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
----------(1회)----------
오클랜드에서 약 한 시간 걸린 크라이스트처치공항은 뉴질랜드 남섬을 대표하는 인프라. 날씨는 꽤 쌀쌀했다. 거꾸로 북쪽이 초봄이라면 남쪽은 늦겨울 같다는 말에 다들 공감할 만큼. 가이드가 관광 일정을 소개하며 줄기차게 떠드는 아이들을 보더니 요즘 학교 교육을 들먹였다. 이곳 학제를 물으니 취학전교육 2년에 초등과 중등이 각각 6년(특별한 경우는 7년)으로 우리와 같고, 대학에 가려면 뉴질랜드 수학능력시험(NCEA)을 거치는데 원주민 마오리족에 대한 배려가 있었다. 케임브리지의 교육방식을 본떴다는 말에 싱가포르와 비슷하겠거니 짐작했더니 전혀 다른 방식. 여기서는 늦더라도 인성 계발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영국에서는 철저히 학력 신장에 목표를 둔단다. 종합대학을 보면 법의학이 앞선 오클랜드대학을 비롯해 간호대학과 치과대학이 유명한 오타고대, 공과대학으로 명성을 얻은 메시대학 등 국립대학 7개에 사립대학 6개가 있고, 교육대학은 7개라 했다. 법학 5년에 의학 6~8년에서 보듯이 강소국들의 교육열은 뒤처지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4살에 들어가는 유치원에서는 협동 정신을 기르는 일이 최우선이어서 서로 어울리는 놀이를 통해 인간관계를 쌓아가는 훈련을 반복한단다. 분명한 바는 우리나라의 방향 설정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이다. 중등학교 수학 문제가 고등수학 분야에 속한다니 말이 되는가? 초등학교 교육의 목표 역시 인성 계발에 두고 다양한 특별활동과 봉사활동을 장려하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일례로 일기를 책으로 내는 문자 창조 작업을 존중한단다. 이를테면 다빈치식 교육의 일환이어서 응당 성적이 아닌 내신을 신뢰하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문화 체험을 권장하고 한국에서 경시하는 기술교육에 주안점을 두었다. 놀이 방법과 인격 도야의 연관성에 관심을 두는 책략이야말로 교육의 미래라고 본다. 물론 이들도 재능과 품격을 겸비한 변호사, 의사, 세무회계사 등의 전문직이 우대를 받는다. 그래도 우리네 상류층과는 다르지 않냐고 캐물으니 슬쩍 쓴웃음을 지었다. 쉬지 않고 소란을 피우는 아이들. 몰상식한 부모 환경이 장차 사회에 끼칠 해악을 생각하면 우울해지지만, 이 또한 패키지여행에서 감수할 지점이다. 그 가운데 교회에 다닌다는 일가족의 행태는 오늘날 기독교의 단면이자 현주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수첩에 KIA MOTORS, NISSAN, BURGER KING, Lockwood, CAFE 등을 차례로 적었다.
정부는 노동당과 국민당이 소수당인 마오리당과 힘을 합쳐 내치를 풀어간단다. 길가에 핀 노란 꽃의 행렬이 남국의 초목들과 어우러져 이름 모를 풀을 감싸고도는 것처럼. 오랜만에 교회당이 보였다. 잽싸게 옮긴 철자는 ~St. ~Anglian Church. 성인이 누군지, 어느 앵글로색슨 족인지는 미처 적지 못했다. 곧이어 나타난 Primary School, Barber Shop, Video etc. 그나마 소문자여서 이 정도나마 건진 터다. 설마 그 옛날 우리 조선을 다녀간 건 아닐 텐데 첨성대를 빼닮은 건조물이 지나간다. 그 옆에 거대한 스프링클러가 힘차게 돌아갔다. 이런 자동화 시스템이 아니면 드넓은 초지를 적실 방도는 마뜩잖을 것이다. 요 틈에 차창 밖에는 메마른 밭뙈기들이 하늘가 조각구름을 타고 삐죽 고개를 내민다. 그림책 속에서나 보았을 잿빛 초지. 햇볕은 점점 잦아드는데 한 아낙이 옥수수를 말리고 있었다. 풀밭의 넓이에 비해 동물의 숫자가 턱없이 적은 건 초지를 서너 군데로 나눠 수개월씩 이동시키며 풀어놓아서란다. 이것이 진정한 방목이고 육질이 좋은 까닭이리라.
한참을 달리다가 길가 잡화상점에 들렀다. 딱히 눈에 들어온 건 없으나 현지에서 생산한 농산물 진열대에 눈길이 갔다. 드넓은 목초지를 누비는 양 떼와 소 떼, 그 사이로 거센 물살에 쓸린 나무 등걸이 나뒹굴었다. 고즈넉한 전원 풍경에서 느끼는 정서. 이를 두고 흔히들 목가적(牧歌的)이라는 수식어를 달곤 하는데, 지구상에 골프장을 앞마당처럼 쓰는 곳이 여기 말고 또 있을까?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장면의 연속. 여기서는 모든 도로에 통행료가 없단다. 납세와 더불어 교육과 국방의 의무는 지되 무슨 이중과세냐는 논리. 모든 시스템은 사람이 먼저다. 따라서 음주운전에 용서란 없다. 노란불에도 일제히 차들이 멈춘다. 횡단보도 근처에 사람의 그림자가 얼씬거리기만 하면 어김없이 선다. 이와 관련하여 아예 노후 차량이 없다는 점도 특이하다. 공산품을 전량 수입하다 보니 이왕이면 소비수준을 높이자는 게 그 취지란다. 서서히 내리는 어둠, 대여섯 두의 소들이 슬슬 이슬을 피해 큰 나무 밑으로 모여들었다. 축사가 없이 키우는 진짜 방목의 현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