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종건 환경칼럼】 주민의 목소리를 ‘증거의 언어’로 바꿀 때다 ― 오성·청북 레미콘공장 항소심이 지방자치에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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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인 조종건

      오성·청북 레미콘공장 문제를 바라보면서 가장 먼저 평가해야 할 것은 주민들의 끈질긴 참여다. 주민들은 2022년부터 생업의 현장을 뒤로하고 거리와 행정기관을 오가며 문제를 공론화했다. 비상대책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1차부터 8차까지 2,066명이 반대 서명에 참여했다.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이 사는 지역의 환경과 미래를 고민하고 행동했다는 점에서 이는 주민자치의 살아 있는 모습이라 할 만하다.

      주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은 행정과 의회의 노력도 평가해야 한다. 평택시 도시계획위원회는 환경오염 가능성과 주변 여건 등을 검토해 관련 안건을 두 차례 부결했다. 시의회 역시 주민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했고, 평택시는 최종적으로 이전설립 승인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패소 이후에도 항소장을 제출하고 항소이유서를 마련해 대응하고 있다. 주민과 지방의회, 지방정부가 하나의 지역문제를 놓고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지방자치의 긍정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격려와 냉철한 법적 대응은 별개의 문제다. 주민 2천여 명이 반대했다고 해서 행정소송에서 반드시 승소하는 것은 아니다. 도시계획위원회가 두 차례 부결했다고 해서 그 판단이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도 아니다. 법원이 판단하는 것은 반대 주민의 숫자만이 아니라 행정청이 왜 이곳에 새로운 레미콘공장이 들어서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판단했는지, 그 판단에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있었는지다.

      그 점에서 평택시의 1심 패소는 항소심이 어디에서 출발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비대위 보도자료에 따르면 1심 재판부는 평택시가 불허처분 과정에서 공익과 사익을 적절하게 비교·교량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주변 소수 주택을 집단취락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 1㎞ 이상 떨어진 마을과의 인접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 사업자가 완전 밀폐형 공장설비와 환경오염 방지대책을 제시했다는 점 등도 판단 근거로 제시됐다.

      그렇다면 항소심에서 필요한 것은 1심 판결에 대한 감정적인 비판이 아니다. 1심 법원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부분을 하나씩 객관적인 증거로 채우는 것이다.

      특히 사업자 측의 ‘완전 밀폐형 공장’ 논리에 대응하려면 공장 건물 내부에만 시선을 가둬서는 안 된다. 레미콘을 생산하려면 원료를 실은 대형차량이 공장으로 들어가야 하고, 생산된 레미콘 역시 차량을 통해 외부로 운송돼야 한다. 공장이 밀폐돼 있다고 해서 차량의 진·출입과 도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산먼지, 교통량 증가와 교통안전 문제까지 밀폐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평택시는 예상 차량 운행 횟수와 이동경로, 기존 대형차량 교통량, 비산먼지와 대기질, 풍향과 확산 가능성, 도로여건, 학교·농촌마을·산업단지와의 관계 등을 가능한 한 수치와 자료로 제시해야 한다. 주민들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법정에서는 그 경험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전환해야 설득력이 커진다.

      더 중요한 문제는 신규 레미콘공장 하나만 떼어놓고 볼 것인가, 이미 환경부담을 안고 있는 지역 전체를 함께 볼 것인가다. 비대위 자료에는 신청지 반경 3.2㎞ 안에 기존 레미콘공장 3곳이 가동되고 있으며 생활폐기물 운반 차고지, 플라스틱 재활용공장, 유해화학물질 관련 시설 등 여러 환경유해시설이 분포하는 것으로 제시돼 있다. 항소심에서는 이러한 비대위 자료를 최신 행정통계와 전문기관의 조사·측정자료로 다시 확인하고 객관화할 필요가 있다.

      쟁점은 개별 공장 하나가 법적 환경기준을 충족하느냐에만 있지 않다. 이미 여러 시설이 존재하는 지역에 새로운 시설이 추가됐을 때 주민과 지역이 감당해야 할 누적적·복합적 환경부담이 어느 정도인지도 살펴야 한다.

      부산 사하구 레미콘공장 사건은 이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당시 1심에서는 캡슐형 공장이라는 점 등이 사업자에게 유리하게 판단됐지만, 항소심은 대형차량 진·출입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산먼지와 기존 지역의 열악한 대기환경 등을 함께 고려했다. 결국 대법원은 업체의 상고를 기각해 불허처분의 정당성을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물론 부산 사건과 평택 사건의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처분 근거가 같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판례 하나가 평택시의 승소를 보장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 사례에서 읽어야 할 핵심은 다른 데 있다. 항소심은 구호가 아니라 현장과 증거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평택시의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의회가 단순히 “주민과 함께하겠다”는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환경·교통·도시계획 분야의 전문적 검토가 충분한지, 필요한 조사와 자료 확보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평택시 역시 소송대리인에게 사건을 맡겨놓는 수준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기업 관련 부서뿐 아니라 환경·교통·도시계획 등 관계부서가 함께 참여해 자료를 축적하고 이를 소송대리인의 법리와 연결하는 협업체계를 갖춰야 한다. 시가 주민 요구를 받아들여 9월 말에서 10월 초 소송대리인과 주민의 면담을 추진하고 향후 재판 진행 상황을 공유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런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다.

      주민의 역할 역시 끝나지 않았다. 주민들은 단순히 행정의 보호를 기다리는 대상이 아니라 현장을 가장 오래 관찰해 온 ‘생활의 전문가’다. 언제 어느 도로에 대형차량이 집중되는지, 기존 시설 때문에 어떤 생활환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등을 체계적으로 기록한다면 행정자료가 포착하지 못하는 현장의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결국 이번 사안에서 주민과 평택시의회, 평택시는 따로 떨어진 주체일 수 없다. 주민이 현장의 사실을 모으고, 시의회가 이를 공론화하고 행정을 점검하며, 평택시가 전문적·과학적 자료와 법리로 완성한다면 주민자치·지방의회·지방정부가 함께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지방자치의 좋은 선례를 만들 수도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구를 탓하는 일이 아니다. 1심 패소의 원인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는 일이다. 주민들의 수년간의 노력과 도시계획위원회의 숙고, 시의회의 지원, 평택시의 행정적 판단이 항소심에서 제대로 평가받게 하려면 이 모든 것을 객관적인 데이터와 치밀한 법리로 연결해야 한다.

      주민들은 이미 충분히 외쳤다. 이제 그 목소리를 법원이 들을 수 있는 ‘증거의 언어’로 바꿀 차례다. 주민자치의 힘은 주민이 목소리를 내는 데서 시작하지만, 좋은 지방자치는 그 목소리를 의회가 제도로 연결하고 행정이 정책과 증거로 완성할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오성·청북의 항소심은 단순히 레미콘공장 하나의 허가 여부를 넘어, 주민과 시의회와 평택시가 함께 지역의 미래를 지켜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방자치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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