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
----------(14)----------
임시 숙소에 도착하니 아침 8시. 전신이 축축 늘어지는 품이 지독한 몸살이었다.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지금의 내겐 씻는 것도 차후의 일, 우선은 푹 쉬는 게 상책이었다. 남궁 선생에게 사정을 고하고 자리에 드러누웠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넋을 잃은 채 한참을 자고 일어나니 몸은 약간 가뿐해진 느낌. 아차,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이 사전에 ‘한국 음식의 날’로 선포한 그 날이 아닌가? 우리가 가져온 햇반, 라면, 인스턴트 김치, 국거리 등으로 현지인들을 대접하자며 미리 정해 놓은 날짜였다. 하지만 사지 몸통이 도통 말을 듣지 않으니 나서서 도울 일이란 없었다. 평소 아내를 도와 곧잘 상차림을 거들고 미세한 혀끝으로 간 보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모처럼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날려버린 꼴. 여건상 어쩔 수는 없었으되 잔치 준비에 동참하질 못하니 뭐라 거들 말이 궁색했다.
그동안 남궁 선생과 이 선생 둘이서 공들여 만든 우리 음식이 눈앞에 가득했다. 이게 대체 얼마만이고 웬일이람? 파김치를 넘어 아예 곤죽이 돼버린 육신임에도 입맛이 동해 옆에서 권하는 대로 쌀밥에 볶음김치를 얹고 입에 넣을 때까지는 그런대로 목에 넘어갔으나 불어터진 라면 사리를 맛보는 순간 면발이 잔뜩 불어터진 데다가 짜디짠 나머지 불과 몇 가닥밖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인도 사람들 역시 처음 보는 라면 맛이 몹시도 이상했던지 더 먹으라는 권유에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적은 물에 수프를 몽땅 넣고 면을 졸인 탓이었다. 난생처음 라면이란 걸 끓여본 티를 제대로 내고 만 터. 한국 고유의 맛을 형편없이 망쳐버린 결과가 못내 아쉬웠다. 우리네 음식으로 기운을 차리려던 나의 계획이 속절없이 무산된 현장. 그렇게 전화위복에 대한 기대감은 멀찌감치 달아나 버렸다. 허탈한 표정으로 손을 놓고 있을 때 옆에서 내미는 인도 수박으로 허기를 메운 건 그나마 위안이었다.
하지만 그게 탈이었다. 빈속이 잔뜩 놀란 나머지 뱃속이 요동을 쳤다. 사태는 기어이 고열을 동반한 몸살에 설사까지 겹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은 참. 좌변기에 앉자마자 그야말로 생난리가 났다. 전신이 진땀을 쏟아내며 속이 미식거리다 못해 토사곽란이 일어날 징후마저 엿보였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시멘트 벽면을 붙잡고 끙끙거리며 한동안 주님의 손길을 구해야 했다. 이제는 출국은커녕 생환이 문제가 될 국면. 모든 일정을 거지반 소화하고 집에 갈 일만 남은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기에 몹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불과 얼마 전까지 사스(SARS)가 아시아를 휩쓸고 지나간 때인지라 그러려니 심상하게 넘어갈 사안은 아니었던 터. 부랴부랴 비상약을 복용했으나 좀처럼 설사는 멈추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든 탈진만은 막아야 할 절박한 상태. 당장 10시간 가까운 거리의 하이데라바드까지의 이동 경로가 당면과제였다.
어쨌거나 비행기 시각에 맞춰 새벽 3시에 출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 문제는 10분이 멀다 하고 쓴 물까지 쏟아내는 삭신을 어찌 버텨낼지가 관건이었다. 남은 시간 억지로 잠을 청하는 사이 이선생은 엘룰루에 다녀온 낌새. 그때는 세세히 몰랐으나 귀국한 뒤 보따리를 풀어보니 정성껏 예비해 놓은 먹거리를 한 아름 가지러 갔던 모양이다. 그토록 바쁜 와중에 언제 그렇게 이것저것 많은 준비를 했는지 그 마음 씀씀이가 퍽 고마웠다. 그랬다. 쿠마 가족이 기거하는 사글셋집은 단칸방이었다. 단 세 평 남짓한 크기의 방으로 들어가는 길목은 불편한 계단과 좁다란 통로가 뚫렸고, 비좁은 공간엔 옷가지들로 가득했다. 한 사람 겨우 주방을 통과하면 손바닥 만한 뒤뜰이었으며 그대로 세면장이었다. 그 한쪽 구석에 재래식 뒷간이 있었다.
남궁 선생도 따로 시장에 들러 오는 등 남은 일정을 알차게 소화한 듯한 움직임. 기실 나는 이렇게 쓰러지기 전까지만 해도 그와 함께 꼭 가보고 싶은 데가 있었다. 남궁 선생이 쿠마 목사를 처음 만났다는 채팅 장소였다. 불과 2년 전 동료 목회자를 통해 인터넷을 소개받고 컴퓨터를 배우자마자 한 영업소에 들어가 손길 닿는 대로 어떤 ID를 누른 것이 서로를 알게 된 촉발점이었단다. 지체없이 날바닥에 무릎을 꿇고 예수님께 ‘부디 후원자를 보내 달라’고 엎드린 지 딱 한 달 만에 한국의 후원자들을 극적으로 만났던 참이다. 신실하신 성령 하나님의 인도이자 예정하심. 우리 인도선교회가 태동한 그 역사의 현장을 놓친 일은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