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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건 ·깨어있는시민과동행 사무총장 ·한국시민사회재단 상임대표 |
“왜 우리는 그녀를 홀로 두었는가”
우리는 왜 지금 다시 ‘추미애’라는 이름을 불러야 하는가. 그녀가 완벽한 영웅이기 때문일까, 혹은 무오류의 정치인이었기 때문일까. 『장하리』는 그런 매끈한 성공 서사를 거부한다. 대신, 우리 시대 가장 치열했던 개혁가가 온몸에 화살을 맞고도 어떻게 버텼는지, 그리고 그 한 사람의 상처가 어떻게 우리 공동체 전체의 흉터가 되었는지를 증언한다.
프롤로그에서 그녀가 남긴 “정치의 실패로 인한 결과는 다시 국민의 몫이 되고 말았다”(5쪽)는 문장은 이 책을 관통하는 뼈아픈 자기 고백이다. 그녀는 정작 자신이 입은 상처보다, 자신이 물러난 뒤 그 실패의 비용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국민의 미래를 더 두려워했다.
1. 그녀의 상처는 우리 모두의 부채였다
장하리가 감당한 고통은 단지 한 정치인의 불운이 아니었다. 검찰개혁이라는 거대한 과제를 밀어붙인 대가였고, 시민이 위임한 권력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려 했던 시도에 가해진 잔혹한 역공이었다.
“모든 것을 바친다 했는데도 아직도 산산조각으로 남아있습니다. 산산조각이 나더라도 공명정대한 세상을 향한 꿈이었습니다”(35쪽).
언론은 이를 정치적 패배라 조롱했지만, 추미애는 그것을 개혁의 미완이자 공동체의 책임으로 받아들였다. “언론은 철저하게 검찰과 한편이 된 지 오래다”(36쪽)라며, 일시적인 여론의 파도보다 민주주의의 방어선이 무너지는 것을 더 걱정했던 그녀에게, 상처는 피할 수 없는 훈장이자 공동체를 향한 경고였다.
2. 우리는 왜 창을 들지 않았는가
제9회가 가장 아프게 읽히는 이유는 우리에게 변명할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책은 묻는다. 우리는 정말 끝까지 함께 버텼는가? 아니면 피로와 냉소, 비겁한 거리두기로 그녀를 외롭게 만들었는가?
“코끼리 사냥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고요… 그때 옆에서 창을 든 사람들이 구경만 하고 있으면 처음 창을 던진 사람은 밟혀 죽을 겁니다”(83쪽).
이 비유는 너무나 잔인할 만큼 정확하다. 추미애가 거대한 권력 카르텔과 맞설 때, 더 뼈아팠던 것은 카르텔의 위력보다 ‘관람석’에 머물러 있던 다수의 침묵이었다. 너무 강하다거나 부드럽지 못했다는 평가는, 사실 우리가 안전한 뒤편에서 행했던 가장 그럴듯한 ‘거리두기’는 아니었을까.
3.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42만 명의 국민청원은 그녀를 향한 뜨거운 지지를 증명했다. 그러나 그 열망이 현실의 보호막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그 지점이, 바로 우리가 짊어져야 할 ‘부채’의 자리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정의가 홀로 상처 입는 상황을 방치함으로써 그 고통을 가속하는 행위였다.
이제 이 부채는 단순한 죄책감을 넘어선다. 뒤늦게라도 그녀를 다시 부르는 이유는 과거를 미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모든 개혁에는 응당 저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개혁은 있어도 영원한 저항은 있을 수 없습니다.... 밥 먹고 다시 힘을 냅시다. 밥심으로 버텨야지요!”(350~351쪽)라던 그녀의 목소리처럼, 상처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개혁의 시간을 다시 우리 공동체의 중심으로 불러들이기 위함이다.
맺음말: 상처 입은 정의를 다시 세우는 법
『장하리』의 아홉 번째 회는 우리에게 불편한 각성을 요구한다. 더 이상 정의를 홀로 두지 말자.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상처 입는 순간, 그 곁에 서는 것. 그것이 우리가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식이다. 『장하리』를 읽는다는 것은 한 정치인을 재평가하는 일을 넘어, 우리 자신의 침묵과 비겁함을 성찰하는 일이다. 거기서부터 비로소 민주주의의 다음 장이 시작될 것이다.
[제10회 예고]
강물은 굽이쳐도 끝내 바다로 흐른다. 실패와 조롱의 시간을 지나온 장하리의 강물은 과연 어디로 향하는가. 마지막 제10회에서는 다시 흐르기 시작한 장하리의 강물, 그리고 우리가 함께 써 내려가야 할 연대의 가능성을 따라가 본다.
[지역사회의 혁신가, 조종건 사무총장에 대해]
1. 조종건 사무총장은 신학, 법학, 그리고 최첨단 AI 융합학을 아우르는 융합적 식견으로 민원 현장의 패러다임을 바꾼 행동가입니다.
2. 그는 평택에서만 지난 16여 년간 시민의 절박한 ‘삶의 절규’에 귀 기울이며, 이를 제도적 해법으로 승화시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왔습니다.
3. 특히 2019~2020년 평택 LH 공공임대료의 획기적인 인하(약 30억 원 규모)를 주도하며 취약계층의 주거 안정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4. 환경부와의 끈질긴 협상 끝에 200억 원 규모의 통복하천 복원 사업을 관철하며 건강한 지역 생태계 회복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5. 현대제철과 민관협치를 통해 미세먼지 저감을 이끌어냈으며, 고등학교 인재 육성을 위한 장학기금 조성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6. 평택시 자전거 도로망 구축 제안(2006년경)을 비롯해, 만세로 및 법원 앞 교통 신호 체계 개선 등 주민 편의와 안전을 위한 인프라 확충에 앞장섰습니다.
7. 장기간 표류하던 평택대학교의 정상화를 위해 헌신(약 4년)하고, 지역 내 갈등 현장에서 조정자로서 공공의 가치를 세우는 데 진력했습니다.
8. 찜질방을 전전하던 이웃들에게 주거를 연계하고 무료 법률 자문을 제공하는 등 소외된 이들을 위한 현장 중심의 실천적 복지를 실현했습니다.
9. ‘이웃을 위한 책임 있는 삶’을 필생의 사명으로 삼아, 시민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고 지속 가능한 민주 공동체를 만드는 데 평생을 바쳐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