어느덧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적의 실상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적의 급소는 그러나 곧 나의 급소였다.

        이순신이 친히 북채를 들고 독전고 앞에서 북을 울려대며 소리치고 있었다.
        “단 한 놈의 적도 절대 살려 보내지 마라……!!!……”
        불길에 휩싸여 적의 배들이 기우뚱거리며 피아(彼我)의 쓰레기로 덮인 바다 밑으로 하나씩 차례로 가라앉고 있었다. 길고도 길었던 이 전쟁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고 있는 것이었다.

        선두로 나선 사령관의 배는 어느새 적들의 표적이 된다. 아다케부네 갑판 위에서 적들의 조총이 통제사 이순신을 일제히 겨누고 있었다. 잠시 기절해 있던 송희립이 적의 비단 기폭으로 이마를 싸맨 채 통제사 이순신에게 달려오며 소리쳤다.
        “대장선이 선두로 나가면 아니 되옵니다, 나으리……!!!……”

        왼쪽 겨드랑이가 잠시 따끔거리는가 싶었는데, 그는 갑자기 가슴이 무거웠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갑옷 밑으로 끈적끈적한 물이 자꾸 흘러내리고 있었다. 통제사 이순신은 독전고(督戰鼓)에 겨우 몸을 기대고 앉았다.

        자신의 갑옷을 벗어 손문욱은 침통한 표정으로 통제사 이순신의 몸을 가렸다. 갑판 위에서 장군의 몸을 방패로 가리고 흐느껴 우는 아들 회와 조카 완을 번갈아 바라보며 손문욱이 말했다.
        “적이 알게 되면 안 되는 일일세. 어서 선실로 모시게.”
        통제사 이순신은 그러나 적들이 알게 되는 것보다 자기의 죽음이 아군에 불러올 파장을 먼저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조선 수군 총사령관 이순신은 곧 선실로 옮겨졌다. 아들 회가 북채를 쥐고 독전고 앞에서 북을 울려대며 외치고 있었다.
        “단 한 놈의 적도 절대 살려 보내지 마라……!!!……”
        선실 창밖으로, 타오르는 적함의 불길 속에서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꺼져가는 등잔불처럼 희미해져 가는 의식으로 이순신이 조용히 말을 흘렸다.
        “내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그 능소화꽃인가……?!……”
        어쩌면 꽃은 무궁화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타오르는 불길을 흐려진 눈으로 바라보며 이순신이 덧대어 말을 흘렸다.
        “저기 활짝 피어나는 저 꽃은 정녕 내가 죽어가야만 볼 수 있는 꽃이란 말인가……!!!……”

        손가락 사이로 피는 멈추지 않고 지겹도록 뿜어져 나왔다. 꺼져가는 희미한 의식으로 이순신이 물었다.
        “피는 언제 멈추는 것이냐?”
        송희립이 갑옷 소매로 눈시울을 몇 번이고 닦으며 겨우 대답했다.
        “이제 곧 멈출 겁니다, 나으리…….”
        “관음포는 아직도 멀었느냐?”
        “다 와 갑니다, 나으리. 이제 다 왔습니다. 조금만 참으시면 됩니다. 조금만 더 견뎌보십시오, 나으리…….”
        한바탕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오래도록 그리워하던 여인의 야릇한 분 냄새가 스러져가는 그의 몸에 자꾸 슬며시 감겨왔다. 가물가물하던 기억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되살아났다. 위관이 묻고 있었다.
        “조선의 장군이란 놈이 벌써 이 난리야. 너는 당나라 군대냐? 네놈은 대체 어느 나라 어느 놈의 군대냐? 너는 왜놈 가토의 졸개가 아니냐? 한심한 놈……!!!…… 지금도 이 천하가 공물(公物)이라서 세상 주인이 아직도 따로 없다는 게냐?”
        “…….”
        “…….”


        누구보다 아꼈던 부하 정운이 들려주던 말이 귓전을 또 울려왔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고, 누구나 단점은 있게 마련인데, 나리만은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진정으로 이 나라를 걱정하고 불쌍한 민초(民草)들을 진심으로 돌볼 줄 아는 분이십니다. 신분을 따지지 않고 능력에 따라 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지휘관, 운주당(運籌堂)의 문턱을 낮추고 모두의 소리를 귀담아들으며 밤낮으로 군사들과 소통하는 사령관, 노비가 세운 공로에 이름 하나까지도 누락시키지 않고 장계에 상세히 적어서 조정에 올려보내며, 천민 병졸의 시신까지 고향으로 돌려보내 극진히 장례를 치러주는 사령관, 사리사욕을 자제하고 부하들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할 줄 아는 양심적인 지휘관이요 백성들의 영도자인 그런 분을 누가 감히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허구한 날 미역과 말린 청어로 주린 배를 채우고, 꺾이고 거듭 으스러지며 온몸으로 노를 젓는 격군들, 문지방을 기어 넘다가 굶어 죽은 어미의 젖꼭지를 물고 줄곧 빨아대며 울던 아이, 푸성귀를 찾아 무작정 산야를 떠도는 백성들, 갯벌에 처박혀 원망 어린 그 죽은 눈으로 사령관 자신을 줄곧 쳐다보며 저주하던 얼굴들, 그리고 어머니. 아, 아, 어머니……!!!……
        흐려진 눈으로 통제사 이순신이 조용히 말했다.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장군의 눈물이 선실 바닥에 떨어졌다. 꽃이 지고 있었다.

      -끝-


      【편집부 해설|제13회(마지막회)】

      노량해전은 1598년 11월(음력 11월 19일) 새벽까지 이어진 임진왜란 최후의 대규모 해전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 철수를 시도하던 왜군은 순천 왜성에 고립된 병력을 구출하기 위해 대규모 함대를 투입했고, 조선 수군과 명나라 수군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연합작전을 펼쳤다.

      이순신은 적을 무리하게 추격하기보다 지형과 조류, 바람을 이용하여 관음포와 노량 해협으로 유인한 뒤 집중 화력으로 왜군을 공격하였다. 작품은 화공(火攻), 총통, 신기전, 비격진천뢰 등 조선 수군의 다양한 무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전투의 치열함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전투 과정에서 명나라 부총병 등자룡이 전사하고, 명나라 도독 진린 역시 위기에 처하지만 조선 수군의 지원으로 살아난다. 조선군도 많은 장수를 잃었으며, 이언량·남유·방덕룡 등 수많은 지휘관들이 전사하였다.

      전투가 승리로 기울던 순간, 이순신은 적탄에 맞아 치명상을 입는다. 그는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긴 채 생을 마감한다. 최고 지휘관의 죽음이 전열을 무너뜨릴 것을 우려하여 자신의 죽음조차 숨긴 이 유언은 오늘날까지 충절과 책임감의 상징으로 전해지고 있다.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능소화와 무궁화를 떠올리는 장면은 역사 기록이 아니라 작가가 이순신의 마지막 내면세계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부분으로, 한 인간이자 아들이며 백성을 사랑한 지도자의 삶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본문 용어 해설】

      ■ 판옥선(板屋船) Panokseon: 조선 수군의 대표 전투함. 높은 갑판 구조를 갖춰 화포 운용과 방어에 유리하였다.
      ■ 관음포(觀音浦) Gwaneumpo: 노량해전의 마지막 격전이 벌어진 남해안 포구. 이순신이 전사한 장소로 전해진다.
      ■ 노량(露梁) Noryang Strait: 남해와 광양만을 잇는 좁은 해협. 임진왜란 마지막 해전의 전장이 되었다.
      ■ 격군(格軍) Oarsman: 군선에서 노를 젓던 병사.
      ■ 사부(射夫) Archer: 활을 사용하여 전투를 수행한 병사.
      ■ 총통(銃筒) Chongtong Cannon: 조선 수군이 사용한 화포의 총칭.
      ■ 화공(火攻) Fire Attack: 불을 이용하여 적의 함선이나 진영을 공격하는 전술.
      ■ 화전(火箭) Fire Arrow: 화약이나 불을 붙여 발사하는 화살.
      ■ 신기전(神機箭) Singijeon Rocket Arrow: 화약 추진력을 이용한 조선의 로켓 화살.
      ■ 조란환(鳥卵丸) Birdshot Round: 작은 쇳조각이나 탄환을 퍼뜨려 근거리에서 살상력을 높인 화포 탄환.
      ■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 Flying Thunder Crash Bomb: 폭발과 파편으로 적을 공격하는 조선의 시한폭탄형 화기.
      ■ 아다케부네(安宅船) Atakebune: 일본 수군의 대형 군선.
      ■ 세키부네(關船) Sekibune: 일본 수군의 중형 군선으로 기동성이 뛰어난 전투선.
      ■ 부총병(副摠兵) Vice Commander: 명나라 군대의 고위 무관 직책.
      ■ 등자룡(鄧子龍) Deng Zilong: 명나라 부총병으로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장수.
      ■ 진린(陳璘) Chen Lin: 명나라 수군 도독으로 조선 수군과 함께 노량해전에 참전한 지휘관.
      ■ 이언량(李彦良) Yi Eon-ryang: 조선 수군 장수. 진린을 구하려다 전사하였다.
      ■ 기함(旗艦) Flagship: 최고 지휘관이 승선하여 전투를 지휘하는 함선.
      ■ 독전고(督戰鼓) Command Drum: 전투 중 군사를 독려하고 지휘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치는 북.
      ■ 뇌고(雷鼓) War Drum: 전투 개시나 긴급 명령을 알리기 위해 크게 울리는 북.
      ■ 가청곡(假靑谷) Gacheonggok: 관음포 부근의 작은 지형으로, 작품에서는 왜군이 바닷길로 착각한 지점으로 묘사된다.
      ■ 필사즉생(必死卽生) Victory Through Resolve to Die: 반드시 죽을 각오로 싸우면 오히려 살아남는다는 뜻의 병법 정신.
      ■ 민초(民草) Common People: 평범한 백성들을 이르는 말.
      ■ 운주당(運籌堂) Command Headquarters: 이순신이 군무와 전략을 논의하던 통제영의 지휘 공간.
      ■ 공물(公物) Public Property: 공공의 재산이나 국가의 소유물을 뜻하는 말. 본문에서는 천하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묻는 사상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현대적 의미】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는 단순한 승리의 역사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지도자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사회는 뛰어난 능력뿐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조직을 먼저 생각하는 리더십을 요구한다. 자신의 안위보다 공동체를 우선한 이순신의 선택은 공직자, 기업인, 군인, 교육자 등 모든 지도자가 되새겨야 할 책임윤리를 일깨워 준다.

      또한 노량해전은 전쟁의 승리 뒤에도 수많은 희생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진정한 평화는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고 갈등을 예방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는 유언은 개인의 명예보다 공동체의 안정을 먼저 생각한 결단이었다. 오늘날에도 국가와 사회를 위해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은 시대를 넘어 이어져야 할 소중한 가치임을 일깨워 준다.


      작가소개

      현종호 (소설가)

      • 평택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외국어대학 영어학과 조기졸업
      • 명진외국어학원 개원(원장 겸 TOEIC·TOEFL 강사)
      • 영어학습서 《한민족 TOEFL》(1994), 《TOEIC Revolution》(1999) 발표
      • 1996년 장편소설 『P』 발표
      • 1998년 장편소설 『가련한 여인의 초상』, 『천국엔 눈물이 없다』 발표
      • 전 국제대학교 관광통역학과 겸임교수 역임
      • 현재 평택 거주, 한국문인협회 소설가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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