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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
----------(7회)----------
청정한 대지에 고인 맑은 물. 데카포(TEKAPO) 호수는 옥색이었다. 기상과 온도가 계절에 따라 바뀌는 곳이란다. 설산이 녹아 흘러든 연고라는 말에 걱정이 앞섰다. 지척에 마을이 있었거니와 빙산이 없어진 뒤를 상상했기 때문이다. 십여 호가 모여 사는 동네에도 교회는 있었다. 거기서 양무리를 훔친 도둑을 물리친 양치기 개를 기려 세웠다는 동상. 생각보다 작은 ‘선한 목자의 교회(The Church of The Shepherd)’에 들어가니 입구에 헌금함이 있었다. 덕지덕지 촛불로 장식한 강단. 보혈의 십자가는 어디로 가고 온갖 성물(?)을 모신 제단만이 남았다. 복음이 사라진 곳에 착한 목동이 다녔으면 무슨 대수고, 그가 양 떼를 보호했으면 무슨 소용이랴. 무너진 억장을 추스르느라 후줄근한 건물을 나와 호숫가를 걸으니 과연 초대형 영화 촬영지로 탐낼 만하다. 그렇다고 전단지처럼 대단한 풍광은 아니었다. 단지 잡풀마저 사라진 황무지를 용도에 맞게 잘 활용하는 현장이랄까. 비록 중앙아시아의 사막지대만은 못할지라도 동시에 사계를 찍는 데는 이만한 데가 없다는 데 공감하되, 잘 짜인 시나리오에 들어맞는 변화무쌍한 무대가 우리나라에도 있으면 좋겠다.
얼마큼 내닫다 보니 길가에 가드레일이 없었다. 어쩌다 설치한 것도 지나치게 나지막하다. 필름처럼 수시로 바뀌는 차창 밖의 그림들. 그 그림자를 매달고 달리는 차체를 보니 때 이른 햇살이 차창으로 꺾여 스쳐 간다. 펼쳐지는 장면마다 놓치기 아까울 만큼 시신경에 각인된 장면들. 초지는 초지대로, 불모지는 불모지대로 나름 조화를 이뤘다. 그사이 황량한 광야에서 보았던 풀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 말라비틀어진 잡초들. 바로 이곳이 켄터베리 대평원이란다. 원래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규모의 초지였으나 오랜 가뭄이 이렇게 바꿔버렸다는 해설. 그 순간 어쩌면 무릎을 꿇은 엘리야가 응답받은 기도처럼 검은 구름 조각 하나가 금방이라도 눈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고 할지라도 앞가슴이 하얀 누렁소(가장 맛있다고 알려진 소의 종류)는 미리 때를 알아차리고서 잎사귀 우거진 나무 밑으로 어김없이 찾아든단다. 짐승의 본능이 똑똑한 척하는 사람보다 낫다는 얘기. 어쨌거나 지금처럼 나그네의 복락 가운데 으뜸은 이런 날씨일 터다. 그러고 보니 우리 부부야말로 잦은 해외여행에서도 궂은비로 인해 낭패를 본 적이 없었다. 그 간구의 혜택을 함께 누리면서도 창조의 비밀을 아는 자는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한적한 오후 나절, 나무 없는 산자락이 에메랄드빛 호수에 푹 잠겼다. 잠시 마운트쿡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 정차. 아담하게 지어 놓은 Visitor Centre를 방문했다. 무려 60km에 이른다는 푸카키 호수의 끝은 수평선. 언뜻 히말라야를 방불한 풍치라 해도 손색없는 화면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분 말마따나 가슴이 설레고 호들갑을 떨 만큼은 아니었는데, 이들이 그리도 아낀다는 서던 알프스산맥은 험준하면서도 더없이 아름다워 그 자태를 쉬이 남 앞에 드러내지 않는단다. 남섬 서쪽에 치우쳐 남북 방향으로 뻗어 나간 산맥을 바라보며 아내와 잠시 물가를 걸었다. 서둘러 돌아오다가 들른 간이 전시관. 조촐한 탁자와 사진 몇 점이 전부였으나 자연과 더불어 사는 품위와 운치가 짙게 묻어났다. 역광을 무릅쓰고 퍼담은 추억들. 차에 올라 다시금 원주민들이 구름을 뚫고 나왔다는 아오라키를 바라보았다. 눈 덮인 만학천봉에 겹치는 시야. 멀리 햇살에 빛나는 설산을 대하니 새하얀 와이셔츠를 옥빛으로 물들인 듯한 설산 아래 양들이 끼어들고 두어 마리 말이 그 꽁무니를 뒤따라가는 형상이었다.
거기서 조금 더 가니 자생하는 소나무 산지를 허물어 만들었다는 인공운하. 갸우뚱하며 물으니 녹아내린 빙하의 낙차를 이용해 수력발전을 계속하는 곳이었다. 그렇게 트위젤(Twizel) 운하를 건설하다가 하나둘 인가가 들어서고 운행을 중단한 뒤에도 그대로 400여 명의 주민이 눌러살게 됐단다. 채 세련미를 갖출 수 없는 동네에서 늦은 점심을 들었다. 놀랍게도 교민이 무친 나물류에서 엄마 손맛이 났다. 더욱이 효용이 다한 운하에 갇힌 연어(그레이샤 셀먼) 회는 감칠맛까지 돌아 왜인지 질문하니, 웃으며 대뜸 남태평양의 풍성한 어자원을 고갈시키는 무리가 다름 아닌 일본과 한국. 그 두 나라에서 싹쓸이한다는 얘기인데 일본의 경우 불법 포경선까지 띄운다며 보다 강력한 제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흥분했다. 국제적인 위상을 이용해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본새라니 이거야말로 국제적 공조가 절실하다는 데 공감하는 눈치들. 나오다 벽을 보니 작가 박범신 씨와 배우 안성기 씨 등 유명인들의 사인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