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종건 ·한국시민사회재단 상임대표
·깨어있는시민과동행 사무총장
|
제7회: “거짓은 어떻게 전쟁이 되는가” - 사실을 흔드는 권력의 심리 공작
소설 『장하리』의 이 대목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단순한 정치적 충돌이 아니다. 그것은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려는 순간, 권력이 어떤 방식으로 사실을 흔들고 공론장을 뒤틀며 시민의 판단을 흐리는가를 보여 주는 서늘한 기록이다. 소설 본문(120~133쪽, 제23장 "수면 위로 올라온 진실")은 몇몇 인물의 비밀 통신을 넘어, 위기에 몰린 권력이 어떻게 심리전을 조직하고 거짓의 언어를 전쟁의 언어로 바꾸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특히 이 장면에서 눈에 띄는 것은 사건 자체보다 사건 이후의 움직임이다. 소설 본문(120~133쪽)에 기록된 생생한 비밀 통신 기록과, 권력의 주문을 받아 움직인 듯한 언론 보도는 무엇을 드러내고 있는가. 단톡방에서 움직이던 인물들이 주권자를 배신한 정황이 드러날 위기를 피하려고 ‘적’을 기획하고,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시민의 귀를 흔드는 가스라이팅의 기술은 과연 어떤 권력의 민낯을 폭로하는가.
이번 제7회 「거짓은 어떻게 전쟁이 되는가」에서는 138회에 달하는 긴박한 단톡방 비밀 통신과 조작된 대역 시나리오, 그리고 ‘검언유착’ 프레임을 되치기하는 기만의 기술을 추적한다. 공포와 거짓의 언어가 공론장을 전쟁터로 만드는 순간, 시민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끝까지 붙들어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1. 급증하는 통신 횟수의 비밀: 위기를 돌파하려는 기획자들의 긴박함
권력이 거짓을 기획할 때 가장 먼저 움직이는 것은 공개된 회의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통신망이다. 책 (120쪽)은 대검찰청 수뇌부의 숨 가쁜 움직임을 단순한 정황이 아니라, 적나라한 숫자로 증언한다. 장하리 장관이 진상조사를 공개 지시하자 하도훈, 수사정보정책관 소성준, 대검 대변인 곽주성이 참여한 단톡방은 그야말로 불이 난다. MBC 보도 당일 93회, 진상조사가 언급된 다음 날 66회, 감찰 개시 보고가 들어간 날에는 무려 138회나 통신을 주고받는다.
이 압도적인 횟수는 우연한 연락의 누적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정황이 드러날 위기 앞에서 얼마나 다급하게 움직였는지를 보여 주는 물증에 가깝다. 사건의 실체를 바로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폭로의 방향을 틀고 공세의 주도권을 다시 쥐기 위해 촘촘한 연락망을 작동시킨 흔적이다. 즉, 이 138회의 통신은 단지 숫자가 아니라, 거짓을 방어 체계로 바꾸고 위기를 반격의 기회로 전환하려 한 권력의 긴장된 호흡이다.
이 대목에서 『장하리』는 중요한 사실을 보여 준다. 권력은 위기 앞에서 사실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사실이 자신을 겨누기 시작하면, 그 사실을 흔들 새로운 서사를 재빨리 조직한다. 그리고 그 서사를 퍼뜨리는 첫 번째 공간이 바로 밀실의 통신망이다. 그렇다면 독자는 묻게 된다. 이 통신은 단순한 연락이었는가, 아니면 공론장을 뒤집을 새로운 작전의 출발점이었는가.
2. 조작된 ‘대역 프레임’: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가스라이팅의 기술
이들이 짜낸 가장 노골적인 기만의 장치는 이른바 ‘대역 시나리오’였다. 본문(124쪽)은 이 장면을 충격적으로 드러낸다. 하도훈의 검언유착 육성 파일이 공개될 조짐을 보이자, 김묵은 조은서에게 전화를 걸어 “그 목소리는 하도훈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가장해서 녹음한 공작”이라는 식의 논리를 편다. 심지어 고발장 초안에서는 “지현하는 검사장의 음성녹음을 청취한 사실도 없었다”(127쪽)며 아예 사실 자체를 지워 버리려 한다.
이 장면이 서늘한 이유는 거짓말의 대담함만이 아니다. 더 무서운 것은 그 거짓말이 겨누는 대상이다. 그들은 단순히 증거를 부정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시민이 자기 귀로 들은 것조차 믿지 못하게 만들려 한다. 명백한 증거 앞에서조차 “당신이 잘못 들었다”, “당신이 속고 있다”, “저것은 공작이다”라고 되받아치는 방식.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의 기술이다.
진실을 둘러싼 논쟁은 원래 사실의 충돌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사실을 토론하는 대신, 사실을 받아들이는 시민의 감각 자체를 흔들려 한다. 바로 여기서 ‘전쟁의 언어’가 탄생한다. 진실을 찾는 언어는 사라지고, 상대를 공작 세력으로 낙인찍는 적대의 언어만 남는다. 대화는 실종되고, 오직 공격과 방어만이 남는다. 이 장면은 권력이 위기에 처했을 때 얼마나 쉽게 시민을 설득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조종의 대상으로 보는지를 폭로한다.
3. 언론의 공범 보도: ‘검언유착’을 ‘정언유착’으로 뒤집은 프레임 전쟁
이 기괴한 심리전이 힘을 얻은 것은 밀실의 공작만으로는 불가능했다. 그것을 공론장으로 옮겨와 시민의 머릿속에 심은 것은 다름 아닌 언론이었다. 본문(132~133쪽)은 2020년 4월 14일 중앙일보가 “MBC 검언유착 의혹 보도가 정언유착으로 비화될 조짐이며, 채널A 기자 녹취록 속 음성은 검사장이 아닌 기자 지인의 목소리”라는 취지의 보도를 내보냈다고 적고 있다.
이 대목을 인용하며 장하리는 담담하지만 단호하게 묻는다. “그렇게 언론이 한 통속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언론은 더 이상 사건을 검증하는 감시자가 아니다. 오히려 권력이 짜놓은 공작 프레임을 받아쓰고, 그것을 확대 재생산해 시민에게 퍼뜨리는 공범의 확성기로 기능한다. 본질은 분명했다. 검사가 기자를 통해 제보자를 압박하고, 특정 정치인을 겨냥한 진술을 끌어내려 했는가가 핵심이었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이 본질을 파고들기는커녕, 문제를 제기한 보도와 제보자를 다시 의심의 대상으로 돌려세웠다. 질문은 “무슨 일이 있었는가”가 아니라 “누가 이 프레임을 짰는가”로 바뀌었고, 책임의 화살은 가해 의혹을 받는 쪽이 아니라 폭로한 쪽을 향했다. 이것은 보도가 아니라 프레임 전쟁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것이 단순한 오보나 성급한 해석의 차원을 넘는다는 점이다. 책(136~137쪽)은 훗날 채널A 간부들과 기자들이 녹음파일의 목소리 주인공을 하도훈으로 특정하고도 “증거가 없다”는 회사 입장을 정리해 전달했으며, 결국 “언론이 한 통속(133쪽)”이며, “기자들도 검사와 한 배를 탄 것이었다(136쪽)”고 적는다. 장하리는 이 지점에서 한국 언론의 가장 치명적인 병변(病變, deep-seated problem)을 짚어낸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언론이 권력의 보험이 되고, 진실을 캐야 할 기자가 권력의 위기관리 파트너로 움직이는 순간, 언론은 더 이상 언론이 아니다. 그때부터 보도는 사실 확인이 아니라 권력 세탁의 기술이 된다.
그래서 이 장면은 언론에도 묵직한 자기반성을 요구한다. 검찰이 흘린 말 한마디를 받아쓰고, 권력이 필요로 하는 의심을 대신 유통하며, 공론장을 진실의 장이 아니라 선동의 무대로 바꾸는 데 가세했다면, 그것은 단순한 편향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기반을 허무는 배신행위이다. 언론이 이 지점에서 스스로를 성찰하지 않는다면, 시민은 앞으로도 권력의 거짓뿐 아니라 권력과 결탁한 보도의 습관까지 함께 의심해야 할 것이다.
결국 장하리가 이 대목을 통해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은 하나다. 언론은 과연 권력을 감시하는가, 아니면 권력이 시민을 속일 때 가장 먼저 마이크를 쥐여 주는가.
4. 가장 절실한 요청: 고발장의 정치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정치로
본문(127쪽)에 등장하는 20여 장의 고발장과 160여 장의 사진 파일은 이 심리 공작이 결코 우발적이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김묵이 조은서에게 전달한 이 자료들은 단순한 문서 뭉치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 권력이 누군가의 사설 로펌처럼 기능하며 만들어 낸 ‘법의 흉기’에 가깝다. 고발인 난을 비워 둔 채 배포되는 고발장, 누가 썼는지보다 어떻게 쓰였는지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서류의 흐름은 권력이 법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그대로 드러낸다.
그들의 눈에 법은 공적 정의를 세우는 장치가 아니라, 적을 공격하는 칼이다. 권력은 책임을 지는 자리가 아니라, 공격의 방향을 설계하는 위치가 된다. 이때 정치는 시민의 삶을 보호하는 공적 책임이 아니라, 내부 결속과 외부 적대의 기술로 전락한다.
그러나 장하리가 끝내 붙들고자 했던 정치의 본질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정치란 사람을 살리는 일이어야 하며, 법은 공포를 퍼뜨리는 도구가 아니라 시민의 존엄을 지키는 울타리여야 한다는 믿음이다. 전쟁의 언어는 단순하고 자극적이어서 대중을 쉽고 빠르게 선동한다. 하지만 공동체를 끝내 지켜내는 것은 언제나 느리고 복잡하더라도 사실을 확인하고, 책임을 묻고, 사람의 삶을 중심에 두는 평화의 언어다.
그래서 이 대목은 단지 검찰의 일탈이나 언론의 왜곡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에게 정치의 수준을 다시 묻는다. 공포를 동원해 시민을 통치하려는 정치에 맞서, 사람을 살리고 사실을 지키는 정치를 우리는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가(7~9쪽, 357쪽 참조). 그 질문이야말로 『장하리』가 제7회에서 가장 절실하게 던지는 요청이다.
맺음말: 거짓의 그물을 찢는 것은 결국 주권자의 눈이다
『장하리』의 일곱 번째 주제는 결코 역사적 은유에 머무르지 않는다. 본문(120~135쪽)이 보여 주는 것은 138회의 단톡방 통신, 조작된 대역 시나리오, 언론의 대리 보도라는 구체적 장면들로 짜인 하나의 현실 보고서다. 그것은 주권자를 판단의 주체가 아니라 흔들리고 조종될 대상으로 여기는 권력의 오만을 낱낱이 드러낸다.
당장의 시간 속에서는 거짓과 조롱, 수사권과 보도권을 함께 쥔 전쟁의 언어가 이기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안개는 걷히고 퍼즐은 맞춰진다. 방을 폭파하고 기록을 지우려 해도 복구된 스마트폰의 통화 녹음 파일이 결국 수면 위로 올라오듯, 진실은 시간을 건너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그래서 이 장이 끝내 우리에게 남기는 과제는 분명하다. 거짓이 활개 치는 심리적 전시체제를 거부하고, 권력이 던진 가짜 언어의 그물을 찢어낼 주권자의 눈을 갖추는 것. 그것이야말로 장하리의 시린 싸움을 지켜본 우리가 감당해야 할 평화의 책임이다.
[제8회 예고]
세상은 법과 원칙을 지키려는 그녀의 신념을 ‘독선’이라 비웃었고, 거대 카르텔의 왜곡된 프레임 속에 가두어 조롱했다. 그러나 조롱은 진실을 오래 이기지 못한다.
제7회에서 살펴본 본문(120~135쪽)의 어두운 음모와 심리전의 늪은, 결국 장하리 개인을 완전히 고립시키기 위한 거대한 덫이었다. 정당한 사법 통제는 지워진 채 “추-윤 갈등”이라는 개인적 가십으로만 난도질되던 그때, 그녀는 어떻게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켜낼 수 있었을까.
이어지는 제8회 「조롱의 시대를 건너는 법」에서는 소설 중반부 국회 대정부질문 현장의 날 선 고립과 가족을 향한 비열한 공격 한복판에서 장하리가 지켜낸 양심의 체온을 따라가 본다. 나아가 소설의 종장인 저자후기(353~358쪽) 「얼어붙은 겨레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다」를 통해, 저자가 던지는 또 다른 세계사적 은유를 분석하고자 한다. 거짓으로 전쟁을 정당화했던 미국의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사례를 통해, 오늘 우리 시대를 위협하는 오판과 ‘전쟁의 언어’가 무엇을 경고하는지 냉정하게 해부해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