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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
----------(3회)----------
Garden Origin 'Louis van Houtte'에서 보듯이 선진국일수록 근원을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도심을 지키고 있는 세계평화의 종(World Peace Bell). 입간판을 보니 눈치 빠른 일본인들이 기증했다. 평소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국이 정작 요긴한 데서는 굼뜬 행보를 보이는 사이 발 빠르게 앞서가지 못한 탓이었다. 발품을 팔아 공원 입구에서 Canterbury Museum을 배경으로 아쉬운 대로 인상적인 장면을 담고 나오려는데 교복 차림의 남고생들이 무리를 지어 지나갔다. 온종일 현장 교육이 있는 날. 부럽게도 각자 관공서나 박물관 등을 찾아가 주어진 과제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는 학습 형태였다. 여태껏 말로만 듣던 전인교육의 현장을 확인한 감회는 남달랐다. 다만 당장 우리 실정에 적용할지는 연구해 봐야 한다는 게 중론이란다. 때마침 우산을 꺼내기에 애매한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맑은 날 높은 지대에 올라 저 멀리 바라다보면 알프스를 방불한 1,200m의 설산들이 어렴풋이 보인다는 설명. 편도 1차선 도로는 150년 전에 기획한 도면을 바꾼 적이 없어 약간의 체증이 있기는 해도 출퇴근 시각에도 큰 문제는 없다고 했다. 일부 시가지를 빼고는 설계한 지 100년이 넘었어도 나름 세련미를 잃지 않고 있었다.
가로를 달리다 보면 통나무로 만든 중앙분리대에 난초를 심어 놓았다. 그 또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어 차 안에서 듣는 클래식과도 썩 어울렸다. 이따금 나선형 굴뚝이 보여 물어보니 매연을 걸러내는 장치. 세 갈래의 철로와 함께 버스와 나란히 가는 풍경은 퍽 이채롭다. 길섶 화단에서는 칡넝쿨을 닮은 식물이 자라고, 매연에 강한 가로수는 앙상한 가지를 한껏 늘어뜨렸다. 간간이 눈에 띄는 창문에 담쟁이덩굴을 덮은 집들. 럭비장이 자리한 마을 풍경은 이제는 특이하지도 않다. 나의 눈길을 멈추게 만든 소박한 나무담장. 바로 그 순간, 희미하게나마 필자는 지금 북반구의 정반대 편에 있다는 느낌이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이네들은 북향집을 선호한단다. 우리와는 일출과 일몰이 정반대이므로. 남위 43도에 북위 37도이니까 한국과는 거의 극과 극인 셈이다. 가이드에 따르면 블라디보스토크가 대척점. 겨울에도 평균 섭씨 3~4도의 해양성 기후를 유지하고 있어 자연인으로서 지내기에는 그만인 터. 남녘에서 가끔씩 삭풍이 불어오긴 하지만 그때마다 따뜻한 북풍(?)과 마주쳐 자연스럽게 상쇄해 주고 있단다. 여름 두 달은 건기여서 갈색 대지가 되고, 겨울 두 달은 우기여서 녹색 초지가 되는 사계를 누가 만들었겠는가? 우리 부부는 목하 거꾸로 해와 달과 바람과 들판을 딛고 서서 창조 세계의 이른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마주하는 참이다.
뉴질랜드 면적의 60%를 점유하고 있는 남섬. 보시다시피 낙농업이 85%를 점유하고 있고,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수자원을 이용해 80%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고 하니, 말하자면 남은 생산자, 북은 소비자로서 수출 전초기지의 사명을 감당한 터였다. 현재 리무진이 내달리는 곳은 켄터베리 평야. 이 땅을 자산으로 관광 대국을 꿈꾼다는데 맑은 햇살을 받는 기다란 차체에 꼬리처럼 매달린 그림자는 중앙내륙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인적이 없어 언뜻 산업단지가 아닌 듯한 Industrial Area 옆을 지날 때 교통표지판을 점검하는 차량이 보였다. 사람은 물론 차량마저 반가운 나라. 제아무리 경관이 뛰어나고 훌륭한 시설을 갖추면 무슨 대수랴. 거기에 인간이 없으면 그만인 것을! 그나저나 눈꺼풀이 무거워져 나도 모르게 깜빡깜빡 아까운 풍경을 놓칠 때가 있다. 가이드가 한창 낮잠에 빠진 일행을 깨우더니 얼마 전 자신이 겪은 일을 풀어놓았다.
곱게 늙어가는 나 홀로 여행객에 관한 이야기. 동안이어서 60대 중반쯤으로밖에 안 뵈는 만 84세 한의사가 있었단다.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은 그의 상징이 된 너털웃음. 듣자니 6명의 직원을 거느린 그는 명실공히 인생의 대가, 1년이면 서너 차례씩 단신으로 떠나는 여정이 벌써 79번째였다, 50대 초반에 상처했으나 재혼을 마다한 채 명확한 철학을 갖고 꾸려가는 삶의 행보가 남달랐다. 누구든 비좁은 공간에서 1시간 이상을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으면 모세혈관이 막히는 거야 상식일 텐데 얼마나 재밌는지 이어지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그의 18번 처방은 유쾌하게 자주 웃으라는 것. 이를테면 억지웃음마저 똑같은 효험을 본다는 말인즉슨 우리 뇌가 미처 가짜웃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순간 매사 따지길 즐기는 나로서는 의학적으로 좀 더 깊이 알아보고픈 호기심이 생겨났다. 그러고 보니 한때 대한민국에 일대 신드롬을 일으킨 채식주의자 의사 생각이 났다. 그의 지론 역시 웃으면 우리 몸에서 엔도르핀(endorphin)이 솟아나 썩어가는 발가락도 낫게 한다고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