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종건 연재서평 제10회] 추미애의 『장하리』를 읽다 - 다시 시작하는 강물, 연대의 바다를 향하여
    • 조종건 깨어있는시민과동행 사무총장
      조종건 ·깨어있는시민과동행 사무총장
             ·한국시민사회재단 상임대표

      제10회: “강물은 멈추지 않는다” - 양심에서 연대로, 장하리의 다음 장

      우리는 지난 아홉 번의 연재를 통해 ‘정치인 추미애’의 이력보다 더 깊은 어떤 흐름을 따라왔다. 그것은 한 인간이 어떻게 양심을 지켰는지, 어떻게 권력과 맞섰는지, 어떻게 가족을 지키며 개혁의 길을 버텼는지, 그리고 실패와 고독과 조롱을 견디면서도 왜 끝내 물러서지 않았는지를 보여 주는 흐름이었다. 이제 제10회는 그 모든 여정의 끝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장하리』가 끝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패배의 감상이 아니다. 그것은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강물의 이미지이며, 그 강물을 이제 누가 이어받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추미애는 프롤로그에서 이미 이 책의 가장 아픈 문장을 남겨 놓았다. “정치의 실패로 인한 결과는 다시 국민의 몫이 되고 말았다”(5쪽). 그리고 이어서 그는 정치가 권모술수나 권력의 기술이 아니라 “선(善)의 예술”이어야 한다고 쓴다(9쪽). 이 두 문장은 『장하리』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왜냐하면 장하리의 강물은 결국 정치의 실패를 고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선의의 예술로서의 정치를 다시 세우라는 요청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1. 장하리는 지명이 아니라 삶의 원형이었다

      『장하리』를 다 읽고 나면, 장하리는 더 이상 유년의 한 지명으로 남지 않는다. 그것은 세탁소집 딸로 자라며 몸에 밴 정직, 주름 하나에도 성실을 새겨 넣던 삶의 질서, 불의 앞에서 허리를 굽히지 말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이 응축된 이름이 된다. 책의 초반부에서 저자는 아버지의 말을 회상한다. “사람이 죽어서 남기는 건 이름뿐이다. 그러니 하루를 살더라도 의롭게 살아야 하는 거다”(18쪽). 그리고 김홍영 검사를 기리며 끝내 “길이 끝난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정호승의 시구를 새겨 넣는다(21쪽). 이 장면은 장하리라는 이름이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삶의 태도를 지탱하는 윤리적 근원임을 보여 준다.

      그래서 장하리의 강물은 단순한 고향의 추억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리 시대가 혼탁해져도 끝내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의 상징이다. 권력의 중심에 가까이 갈수록 많은 사람은 자신이 어디서부터 흘러왔는지를 잊는다. 그러나 『장하리』의 추미애는 더 높은 자리로 갈수록 오히려 더 자주 자신의 출발점을 돌아본다. 장하리의 강물은 바로 그 기억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장하리는 한 인물의 고향이기 전에, 그 인물을 끝내 무너지지 않게 만든 내면의 수원지다.

      2. 산산조각 이후에도 강물은 멈추지 않았다

      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큰 정서는 승리보다 상처에 가깝다. 『장하리』는 자신을 미화하는 회고록이 아니라, 오히려 무엇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스스로 복기하는 상처의 기록이다. 그 정점에 있는 장면이 바로 사퇴 직후의 기록이다. 저자는 그날의 심경을 이렇게 남긴다. “모든 것을 바친다 했는데도 아직도 산산조각으로 남아있습니다. 산산조각이 나더라도 공명정대한 세상을 향한 꿈이었습니다”(35쪽). 이 문장은 개인적 좌절의 고백이면서도, 개혁의 미완을 온몸으로 받아낸 사람의 처절한 자기 증언이다. 그것은 단지 한 장관의 퇴장이 아니라, 개혁의 임무를 끝까지 완수하지 못한 책임이 어디에 남는가를 묻는 비통한 장면이다.

      그러나 『장하리』가 귀한 이유는 바로 그 산산조각의 순간에도 흐름을 끊지 않기 때문이다. 강물은 바위를 만나면 멈추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어 다시 흐른다. 이 책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완벽한 영웅으로 남지 않는다. 오히려 수없이 흔들리고, 오해받고, 고립되고, 상처 입지만 끝내 멈추지 않는 인간으로 남는다. 바로 그 점이 『장하리』를 더 믿을 수 있게 만든다. 완결된 성공담은 감탄을 부르지만 오래 남지 않는다. 그러나 넘어질 이유가 충분했음에도 다시 일어나려는 사람의 기록은 독자의 삶 속으로 더 깊이 스며든다.

      그래서 제10회가 말해야 할 핵심은 분명하다. 『장하리』가 남기는 유산은 화려한 승전보가 아니라, 멈추지 않는 태도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 조롱은 본질을 영원히 지울 수 없다는 것, 상처 입은 정의도 결국 다음 세대의 강물이 될 수 있다는 것. 이 책은 바로 그 느리지만 단단한 진실을 증언한다.

      3. 퇴임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용기의 문턱이었다

      『장하리』의 후반부는 하나의 중요한 반전을 보여 준다. 언론과 정치는 추미애의 퇴장을 패배처럼 소비했지만, 책 속의 추미애는 그 장면을 전혀 다른 언어로 받아낸다. 퇴임식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개혁에는 응당 저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개혁은 있어도 영원한 저항은 있을 수 없습니다”(350쪽). 이 말은 단순한 작별 인사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겨눈 저항이 지금은 거세 보일지라도, 역사 속에서 끝내 지속되는 것은 저항이 아니라 개혁이라는 선언이다. 이 한 문장은 『장하리』 전체를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더욱 묵직하게 들린다.

      같은 대목에서 저자는 “원칙에 입각해서 이해하고 결론을 내린 것은 당장은 상처를 받더라도 나중에 후회가 덜 되더라구요”라고 말한다(350쪽). 그리고 마지막에는 “밥 먹고 다시 힘을 냅시다. 밥심으로 버텨야지요!”라고 웃는다(351쪽). 이 장면이 특별한 이유는, 거기서 비장함만이 아니라 다시 살아갈 힘이 함께 나오기 때문이다. 진짜 강한 사람은 상처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를 안고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다. 추미애의 강단은 여기서 독선이 아니라 근력으로 읽힌다. 그것은 남을 누르는 힘이 아니라, 무너진 뒤에도 다시 자기 자리에 서는 힘이다.

      따라서 제10회는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나아간다. 한 사람의 강물은 여기까지 왔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결코 한 사람의 결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앞선 아홉 회 동안 우리는 너무 자주 한 사람에게 기대와 부담, 명예와 비난, 상처와 책임이 집중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이 향하는 곳은 개인 영웅담이 아니다. 오히려 독자에게 묻는다. 이제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이 강물을 구경할 것인가, 아니면 함께 흘러갈 것인가.

      4. 저자후기가 남긴 최후의 메시지: 거짓을 넘어 다시 뛰는 심장

      『장하리』의 마지막을 진짜로 완성하는 것은 저자후기다. 여기서 추미애는 “탐욕과 의도가 깔린 거짓이 그물처럼 사람들의 판단을 방해하고 옭아매고 있다”고 쓴다(357쪽). 그리고 이어서 “거짓을 모르고 지나치면 진실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실은 어떤 고난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주지만 거짓은 언제나 역사를 퇴행시켰다”고 적는다(357~358쪽). 이 문장은 제7회에서 우리가 보았던 심리 공작의 문제를 다시 원점에서 정리하면서, 동시에 제10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려 준다. 강물은 단지 상처를 견디는 힘이 아니라, 거짓을 가르는 눈과 진실을 다시 붙드는 의지의 흐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에 이육사를 호출한다. “얼어붙은 겨레의 심장을 다시 뛰게” 했던 시인을 언급하며, “가장 절망스러울 때가 가장 희망의 절정에 이를 때”라는 역설적 진실을 남긴다(358쪽). 바로 이 지점에서 『장하리』의 마지막은 과거의 회고가 아니라 미래의 선언으로 바뀐다. 추미애가 이 책을 통해 남긴 것은 “나는 이렇게 당했다”는 개인사의 진술이 아니다. 그것은 “절망 속에서도 심장은 다시 뛸 수 있다”는 역사적 요청이다. 그러므로 제10회는 슬픔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오히려 얼어붙은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새로운 연대의 문장으로 끝나야 한다.

      맺음말: 장하리의 강물은 이제 우리 안에서 다시 흘러야 한다

      결국 『장하리』의 마지막 장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단 하나의 질문이다. 우리는 이제 어떤 민주주의의 다음 장을 써 내려갈 것인가. 검찰공화국의 민낯을 목격했고, 조롱의 시대를 통과했으며, 정치의 실패와 공동체의 침묵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도 배웠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다시 흐르게 하는 일이다. 장하리의 강물은 혼자서 바다를 이루지 못한다. 그 강물이 시민의 연대와 만나야 비로소 바다가 된다.

      이 연재의 마지막에서 우리가 추미애를 다시 읽는 이유는 한 정치인을 미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가 완벽해서도 아니다. 오히려 무너질 이유가 충분했음에도 끝내 자신의 양심을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양심이 이제 우리에게 연대의 책임을 묻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은 단순한 마침표가 아니라, 독자에게 함께 걸어오라고 요청하는 부름처럼 읽힌다. 이제 당신도 이 강물의 일부가 되겠는가. 이제 당신도 상처 입은 정의를 다시 공동체의 중심으로 불러낼 것인가. 그 물음이야말로 제10회가 끝내 남기는 진짜 결론이다.

      우리는 이제 안다. 진실은 느릴 수 있어도 사라지지 않고, 신념은 조롱받을 수 있어도 소멸하지 않으며, 정의는 상처 입을 수 있어도 끝내 다시 흐른다는 것을. 그래서 이 마지막 장은 단순한 서평의 끝이 아니라, 우리 각자에게 건네는 부탁으로 읽혀야 한다. 더는 정의를 한 사람의 어깨에만 올려두지 말자. 더는 양심적인 사람을 뒤늦게 칭송하는 데서 멈추지 말자. 그가 상처 입는 순간 곁에 서고, 그가 홀로 버티는 순간 함께 버티는 시민이 되자.

      장하리의 강물은 멈추지 않는다. 이제 그 강물은 우리 각자의 마음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물줄기들이 서로 만나, 마침내 더 정의롭고 더 인간적인 민주주의의 바다를 이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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