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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종건 한국시민사회재단 상임대표 |
추미애의 『장하리』는 단순한 정치 회고록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시대의 풍랑 속에서 어떻게 상처 입고, 어떻게 견디며, 끝내 자기 신념을 놓지 않았는지를 기록한 ‘삶의 증언’에 가깝다.
우리는 흔히 ‘추미애’라는 이름을 정치의 언어로 소비해왔다. 누군가에게 그녀는 거침없는 개혁의 상징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첨예한 갈등의 중심에 선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는 순간 독자는 어느새 정치인 추미애를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던 한 인간의 시간을 따라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장하리』라는 제목은 묘한 울림을 남긴다. 강가의 오래된 마을 이름 같기도 하고, 시대의 바람을 묵묵히 견뎌낸 한 사람의 운명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로 이 책은 화려한 정치의 수사보다 사람 냄새 나는 기억들로 가득하다. 어린 시절의 결핍, 가족의 온기, 시대의 폭력, 권력의 냉혹함, 그리고 민주주의를 향한 오래된 신념이 한 편의 서사처럼 조용히 흐른다.
무엇보다 이 책이 깊게 다가오는 이유는 저자가 자신의 상처를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정치인의 회고록은 자신을 설명하거나 변명하는 데 머문다. 하지만 『장하리』는 오히려 흔들렸던 순간과 외로웠던 시간들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독자는 책장을 넘길수록 ‘정치적 평가’를 넘어 인간에 대한 연민과 존중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특히 책 속에서 반복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고독’이다. 정치는 사람들 속에 있지만, 진짜 결단은 언제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 그 무거운 침묵의 시간들이 책 곳곳에 배어 있다. 그래서 『장하리』는 권력의 이야기가 아니라 책임의 이야기로 읽힌다.
우리는 종종 정치인을 결과로만 판단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삶은 결코 한 장면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시대의 압력 속에서도 양심을 지키려 했던 시간들, 타협하지 않기 위해 견뎌야 했던 외로움, 그리고 침묵 속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신념이야말로 한 인간의 진짜 얼굴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우리 시대에 아주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진다.
“신념은 시대의 조롱 앞에서도 끝까지 지켜낼 가치가 있는가.”
오늘의 한국 사회는 너무 빠르게 사람을 소비하고, 너무 쉽게 증오한다. 기다려주지 않고, 맥락을 보지 않으며, 단 하나의 장면만으로 인간 전체를 재단하려 한다. 그러나 『장하리』는 말한다. 인간은 결코 한 순간으로 설명될 수 없는 존재이며, 한 시대를 견딘 사람의 삶에는 반드시 우리가 배워야 할 흔적이 남는다고.
책을 덮고 나면 독자의 마음에는 묘한 울림이 남는다. 그것은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나 반대의 감정을 넘어, 자기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울림이다.
나는 과연 어떤 순간에도 내 양심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인가.
나는 시대의 압력 속에서도 끝까지 인간다움을 잃지 않을 수 있는가.
『장하리』는 그런 질문을 남기는 책이다. 그리고 아마도 좋은 책이란 바로 그런 책일 것이다. 읽는 동안만이 아니라,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 마음속에 남아 삶을 흔드는 책. 추미애의 『장하리』는 바로 그런 책이다.
다음 회에서는 『장하리』라는 이름의 뿌리를 따라가 본다. 세탁소의 뜨거운 다림질 열기 속에서 ‘정직한 노동’과 ‘의로운 삶’을 배워야 했던 어린 소녀의 시간, 그리고 왜 그녀가 스스로를 ‘세상을 세탁하는 강물’로 살아가려 했는지를 함께 들여다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