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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건 ·한국시민사회재단 상임대표 ·깨어있는시민과동행 사무총장 |
제8회: “조롱은 오래가지 못한다” - 국회의 고립 속에서 드러난 신념의 무게
『장하리』의 서사는 여기서 가장 현대적이고도 잔인한 심리적 전장으로 들어선다. 앞선 장들이 권력기관과의 충돌, 가족을 향한 공격, 개혁의 좌절, 그리고 거짓의 전쟁을 다루었다면, 이번 장은 그 모든 싸움 위에 덧씌워진 또 하나의 폭력, 곧 조롱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오늘의 시대는 논쟁보다 조롱이 빠르고, 성찰보다 낙인이 쉬우며, 진실보다 이미지가 더 멀리 소비된다. 『장하리』에서 국회와 정치권의 냉소는 본회의장 장면(205쪽)과 ‘갈등 프레임’(208~210쪽) 서술에서, 미디어의 냉소는 보도 행태 비판(7쪽과 104~105쪽)에서 각각 또렷하게 드러난다. 여기에 저자후기(356~358쪽)에서 제시되는, 정치를 희화화하는 권력의 언어와 거짓이 역사를 퇴행시킨다는 성찰이 겹쳐지면서 제8회의 의미는 한층 더 깊어진다.
프롤로그에서 추미애는 이미 이 장의 본질을 예고한 바 있다. 그녀는 “정치인을 매도하고 능멸하고 부패 집단으로 묘사해 정치를 희화화함으로써 정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떨어뜨린다”고 쓰며, 그런 조롱의 정치가 오히려 검찰 정치를 정의로운 것으로 오인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7쪽). 이 문장은 제8회를 해석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다. 조롱은 단순한 비웃음이 아니라, 공론장을 망가뜨리고 시민의 판단을 흐리는 권력 기술이라는 것이다.
1. 국회 대정부질문 현장: 진실 대신 표정과 말투를 겨누는 값싼 무기
제8회의 첫 무대는 국회 본회의장 장면이다. 이어 ‘장하리-용건석 갈등’ 프레임(208쪽)이 본격화되면서, 개혁의 본질은 지워지고 장하리 개인만 소비되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장하리가 마주한 것은 정책의 정당성을 둘러싼 치열한 토론이 아니라, 한 사람을 정서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언어적 공격이었다. 권력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는 헌법적 원칙을 논리로 반박하기 어려워질수록, 기득권 정치와 거대 언론의 언어는 점점 사안의 본질보다 사람 자체를 겨누기 시작한다. 장관의 개혁안이 지닌 법리적 의미는 지워지고, 그녀의 표정과 말투, 눈빛만이 가십처럼 소비된다.
이 대목은 프롤로그(7~8쪽)의 통찰과 정확히 이어진다. 추미애가 말했듯, 정치인을 매도하고 능멸해 정치를 희화화하는 방식은 대중의 관심을 떨어뜨리고, 공적 토론을 조롱과 감정 소비의 장으로 바꾼다. 그래서 국회 전광판과 뉴스 화면을 채운 ‘독선’, ‘불통’, ‘센 여자’ 같은 낙인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토론 자체를 중지시키는 값싼 권력 기술이 된다. 상대의 주장을 반박할 수 없을 때 상대 자체를 우스운 존재로 만들어 버리면, 시민은 그 결단의 의미를 더 이상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않게 된다. 장하리는 바로 그 조롱의 야유 속에서 홀로 단상을 지켜야 했다.
2. 가족을 인질로 잡은 먼지떨이: 오해와 가십 속에서 시험받는 원칙
그러나 조롱의 칼날은 곧바로 가족을 향해 옮겨 간다. 제8회의 또 다른 핵심 장면은 가족을 인질로 삼은 ‘먼지떨이식 공격’의 국면이다(222쪽). 이 대목에서 언론은 장하리 아들의 평범한 군 복무와 병가, 휴가 문제를 마치 거대한 권력형 특혜 비리인 양 부풀려 보도하며, 공적 신념을 무너뜨리기 위해 가장 사적인 영역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 장면은 제5회에서 다룬 ‘어머니라는 이름의 방패’와도 이어지지만, 제8회에서는 그 고통이 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조롱의 시대가 작동하는 방식으로 재해석된다.
가족 공격이 더 비열한 이유는, 그것이 사실 검증보다 정서적 파괴를 노린다는 데 있다. 원칙의 진짜 무게는 모두가 환호할 때가 아니라, 모두가 등을 돌릴 때 드러난다. 그러나 집 앞을 둘러싼 카메라와 끝없이 증폭되는 자극적 보도, 온 가족의 사생활이 난도질되는 상황 속에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는다면, 그때 비로소 신념의 진가가 드러난다. 장하리의 침묵과 인내는 비겁한 후퇴가 아니었다. 그것은 진실이 가려진 시대를 견뎌 내기 위한 단단한 버팀이었다. 그녀가 쉽게 타협하지 않은 이유도 분명하다. 여기서 물러서는 순간, 권력은 앞으로도 평범한 시민의 가족을 인질처럼 삼아 공적 판단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 가장 단단한 품격: 신념은 고집이 아니라 인간 존엄의 문제다
본문(26~33쪽)의 장면은 제8회의 핵심을 더 정확하게 보여 준다. 장하리는 뜬눈으로 밤을 새운 뒤, 대통령에게 보고할 징계의결서를 한 줄 한 줄 짚어 가며 읽는다. 이어 청와대로 향하기 전에도 하늘색 파일에 담긴 징계의결서를 다시 넘겨 본다. 아무도 그 내용을 제대로 귀담아듣지 않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도, 끝내 자기 몫의 문장을 읽어 내려가는 이 장면 앞에서 신념은 더 이상 추상어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왜곡과 압박 속에서도 자기 양심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존엄 그 자체다.
이 지점에서 『장하리』의 문제의식은 다시 프롤로그(8쪽)와 이어진다. 추미애는 그곳에서 정치는 “끊임없는 투쟁의 예술”이며, 궁극적으로 “선의의 예술”이어야 한다고 쓴다. 이것은 단지 정치철학의 선언이 아니다. 타협을 성숙이라 부르고 후퇴를 유연함이라 미화하는 세상의 언어 앞에서도, 자기 양심의 중심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태도와 직결된다. 그래서 장하리의 버팀은 독선이 아니라 품격이다. 진짜 강함은 거친 권력이나 큰 목소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양심을 싼값에 팔지 않는 태도에 있다는 것을 이 장면은 보여 준다.
4. 시간을 이기는 척추: 조롱은 순간이지만 신념은 역사를 기억한다
제8회의 마지막 무게중심은 저자후기의 역사적 성찰에 놓여 있다. 조롱은 빠르고 자극적이다. 당장의 국회와 미디어 화면에서는 언제나 조롱하는 쪽이 이기는 듯 보인다. 그러나 저자후기에서 추미애는 분명히 말한다. “어느 사람이라도 그의 생명과 행복을 어리석은 정치가 망가뜨리도록 맡겨 둘 수는 없는 것이다”(357쪽). 이어 “거짓으로 눈앞의 승리를 잠시 쟁취한 듯 보이지만 머지않아 진실이 안개처럼 날려버릴 것이다”(358쪽)라고 쓰고, “가장 절망스러울 때가 가장 희망의 절정에 이를 때”, “얼어붙은 겨레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한 이육사를 호출한다(358쪽).
이 성찰은 제8회의 조롱 문제를 단지 이미지 정치의 차원에 머무르게 두지 않는다. 그것은 조롱과 왜곡, 냉소와 거짓이 결국 사람의 생명과 공동체의 미래를 해치는 더 큰 정치적 폭력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장하리가 견뎌 낸 조롱은 한 정치인의 이미지 훼손 사건이 아니라, 거짓과 냉소의 체제가 민주주의 전체를 어떻게 병들게 하는지를 드러내는 증언이 된다.
맺음말: 조롱의 시대를 건너는 힘은 끝내 신념에서 나온다
『장하리』 제8회가 남기는 결론은 분명하다. 사람을 무너뜨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총칼보다도 조롱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조롱을 끝내 이겨 내는 힘 역시 다른 데 있지 않다. 남들이 비웃는다고 해서 자기 길을 의심하지 않고, 시대가 왜곡한다고 해서 자기 양심을 포기하지 않는 데서 나온다. 장하리는 바로 그 길을 걸었다. 더 거칠어지지도 않았고, 더 비열해지지도 않았으며, 세탁소집 딸로서 배운 정직함과 양심의 체온을 싼값에 바꾸지도 않았다. 바로 그 정직함이 조롱의 시대를 건너는 그녀의 품격이었다.
그래서 제8회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조롱의 시대를 구경하는 방관자인가, 아니면 그 시대를 뚫고 나가는 신념의 동반자인가. 조롱받을 용기가 없는 사회는 결코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없다. 신념의 척추가 꺾이지 않을 때 비로소 민주주의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장하리』가 이 장에서 끝내 보여 주는 것은 바로 그 척추의 가치다. 순간의 조롱은 소음으로 사라지지만, 신념은 시간을 건너 끝내 자기 자리를 회복한다.
[제9회 예고]
그녀는 상처 입은 정의를 홀로 붙들고 고독하게 버텼다. 그렇다면 그 거친 시간을 먼발치에서 지켜보기만 했던 우리에게는 과연 아무런 책임이 없는가. 이어지는 제9회에서는 상처 입은 정의와 시민의 부채의식, 그리고 왜 지금 다시 장하리의 이름을 불러야 하는지 그 침묵의 책임을 따라가 본다.