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하식 박사, 글로 남긴 ‘인도’ 비전트립(18)】 나름대로 정리한 여정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18)----------

        쓰러질 듯 버티고 서서 초인종을 눌렀다. 아내와 아이들이 몰려나왔다. 아들내미가 초죽음이 된 아빠를 얼른 부축하며 무거운 가방을 받아들었다. 한결같이 차마 대면하기 안쓰러워 견딜 수 없다는 표정들. “어머! 이게 웬일이야. 당신 괜찮아요?” 아내의 염려에 딸내미가, “아빠 얼굴이 많이 탔어요. 엄청 더웠나 봐요?”라며 거들었다. 나도 모르게 피부가 적도의 햇볕에 꽤나 그을린 것. 저울에 올라서니 무려 5kg이 빠져나갔다. 의도치 않은 다이어트에 성공한 여행? 주방으로 간 아내의 손놀림이 분주했다. 정성껏 차린 음식이건만 텅 빈 뱃속은 이걸 거절했다. 평소 그토록 좋아하는 육개장을 눈앞에 놓고도 단 한술 뜰 수 없는 처지. 굶기를 밥 먹듯 하다 보니 내장이 미처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된 모양이었다. 담백한 입맛은커녕 구수한 냄새조차 맡기 어려워하며 가방을 향해 힘겹게 다가갔다.

        손때 묻은 보따리를 풀어헤쳤다. 제법 물건이 많았다. 사모가 손수 만든 두 종류의 튀김 과자, 굵은 소금처럼 생긴 백설탕 두 봉지, 두 뭉치의 망고 잼 등 못 보던 먹거리가 쏟아져나왔다. 앓아누워 있는 사이 정성스레 싸준 선물들이었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들이었지만 아내와 나는 거의 동시에 코를 틀어막아야 했다. 인도 특유의 냄새가 물씬 풍겨 나왔기 때문이다. 이건 정작 큰일이었다. 매정하게 차마 내다 버릴 수가 없어 일단 베란다에 옮긴 뒤 우리 부부는 만 하루 밤낮을 고민했다. 아내가 먼저 입을 뗐다. “그분들에게는 두고두고 먹을 귀한 음식일 텐데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궁리 끝에 남궁 선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내일 몽땅 학교로 가져오라는 말이 그토록 고마울 수 없었다. 그 인도 과자 뭉치는 교무실에서 귀국 신고용으로 매우 유용하게 쓰였다.

        그 밖의 머리핀 세트와 팔찌, 어깨에 걸쳤던 망토 대용 사각천은 동료 교사에게 주었다. 이제 내 곁에 남아있는 건 아내와 딸내미에게 건네줄 머리핀과 컵 두 개, 내가 덮고 잤던 실크 이불, 1루피(Re)짜리 동전뿐이었다. 아들내미에게는 경유지 싱가포르 택시 기사에게서 받은 볼펜을 선물했다. 그리고 인도산 석류 두 개가 더 있었다. 솔직히 이건 하마터면 쓰레기통에 버려질 뻔했던 것으로 난 순진하게도 이 과실을 검역이 필요한 농산물로 판단해 세관에 신고하려 서류까지 꼼꼼히 작성했었다. 하지만 한없이 늘어질 대기시간이 두려워 그냥 슬그머니 통관대를 벗어났었다고 이 자리를 빌려 어렵사리 이실직고하는 참이다.

        이제는 식구들에게 얘기 보따리를 풀 시간. 초장에 세계 최초로 ‘0’이라는 숫자를 사용했던 수학적 탁월성이며 간다라 미술의 우수성은 인정하지만, 고대유적의 대명사 타지마할에서 발원했던 그 명맥으로부터 퇴화한 단 하나의 옛 그림자조차 발견하지 못했노라는 성토에 모두 귀를 쫑긋 세웠다. 결국 인도와 셰익스피어를 바꾸지 않겠다던 영국인들의 엄살이 결코 착각이 아니라는 말로써 견문을 마감하려 들 때, 제법 세계사 쪽에 관심을 가진 아들 녀석이 조심스레 이의를 제기했다. “아빠가 다녀오신 곳은 인도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잖아요. 거기다 거대한 인도 대륙 중에서 지극히 일부분만을 보신 거죠?” 그랬다.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다. 적실히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만 터. 기실 행정수도 뉴델리를 비롯한 옛 수도 콜카타(구 캘커타)에다, 천만 거대도시 델리와 1,500만(그 가운데 무려 300만 명이 노숙자)이 우글거리는 뭄바이(구 봄베이) 등 중북부는 단 한 군데도 돌아본 데가 없었으니까. 이만하면 정문일침(頂門一鍼)이란 어휘밖에 더 무엇이 필요하랴.

        아무리 그렇더라도 어찌하여 내 눈에는 와해된 문명의 파편은커녕 영국 통치 시절의 녹슨 궤적들만 간간이 보였을까? 아니 한정된 시공과 나의 학문적 소양 부족을 준거로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영화롭던 흥성의 흔적들마저 왜 모종의 속임수처럼 느껴졌을까? 물론 미처 드러나자 가치를 폄훼하거나 이면적 자긍심에 생채기를 낼 의향은 추호도 없다. 또한 요 신랄한 지적들이 서양적 사관의 일부분일 가능성을 부인하지도 않겠다. 다만 현재적 관점의 취약점을 낭만적 과거사에 잘못 결합할 경우 자칫 미래의 망각을 부르고 나아가 추잡한 천박함으로 전락할 위험성을 쾌히 경계하자는 참이다. 따라서 이 단락의 전개가 다소 철학적 사유에 천착(穿鑿)하고 있다면 독자 여러분의 깊은 양해를 구한다. 왜냐하면 한때나마 정복자의 노리개로 휘둘리고 농락당했던 대한민국과 인디아의 치욕적 역사가 자칫 동병상련의 정서를 추스르기 곤란할 수 있겠다는 노파심에서다. 마치 둘만의 내밀한 언약을 제3의 관찰자에게 들킨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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